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원희룡에 묻는다. 설마 당신들도 중도를 위하여???

최용일2007.01.04
조회36
 

홍준표, 원희룡 그게 중도라고 착각하신 건 아니겠죠?


우리는 다 죄 많은 인간인지라 누구를 단죄할 권한도 없지만 또한 누구를 맘대로 용서할 권한도 없는 것이다. 고작 용기를 내어 할 수 있다면 용서하자고 말할 수 있을 뿐이고 단죄하자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특히 단죄는 그렇다 쳐도 용서는 하느님의 몫이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의 대선주자를 꿈꾸는 두 인간이 정반대의 개똥철학(?)을 가지고 그 신의 영역에 해당하는 짓거리인 용서와 화해를 부르짓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노무현과 전두환이라는 2대 악동을 용서하자며 머리 조아린 것이다.


수구보수로 보이던 인간 홍준표는 아파트 반값 주장으로 좌파성향을 보여 인기를 끄는가 싶더니 좌파의 수괴인 노무현이 완성한 민주화 시대를 계승하자면서 우향좌하고 있다. 우회전 신호에서 갑작스럽게 넣은 좌측 깜박이가 사람들을 당혹케 한다. 보수우익을 모두 속 좁은 정신병자로 몰아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고 지나치려니 그나마 한나라당 안에 몇 안되는 진보주의자(사실은 좌파?)라던 원희룡이라는 인간은 수구꼴통의 수괴 전두환에게 머리 조아리며 좌향우한다, 이 인간은 저 앞의 인간과는 반대로 좌회전하며 우측 깜박이를 넣는데 꼴이 가관이 아니다. 그 덕분에 희대의 독재자이자 살인마 전두환은 또 살아남겠구나. 합천의 일해공원은 역사 속에 우뚝 서겠구나 하는 섬뜩함이 앞선다.


혹시 이 두 인간 그 말로만 듣던 중도파라는 프리미엄을 따 보려고 단단히 돌아버린 것은 아닐까? 자신들은 아니라 해도 두 인간의 시대말적 개과천선(?)을 중도파라는 미약효과라 하지 않고는 봐 줄 수가 없는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그 두 인간의 억지 휴머니티를 보면서 한국의 중도파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탄생의 신비를 생각해본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중도다운 중도세력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분단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우측으로 많이 경사된, 그래서 이른바 빨갱이라 불린 극좌는 아예 생존이 불가능한 우리나라의 독특한 정치생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권위주의적인 독재정권의 시퍼런 서슬아래 사실상의 좌파정파조차 민심의 외면을 피하기 위해 진보니 통합이니 평화니 환경이니 민족이니 양심이니 하는 정치적 가치중립적인 용어 뒤에 숨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중도좌파는 말할 것도 없고 중도우파라고만 커밍아웃만 해도 좌파로 몰려 색깔논쟁에 말려들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정치생태계는 심지어 누가 봐도 좌파인 일부 재야인물들까지도, 스스로 ‘중도’임을 자처한 적이 없고 그 비슷한 것으로도 낙인 찍힐까봐 전전긍긍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스스로는 좌파임을 알면서도 좌파라 말하지 못한 채 양심세력이니 진보세력이니 하는 색안경을 쓴 채 생명을 부지해오면서 텃밭을 넓혀온 결과, 스스로 좌파라 하거나 좌파로 불리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커밍아웃기인 김대중-노무현정권이 도래했던 것이다.


하지만 2대 10년에 걸친 좌파정권의 기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좌파라는 말은 금기어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만큼 한국의 정치생태계에서 좌파는 천연기념물같은 존재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천연기념물이라 해서 반드시 희귀하다고만 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또한 제기되고 있다. 오늘자 조선일보 기사를 보자면 여당의 강봉균 정책위의장이 김근태 의장의 정책노선을 비판하면서 ‘좌파’라는 말까지 썼다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좌파라고 하면 딱 좋겠는데, 그럴 수는 없고… (김 의장과 같은) 그런 목소리가 여당의 지지율을 떨어뜨린 요인”이라면서, “권오규 경제부총리 등 정부 쪽과는 토론이 가능한데, (여당에는) 합리적 의견에도 승복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고도 했다.


