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은 원래 그의 아들에게 남기는 인생 지침서로서 만들어졌으나 후에 자서전으로써 출간되어 오늘날까지 사랑을 받고있다
그의 삶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미국의 작가, 과학자, 외교관, 정치가. 1706년 1월 17일에 보스턴에서 비누,양초를 만드는 집안의 15번째 아이로 태어난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10살 때 집안 형편으로 인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형의 인쇄소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의 열정적인 노력 덕분에 능숙한 인쇄기술을 습득하게 되었고, 또한 글쓰는 솜씨를 늘려가기 시작하였다. 1723년, 그의 나이 17세 때에 프랭클린은 가출하여 필라델피아로 떠나게 되었다. 그 곳에서 무일푼으로 시작하여 빠른 시간에 인쇄업자로서 성공하였고 1730년에는 24살의 나이로 인쇄소를 소유하기도 하였다. 1732년 프랭클린은 '가난한 리차드의 연감(Poor Richards Almanac)'이라는 책을 발간함으로써 대중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1731년에는 펜실베니아 대학에 도서관을 설립하여 도서관의 발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736년에 펜실베니아의 하원의원으로 임명되어서 1751년부터 1764년까지 국회의원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펜실베니아 시 체신장관 대리로 일하였으며(1737~53), 그 결과로 전 식민지의 체신장관 대리로써, 우편 업무에 관한 사항을 많이 개선시켰다.(1753~74)
1748년 그의 사업이 많이 번창함에 따라서, 프랭클린은 과학에 뜻을 두어 사업을 대리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봉급을 받으면서 과학을 탐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1740년대 초기에 그가 발명한 난로(프랭클린 스토브)는 아직도 생산되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아주 많은 실험을 행하였다. 그는 열역학, 해양학, 기상학, 그리고 무엇보다 특히 전기분야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프랭클린이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을 때는 전기에 대하여 그리 많이 알려진 상태가 아니었으며, 아마도 프랭클린은 그조차도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라이덴(Leyden) 병을 가지고 한 실험은 유럽의 대중 심리를 자극시켰고, 프랭클린은 즉각 그 기구를 구입하였다. 1752년에 그의 유명한 실험인 '연 실험'을 행하였고, 번개가 전기를 방전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는 번개를 구름에서 끌어내기 위해 금속으로 만든 뽀족탑을 세우자고 제안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이러한 연구들의 결과로, 또 프랭클린의 실용적인 면의 재현으로, 그의 피뢰침이 발명되었다. 후에 복초점 렌즈가 발명되는데 이것도 프랭클린의 대표적인 발명품이다.
1753년 영국의 로열 소사이어티(Royal Society) 회원으로 선정 되었고, 코플리상을 받았다. 그해 전(全)식민지 체신장관 대리 가 되어 우편제도를 개선하였고 54년 올버니회의에 펜실베니아 대표로 참석, 최초의 식민지 연합안을 제안하였다. 57년 펜실베니아의 이익을 위하여 교섭을 벌일 목적으로 영국에 파견되어 식민지에 자주과세권을 획득하고 귀국하였다. 64년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인지조례의 철폐를 성공시켰다. 75년 귀국하여 제2회 대륙회의의 펜실베니아대표로 뽑혔고 76년 독립선언 기초위원에 임명되었다. 그해 프랑스로 건너가 아메리카-프랑스동맹을 성립시키고, 프랑스의 재정원조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83년 파리조약에는 미국대표의 일원이 되었다. 바로 이 때에 그가 미국을 위한 한 중요한 결정을 한 것이었다.
정치가로서 그는 아메리카 식민지의 자치에 대해 영국의 관리들과 토론을 벌일 때 식민지의 대변인으로 활약했고,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했으며, 미국 독립전쟁 때 프랑스의 경제적·군사적원조를 얻어냈다. 또한 영국과 협상하는 자리에서 미국 대표로 참석하여 13개 식민지를 하나의 주권 국가로 승인하는 조약을 맺었으며, 2세기 동안 미국의 기본법이 된 미국 헌법의 뼈대를 만들었다. 특히 제퍼슨과 함께 기초한 ‘미국 독립 선언서’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13가지 덕목 벤자민 프랭클린은 50년 이상을 자신의 수첩에 13가지 덕목을 항상 기록해 왔다. 그리고 자신이 그 항목을 실행했는가, 하지 못했는가를 체크했다. 게다가 1주일마다 13가지 덕목 중 한가지를 집중적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후에 그는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였으며 무엇보다도 한번 불편함이나 실수임을 느낀후에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배울점을 찾을수있었다, 또한 이책에서는 몇가지 제안하고 있는 자신만의 습관이 담겨있는데, 이를테면 타인에게 반론을 제기할때 "그것도 좋겠지만 이렇게하면 어떨까?"라는식의 반감을 줄이게하는 표현이라든지 자신의 의견을 제출할때 "어떤신사분들은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더군요,그리고 저는 이러한 의견에 찬성하고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식의 겸손한 표현등 주로 대인관계를 원만하게할수있는 방법들이었다.
