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동안 이곳(싸이광장)에서 많은 안티크리스챤들과 기독교를 증오하는 분들의 글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분들의 글을 읽고 접할때마다 제 그리스도교 신앙을 더욱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분도 균형잡힌 뛰어난 지혜와 함께 겸손하고 선한 태도로 무신론 변증이라든지 기독교교리 반박이라든지 하는것을 본적이 없기때문입니다...
여기서 한자락 저기서 한자락 얻어들은 지식과 균형을 잃은 논리전개와 자기자신을 돌아볼줄 모르는 연약함 속에서 쓰여진 감정적인 글로는 자신의 온 삶을 다한 종교적 감성과 이성과 체험과 확증적 고백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분들을 결코 설득하지 못합니다....
어떤분들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는 신의 존재를 믿기 어려운 사실들로 가득차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말대로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이유들 역시 가득차있습니다.
간음한 성직자를 보고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지만 마더테레사의 삶을 보고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으며, 신자들이 일으킨 전쟁을 보고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지만 성 프란체스코나 마티루터 킹 목사 같은 분들이 생을 다하여 이루어낸 평화를 보고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신이 있었다면 일어날수 없는 사건들을 모아서 자신의 불신앙의 근거로 삼을 수도 있고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을 모아서 자신의 신앙의 근거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택하는게 모든 인간이 실천이성(칸트철학의 개념)체계를 유지하며 존재의 충족율(라이프니츠 철학의 개념)을 충족시키며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규정지으며 완성시키는데 적합한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글들과 함께 성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과 에드워드 보이드의 '너는 왜 하나님을 믿느냐'와 리스트로벨의 '예수사건' 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과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이란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무지와 맹목과 미신속에서 유지되고 있는 신앙이 아닙니다.
관념론 철학의 내재적 완성자인 헤겔도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며 실존주의 철학의 비조인 키에르케고르도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며 20세기 최고의 언어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도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법의 정신을 쓴 몽테스키외도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며 만유인력을 법칙을 발견한 뉴톤도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며 국제법의 아버지 그로티우스도 그리스도교 신자였고 유명한 데카르트.버클리. 칸트,셸링.라이프니츠 등등등도 모두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오늘날 사용되는 소위 '합리적' 이라는 표현은 서구철학의 개념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합리주의 철학자들과 관념론 철학자들이 거의 대부분 그리스도교 신자였는데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이 마치 비합리와 맹목적 신앙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게 조금 아니러니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이전에 하버드 대학교 모의재판부에서도 오랜시간 서지학적 검증과 토론과 조사 과정을 거쳐 믿을 수 있는 사건으로 판단되었던 역사적 기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기독교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시든 먼저 아래의 글들만이라도 읽어보시고 충분히 생각보시기 바랍니다...
부족한 자가 두서없이 짧은 지식으로 몇글자 적었습니다...
이 글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시는 그리스도교인 형제자매님들께서는 많이들 스크랩해가시고 또한 추천해주셔서 많은 사람들이 이글을 읽을 수 있도록 하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서울대 철학개론 책에서 언급된 내용
"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신 또는 절대자의 실재를 증명하거나 직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신 또는 절대자의 비실재를 단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한계는 신 또는 절대자의 실재여부를 알 수 없다는데 그칠 뿐이요 그 비실재를 적극적으로 단정할 수 있는데 까지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절대자에 대한 불가지론은 영원한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도 불가지론적 견해로 우리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결론에로 이끌어 갈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론적 혼미 속에서 우리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는 지극히 겸허하고 또 긍정적인 그것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자 또는 영원한 가치를 아예 부정해 버리는 오만한 태도를 취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영원한 가치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동안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생명을 가진 인간이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라고 믿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우리가 인간 밖에 존재하는 신 또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끝내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우리 자신 속에 영원한 가치의 근거를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 서울대 철학개론 교과서(97년판) 96 page 중에서
2) 서강대 철학과 강영안 교수님의 글
"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과학적 설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믿을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인간
의 투영이 아닌가. 만일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각자 그 짐을 짊
어져야지 어떻게 예수에게 그 짐을 대신 맡길 수 있는가.
