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子 - 反求諸己

김용훈2007.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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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智?’

 

夫仁, 天之尊爵也, 人之安宅也. 莫之禦而不仁, 是不智也.

不仁 不智, 無禮 無義, 人役也.

人役而恥爲役, 由弓人而恥爲弓, 矢人而恥爲矢也. 如恥之, 莫如爲仁

仁者如射, 射者正己而後發, 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    [公孫丑 上]

 

인에 거하는 것이 아름답다. 스스로 택해서 인에 거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것을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인이란 하늘이 내려준 벼슬이며, 사람의 편안한 거처이다.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인을 행하지 않고, 지혜롭지 못하며, 무례하고, 의롭지 못한 사람은 남의 부림을 받는다. 남의 부림을 받으면서 남의 부림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마치 활 만드는 사람이 활 만드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과 같고, 화살 만드는 사람이 화살 만드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만약 그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열심히 인을 행하는 것만 못하다. 인이라는 것은 활 쏘는 것과 같다. 활을 쏠 때는 자세를 바르게 한 후에 쏘는 법이다.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과녁에 맞지 않은 까닭을)도리어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

 

...중략...

궁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 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활 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두 발을 딛는 자세와 어깨와 팔의 각도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흉허복실이라하여 가슴은 비우고 배는 든든히 힘을 채워야 하는 것이지요. 더 중요한 것은 활을 쏘는 동작 전체에 일관된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동작과 동작 사시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으며 그 하나하나의 동작이 끊어지지 않고 서로 휴지없이 정과 동으로 유연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종횡십자를 이루면서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궁도에서 이러한 것들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은 궁도란 것이 살을 과녁에 적중시키는 단순한 궁술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과정과 자세의 正眞 여부가 中과 不中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중했을 경우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反求諸己의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삶의 자세와 철학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영복 교수,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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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外人 曰

고전으로서 "맹자"가 가지는 장점으로 시작된 신영복 교수의 이 글에서 맹자는 인간관계로서의 仁을 적극적인 사회적 내용의 義로 계승하는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인와 의의 이러한 유교적인 역사성에 관한 전체의 논의 보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反求諸己라는 단어이다.

이와 함께 신영복 교수의 말 중에

 

결국은 그 과정과 자세의 正眞 여부가 中과 不中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는 문장은 특히나 反求諸己와 관련하여 나에게 또하나의 깨달음을 안겨준다.

 

공자는 인을 '택하여 거하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할 것인가?'라고 말하였다. 인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택하여 거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자아의 실천과 선택이야말로 인의 효용과 가치를 제대로 발휘해 낼 기본적인 요소인 것이다.

 

맹자는 공자가 말한 인의 이러한 적극적 쟁취를 궁술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과정 하나하나의 '休止없는 靜고 動'의 반복된 실천 과정을 통해서 전체를 아우르고 과녁에 中한다는 결과를 얻어내게 될 때에 우리는 仁의 적극적인 실천을 이우러낼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선택과 판단의 주체로 작용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남이 알려준 자세는 남의 것이며 모범적이나 그것을 제 신체구조와 제가 처한 상황에 맞게 적용시켜가는 것은 누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이다. 그를 통해 中할 수도 있고, 不中할 수도 있다는 것은 또한 스스로의 몫으로 결과를 남겨 두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不中했을 경우 그것은 反求諸己(자신에게서 구한다)를 통해서 다시 과정의 반복으로 이어지게 되어야만 한다.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내가 접한 정보의 주체로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수많은 독서를 통해 습득하게된 이차적인 경험들은 어떻게 다시 나의 일차적인 경험의 소산으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될 것인가?

 

내가 말하고 있으면서도 그 말은 이미 나의 말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로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스스로가 택한' 지혜로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실패에 직면했을 때에 우리는 맹자가 말한 '反求諸己'의 자세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고 다시 正眞한 삶의 자세를 통해 과정을 반복하여 옳음을 향해 갈 것이어야 한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다.

 

'탓'으로 돌리어 버리기엔

나의 선택이 너무 많은 작용을 하였다.

대상이 비록 주체적이지 못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오직 나의 선택에 따른 부수적인 것일 뿐

주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모든 주된...주체는

대상이 아닌 나임을 위하여

反求諸己의 의미를 곱씹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