결국 그는 정신적으로 덕목을 정하여 실천하고자 노력했으며, 육체적으로는 자신의 일을 근면하게수행하여 발전시켰고, 대외적으로는 관계가 원만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할수있었던것이었다.
이것은 바로 절제의 결과라고 보여지며, 오늘날 많은이들이 절제를 무시하는데 반하여 그는 자신을위하여 그것을 선택하고 부단히 노력한것이므로 가장 주목해야할점이라고할수있겠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절제하며 살아간다면 타인에게 피해가 덜할것이며,이것이 공공복리를 위한 사적자치의 자율적인 통제로써 기능할수도 있을테니, 어찌보면 현대적 의미에서의 자유영위의 모범을 보여준것이 그의 가장큰 업적이라고도 말할수있지않을까?
우리는 절제할 필요성이 있으며, 그것이 개인 스스로뿐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공공복리를 구현하는 첫번쩨 명제임을 잊지말아야할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
이책은 원래 그의 아들에게 남기는 인생 지침서로서 만들어졌으나 후에 자서전으로써 출간되어 오늘날까지 사랑을 받고있다
그의 삶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미국의 작가, 과학자, 외교관, 정치가. 1706년 1월 17일에 보스턴에서 비누,양초를 만드는 집안의 15번째 아이로 태어난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10살 때 집안 형편으로 인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형의 인쇄소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의 열정적인 노력 덕분에 능숙한 인쇄기술을 습득하게 되었고, 또한 글쓰는 솜씨를 늘려가기 시작하였다. 1723년, 그의 나이 17세 때에 프랭클린은 가출하여 필라델피아로 떠나게 되었다. 그 곳에서 무일푼으로 시작하여 빠른 시간에 인쇄업자로서 성공하였고 1730년에는 24살의 나이로 인쇄소를 소유하기도 하였다. 1732년 프랭클린은 '가난한 리차드의 연감(Poor Richards Almanac)'이라는 책을 발간함으로써 대중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1731년에는 펜실베니아 대학에 도서관을 설립하여 도서관의 발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736년에 펜실베니아의 하원의원으로 임명되어서 1751년부터 1764년까지 국회의원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펜실베니아 시 체신장관 대리로 일하였으며(1737~53), 그 결과로 전 식민지의 체신장관 대리로써, 우편 업무에 관한 사항을 많이 개선시켰다.(1753~74)
1748년 그의 사업이 많이 번창함에 따라서, 프랭클린은 과학에 뜻을 두어 사업을 대리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봉급을 받으면서 과학을 탐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1740년대 초기에 그가 발명한 난로(프랭클린 스토브)는 아직도 생산되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아주 많은 실험을 행하였다. 그는 열역학, 해양학, 기상학, 그리고 무엇보다 특히 전기분야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프랭클린이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을 때는 전기에 대하여 그리 많이 알려진 상태가 아니었으며, 아마도 프랭클린은 그조차도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라이덴(Leyden) 병을 가지고 한 실험은 유럽의 대중 심리를 자극시켰고, 프랭클린은 즉각 그 기구를 구입하였다. 1752년에 그의 유명한 실험인 '연 실험'을 행하였고, 번개가 전기를 방전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는 번개를 구름에서 끌어내기 위해 금속으로 만든 뽀족탑을 세우자고 제안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이러한 연구들의 결과로, 또 프랭클린의 실용적인 면의 재현으로, 그의 피뢰침이 발명되었다. 후에 복초점 렌즈가 발명되는데 이것도 프랭클린의 대표적인 발명품이다.
1753년 영국의 로열 소사이어티(Royal Society) 회원으로 선정 되었고, 코플리상을 받았다. 그해 전(全)식민지 체신장관 대리 가 되어 우편제도를 개선하였고 54년 올버니회의에 펜실베니아 대표로 참석, 최초의 식민지 연합안을 제안하였다. 57년 펜실베니아의 이익을 위하여 교섭을 벌일 목적으로 영국에 파견되어 식민지에 자주과세권을 획득하고 귀국하였다. 64년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인지조례의 철폐를 성공시켰다. 75년 귀국하여 제2회 대륙회의의 펜실베니아대표로 뽑혔고 76년 독립선언 기초위원에 임명되었다. 그해 프랑스로 건너가 아메리카-프랑스동맹을 성립시키고, 프랑스의 재정원조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83년 파리조약에는 미국대표의 일원이 되었다. 바로 이 때에 그가 미국을 위한 한 중요한 결정을 한 것이었다.
정치가로서 그는 아메리카 식민지의 자치에 대해 영국의 관리들과 토론을 벌일 때 식민지의 대변인으로 활약했고,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했으며, 미국 독립전쟁 때 프랑스의 경제적·군사적원조를 얻어냈다. 또한 영국과 협상하는 자리에서 미국 대표로 참석하여 13개 식민지를 하나의 주권 국가로 승인하는 조약을 맺었으며, 2세기 동안 미국의 기본법이 된 미국 헌법의 뼈대를 만들었다. 특히 제퍼슨과 함께 기초한 ‘미국 독립 선언서’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13가지 덕목
벤자민 프랭클린은 50년 이상을 자신의 수첩에 13가지 덕목을 항상 기록해 왔다.