죽은 사람의 부활과 영생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는가.
이런 물음에 대하여 반론의 여지없이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답을 해 줄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도인 나에게 왜 여전히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고 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는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기독교 신앙만큼 이치에 맞고, 지적으로 만족스럽고,
도덕적으로 신뢰할 만하고, 감정적으로 포근한 것은 없다고...
오늘의 사상계를 지배하는 자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세속적
인본주의가 만일 참이라고 가정해보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자
연뿐이며 모든 것은 물질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자연주의
자들은 말한다. 참과 거짓, 선과 악,옳은 것과 틀린 것은 사회적
약속이거나 인간정신의 산물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고 포스트
모더니즘 따르는 사람들은 주장한다.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가치 척도
라고 생각한다. 만일 이 주장들이 참이라면 기독교를 가장 강
력하게 비판했던 러셀의 결론이 맞을 것이다. 사람은 예측할
수 없는 원인들의 산물이며 사람의 출생,성장,사람이 가지고
있는 희망과 두려움, 사랑과 믿음은 원자들의 우연한 배열의
결과에 지나지 않으며 어떠한 정열도, 어떠한 용맹도, 어떠한
강렬한 사유와 감정도 내세에서는 개인의 삶을 보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모든 세대의 수고와 헌신과 영감과 번쩍이는 천재성
도 태양계의 종말이 오면 소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러셀의
주장이다. 결국 아무런 근거,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허무주의'
가 결론이다.
기독교 신앙을 수용할때 우리는 세속적 세계관으로는 인정할
수 없는 몇가지 근본적 사실을 알게 된다. 예컨대, 이 세계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의도와 계획과 목표가 있는 세계이며 우
리 자신은 한낱 원자 덩어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과
교제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이고 , 참과 거짓, 선과 악도 단순히
사회적 약속이나 인간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
신 사물의 본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들이다. 또 죽음은 삶
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기 때문에 우리의 열정, 노
력, 수고와 헌신이 헛되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선한 열매를 맺
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근거일 뿐 아니라 지식의
근거이며, 도덕의 근거이며, 현재와 미래의 근거다. 허무주의
는 하나님을 통해서만이 극복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철학자로서
나자신이 예수 안에서 소망을 갖는 이유가 될 것이다."
3.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알렉시스 카렐의 저서
'인생의 고찰' 이란 책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
" 신에 대한 욕구는 기도로서 나타난다. 기도는 슬픔의 절규이며, 도움을 청하는 소원이며, 사랑의 찬가이다. 기도는 종잡을 수 없는 말을 마지못해 주절대는 것은 아니다. 기도는 거의 언제나 응답받는다. 마치 신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직접 들어 주기라도 하는 것 처럼 온갖 일이 일어난다.
뜻하지도 않았던 사건이 일어나거나, 정신적 안정감을 되찾거나, 고독하고 무력한 생각이나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절망감이 불식되거나 하는 것이다. 기도를 하면, 세상은 잔혹하지도 불공평하지도 않고 친근한 것으로 느껴지며, 이상한 힘이 몸안에 뿌듯해 오는 것이다.
기도는 고뇌나 걱정에 견디고, 이치상으로는 희망이 안 보일 때에도 희망을 잃지 않으며, 한창 불행에 처해서도 평정을 잃지않는 힘을 준다. 이러한 현상은 누구에게나 일어나지만, 특히 현대 생활의 시끄러움이나 혼란을 마음 속으로부터만 몰아낸 사람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과학의 세계는 기도의 세계와는 다르다. 그러나, 이성이 그것에 바탕을 두지 않은 것과 대립하지 않듯이, 과학과 기도도 양립하는 것이다. 정신의 활동에는 이성적인 그렇지 않은 것의 양쪽이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기도의 효과는 종교와 마찬가지로 과학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기도는 감정 면만이 아니라 생리 작용에도 영향을 준다. 기도는 육체 기관의 병을 순식간에, 또는 며칠 안에 고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이 아무리 이해하기 힘들더라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루르드의 의학적 입증 사무국에는 결핵.소경.골수염.암 등의 병이 거의 즉각 완치된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예가 200건 이상이나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모호하지 않은 기반이 있다. 인간은 구원을 청하고, 그리고 기도함으로써 구원받는 것이다. 장차 이것이 어떻게 해석되건 이 사실은 영구히 진실인 것이다.
