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4대미녀 (경국지색) "서시"

김형오2007.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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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전국시대"의 "서시"  침어(浸魚)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먹다 "  "서시"는 춘추시대 말기의 (월나라)의 여인이다.  어느 날 그녀는 강변에 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강물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었다.  그녀를 본 수중의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 앉았다.  그래서 서시는 침어(浸魚)라는 칭호 를 얻게 되었다.  서시는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 구천(勾踐)의 충신 범려(範려)가 보복을 위해 그녀에게 예능을 가르쳐서 호색가인 (오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잡혀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어 마침내 월나라에 패망하였다.
  <고대 중국의 미녀들 (경국지색 傾國之色)과 4대미녀.. 그들 中 "서시" 를 이야기 해 본다> 

 

말희, 포사, 달기, 서시, 초선, 왕소군, 양귀비...

특히 중국역사상 4대미녀 (경국지색)이라 불리는

서시, 초선, 왕소군, 양귀비...

 

말희... 잔인하고 포악하며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즐기며 끝없이 더 잔인하게 죽어가는 것을 즐긴다.

 

포사... 그녀는 미소 지을 줄 몰라... 나라를 말아먹었다.

 

달기... 그녀는 심성이 잔인하고 포악한 요부이며 역시 왕의

           눈을 미색에 멀게하여 백성을 괴롭히고 나라를 말아

           먹었다.

 

초선...  중국역사상 4대미녀이자 나라를 위해 늙은 돼지

            동탁  에게 일부러 시집가서, 동탁의 양자인 시대

            의 명장 여포, 와 양아버지 동탁을 이간질 시켜서

           둘을 제거 하려던 한나라의 충신의 왕윤의 계략으

           로 두 양부와 양자 사이를 이간질 시킨다. 

 

관우, 장비 두 명장이 함께 협공을 해도 당해내지 못했던

삼국 시대 최고의 무장 여포.  

그 두 양부 양자 사이를 이간질 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한 삼국지의 천하절색 (경국지색) 초선...

그러나 그녀또한 마지막은 초라했다.

 

초선은 한나라 말기 충신 왕윤이 신료 들과 나라를 걱정하다

집으로 돌아와 달빛아래 지팡이를 끌고 나와서 작금의 시국에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왕실의 권의는 무기력 해 지고 여기 저기서 도적들이 들끓고

백성을 약탈하며, (그중에서도 홍건족 이 라는 도적의 무리는 수십만에 가까워 수많은 성이 무너지고 성주가 도망을 치거나 죽임을 당하였고 각 지방의 태수들 또한 도적들의 난을 진압 하지 못하고 달아나기에 바빴다.

 

이에 홍건적을 토벌 하겠 노라고 각지의 제후나, 태수, 장수 들 또한 군사를 일으키는 바람에 나라는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홍건적을 토벌하면 황제로부터 큰 포상을 받을수 있기 때문이였다.

넓은 영토와  높은 벼슬,  많은 제물을 받을수 있고, 그 위상이 하늘을 찌를듯 상승하며,  

많은 성주들과,  태수들...  한나라의 내노라 하는 벼슬아치 들과 하루 아침에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거나 그들 위에 굴림 할수도 있었다.

 

그래서 각지의 장수들이 앞다투어 홍건적을 토벌 하겠다며 황제에게 칙서를 올리고 군사를 일으겼다.

 

수십년간 홍건적의 난은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었으며 그들의 영향력은 한나라 전역에 퍼져 있었다.

 

이때 시골 촌구석에서 대나무로 자리를 엮어서 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던 가난뱅이, 한나라 황실의 먼 후손이던 "유비" 도 나라를 걱정하며 늘 힘없는 자신을 한스러워 한다.

 

그러던 차에 관우와 장비를 만나서 도원결의 를 맺고서 벼슬도 없이 그를 따르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아서 홍건적 토벌에 나선다.

그들은 가는 곳 마다 연승을 거두며, 유비를 따르게 되는 장병들이 날이 갈수록 많아진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유비에겐 벼슬이 없었다.

그래서 도적때를 토벌하고도 포상이나 인정을 받지를 못하였고 심지어 큰 싸움에서 이기고도 그 공적을 다른 벼슬아치에게 배았기고 그의 이름으로 황제에게 공로가 오라가서 그가 황제에게 포상을 받기도 여러번이였다.

 

또한 유비의 군대는 나라로 부터 아무런 군량이나 무기나 의복도 지원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유비가 덕이 많고, 한나라의 후손이며, 황제의 숙부뻘이 된다는 소리는 멀리까지 알려지게 되고,  그를 따르는 장병들 또한 갈수록 많아진다.

