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語 - 마을의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

김용훈2007.01.06
조회38

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자공이 질문하였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 역시)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을의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중략...

 

불편부당이나 중립을 흔히 높은 덕목으로 치기도 하지만 바깥사회와 같은 복잡한 정치적 장치 속에서가 아니라 지극히 단순화된 징역보델에서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싸울 때의 '중립'이란 실은 중립이 아니라 기회주의보다 더욱 교묘한 편당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으려는 심리적 충동도, 실은 반대편의 비판을 두려워하는 '심약함'이 아니면, 아무에게나 영합하려는 '화냥끼'가 아니면, 소년들이 갖는 한낱 '감상적 이상주의'에 불과한 것이라 해야합니다. 이것은 입장관 정견이 분명한, 실한 사랑의 교감이 없습니다. 사랑은 분별이기 때문에 맹목적이지 않으며, 사랑은 희생이기 때문에 무한할 수도 없습니다.

 징역을 살 만큼 살아본 사람의 경우가 아마 가장 철저하리라고 생각되는데 '마을의 모든 사람'에 대한 허망한 사랑을 가지고 있거나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은 '증오에 대하여 알 만큼 알고 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증오는 그것이 증오하는 경우든 증오를 받는 경우든 실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불행이 수반되게 마련이지만, 증오는 '있는 모순'을 유화하거나 은폐함이 없기 때문에 피차의 입장과 차이를 선명히 드러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오의 안받침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증오는 '사랑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 신영복, 강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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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外人曰

 

그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고 살지 않고 싶어한 시절이 있었다.

미움을 받는 내 자신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지 않으려 살아왔다.

하지만 미움이라는 감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영복 교수의 말처럼,

사랑은 분별이기 때문에 맹목적일 수 없고,

희생이기 때문에 무한할 수 없듯이

나의 입장이 없이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려는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차마 사랑을 한 것도 아니요

미워한 것도 아닌 무의미한 관계로

상대와 나를 마음으로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심약함이나, 화냥끼, 또는 감상적 이상주의에 빠져

세상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이가 공감가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을

외면해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외면이라기 보다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없어야

모두에게 공감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결국 난 감정이 없는 사람

기계적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나의 정견, 입장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그 만큼 나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것이 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관계의 사랑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마지막의

"증오의 안받침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증오는 사랑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라는 문장은 지금의 나에게 많은 시사를 안겨준다.

 

증오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증오를 포함한

무언가였다.

드러난 것은 증오였으나

증오와는 다른 감정이 그 속에서

증오의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그러한 증오가 이제 서서히 식어간다.

증오가 식어가는 것은 어쩌면

이제는 사랑도 식어가는 것이요

그 사람과 내가 바라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견이 없는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남에게 의지해서

결정하는 것을 주저없이 행하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인생이 불쌍해보여

차마 더는 증오도 사랑도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하게되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내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각을 피하지 않는

도망치지 않는 당당함이 아닐까 한다.

 

마을의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투쟁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투쟁을 좋아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공리주의도

투쟁이 좋아서가 아니라

투쟁을 만든 사회가 미워서이다.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미운 것을 배제시켜야하는 시대

그 미운 것과 좋은 것이 무엇인지는

각자가 선택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투쟁을 하게 된다.

 

싸움, 투쟁은

관심이 없으면

없게 된다.

 

미움도

사랑이 없으면

사라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