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배반

서경훈2007.01.09
조회45

눈앞이 희미해질 정도로 새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던 추운겨울날 저녁이

 

그녀와 내가 마지막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한 날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그녀의 손을 내 두손으로 속절없이 감싸안을 때의 그 사랑스러움이란.

 

앵두같이 붉던 그녀의 입술이 새파란것이 못내 내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잠깐동안 말없이 내리는 눈 속에 시간이 흘렀다. 음반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애절한 발라드가

 

그날따라 유난히 귀에 크게 들려왔다.

 

속절없이 기다렸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내가 갈망하는 달콤함을 속삭이지는 않았다.

 

내 따뜻한 손이 싫은것 같지는 않았던 그녀의 눈동자는 그것조차 거짓이라고 못박고 있었다.   

 

"나도 니가 싫진않은데... 그래도 우린 왠지 안 맞을것 같애."

 

날씨는 추운데 가슴속에선 뜨거운것이 울컥하는 느낌이다. 예정되었던 단어의 나열이 내 기대

 

를 배반하고 한조각 남았던 기대마저 갈가리 찢어놓는다. 정말 힘겹게, 감정을 추스리면서 한참

 

만에 생각보다 또박또박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농담이지?"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단지 목에 두르고 있던 북실북실한 목도리를 풀어내더니 그것을 내 목에

 

다가 천천히 둘러주었다. 그녀의 체온이 그것을 타고 전해져오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별다른 인사도 없었다. 나를 반하게 만들었던 귀여운 미소를 한 번 지어보인  그녀는 끝내 시선

 

을 맞추길 피하면서 몸을 돌린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한숨이 공기중에 하얗게 그렇게 산산

 

히 흩어진다.

 

'잡아. 지금 잡지 않으면 영원히 끝이야.'

 

마음속에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가 쉴새없이 귓가에서 지껄여댔지만 나로하여금 동기를 유발시

 

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겨울의 그림자가 서늘하게 전해져온다.

 

 

 

 

나는 끝내 그녀를 잡지 않았다.

 

아니 잡지 않은것이 아니라 잡지를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