    

한편 하루가 멀다고 너도나도 영웅을 자처하며 패권을 노리고 전쟁을 일으키거나 한왕실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황제를 가까이하며 마음대로 조종하여 신하가 황제보다 더한 권세를 부리며 황제를 위협하니 하루도 편할날이 없었다.

 

이번엔 동탁이 패권을 쥐고서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폭정을 일삼으나 누구도 그를 제거할 대책이 없었다.

이에 왕윤이 홀로 달빛아래 눈물을 흘리니 어딘가에서 처량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둘러보니 왕윤의 집에 어려서 부터 들어와서 노래와 춤을 배우며 살던 계집 아이가 아닌가.

 

이에 왕윤이 호통치며 계집이 무슨 말못할 사정이 있기에 야밤에 요망스럽게 그리 장탄사를 하는고.

하며 호통치자 계집이 하는말이.

 

소녀는 어려서부터 주인님의 배려로 이렇게 호의호식하고 있는데,

주인님은 달밤에 눈물로 한탄 하시는걸 보게되니 마음이 아파서 그만 슬픈 노래가 나왔노라고 말했다.

 

이에 왕윤이 기특해 하며 자세히 보니 초선이라는 아이였다.

초선은 어느덧 16세의 나이로 무르익어 있었다.

 

왕윤이 침소로 돌아와 곰곰히 생각하다.

무릅을 탁 치며 기뻐했다.

 

다음날 왕윤은 통탁의 양아들 여포를 초대해서, (당시는 동탁과 그의 양아들 여포가 실권을 휘어잡고서 황제를 꼼짝도 못하게 하고 권력을 틀어 쥐고 있었다.)  술대접을 하며 일부러 초선 을 불러서 여포에게 술을 따라 드리도록 명하였다.

 

갇 스물이 넘은 젊은 여포는 초선이 따르는 술잔을 받으며 초선의 자태에 넋이 나가 버렸다.

 

지금은 동탁이 권력을 쥐고있고, 거기에다 천하의 명장 여포가 동탁의 양아들로 동탁을 철저히 호위 하고 있었다.

 

허나 여포는 본시 배신을 밥먹듯 하는 위인 이라서 전에도 동탁의 꼬임에 자신을 어려서 부터 키워준 양부를 죽이고 동탁에게 붙어서 양아들로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여포의 양부는 당시 동탁에게 눈에 가시 였으며, 동탁을 항상 성가시게 하는 존제였다.

 

그러나 동탁은 그의 양아들 여포의 철저한 호위 때문에 그를 죽이지 못하였다.

 

그러던 차에 묘안을 떠올린 동탁은 여포에게, 양부를 죽이고 자신에게 오면 자신의 아들로 삼의며 천하의 권력을 주겠다고 꼬드겼다.

여포의 나이 갖 스물을 넘은 혈기왕성한 나이였다.

 

왕윤은 여포의 그점을 이용하려고 초선과 계략을 꾸민 것이며 왕윤의 부탁에 초선은 주인님을 위한 일인데 무슨 일인들 못 하느냐며 기꺼이 자신의 몸을 바쳐서라도 주인의 은혜에 보답 하겠노라고 답하였다.

 

초선에게 넋이나간 여포는 대번에 왕윤에게 어쩔줄을 몰라하고 우왕 좌왕 하였다.

 

시간이 지나자 왕윤은 초선을 물렸다.

그때 여포가 왕윤에게 초선을 대리고 있음을 부러워하자,

왕윤은 정색을하며 저 아이는 자신이 친딸처럼 키워온 양녀라고 말하며 이제 시집을 보낼때가 됐는대 마땅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며 넌지시 여포의 눈치를 살폈다.

 

여포가 어떤 사내라면 마음에 드시겠느냐며 속타는 마음을 억지로 감추며 뭇자.

 

여포 장군의 밑음직 함과 명성의 절반만 하여도 좋겠으나, 그런 자가 어디 있어야 말이죠... 라며 말하자 여포가 기뻐하며 과찬이라고 겸손을 부린다.

결국 애가 탄 여포는 초선을 자신의 정부인으로 맞이하고 싶은데 대인께서 허락 하실 수 있겠느냐며 물었다.

 

왕윤이 너무도 황송해 하며 그보다 더 영광된 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기뻐하자 마음이 급한 여포는 날을 빨리 잡고 싶다고 말하였다.

이에 왕윤은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보내드리고 싶으나 

장군의 명성도 있고하니 날을 잡아서 정식으로 장군에게 보내겠노라고 약조한다.

 

날 듯이 좋아하며 돌아간 여포는 왕윤에게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왕윤이  날을 잡아서 사람을 보내 여포에게 그날 초선을 보내겠노라고 전하자  여포는 기뻐하며 손꼽아 그날만을 기다린다.

 

 

왕윤은 이번엔 여포의 양부 동탁을 초대한다.

