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한 가지 특징적인 현상이 있었다. 나라가 망할 때 예외 없이 극심한 내부 분열을 겪은 나머지 자멸해왔다는 것이다. 고조선은 한나라의 공세로 내부가 분열돼 우거왕이 신하들의 배신으로 목이 잘려 붕괴했고, 고구려, 백제 역시 내부갈등으로 당나라에 무너지고 말았다. 조선도 대원군과 명성왕후 세력의 권력다툼이 극심해 일제의 침략을 받았다.
그 결과는 분열된 지배층의 몰락과 참담한 노예생활로 심판받았지만, 우리의 역사로 보면 광활한 만주벌판을 잃게 되고 근세에는 나라 없는 백성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외인(外因)은 내인(內因)을 통해 작용한다는 명제 그대로이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객관적으로 보면, 외세와 대결을 벌이던 시기의 국제적 환경은 꼭 외세에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고조선을 압박했던 한나라도, 고구려나 백제를 침공했던 당나라도 전성기를 지나 국력이 쇠퇴하던 시기였다. 국내 지배층은 외국의 이런 약점을 철저하게 인식하여 적절히 대처해나가기보다 ‘내부의 적’을 이기기 위해 ‘외부의 적’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평화와 화친에 매몰된 나머지 나라를 빼앗기고 노예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오판의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통분스런 우리 역사의 기록이 아닌가.
왜 신년 초에 이런 지난 역사의 통한을 짚어보는가. 2007년에 전개될 국내외적 환경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개혁, 자주와 친미, 친북과 반북으로 피 터지게 싸우는 동안 우리 민족과 한국경제의 체력은 갈수록 떨어져 주변 강대국들의 주도력은 점점 강화되는 반면, 세계시장에서 선두자리를 대부분 중국에 내주고 있다. 또 사회의 양극화현상이 극심해져 ‘두 개의 국민’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년 초에 터진 현대차의 성과금을 놓고 벌어진 사건을 보라! 서로 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주변 정세를 살펴보자. 서로 ‘내부의 적’으로 삼을 때가 아니라 동반자로서 힘을 모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비단 우리가 ‘내부의 적’으로 삼고 있는 현상은 국가와 사회라는 큰 규모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모여 있는 모든 곳에는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입장의 차이는 항상 존재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조직된 회사 안에서도,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결집된 정당에서조차 이 ‘내부의 적’ 현상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최근 여러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합집산의 분주한 움직임은 어제의 동지가 사실은 또 하나의 ‘적’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고 있다.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할까? ‘내부의 적’ 때문이다. 국민들이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칠 때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엉뚱한 소리나 떠벌리고, 국정운영의 이상 징후가 드러난 지 오래됐는데도 ‘내부의 적’들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시민사회단체도 그 권력의 놀이판에 끼어들어 만찬을 즐겼으니 그 누가 참회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까? 자기 진영 속에 어제 같이 외치던 동지가 사실은 자신들을 망가뜨리는 적인줄 몰랐던 것이다. 자기 자신의 또다른 자신이 적인줄 몰랐다는 얘기이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더 큰 무서운 적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적’ 현상이다. 선함과 악함, 용기와 비굴, 정직과 거짓, 나태와 근면, 도전과 타성, 이 모든 현상들은 인간의 머리와 행동 속에 함께 존재한다. 어느 때는 선함, 용기, 정직, 근면, 도전이 나타나는가 하면, 어느 때는 악함, 비굴, 거짓, 나태, 타성이 자신을 흔든다.
사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이 ‘내부의 적’ 현상을 어떻게 다스려 나가는가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마음을 다스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과 우리 주변, 우리 사회의 모든 ‘내부의 적’을 보다 강한 힘으로 이겨나가야 자신과 사회가 비로소 건강해진다. 올 한해 ‘내부의 적’을 잘 다스려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이 나라의 난국을 헤쳐 나가자.
