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이란 무엇일까. 고등학교때쯤 배운 걸 돌아본다면 '죄를 지은자에게 그에 합당한 만큼을 벌을 내리는 것'을 사법이라고 했던 것 같다. 무섭게는 함무라비 법전식의 사법도 있겠지만 현대사회의 대부분 국가는 '죄형 법정주의'로, 법에서 정해진 만큼의 형량을 범죄자에게 선고하도록 돼있다. 따라서 현대 국가의 사법체제는 대부분 법에 의해 정해져있고 그 구체적 실현자인 판사에 의해 집행된다.
그러니까 이런 예를 하나 들자. 괜히 상상하게 만들어 기분 상하게 하지않는 범위에서, 예를 들어 별로 친하지 않았던 옛 초등학교 친구가 하나 강도를 당해 죽었다고 친다면 어떨까. 경찰은 곧 범인을 잡았고 검찰에 그를 송치할 것이다.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혐의를 확정하고 기소하겠지. 법원은 곧 이 친구를 법정에 세워 재판을 시작할 것이다. 이 친구는 (아마) 구속된 상황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판사마다 감형 사유가 너무나 다양해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이 친구가 노모를 모시고 있다거나 하루 수십장의 반성문을 써낸다거나 정신병원에 갔던 적이 있다거나 한다면 일부 감형될 것이고 서대문 연쇄살인범처럼 '살인이 재밌었다' 또는 '부자가 미워요'라며 법정에서 소리친다면 형량이 더 높아질 것이다. 평균적으로 강도살인이라면 10년 안팎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10년 안으로 선고될 확률이 약 60%정도로 더 높다)
쏘우3에는 제프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의 아들은 티모시 영이라는 의대생이 교통사고로 죽였다. 강도살인이 10년 안팎이니 단순 실수로 인한 살인은 그보다 훨씬 형량이 적은건 당연한 것. 미국 형사법원의 핼든 판사는 그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제프는 미쳐 돌아가실 수밖에.
그는 분노하고 직쏘가 깔아놓은 멍석위에서 이들에게 직접적인 형벌을 가한다. 물론 마지막에 용서하기는 하지만, 역시 그완 상관없이 이들은 다 죽는다.
당시 직쏘에 의해 썩은 돼지를 갈아만든 구정물속에 허우적대던 핼든은 제프에게 의미심장한 말들을 날린다.
"자네아들이 죽었으니 당연히 더 심한벌을 원했겠지. 형을 더 늘리는 방법이 있어 내가 도와줄게"
"그처럼 되지 말아요. 살인자가 되지 말아요","당신이 날 죽이고 있어"
"확실한 한가지만 말해주겠네. 내가 500년형,아니 사형을 선고했더라도 자네의 슬픔을 대신할 수 없네. 복수는 어느 문제도 해결하지 못해 그냥 아픔만 더 커지게 할 뿐이야"
첫번째 말은 사법체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 달리 법률해석외에 사실인정권까지도 판사들이 가지고 있어 법관의 재량이 매우 광범위하다. 따라서 이 말처럼 "형을 더 늘리는 방법을 내가 알려줄게"라는 멘트가 마음에 와닿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최근처럼 1심은 집행유예로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항소심에서 본격적인 다툼을 벌이는 유행에 따르자면 더욱 그렇다. 법관을 폄하할 수는 없지만 재량이 지나치게 과하다는 생각은 일정부분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두번째 말은 의미가 다르다. 목숨이 달린 긴박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그의 말은 다시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네가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말은 과거 함무라비 법전식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제 누군가의 잘못에 같은 형벌을 가하는 시대는 끝이났다. 국민의 법감정은 그렇지 않을 지언정 적어도 형벌만큼은 법에 따라 처리해야한다. 핼든은 이어 가장 올바른 말을 던진다.