그리고 전과같이 초선을 불러 술을 올리게 하고 노래와 춤과 음악을 들려준다.

배에 기름이 껴서 몸도 가누기 힘든 늙은 동탁은 초선에게 빠져서 헤어나질 못한다.

 

최고의 권력을 쥔 동탁은 매우 기뻐하며 초선을 자신의 집으로 대려가도 좋겠느냐고 왕윤에게 뭇자 왕윤은 난색을 표하며,

여포 장군과 얼마전 약조한 사이라고 하자 잠시 고민하던 동탁은, 그럼 자신의 며느리가 될 아이 이니 자신이 대려가서 혼사를 시키겠 노라고 하자.

왕윤은 그렇게 하시라고 한다.

 

동탁은 서둘러 초선을 가마에 태우고 황제에 버금가는 수많은 호위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온다던 날짜에 초선이 안오자 여포는 화가나서 왕윤을 찾아와 이럴수 있느냐고 따진다.

 

이에 왕윤은 놀라는 펴정을 지으며, 동탁 승상이 자신이 대려가서 장군과 혼사 시키겠노라 약속하고 대려 갔노라고 말했다.

 

그때사 여포는 다시 기뻐하며 왕윤에게 사과하고 돌아갔다.

하루이틀 동탁이 무슨 말을 해주기를 기다렸으나 깜깜 무소식 이 였으며 요즘들어 동탁은 여포를 부르지도 않았다.

 

평소에 동탁은 잠시도 여포를 곁에서 놓아주지 않을 정도로 여포를 하루종일 가까이 하였다. 

 

통탁의 호색을 잘 알고있는 여포는 양부 동탁을 찾아가 보니 동탁의 침소에 동탁과 함께 있는  누워있는 초선을 보고 말았다.

 

여포는 피가 역류하는 분노를 느꼈으나 어찌할수가 없었다.

그때 초선이 애처로운 눈길로 여포를 쳐다보았다.

그모습이 너무 슬퍼보였다.

 

동탁이 난처해하며 어쩐일이냐고 짜증스레 뭇자 여포는 할수없이 말을 돌려서, 요즘 아버님을 얼마간 뵙지 못하여 아버님의 안부가 궁굼하여 왔노라고 둘러덴다

 

여포는 자신의 여자를 체어간 동탁을 죽이고 싶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며 동탁은 초선을 옆에끼고 다녔으며,

여포는 동탁을 호위하기 위하여 그 옆에 따라 다녔다.

 

그때마다 초선은 애처로운 눈길을 여포에게 보낸다.

마치 자신을 어서 대려가 달라는 것처럼...

그 모습에 여포는 더욱더 미칠것만 같았다.

 

한편 초선은 동탁에게 여포가 자꾸 자신을 훔쳐보고, 인기척도 없이 자신의 처소에 불쑥 불쑥 들어온다며 그의 눈길이 무섭다고 자꾸 말한다.

 

이에 동탁은 여포를 갖가지 욕설로 욕하며 어머니를 탐하는 후례자식 이라며 앞으로 자신의 침소에 허락없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것이며 호위도 가까이서 하지 못하도록 할것이니 걱정 말라며 초선의 눈물을 닦아주며 얼마나 무서웟느냐며 달래준다.

 

어느날 초선이 일부러 연못가에서 노닐다가 여포와 마주친다.

초선은 여포를 일부러 피하는척 하였으나 여포가 그녀의 팔목을 붙잡았다.

초선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고, 장군을 볼 낮이 없다고 말하며 하루하루가 죽고싶다고 말한다.

 

연못의 다리 위에서 여포와 마주한 초선은, 요즘들어 동탁이 장군에 대해서 자꾸 않좋은 말을 많이하여  소녀는 장군이 걱정 된다며, 호색한 동탁에게 들키면 여포 장군이 난처해 질 거라며, 그냥 못본걸로 하고 가시라며 눈물을 흘린다. 

 

여포는 초선을 위로하며 꼭 그 늙은 영감에게서 초선을 구하겠노라며 초선을 끌어않자 초선도 여포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마침 그 장면을 동탁이 보고말았다.

성질이 불과같은 동탁이 거대한 몸을 이끌고 달려 오면서,  아비의 여자를 희롱하는 천하의 죽일 놈 이라고 욕을하며 쫒아왔다.

여포는 당황하여 뒷걸음질 치며 그게 아니라며 동탁을 이리저리 피하며 동탁을 진정 시키려했다.

 

초선이 눈물을 흘리며 여포가 자신을 희롱 했다며, 치욕스러워서 더이상 살수가 없다고 동탁에게 눈물을 보였다.

 

이에 더욱 분노한 동탁은 초선에게 걱정 말라고 달래며 여포를 쫏았다.

여포가 자꾸 이리저리 달아나자 동탁은 옆에있던 병사의 창을 빼았아서 여포에게 날렸다.