‘내부의 적(敵)’
‘내부의 적(敵)’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한 가지 특징적인 현상이 있었다. 나라가 망할 때 예외 없이 극심한 내부 분열을 겪은 나머지 자멸해왔다는 것이다. 고조선은 한나라의 공세로 내부가 분열돼 우거왕이 신하들의 배신으로 목이 잘려 붕괴했고, 고구려, 백제 역시 내부갈등으로 당나라에 무너지고 말았다. 조선도 대원군과 명성왕후 세력의 권력다툼이 극심해 일제의 침략을 받았다.
그 결과는 분열된 지배층의 몰락과 참담한 노예생활로 심판받았지만, 우리의 역사로 보면 광활한 만주벌판을 잃게 되고 근세에는 나라 없는 백성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외인(外因)은 내인(內因)을 통해 작용한다는 명제 그대로이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객관적으로 보면, 외세와 대결을 벌이던 시기의 국제적 환경은 꼭 외세에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고조선을 압박했던 한나라도, 고구려나 백제를 침공했던 당나라도 전성기를 지나 국력이 쇠퇴하던 시기였다. 국내 지배층은 외국의 이런 약점을 철저하게 인식하여 적절히 대처해나가기보다 ‘내부의 적’을 이기기 위해 ‘외부의 적’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평화와 화친에 매몰된 나머지 나라를 빼앗기고 노예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오판의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통분스런 우리 역사의 기록이 아닌가.
왜 신년 초에 이런 지난 역사의 통한을 짚어보는가. 2007년에 전개될 국내외적 환경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개혁, 자주와 친미, 친북과 반북으로 피 터지게 싸우는 동안 우리 민족과 한국경제의 체력은 갈수록 떨어져 주변 강대국들의 주도력은 점점 강화되는 반면, 세계시장에서 선두자리를 대부분 중국에 내주고 있다. 또 사회의 양극화현상이 극심해져 ‘두 개의 국민’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년 초에 터진 현대차의 성과금을 놓고 벌어진 사건을 보라! 서로 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주변 정세를 살펴보자. 서로 ‘내부의 적’으로 삼을 때가 아니라 동반자로서 힘을 모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비단 우리가 ‘내부의 적’으로 삼고 있는 현상은 국가와 사회라는 큰 규모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모여 있는 모든 곳에는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입장의 차이는 항상 존재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조직된 회사 안에서도,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결집된 정당에서조차 이 ‘내부의 적’ 현상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최근 여러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합집산의 분주한 움직임은 어제의 동지가 사실은 또 하나의 ‘적’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고 있다.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할까? ‘내부의 적’ 때문이다. 국민들이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칠 때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엉뚱한 소리나 떠벌리고, 국정운영의 이상 징후가 드러난 지 오래됐는데도 ‘내부의 적’들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시민사회단체도 그 권력의 놀이판에 끼어들어 만찬을 즐겼으니 그 누가 참회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까? 자기 진영 속에 어제 같이 외치던 동지가 사실은 자신들을 망가뜨리는 적인줄 몰랐던 것이다. 자기 자신의 또다른 자신이 적인줄 몰랐다는 얘기이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더 큰 무서운 적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적’ 현상이다. 선함과 악함, 용기와 비굴, 정직과 거짓, 나태와 근면, 도전과 타성, 이 모든 현상들은 인간의 머리와 행동 속에 함께 존재한다. 어느 때는 선함, 용기, 정직, 근면, 도전이 나타나는가 하면, 어느 때는 악함, 비굴, 거짓, 나태, 타성이 자신을 흔든다.
사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이 ‘내부의 적’ 현상을 어떻게 다스려 나가는가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마음을 다스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과 우리 주변, 우리 사회의 모든 ‘내부의 적’을 보다 강한 힘으로 이겨나가야 자신과 사회가 비로소 건강해진다. 올 한해 ‘내부의 적’을 잘 다스려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이 나라의 난국을 헤쳐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