슬픔을 대신할 수 없는 처벌. 사실 현 사법체제의 핵심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네 아들을 죽인 사람을 대신 죽여도 너는 슬픔에서 해방되지도 않고 아픔이 치유되지도 않는 다는 것. 이것이 죄형법정주의를 만들었고 차라리 범죄자를 교정해 반성하도록 만드는 사법시스템을 만들었다. 사실 현 형사 판사들이 죄인들에게 미약하나마 온정을 베푸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형사부장판사는 "사실 나도 피해자가 살아온다면 백번이라도 사형을 선고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살인범의 공판정에 나와본다면 무언가 느끼는 게 있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법원은 '불구속 재판원칙'을 추진중이다. 이른바 인신 구속에 목매기 보다는 자유롭게 변론 자료를 마련해 공개된 법정에서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이 누군가를 구속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처벌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야한다고 법원은 주장한다. 어차피 기소전 구속되나 재판이 모두 끝난 후 구속되나 구속기간은 같으니 억울한 사법피해자(예를 들어 누명을 쓴 피의자)를 막기위해서라도 불구속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은 다르다. 사법주도권이 법원으로 넘어가는 것과는 별도로(설사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피해자의 법감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딸을 성폭행한 사람, 내 남편을 죽인사람은 대법원 판결까지 가는 동안 버젓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재판만 받는 꼴을 두고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법원은 "지나치게 법감정에만 치우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법 체제의 본질은 결국 "내 아들을 죽인 사람을 죽이는 것"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에서 본다면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누군가의 재산,자유,생명을 침해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기계적이라는 주장과 혹시라도 있을 억울한 피의자를 막기위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 까지 인신구속을 최대한 늦춰야한다는 주장.
사실 범죄라는 것은 당해보지 않고는 피해자의 심정을 모르는게 당연하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국가가 대신하는 시스템에서 과연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 처벌을 이뤄낼 수 있을까.
아니, 사실 이렇게 고민하는게 나을 것 같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의 목적은 피해자 보듬기일까, 재발의 방지일까, 범죄피해의 복구일까, 도덕적 사회정의의 실현일까. 맥주가 고픈 오늘이다.
eyes - 쏘우3에서 사법의 본질을 보다
사법이란 무엇일까. 고등학교때쯤 배운 걸 돌아본다면 '죄를 지은자에게 그에 합당한 만큼을 벌을 내리는 것'을 사법이라고 했던 것 같다. 무섭게는 함무라비 법전식의 사법도 있겠지만 현대사회의 대부분 국가는 '죄형 법정주의'로, 법에서 정해진 만큼의 형량을 범죄자에게 선고하도록 돼있다. 따라서 현대 국가의 사법체제는 대부분 법에 의해 정해져있고 그 구체적 실현자인 판사에 의해 집행된다.
그러니까 이런 예를 하나 들자. 괜히 상상하게 만들어 기분 상하게 하지않는 범위에서, 예를 들어 별로 친하지 않았던 옛 초등학교 친구가 하나 강도를 당해 죽었다고 친다면 어떨까. 경찰은 곧 범인을 잡았고 검찰에 그를 송치할 것이다.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혐의를 확정하고 기소하겠지. 법원은 곧 이 친구를 법정에 세워 재판을 시작할 것이다. 이 친구는 (아마) 구속된 상황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판사마다 감형 사유가 너무나 다양해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이 친구가 노모를 모시고 있다거나 하루 수십장의 반성문을 써낸다거나 정신병원에 갔던 적이 있다거나 한다면 일부 감형될 것이고 서대문 연쇄살인범처럼 '살인이 재밌었다' 또는 '부자가 미워요'라며 법정에서 소리친다면 형량이 더 높아질 것이다. 평균적으로 강도살인이라면 10년 안팎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된다.(10년 안으로 선고될 확률이 약 60%정도로 더 높다)
쏘우3에는 제프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의 아들은 티모시 영이라는 의대생이 교통사고로 죽였다. 강도살인이 10년 안팎이니 단순 실수로 인한 살인은 그보다 훨씬 형량이 적은건 당연한 것. 미국 형사법원의 핼든 판사는 그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제프는 미쳐 돌아가실 수밖에.