그리고 자신이 그 항목을 실행했는가, 하지 못했는가를 체크했다. 게다가 1주일마다 13가지 덕목 중 한가지를 집중적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후에 그는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벤자민 프랭클린 자서전 에서 13덕목
Benjamin Franklin's Goals of Virtue
1. 절제 : 배부르도록 먹지 마라. 취하도록 마시지 마라.
Temperance : Eat not to dullness; drink not to elevation.
2. 침묵 : 자타에 이익이 없는 말을 하지 마라.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라.
Silence : Speak not but what may benefit others or yourself; avoid trifling conversation.
3. 질서 :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두라. 일은 모두 때를 정해서하라.
Order : Let all your things have their places; let each part of your business have its time.
4. 결단 : 해야할 일은 과감히 결심하라. 결심하니 일은 반드시 실행하라.
Resolution : Resolve to perform what you ought; perform without fail what you resolve.
5. 절약 : 자타에 이익이 없는 일에는 돈을 쓰지 마라. 낭비하지 마라.
Frugality : Make no expense but to do good to others or yourself; that is, waste nothing.
6. 근면 :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유익한 일에종사하고 무용한 행위는 끊어버려라.
Industry : Lose no time; be always employed in something useful; cut off all unnecessary actions.
7. 진실 : 사람을 속여 헤치지 마라. 모든 언행은 공정하게 하라.
Sincerity : Use no hurtful deceit; think innocently and justly; speak accordingly.
8. 정의 : 남에게 해를 주지 않으며 해로운 일을 해서도 안된다.
Justice : Wrong none by doing injuries; or omitting the benefits that are your duty.
9. 중용 : 극단을 피하라. 내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남의 비난과 불법을 참으라.
Moderation : Avoid extremes; forebear resenting injuries so much as you think deserve.
10. 청결 : 신체. 의복, 주택에 불결한 흔적을 남기지 마라.
Cleanliness : Tolerate no uncleanliness in body, clothes, or habitation.
11. 침착 : 사소한 일, 보통 있는 일, 피할 수 없는 일에 침착함을 잃지 마라.
Tranquility : Be not disturbed at trifles or at accidents common or unavoidable.
12. 순결 : 건강한 자손을 위해서만 부부생활을 하라. 감각이 둔해지고 몸이 쇠약해지고 부부의 평화가 깨지고 소문이 나빠지도록 해서는 안된다.
Chastity : Rarely use venery but for health or offspring, never to dullness, weakness, or the injury of your own or another's peace or reputation.
13. 겸손 : 예수와 소크라테스에게서 배워라.
Humility : Imitate Jesus and Socrates.
그의 성공비결은 1원하는 것의 발견(책과관련된 직업을 선택)
2할수있는 방법을 모색(인쇄공이 됨)
3가능성에 도전(형의 도제로서 시작함)
4부지런한 삶과 연구하는 자세(인쇄공으로서도 부지런했지만,항상 책을 가까이함)
5더 나은길을 발견(피뢰침등의 발명과 생활덕목을 발견)
6자신만의 고유한 삶과 기술을 완성(84세의 장수, 장관이되기까지의 화려한 성공과 인기)
였으며 무엇보다도 한번 불편함이나 실수임을 느낀후에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배울점을 찾을수있었다, 또한 이책에서는 몇가지 제안하고 있는 자신만의 습관이 담겨있는데, 이를테면 타인에게 반론을 제기할때 "그것도 좋겠지만 이렇게하면 어떨까?"라는식의 반감을 줄이게하는 표현이라든지 자신의 의견을 제출할때 "어떤신사분들은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더군요,그리고 저는 이러한 의견에 찬성하고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식의 겸손한 표현등 주로 대인관계를 원만하게할수있는 방법들이었다.
결국 그는 정신적으로 덕목을 정하여 실천하고자 노력했으며, 육체적으로는 자신의 일을 근면하게수행하여 발전시켰고, 대외적으로는 관계가 원만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할수있었던것이었다.
이것은 바로 절제의 결과라고 보여지며, 오늘날 많은이들이 절제를 무시하는데 반하여 그는 자신을위하여 그것을 선택하고 부단히 노력한것이므로 가장 주목해야할점이라고할수있겠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절제하며 살아간다면 타인에게 피해가 덜할것이며,이것이 공공복리를 위한 사적자치의 자율적인 통제로써 기능할수도 있을테니, 어찌보면 현대적 의미에서의 자유영위의 모범을 보여준것이 그의 가장큰 업적이라고도 말할수있지않을까?
우리는 절제할 필요성이 있으며, 그것이 개인 스스로뿐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공공복리를 구현하는 첫번쩨 명제임을 잊지말아야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