 

창을 피한 여포는 더 이상은 참을수가 없었다.

자식의 여자를 훔치고 자식에게 창을 던지는 아비는 더이상 아비가 아니라며 동탁이 던진 창을 주워서 동탁을 향해서 날렸다.

 

날아간 창은 그대로 동탁의 가슴을 뚫었고, 동탁은 피를 토하며 그자리에 꼬꾸라지며 피를 토하고 죽었다.

 

이로서 동탁의 시대는 끝이 났으며, 여포는 두번째로 양부를 죽였다.

초선은 그때 여포에게 달려가서 품에 않겼다.

 

동탁을 살해하려던 수많은 장수들과 자객들이 모두 실패했고, 조조 또한 동탁의 침소에서 뒤돌아 누워있는 여포를 칼로 찌르려다 그 모습이 거울에 비치는 바람에 동탁에게 들켜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조조 또한 수배자가 되어 멀리 달아 나야만 했었다.

 

그러나 왕윤과 천하절색의 미인 초선이 미인계로 결국 동탁을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후 초선은 여포의 처가되어 십여년을 더 살았고 훗날 유비와 관우 장비 삼형제의 끈질긴 공격에도 성을 방어하던 여포는 결국 성이 함락되고 불에 탔으며 그곳에서 전사했다.

함께 있던 초선 또한 그 전쟁에서 화염속에 죽는다.

 

여포는 관우와 성밖에서 수백합을 겨루기를 며칠동안 되풀이해도 승부가 나지 않았으며, 관우를 도와 장비까지 나서서 싸웠으나 혼자서도 둘을 감당해 냈다.

과히 삼국시대 최고의 명장이라 할수있다.

 

(경국지색)...  고대 중국 4대미인 중 "초선"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왕소군... 특별한 여인이다. 말희, 포사, 달기와는 차원이

              다른 여인이다.

              단지 미모만 겸비한게 아니요, 비파 등 악기에 능

              했으며 시에도 능했다 한다.

              심성또한 한없이 고왔다 한다.

              나라 사랑 또한 여인네라 할수 없으리 만큼 각별 했

              으나  34세라는 젊은 나이로 초라하게 생을 마첬다

              고 한다.

              솔직히 그녀의 대한 나의 지식이 부족하다.

 

 

양귀비...  뭐랄까..  (경국지색) 중국 역사상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미녀,  음악과 시, 춤... 모든것에 

              다제 다능 했고, 특히 남자를 휘어잡고 녹이는데 

              탁월 했다 한다.

황제가 정치에 관심을 잃고 양귀비에 빠져 주색에 심취 할때, 야망이 많았던 귀비는 자신의 일족들을 대거 궁으로 차근차근 입성 시킨다.

그리고 그녀는 귀비의 신분에도 황후에 버금가는 권세를 휘두른다.

이에 반역이 생기고, 양귀비는 여러 양씨 일족들과 함께 피신해 험한 고생을 하며 피해 다니다 끝내 반란 세력에 붇잡히게 되고 양씨 일가들의 횡포에 분노가 폭발한 반란 새력들은 당장 죽일것을 황제에게 간한다.

 

그러나 황제 현종도 귀비를 지켜줄수가 없었다.

그래서 양귀비는 길가의 허름한 절에서 목을메어 자살한다.

그녀가 죽은 후에도 그녀의 미모를 기리는 후세의 학자들... 등 서생들의,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데한 노래와 시가 끈이지 않고 만들어 졌다.

 

 

"서시"...  서시...  내가 가장 아끼고 흠모하는 서시...

         중국 4대 미녀  (경국지색 傾國之色)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친다는 여인 서시...

           내가 꼭 한번은 만나보고 싶은 여인이다. 

 

"서시"는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에 패망한 월나라의 가난한 촌부의 녀식이였다.

그녀의 아름다움 은 온 마을과 먼 이웃마을 까지도 유명했다.

그런데 그녀에겐 알수없는 가슴앓이 병이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가슴이 아파오면 얼굴을 약간 찡그리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찡그릴때의 모습이 하도 예뻐서 뭇 사내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멀리 떨어진 마을에 살던 행오 라는 서생은 그녀때문에 상사병이 나서 자리깔고 누웠다.

 

하여 가족들은 서시 가 사는 촌구석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러자 행오라는 서생은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기운을 차렸다고 한다.

멀리서라도 서시를 볼수 있는것 만으로도 가난뱅이 서생 행오는 좋았다 한다.

 

그런데 마을에 눈뜨고는 못볼 흉악한 꼴들이 벌어졌다.

마을 여자들이 자기도 서시처럼 찡그리면 이쁘게 보일까봐

너도나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였다.

 

그중에 마을의 한 추녀가 더욱 극성이였다.