신의 존재는 어떤 가설보다도 기도의 효과나 신비적인 현상이나 경건한 감정을 잘 설명해 준다. 신에 대한 동경은, 환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구조적 특성의 발로로서- 정신의 발달 정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 파악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우주는 통일된 조직이므로, 그러한 욕구가 있다는 사실은 외계에 그것을 만족시키는 수단이 있음을 기대케 한다. 예컨대, 만일 공기 속에 산소가 없다면 육체의 세포는 틀림없이 생존하는데에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물.지방.설탕.단백질 등을 필요로 하는 것은 외부의 환경에 그러한 물질들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최고의 권력을 지닌 신령과 교류하기를 원하고 있는 욕구는, 본질적으로 약간 막연하기는 하지만, 그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 신령은, 인격신인 동시에 모든 것에 내재하며, 직관과 신의 계시와 자연의 법칙에 의하여 명백해지는 것이다."
[겨자씨] 가장 좋은 논쟁
몇 해 전 영국 런던에서 구제 사역을 하는 선교회 회장이 유명한 무신론자의 논쟁 도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은 각자 자기 입장을 지지하는 후원자를 100명씩 데리고 오도록 했습니다. 그 회장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삶이 확실하게 변한 100명의 사람을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회장은 상대방에게도 불신앙이 주는 유익을 발표할 수 있는 100명의 증인을 데려와서 반격하라고 도전했습니다. 약속한 날짜에 선교회 회장은 100명의 증인과 함께 토론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유익에 대해 말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만 무신론의 유익에 대해 자신 있게 증언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무신론이 오히려 기적 같은 일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무서운 교만입니다.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 제 쪽지를 보시고 이곳에 오셔서 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추천해주신 모든 일촌분들과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과 기독교를 맹목적으로 증오하는 분들께 전하는 글
저는 그동안 이곳(싸이광장)에서 많은 안티크리스챤들과 기독교를 증오하는 분들의 글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분들의 글을 읽고 접할때마다 제 그리스도교 신앙을 더욱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분도 균형잡힌 뛰어난 지혜와 함께 겸손하고 선한 태도로 무신론 변증이라든지 기독교교리 반박이라든지 하는것을 본적이 없기때문입니다...
여기서 한자락 저기서 한자락 얻어들은 지식과 균형을 잃은 논리전개와 자기자신을 돌아볼줄 모르는 연약함 속에서 쓰여진 감정적인 글로는 자신의 온 삶을 다한 종교적 감성과 이성과 체험과 확증적 고백속에 이루어지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분들을 결코 설득하지 못합니다....
어떤분들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는 신의 존재를 믿기 어려운 사실들로 가득차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말대로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이유들 역시 가득차있습니다.
간음한 성직자를 보고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지만 마더테레사의 삶을 보고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으며, 신자들이 일으킨 전쟁을 보고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지만 성 프란체스코나 마티루터 킹 목사 같은 분들이 생을 다하여 이루어낸 평화를 보고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신이 있었다면 일어날수 없는 사건들을 모아서 자신의 불신앙의 근거로 삼을 수도 있고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을 모아서 자신의 신앙의 근거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택하는게 모든 인간이 실천이성(칸트철학의 개념)체계를 유지하며 존재의 충족율(라이프니츠 철학의 개념)을 충족시키며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규정지으며 완성시키는데 적합한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글들과 함께 성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과 에드워드 보이드의 '너는 왜 하나님을 믿느냐'와 리스트로벨의 '예수사건' 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과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이란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무지와 맹목과 미신속에서 유지되고 있는 신앙이 아닙니다.
