이 시대 청춘 남녀의 대표적인 커플이라 할 수 있었던 그들이 터무니 없는 혼수와 주택 문제로 신성한 혼인의 서약을 깨트렸다는 점.
(30억 짜리 호화주택과 CF 수입이 그토록 미련이 있었다면 아예 재벌가의 신랑감을 찾지 왜 무명의 탤런트 상대를 골랐을까? 알고 보니 신랑의 부친이 방송가에 유명한 왕PD였다는 사실이다. 시댁의 방송권력이 애초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 요소라고 보인다. 파경의 원인 따위를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계산적인 만남에서 비롯된 인연이니 언젠가는 깨지게 되어 있었으니까.)
2. 언론의 선정성
한 가정의 쓰라린 붕괴를 놓고 옳다구나 소설을 쓰고있는 황색 저널리즘의 폐해를 우리는 적나라하게 보고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선정적인 제목으로 흥미있는 뉴스를 뽑아내는데 몰두하고 있는 언론의 연출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장단을 맞추고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는 이런 허접한 군상들의 티격태격 하는 다툼에 에너지를 소모할 이유가 없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일들이 산적해있는데 이토록 추한 이전투구에 눈길을 돌려야 한단 말인가? 자신의 입장만 변명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는 두 사람 측의 자세는 더 이상 봐주기 어렵다.)
3. 이 땅에 공인의 사회적 책무는 없다
탤런트는 공인이다. 그들도 보통 사람들과 똑 같은 개인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으나 전파를 통해 국민의 시청료, 그리고 광고료에서 비롯되는 돈을 받으며 연기자 생활을 한다는 것이 바로 공인의 경계 아닐까?
이민영의 경우, 청순하고 똑 부러진 연기로 상당한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스타였다. 그녀가 열연한 드라마 속의 연인상은 우리 시청자들을 웃고 울리고 큰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이찬도 마찬가지로 밝고 순진한 이미지로 도약하고 있는 연기자였다.
그러나 이 번 파경사태로 두 사람의 도덕성은 세상에 드러났다. 폭력과 금전과 자존심 싸움 등이 복합적으로 뒤엉킨 그들의 행태를 실망의 극치를 넘는다.
적어도 나는 앞으로 그들의 연기를 볼 생각이 없다. 연약한 여자를 때리는 폭력적 남자가 그럴듯한 연기를 한다해서 감흥이 오겠는가? 부정적이다.
어머니의 우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보다 금전적 계산에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여자가 지고지순한 사랑을 연기하겠는가? 그건 거짓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이 앞으로 브라운 관에 재등장한다면 채널을 돌릴 것이다. 이 땅에 사회적 정의가 존재한다면...... 두 사람은 일말의 양심을 되찾아 모든 허물을 털고 언론 플레이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자숙하는 의미에서 드라마 출연을 자제하고 모든 이들에게 전해준 환멸에 대한 대가로 사회봉사 활동을 3년쯤 해야 할 것이다.
(전세금 3억 5천도 빈민들을 위해 기부해랴 한다. 당신들은 시청자들이 전해준 사랑과 부를 누릴 자격이 없으므로)
♨이민영, 이찬 커플이 사회에 미친 해악 3가지♨
이 시대 청춘 남녀의 대표적인 커플이라 할 수 있었던 그들이
터무니 없는 혼수와 주택 문제로 신성한 혼인의 서약을 깨트렸다는 점.
(30억 짜리 호화주택과 CF 수입이 그토록 미련이 있었다면
아예 재벌가의 신랑감을 찾지 왜 무명의 탤런트 상대를 골랐을까?
알고 보니 신랑의 부친이 방송가에 유명한 왕PD였다는 사실이다.
시댁의 방송권력이 애초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 요소라고 보인다.
파경의 원인 따위를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계산적인 만남에서 비롯된 인연이니 언젠가는
깨지게 되어 있었으니까.)
2. 언론의 선정성
한 가정의 쓰라린 붕괴를 놓고 옳다구나 소설을 쓰고있는
황색 저널리즘의 폐해를 우리는 적나라하게 보고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선정적인 제목으로 흥미있는 뉴스를 뽑아내는데 몰두하고 있는
언론의 연출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장단을 맞추고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는 이런 허접한 군상들의 티격태격
하는 다툼에 에너지를 소모할 이유가 없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일들이 산적해있는데
이토록 추한 이전투구에 눈길을 돌려야 한단 말인가?
자신의 입장만 변명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는
두 사람 측의 자세는 더 이상 봐주기 어렵다.)
3. 이 땅에 공인의 사회적 책무는 없다
탤런트는 공인이다.
그들도 보통 사람들과 똑 같은 개인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으나 전파를 통해 국민의 시청료, 그리고 광고료에서 비롯되는
돈을 받으며 연기자 생활을 한다는 것이 바로 공인의 경계 아닐까?
이민영의 경우, 청순하고 똑 부러진 연기로 상당한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스타였다.
그녀가 열연한 드라마 속의 연인상은 우리 시청자들을 웃고 울리고
큰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이찬도 마찬가지로 밝고 순진한 이미지로 도약하고 있는
연기자였다.
그러나 이 번 파경사태로 두 사람의 도덕성은 세상에 드러났다.
폭력과 금전과 자존심 싸움 등이 복합적으로 뒤엉킨 그들의 행태를
실망의 극치를 넘는다.
적어도 나는 앞으로 그들의 연기를 볼 생각이 없다.
연약한 여자를 때리는 폭력적 남자가 그럴듯한 연기를 한다해서
감흥이 오겠는가? 부정적이다.
어머니의 우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보다 금전적 계산에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여자가 지고지순한 사랑을 연기하겠는가?
그건 거짓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이 앞으로 브라운 관에 재등장한다면
채널을 돌릴 것이다.
이 땅에 사회적 정의가 존재한다면......
두 사람은 일말의 양심을 되찾아 모든 허물을 털고
언론 플레이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자숙하는 의미에서 드라마 출연을 자제하고
모든 이들에게 전해준 환멸에 대한 대가로 사회봉사 활동을
3년쯤 해야 할 것이다.
(전세금 3억 5천도 빈민들을 위해 기부해랴 한다.
당신들은 시청자들이 전해준 사랑과 부를 누릴 자격이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