그래서 마을 남자들이 모두 마을을 떠나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행오 라는 가난뱅이 서생만은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서시 때문에...

 

춘추시대, 월나라 왕 구천과, 오나라 왕 합례가 전쟁을 했는데, 오나라 왕 합례가 부상으로 죽었다.

죽으며 태자인 부차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갑으라 고 유명했다.

 

중국엔 서시 같은 미녀를 형용한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沈魚落雁  閉月羞花)

물고기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기러기는 땅밑으로 떨어지며,

 

달은 구름뒤로 얼굴을 가리고,

꽃은 스스로 부끄러워 하노라...

 

(물가의 초선을 보고, 물고기는 서시의 아름다움에 헤엄치는것을 잊어 물 바닥으로 가라앉고.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서시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잃고 날게짖을 깜박하여 땅으로 떨어지고.

달은 서시의 아름다움에 스스로 창피하여 구름뒤로 숨으며.

꽃은 서시의 화사한 미모에 스스로 기가 죽어서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다는 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의 4대미인 중의 한 사람인 서시(西施)는 춘추시기에 월(越)나라의 농촌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이광(夷光)이다.

 

어릴 때부터 천성이 곱고 용모가 아름다워 항상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하루는 서시가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맑은 강물에 비쳤다.

이때 물고기가 물에 비친 아름다운 서시의 모습에 도취되어 헤엄치는 것도 잊어 버리고 구경하다가 점점 강 바닥으로 가라 앉았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서시를 '침어(沈魚: 미모가 너무나 아름다워 그것을 감상하던 물고기를 강밑으로 가라앉게 했다는 의미임)' 라고 하게 되었다.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의 전쟁 중에 모국인 월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서시는 적국 군왕 부차(夫差)를 유혹하기 위한 정치적 임무를 지고 부차의 애첩이 되어 그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인계의 주인공이 된다.

 

춘추시대 후기 제후들의 쟁패의 중심은 장강(長江) 유역 하류와 절강 지역으로 옮겨진다.

이에 이 지역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워가고 있던 오나라와 월나라는 끊임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된다.

월나라는 하(夏)나라 우(禹)임금의 후손이고,

오나라는 주(周)왕실의 속국이었다.

 

오왕 합려(闔閭)의 통치 시기에 오나라는 초(楚)나라에서 귀순한 명장 오자서(伍子胥)와  유명한 병법가 손무(孫武)의 보좌로 국력이 강성해졌다.

 

이에 오나라의 적대국인  초나라에서 귀순한 장수 오자서는 자신의 모국이자 자신의 부모형제, 일가친척을 처참하게 죽인 모국 초나라 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오나라 왕 합례와 오자서 의 뜻이 함께하여.

초나라를  공격해 대파하고 승리를 눈앞에 둔 순간 월나라 의 공격을 받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에 복수의 기회를 노친 오자서는 통곡을 하며 다음 기회를 다짐하며 복수의 기회를 망친 월나라를 치기로 벼른다.  

 

"오자서"는 춘추시대 초나라  대대로 충성한 명문 집안의 명장으로 중원의 모든 제후국 들에 오자서 의 이름이 알려져 있는 명장 이였다.

그러나 오자서 의 부친과 큰형님이 초왕에게 배신 당하고 삼족이 멸족을 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초나라 왕이 오자서 의 부친과 자식 들 에게 입조하라는 명이 전해오자 오자서는 음모가 분명하니 가시지 말것을 아버지와 형님에게 말했다.

그러나 초나라에 오래도록 충성한 집안으로서 부끄러울게 없으니 갈것이다 라고 말하며. 그의 형님이 말하길, 만일 자신들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경우 너만은 초나라를 달아나거라 이미 준비를 모두 해 두었을테니 시간이 없을것이다.

 

다른 가솔들을 구하려다 가는 너마저 죽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가문은 대가 끈기고 만다. 

그리고 꼭 아버님과 가문을 위하여 복수하거라, 너만은 꼭 그일을 해낼수 있는 사람이니 너만 밑는다 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입조 하였다.

 

초왕이 오자서 는 왜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아우는 병이나 올수가 없어 집에서 누워 있다고 말랬다.

 

초왕은 즉시 군사를 보냈으며, 그들은 누명을 쓰고 모두 참살 당하였다.

급하게 사실을 전해들은 오자서는 그길로 간신히 달아났으며 

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맹세하며 신분을 숨기고 거지 행세를 하면서 이곳 저곳을 떠돌았다. 

 

오자서 는 여러 제후국을 수배자 신세로 떠돌며 망명을 신청 했으나 모두들 초왕의 보복이 두려워 거부 하였다.

오자서는 초나라와 사이가 않좋으며 국력도 초나라와 해볼만 한 오나라로 향했고 오나라왕 "합려"는 반갑게 오자서 를 중용 하였다.