관념론 철학의 내재적 완성자인 헤겔도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며 실존주의 철학의 비조인 키에르케고르도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며 20세기 최고의 언어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도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법의 정신을 쓴 몽테스키외도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며 만유인력을 법칙을 발견한 뉴톤도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며 국제법의 아버지 그로티우스도 그리스도교 신자였고 유명한 데카르트.버클리. 칸트,셸링.라이프니츠 등등등도 모두 그리스도교 신자였습니다. 오늘날 사용되는 소위 '합리적' 이라는 표현은 서구철학의 개념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합리주의 철학자들과 관념론 철학자들이 거의 대부분 그리스도교 신자였는데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이 마치 비합리와 맹목적 신앙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게 조금 아니러니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이전에 하버드 대학교 모의재판부에서도 오랜시간 서지학적 검증과 토론과 조사 과정을 거쳐 믿을 수 있는 사건으로 판단되었던 역사적 기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기독교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시든 먼저 아래의 글들만이라도 읽어보시고 충분히 생각보시기 바랍니다...
부족한 자가 두서없이 짧은 지식으로 몇글자 적었습니다...
이 글이 가치있다고 생각하시는 그리스도교인 형제자매님들께서는 많이들 스크랩해가시고 또한 추천해주셔서 많은 사람들이 이글을 읽을 수 있도록 하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서울대 철학개론 책에서 언급된 내용
"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신 또는 절대자의 실재를 증명하거나 직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신 또는 절대자의 비실재를 단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한계는 신 또는 절대자의 실재여부를 알 수 없다는데 그칠 뿐이요 그 비실재를 적극적으로 단정할 수 있는데 까지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절대자에 대한 불가지론은 영원한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도 불가지론적 견해로 우리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결론에로 이끌어 갈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론적 혼미 속에서 우리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는 지극히 겸허하고 또 긍정적인 그것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자 또는 영원한 가치를 아예 부정해 버리는 오만한 태도를 취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영원한 가치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동안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생명을 가진 인간이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라고 믿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우리가 인간 밖에 존재하는 신 또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끝내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우리 자신 속에 영원한 가치의 근거를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 서울대 철학개론 교과서(97년판) 96 page 중에서
2) 서강대 철학과 강영안 교수님의 글
"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과학적 설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믿을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인간
의 투영이 아닌가. 만일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각자 그 짐을 짊
어져야지 어떻게 예수에게 그 짐을 대신 맡길 수 있는가.
죽은 사람의 부활과 영생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는가.
이런 물음에 대하여 반론의 여지없이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답을 해 줄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도인 나에게 왜 여전히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고 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는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기독교 신앙만큼 이치에 맞고, 지적으로 만족스럽고,
도덕적으로 신뢰할 만하고, 감정적으로 포근한 것은 없다고...
오늘의 사상계를 지배하는 자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세속적
인본주의가 만일 참이라고 가정해보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자
연뿐이며 모든 것은 물질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자연주의
자들은 말한다. 참과 거짓, 선과 악,옳은 것과 틀린 것은 사회적
약속이거나 인간정신의 산물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고 포스트
모더니즘 따르는 사람들은 주장한다.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가치 척도
라고 생각한다. 만일 이 주장들이 참이라면 기독교를 가장 강
력하게 비판했던 러셀의 결론이 맞을 것이다. 사람은 예측할
수 없는 원인들의 산물이며 사람의 출생,성장,사람이 가지고
있는 희망과 두려움, 사랑과 믿음은 원자들의 우연한 배열의
결과에 지나지 않으며 어떠한 정열도, 어떠한 용맹도, 어떠한
강렬한 사유와 감정도 내세에서는 개인의 삶을 보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모든 세대의 수고와 헌신과 영감과 번쩍이는 천재성
도 태양계의 종말이 오면 소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러셀의
주장이다. 결국 아무런 근거,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허무주의'
가 결론이다.
기독교 신앙을 수용할때 우리는 세속적 세계관으로는 인정할
수 없는 몇가지 근본적 사실을 알게 된다. 예컨대, 이 세계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의도와 계획과 목표가 있는 세계이며 우
리 자신은 한낱 원자 덩어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과
교제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이고 , 참과 거짓, 선과 악도 단순히
사회적 약속이나 인간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
신 사물의 본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들이다. 또 죽음은 삶
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기 때문에 우리의 열정, 노
력, 수고와 헌신이 헛되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선한 열매를 맺
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근거일 뿐 아니라 지식의
근거이며, 도덕의 근거이며, 현재와 미래의 근거다. 허무주의
는 하나님을 통해서만이 극복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철학자로서
나자신이 예수 안에서 소망을 갖는 이유가 될 것이다."
