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의 새해는 언제나 새로운 희망과 설레임을 주고는 했지만 이제 불혹의 나이를 지니고 일어서야 한다는 중압감은 실로 대단히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운 것이리라. 새해 해돋이를 보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침까지 달호와 술을 마시고 쓰레기를 버리려 나오던 길에 첫 날 부터 재활용 봉투가 달라진 것을 감시하러 나온 할일 없는 사무소 직원 덕에 정신이 바짝들었고 비로소 주위를 둘러 보게 되었다. 어디로들 그리 많이 가는가.. 모레 잔뜩 쌓인 아스팔트 길을 따라 차가운 바닷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뒤를 따라가 보니, 송도 백사장에 뭐 그리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던지. 뿌연 수평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 들의 시선이 발을 동동 구르는 얼어 붙은 자신들의 희망을 녹여줄 붉은 햇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이 환하게 밝아도 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아마 일출을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순간, 찰라의 장면 속에 해수면에 바짝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일그러지는 타원형이 보이는 저 먼 곳에서 갑자기 하늘 위로 떡~ 하니 떠오르는 햇살이 우리의 눈가로 비춰오는 그 순간에는 모두가 함성과 탄성을 자아내지 않을 수가 없다. 상상을 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나를 놀라게 했던 사실과 체감 영하 20도는 족히 될 듯한 날씨에 먼 곳에서 부터 찾아 오는 정성들이 가슴에 새겨지기에 충분했다. 눈가에서 흐르는 눈물과 그 것을 녹일 듯한 부르튼 입술의 김서림.. 송도에서의 마지막 달을 만들어준 그 날의 일출과 소망을 바라는 평민들의 소박한 발걸음이 두고 두고 매년 초하루에는 생각이 나는 구나. 나를 따라 나중에 서울로 올라 왔던 달호는 고시원에서 부터 시작하여 점차 성장하여서 일류는 아니지만 직장에서 인정 받는 기타리스트가 되었고 백순기 형과 더불어 꾸준히 지금도 밴드로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안양 지하 보도 밴드 사무실에서 시작한 80년대 식구들 모두가 사회에서 알아 주는 형태로 자리매김 하였고, 특히나 실력이 없다고 손가락질 했던 김수용이 어느날 갑자기 미국으로 녹음 기술 배우러 떠난 뒤로 모두가 그 광풍에 휘말려 작곡이며 편곡이며 공연 세션이며 무지하게 그 곳을 탈출하려 노력을 했었다. 7년 후 돌아와 프로톨 아시아 지국장이 된 수용, 편곡가로 유명세를 떨치다 버클리에 간 정식, 한국 최고 락 기타리스트로 인정 받는 영주, 재즈의 맥을 잇고 있는 현우, 클럽 사장이 된 화영, 양수리 쪽에서 가수 메니지먼트 한다는 준, 실력이 제일 출중했던 사랑하는 귀암은 사업가로, 그리고 언제나 말썽 이었던 나, 이 8 인방이 얼마나 그 당시 유명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비록 지하 보도 사무실에서 삐삐가 오면 술집으로 봉고차에 실려 달려 가던 열악한 상황에서 음악의 꿈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여 아직도 그 환경에 서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나는 새해 첫 날에 해를 바라 보며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그 들은 언제나 게으르지 않는 하루를 살며 오늘에 40 을 맞이 하지 않았을까..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돌아 가고 싶던 시절의 나의 동료들에게 올 한 해가 더욱 도약하는 날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 가슴에 들어오는 겨울의 찬 공기는 집념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그저 소박했던 서민들의 행복하길 비는 손길이 되어 주었으면... 1 월이 지나면 한 주가 지나면 내일이 찾아와 주는가....
신년의 새해는 언제나 새로운 희망과 설레임을 주고는
신년의 새해는 언제나 새로운 희망과 설레임을 주고는
했지만 이제 불혹의 나이를 지니고 일어서야
한다는 중압감은 실로 대단히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운 것이리라.
새해 해돋이를 보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침까지 달호와 술을 마시고 쓰레기를 버리려
나오던 길에 첫 날 부터 재활용 봉투가 달라진 것을
감시하러 나온 할일 없는 사무소 직원 덕에
정신이 바짝들었고 비로소 주위를 둘러 보게 되었다.
어디로들 그리 많이 가는가..
모레 잔뜩 쌓인 아스팔트 길을 따라 차가운 바닷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뒤를 따라가 보니,
송도 백사장에 뭐 그리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던지.
뿌연 수평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 들의 시선이
발을 동동 구르는 얼어 붙은 자신들의 희망을
녹여줄 붉은 햇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이 환하게 밝아도 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아마 일출을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순간, 찰라의 장면 속에 해수면에 바짝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 일그러지는 타원형이 보이는
저 먼 곳에서 갑자기 하늘 위로 떡~ 하니
떠오르는 햇살이 우리의 눈가로 비춰오는
그 순간에는 모두가 함성과 탄성을 자아내지 않을 수가 없다.
상상을 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나를
놀라게 했던 사실과 체감 영하 20도는 족히 될 듯한
날씨에 먼 곳에서 부터 찾아 오는 정성들이
가슴에 새겨지기에 충분했다.
눈가에서 흐르는 눈물과 그 것을 녹일 듯한
부르튼 입술의 김서림..
송도에서의 마지막 달을 만들어준 그 날의
일출과 소망을 바라는 평민들의 소박한 발걸음이
두고 두고 매년 초하루에는 생각이 나는 구나.
나를 따라 나중에 서울로 올라 왔던 달호는
고시원에서 부터 시작하여 점차 성장하여서
일류는 아니지만 직장에서 인정 받는 기타리스트가
되었고 백순기 형과 더불어 꾸준히 지금도
밴드로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안양 지하 보도 밴드 사무실에서
시작한 80년대 식구들 모두가 사회에서 알아 주는
형태로 자리매김 하였고,
특히나 실력이 없다고 손가락질 했던 김수용이
어느날 갑자기 미국으로 녹음 기술 배우러 떠난 뒤로
모두가 그 광풍에 휘말려 작곡이며 편곡이며
공연 세션이며 무지하게 그 곳을 탈출하려 노력을 했었다.
7년 후 돌아와 프로톨 아시아 지국장이 된 수용,
편곡가로 유명세를 떨치다 버클리에 간 정식,
한국 최고 락 기타리스트로 인정 받는 영주,
재즈의 맥을 잇고 있는 현우,
클럽 사장이 된 화영,
양수리 쪽에서 가수 메니지먼트 한다는 준,
실력이 제일 출중했던 사랑하는 귀암은 사업가로,
그리고 언제나 말썽 이었던 나,
이 8 인방이 얼마나 그 당시 유명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비록 지하 보도 사무실에서 삐삐가 오면 술집으로
봉고차에 실려 달려 가던 열악한 상황에서
음악의 꿈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여 아직도 그
환경에 서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나는 새해 첫 날에 해를 바라 보며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그 들은 언제나 게으르지 않는 하루를 살며
오늘에 40 을 맞이 하지 않았을까..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돌아 가고 싶던 시절의 나의 동료들에게
올 한 해가 더욱 도약하는 날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 가슴에 들어오는 겨울의 찬 공기는
집념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그저 소박했던 서민들의 행복하길 비는
손길이 되어 주었으면...
1 월이 지나면
한 주가 지나면
내일이 찾아와 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