 

"손무"는 우리가 잘아는 "손자병법"의 저자 이며 오나라 사람으로, 당대 최고의 병법가였다.

손자병법은 훗날 그의 손자인 "손자"에 의해서 완성되였다.

 

오나라는 두 사람의 노력으로 국력은 강성해 졌으며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었다.

오자서는 오로지 배신당한 고국인 초나라를 쳐서 초나라 왕족의 씨를 말리는 복수만이 삶의 목적이였고.

 

손무는 중원의 주인이며 중심 국가인 주나라 가 쇄약해지면서 각 제후들간의 끈이지 않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이 목적이였다.

그 일에 자신이 평생을 공부하고 개발한 병법을 활용하고, 또한 자신의 병법을 실전에서의 활용 가치도 확인 해 보고 싶었다.

 

주(周) 경왕(敬王) 24년

(주나라  경왕 즉의 24년째 되는해)

 

구천(勾踐)이 월나라 왕에 즉위했다.

오왕 합려는 이때를 틈타 월나라를 공격하여 지난날의 원한을 갚고자 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오왕 합려는 부상을 입어 결국 죽게 되었으며, 그때 그는 아들 부차(扶差)에게 반드시 월나라를 평정하여 원수를 갚아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오나라 왕에 오른 부차는 한시도 아버지의 원한을 잊지 않기위해 땔나무를 자리에 깔고, 등이 배기는 고통을 감수하며 누워 자면서(臥薪)  복수의 날을 기다렸다.

또한 대전을 드나들 때 마다.

 

"부차야 너는 아비의 원한을 벌써 잊었느냐~"

라고 말하도록 신하들에게 명하였다.

보통 "주상전하 납시요~" "황제폐하 납시요~"

이렇게 할것을 그는 아버지의 원수를 한시도 잊지않기 위하여 이렇게 했던것이다.

 

때가 되어 오왕 부차는 필사의 각오로 월나라를 공격하여

구천의 군대를 대파하고, 월왕 구천을 사로 잡는데 성공 하였다.

이에 월왕 구천은 대부 범려(范蠡)의 건의를 받아들여 미녀 8명과 금은보화를 오나라 태재(太宰) 백비(伯噽)에게 보내어 매수하고, 오왕 부차에게 화의를 주선해 주도록 청하였다.

 

결국 화의는 성사되고 약정에 따라 월왕 구천은 오나라의 신하가 되었다.

 

이 시기를 일러 오월동주(吳越同舟) 라는 말이 생겨났다.

(서로 적의를 품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게 된 경우나 서로 협력하여야 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서. 서로 적대 관계인 오나라의 왕 부차(夫差)와 월나라의 왕 구천(句踐)이 원수 지간이나 같은 배를 탔으니 풍랑을 만나서, 속 마음과는 달리 서로 단합하여야 했다는 뜻이다.)

 

구천은 겉으로는 오나라를 섬기 면서도 안으로는 내실을 다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백성들을 독려하고 인재를 널리 모집하는 등 월나라를 부흥 시키기 위한 각종 조치들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부차에게 당한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서 쓸개를 걸어두고 그 맛을 보면서(嘗膽) 복수의 날을 기다렸다.

 

이때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매년 많은 금은보화와 미녀들을 예물로 바쳤는데, 서시도 그러한 목적으로 오왕 부차에게 바쳐진 미녀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은 훌륭한 신하  대부 "범려"의 머리에서 나온 철저한 계략 이였다.

 

월왕 구천은 스스로 천정에 쓸개를 매달아 두고 수시로 쓸개를 빨며 그 쓴맛을 돼세기며 패전의 그날과 지금 오나라 부차에게 신하국이된 원한을 갚기 위하여 늘 쓴 쓸개를 맛보며 복수를 다졌다.

 

이처럼 오왕 부차가 복수의 그날을 위해 장작 위에서 잠을자고,

월왕 구천이 또한 복수를 위해 쓴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 한 데서 유래하여,

와신상담(臥薪嘗膽) 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때 월나라 대부 범려는 여러 차례 오나라에 미녀를 선사 하였음에도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직접 전국 각지를 돌면서 절색의 미녀를 찾아 나섰다.

하루는 범려가 두 명의 미녀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두 미녀는 바로 서시(西施)와 정단(鄭旦) 이었다.

범려는 그녀들의 자태를 보자마자 아름다움에 도취 되어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더 다듬는 다면 세상에 보기드는 보물이 되어 반드시 오왕 부차의 환심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월나라의 미래는 저 여인들에게 달려 있도다!"

 

범려는 그녀들을 만난 다음 자기의 신분을 밝히고 그가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였다.