3.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알렉시스 카렐의 저서
'인생의 고찰' 이란 책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
" 신에 대한 욕구는 기도로서 나타난다. 기도는 슬픔의 절규이며, 도움을 청하는 소원이며, 사랑의 찬가이다. 기도는 종잡을 수 없는 말을 마지못해 주절대는 것은 아니다. 기도는 거의 언제나 응답받는다. 마치 신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직접 들어 주기라도 하는 것 처럼 온갖 일이 일어난다.
뜻하지도 않았던 사건이 일어나거나, 정신적 안정감을 되찾거나, 고독하고 무력한 생각이나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절망감이 불식되거나 하는 것이다. 기도를 하면, 세상은 잔혹하지도 불공평하지도 않고 친근한 것으로 느껴지며, 이상한 힘이 몸안에 뿌듯해 오는 것이다.
기도는 고뇌나 걱정에 견디고, 이치상으로는 희망이 안 보일 때에도 희망을 잃지 않으며, 한창 불행에 처해서도 평정을 잃지않는 힘을 준다. 이러한 현상은 누구에게나 일어나지만, 특히 현대 생활의 시끄러움이나 혼란을 마음 속으로부터만 몰아낸 사람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과학의 세계는 기도의 세계와는 다르다. 그러나, 이성이 그것에 바탕을 두지 않은 것과 대립하지 않듯이, 과학과 기도도 양립하는 것이다. 정신의 활동에는 이성적인 그렇지 않은 것의 양쪽이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기도의 효과는 종교와 마찬가지로 과학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기도는 감정 면만이 아니라 생리 작용에도 영향을 준다. 기도는 육체 기관의 병을 순식간에, 또는 며칠 안에 고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이 아무리 이해하기 힘들더라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루르드의 의학적 입증 사무국에는 결핵.소경.골수염.암 등의 병이 거의 즉각 완치된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예가 200건 이상이나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모호하지 않은 기반이 있다. 인간은 구원을 청하고, 그리고 기도함으로써 구원받는 것이다. 장차 이것이 어떻게 해석되건 이 사실은 영구히 진실인 것이다.
신의 존재는 어떤 가설보다도 기도의 효과나 신비적인 현상이나 경건한 감정을 잘 설명해 준다. 신에 대한 동경은, 환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구조적 특성의 발로로서- 정신의 발달 정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 파악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우주는 통일된 조직이므로, 그러한 욕구가 있다는 사실은 외계에 그것을 만족시키는 수단이 있음을 기대케 한다. 예컨대, 만일 공기 속에 산소가 없다면 육체의 세포는 틀림없이 생존하는데에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물.지방.설탕.단백질 등을 필요로 하는 것은 외부의 환경에 그러한 물질들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최고의 권력을 지닌 신령과 교류하기를 원하고 있는 욕구는, 본질적으로 약간 막연하기는 하지만, 그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 신령은, 인격신인 동시에 모든 것에 내재하며, 직관과 신의 계시와 자연의 법칙에 의하여 명백해지는 것이다."
[겨자씨] 가장 좋은 논쟁
몇 해 전 영국 런던에서 구제 사역을 하는 선교회 회장이 유명한 무신론자의 논쟁 도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은 각자 자기 입장을 지지하는 후원자를 100명씩 데리고 오도록 했습니다. 그 회장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삶이 확실하게 변한 100명의 사람을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회장은 상대방에게도 불신앙이 주는 유익을 발표할 수 있는 100명의 증인을 데려와서 반격하라고 도전했습니다. 약속한 날짜에 선교회 회장은 100명의 증인과 함께 토론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무신론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유익에 대해 말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만 무신론의 유익에 대해 자신 있게 증언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무신론이 오히려 기적 같은 일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무서운 교만입니다.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 제 쪽지를 보시고 이곳에 오셔서 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추천해주신 모든 일촌분들과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