그는 분노하고 직쏘가 깔아놓은 멍석위에서 이들에게 직접적인 형벌을 가한다. 물론 마지막에 용서하기는 하지만, 역시 그완 상관없이 이들은 다 죽는다.
당시 직쏘에 의해 썩은 돼지를 갈아만든 구정물속에 허우적대던 핼든은 제프에게 의미심장한 말들을 날린다.
"자네아들이 죽었으니 당연히 더 심한벌을 원했겠지. 형을 더 늘리는 방법이 있어 내가 도와줄게"
"그처럼 되지 말아요. 살인자가 되지 말아요","당신이 날 죽이고 있어"
"확실한 한가지만 말해주겠네. 내가 500년형,아니 사형을 선고했더라도 자네의 슬픔을 대신할 수 없네. 복수는 어느 문제도 해결하지 못해 그냥 아픔만 더 커지게 할 뿐이야"
첫번째 말은 사법체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 달리 법률해석외에 사실인정권까지도 판사들이 가지고 있어 법관의 재량이 매우 광범위하다. 따라서 이 말처럼 "형을 더 늘리는 방법을 내가 알려줄게"라는 멘트가 마음에 와닿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최근처럼 1심은 집행유예로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항소심에서 본격적인 다툼을 벌이는 유행에 따르자면 더욱 그렇다. 법관을 폄하할 수는 없지만 재량이 지나치게 과하다는 생각은 일정부분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두번째 말은 의미가 다르다. 목숨이 달린 긴박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그의 말은 다시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네가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말은 과거 함무라비 법전식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이제 누군가의 잘못에 같은 형벌을 가하는 시대는 끝이났다. 국민의 법감정은 그렇지 않을 지언정 적어도 형벌만큼은 법에 따라 처리해야한다. 핼든은 이어 가장 올바른 말을 던진다.
슬픔을 대신할 수 없는 처벌. 사실 현 사법체제의 핵심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네 아들을 죽인 사람을 대신 죽여도 너는 슬픔에서 해방되지도 않고 아픔이 치유되지도 않는 다는 것. 이것이 죄형법정주의를 만들었고 차라리 범죄자를 교정해 반성하도록 만드는 사법시스템을 만들었다. 사실 현 형사 판사들이 죄인들에게 미약하나마 온정을 베푸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형사부장판사는 "사실 나도 피해자가 살아온다면 백번이라도 사형을 선고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살인범의 공판정에 나와본다면 무언가 느끼는 게 있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법원은 '불구속 재판원칙'을 추진중이다. 이른바 인신 구속에 목매기 보다는 자유롭게 변론 자료를 마련해 공개된 법정에서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이 누군가를 구속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처벌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야한다고 법원은 주장한다. 어차피 기소전 구속되나 재판이 모두 끝난 후 구속되나 구속기간은 같으니 억울한 사법피해자(예를 들어 누명을 쓴 피의자)를 막기위해서라도 불구속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은 다르다. 사법주도권이 법원으로 넘어가는 것과는 별도로(설사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피해자의 법감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딸을 성폭행한 사람, 내 남편을 죽인사람은 대법원 판결까지 가는 동안 버젓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재판만 받는 꼴을 두고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법원은 "지나치게 법감정에만 치우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법 체제의 본질은 결국 "내 아들을 죽인 사람을 죽이는 것"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에서 본다면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누군가의 재산,자유,생명을 침해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기계적이라는 주장과 혹시라도 있을 억울한 피의자를 막기위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 까지 인신구속을 최대한 늦춰야한다는 주장.
사실 범죄라는 것은 당해보지 않고는 피해자의 심정을 모르는게 당연하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국가가 대신하는 시스템에서 과연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 처벌을 이뤄낼 수 있을까.
아니, 사실 이렇게 고민하는게 나을 것 같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의 목적은 피해자 보듬기일까, 재발의 방지일까, 범죄피해의 복구일까, 도덕적 사회정의의 실현일까. 맥주가 고픈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