그는 “여당 지지율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원인을 진단해 보면 대북정책에 있어서 국제공조보다 민족공조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면서 “일부 친북좌파…”라고 했다가 이 표현을 취소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시대인식이 바로 사이비 중도파의 창궐요인인 것이다. [권불10년]이라고 했던가? 10년 권세에 희희낙락한 좌파들이 서서히 마각을 드러내려는 시점에서 북핵문제니 뭐니 하는 암흑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 이미 커밍아웃한 민노당같은 인간들이야 하는 수 없이 정면돌파로 나가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열린당 좌파들은 커밍아웃하기보다는 가벼운 외피라도 감싸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러고 스스로를 돌아보니 벗어던진 양심이니 진보니 하는 구닥다리 옷들을 다시 걸치기엔 쪽팔린데, 분명히 감지되는 암흑기가 단순한 겨울이 아니라 빙하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게 그들 좌파가 사이비 중도 가면을 쓴 채 목하고민중일 때 역시 구세주가 된 것은 예전처럼 반성할 줄 모르는 수구꼴통들이었다. 북핵이나 햇빛정책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수구꼴통의 강공이 반독재반권위의 추억을 타고 양비론의 미진을 되살린 것이며, 그 위기감이 자기반성적인 세력과 기회주의적 세력을 포괄하는 대량의 중도우파를 태동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우익내에서 중도우파가 극우파와의 결별을 시도하는 조짐이 이른바  뉴라이트라는 운동으로 나타났지만 그 흐름은 중도라는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좌파에게도 마찬가지로 청신호였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좌파 정파(政派)가 요즘 갑자기 ‘진보’ 대신 ‘중도’로 위장개업을 하기 용이한 정치생태계가 탄생했다. 그러다보니 이제 중도는 극우도 좌파도 아닌 제3의 대체적 가치관이 된 것이다. 좌파는 말할 것도 없고 권위주의 시절 권력에 기생하며 수구보수의 핵으로 살아왔던 일부 전천후 출세주의자들까지 스스로를 중도라 칭한다. 그래서 너도 나도 ‘중도’의 우산 밑에 뉴라이트의 틀 안에 끼어들고 있으니 중도파의 스펙트럼이 어찌 안 넓을 수 있겠는가?


그 결과 사실상 좌파는 널려 있을 텐데 겉으로는 천연기념물이 된 것이며, 보이는 중도파는 많되 사실상 사이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생태계의 가장 큰 희생양은 아이러니하게도 우파의 총본산이라며 좌파타도를 외치고 나선 한나라당인 것이다. 지금 열린당 조차 포기한 노무현 다시보기를 주도하고 있는 홍문표의 어제까지의 좌표, 전두환에게 큰 절 올리다 홈피가 다운되자 동서화합 운운하며 다시 김대중을 찾는 좌충우돌의 원희룡의 어제까지의 좌표처럼 한나라당도 그렇고 그 소속 정치인도 그렇게 넓은 스팩트럼을 가진 게 바로 한나라당인가 보다. 유연성이라 할까, 포용력이라 할까, 아니면 상생과 화해모드라 할까? 어쨌든 한나라당 스팩트럼상 가장 보수적이고 가장 진보적이라던 극대점에 서 있던 둘이는 그렇게 좌우향우해서 서로 근접해가고 있다. 또한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너는 그게 뭐냐고 칭얼댄다. 누가 가랑잎인지 누가 솔잎인지 모를 일이지만 둘 다 가랑잎 같고 이게 다 한나라당의 본연의 모습이 아닌가 하여 안타깝다. 한나라당이 재집권하고 말고는 알바 아니지만 여전히 불쌍한 것은 옥석을 가려야 할 국민들이다. 그런 국면타개용(用) ‘방패막이 용어’들만큼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들이 없고 대중의 착시(錯視)를 일으키지만 그 얼렁뚱땅한 말을 정확히 파악하고 착시를 예방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 험난하다.


한쪽에서 중도라 하면 반대편에서는 빨갱이의 탈이라 하고, 또 다른 쪽이 중도라 하면 다른 쪽에서는 수구꼴통이라 하면서 똑같은 짓을 하는 그런 중도잡탕을 가려내기 위해 이제 우리는 과거의 낡은 이념적 리트머스 시험지를 버려야 할 것 같다. 이제 아무도 극우나 극좌를 표방하지 않고 다들 중도라 할 것이기에 저 인간은 왜 중도라 하는지, 이 인간은 무엇을 바라면서 중도라 하는지 그 배경을 읽어서 당당히 묻고 요구해야 한다. 좌향우한 중도들은 과연 “반독재 반권위주의 타도”, “한반도 비핵화“, ”개혁“의 잣대를 북한에 대해서, 김정일에 대해서도 요구할 수 있는지, 우향좌했다는 중도들에 대해서는 경제회생이니 좌파타도니 하는 선동적 구호 뒤에 숨어 친일, 독재조차 다 수용하겠다는 것인지 말이다.


건전한 상식이 지배하는 정치생태계를 복원시키기 위해서라도 좌파, 극우파가 과연 천연기념물인지, 중도가 과연 잡초가 아닌지 하는 천연기념물 재지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최소한 개가 풀 뜯어 먹는다고 하지는 않을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