서시와 정단은 무릎을 꿇어 절을 올리고, 연약한 시골 여자의 몸으로 이렇게 중요한 국가의 대사를 맡게 될 줄 몰랐다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것을 다짐한다.

 

이에 범려는 회계산 부근에 비밀 장소를 마련하여 미인계를 성공시킬 계책을 체계적으로 준비해 나갔다.

여기에는 서시와 정단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미녀 10여명이 더 있었는데, 교육 내용은 먼저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상교육을 실시한 후, 그 다음으로 일반적인 지식을 전수하였다. 특히 가무(歌舞), 몸가짐, 예절과 사람을 유혹하는 기교 등을 중점적으로 지도 하였으며, 정보수집 지식과 기술도 필수 과목 이 었다.

 

이러한 집중적인 교육을 통하여 단기간에 그녀들은 충성심과 고귀한 품성을 갖춘 공작요원으로 양성되었다.

현대적 의미로 말한다면 서시는 바로 유명한 여자 스파이 였던 것이다.

 

서시와 정단은 많은 스승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발군의 재능을 나타내어, 3년만에 가무를 깨우치고 우아한 자태와 교태로운 정취를 뽐낼 수 있게 되었다.

 

월왕 구천은 이들을 시험한 후 대단히 만족하였다.

구천은 여러 미인중 특히 한눈에 서시에게 반하여서 범려에게 말하길,

서시만은 내게 놔두고 다른 여인들만 보내면 않되겠느냐며 말하였다.

이에 범려는 구천을 단호하게 꾸짖고 그간의 치욕을 잊었느냐며 불가하다고 말했다.

월왕 구천은 부끄럽게 생각하고 두말없이 범려의 뜻에 따랐다.

 

범려는 흡족했다 그 많은 미인들 중에서도 월왕이 한번에 서시에게 정신을 잃는것을 보니 오나라 왕 부차의 마음을 사로잡는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는 확신이 섰다.

 

날을 잡아 서시와 정단 등을 데리고 오나라로 향하였다.

드디어 범려는 서시 등을 데리고 오나라 왕 부차를 알현하고 그녀들을 선물로 바쳤다.

과연 오왕 부차는 오나라의 모든 미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서시와 정단을 보자 첫눈에 반하였다.

이때 오나라 태재 백비 등은 그 광경을 보고 매우 즐거워하였으나,

오나라의 상국(相國) 오자서(伍子胥)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넋이 나간 듯이 미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부차에게 간언하였다.

 

"신이 듣기로, 하(夏)나라는 말희 때문에 망하였고,

은나라는 달기 때문에, 주나라는 포사 때문에 망했다고 합니다.

미녀는 군주를 주색에 빠지게 해서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니 이들을 돌려보내야 합니다."

이러한 오자서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부차는 이렇게 답하였다.

 

"나는 걸왕(桀王) 도 주왕(紂王)도 아니고 주(周)의 유왕(幽王)도 아니니, 오상국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그리고는 월나라에서 바친 미녀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부차는 그 중에서도 특히 서시를 좋아 하였으며, 서시의 미모를 한없이 사랑하였다.

서시는 자신의 신분을 교묘하게 숨겼으며, 부차는 그러한 서시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부차는 서시를 위하여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화려한 관와궁(館娃宮)을 짓고 온갖 보석으로 호화롭게 장식하였다. 또 온갖 궁리 끝에 땅을 파서 큰 옹기를 묻어 평평하게 한 후 그 위를 다시 두꺼운 나무로 덮은 회랑을 만들게 하여 그것을 '향리랑(響履廊)'이라 하였다.

서시가 이 향리랑 위를 걸으갈 때 그녀의 발자국 소리가 영롱하게 울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공호수를 조성하여 그 주위에 아름다운 화초를 심고 호수 안에서 배를 띄워 함께 놀 수 있도록 하였다.

 

서시와 정단의 갖은 애교는 부차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 잡았으며, 이로써 부차는 정사를 돌보지 않고 그녀들과 함께 가무와 산수를 즐기는데만 열중하였다.

 

결국 오왕 부차는 범려의 계획대로 역대 망국의 군주들이 걸었던 길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 가고 있었다.

 

월왕 구천은 경거망동을 하지 않고 복수의 날만 기다리면서, 오나라가 대외 원정을 떠나 군사력을 소진 한 후에 오나라를 공격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마침 서시로부터 오나라가 제(齊)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구천은 그때를 틈타 병력을 파견하여 오나라를 도우는 척 하면서 오왕 부차의 환심을 사 두었다.

그 결과 오나라는 제나라 정벌에 성공하였으나, 오나라 상국(相國) 오자서는 월나라마저 파멸시켜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월나라에서도 이러한 오자서가 그들의 계획을 성사시키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월나라에서는 이 오자서를 없엘 궁리를 하였다.

오자서의 제거 계획이 마련되자 그것은 서시의 임무가 되었다.

서시는 갖은 교태를 부리며 오왕 부차에게 오자서에 대한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부차는 서시의 말에 속아 오자서의 충정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월나라 문제에 대한 토론 중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자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살할 것을 명했다.

비분한 오자서는 두 손으로 자기의 두 눈을 파낸 다음, 부하에게 명하여 그가 죽은 후에 월나라 군대가 오나라 성을 쳐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도록 그것을 성문밖에 걸어두라고 말했다.

 

이에 크게 노한 부차는 그를 잔인하게 찢어 가죽 주머니에 싸서 바다에 버리도록 했다.

오자서가 죽은 후 백비가 정사를 맡음으로써 오나라는 패망의 길을 재촉하게 되었다.

 

시대의 영웅 오자서 는 그렇게 한많은 삶을 비참하게 마쳤다.

고국에서는 어리석은 군주에게 부친과 삼족이 멸하는 비극을 당했고 타국에 망명하여 진심으로 충성하고 고국인 초나라 까지 토벌해서 원수를 갚고 오나라에 막대한 업적을 남겼으나 과거를 잊고 여자에 미쳐버린 부차에게 다시 배신당하는 불운을 당하며 시신또한 살덩이는 갈기갈기 찢기어 땅속에 묻시지도 못하고 가죽 주머니에 싸여서 돌을체워 강물에 던져지고 뼈는 태워서 허공에 뿌려버렸다.

참의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오자서의 활약상은 소설 손자병법에 자세히 저술돼 있다.)

 

 

주(周) 경왕(敬王) 38년 가을,

(중국 중원의 주인인 주나라 경왕이 즉위한지 38년을 의미함)

 

오왕 부차는 제후들의 패자를 결정짓는 황지(黃池)의 회맹에 참가하기 위하여 직접 오나라의 정예병사를 이끌고 오나라를 떠났다.

이에 오나라의 도성은 텅비게 되었으며, 구천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나라의 도성을 공격해 들어가 오나라 태자를 불에 태워 죽였다.

4년 후 오나라에는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은 기근에 시달렸다. 이때 구천은 다시 오나라를 공격 하였으나 오나라 군대는 성을 지키기에만 급급하여 반격할 틈도 없었다.

 

주(周) 원왕(元王) 2년,

월왕 구천은 수군을 동원하여 오나라를 다시 공격하였다.

2년여에 걸친 포위 공격 끝에 결국 오나라 성은 무너지고 오왕 부차는 고소산(姑蘇山)으로 도망가 자결 하였다.

 

춘추전국시대 각 제후국 들이 난립하며 서로 물고 물리고, 종으로 횡으로 연합하고 분열하던,  혼란한 시기에 오왕 합례 를 이어 왕에 오른 후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잠자리에 땔나무를 깔고 잠을 자며,  신하들에게   "부차야 너는 아비의 원한을 벌써 잊었느냐"  라고 하고록 시키며 나라를 강성화 시키고 명장 오자서와 손무 등 의 직언도 달게 들으며 귀를 귀울이던 부차,   그러나 월나라 에 항복을 받아내고 강국 초나라를 삼키고,

제나라 마저 멸망 시키며 초 강대국이 되자 오왕 부차는 주색에 빠지고 충신을 죽이며 사람이 변해 버렸고, 결국 나라를 패망하게 만들고 말았다.   

 

오나라가 망한 후 서시 의 행방에 대해서는 전설적으로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즉 오왕 부차가 자결할 때, 오나라 사람들은 그들의 뜨거운 분노를 모두 서시에게 쏟아 붓고 그녀를 비단으로 꽁꽁 묶어 양자강 가운데 빠뜨렸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양자강 에는 미인어(美人魚)가 있는데 서시어(西施魚)라고 도 한다.

하루에 여러번 그 색깔을 바꾸며, 살이 부드럽고 맛이 좋다.

아녀자들이 그것을 먹으면 더욱 아름다워진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서시의 화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설에 불과하다.

역사에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나 그중 월나라 제상 범려와  서시가 다른

먼 나라로 달아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많은 이야기 들이 전해진다.

난 손자병법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정설에 가깝지 않을까 생가하며 기록하다.

 

오나라가 멸망하자 서시도 간신히 몸을 피했다.

그리고 볌려의 보호하에 오나라 백성들로 부터 안전할수 있었다.

범려는 월나라에서 그간의 공로를 인정 받아서 최고의 자리 제상에 않는다.

그러나 권력 이라는것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외부의 적이 사라지면 내부의 적이 활개를친다.

 

범려가 월왕 구천의 치나친 비호를 받자 주변의 다른 세력들이 왕에게 범려를 계속 모함하였다.

자꾸 간언이 들어오니 왕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월왕 구천도 범여가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범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