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수이

향수찾기200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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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 수이                                                                                                              

안나수이


 

  


 뉴욕패션계의 '히트메이커' 로 부상한 안나 수이. 시대를 앞서가는 패션, 복고풍에 대한 향수를 펑크 스타일로 재 창조하는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인으로 모든 이들을 즐겁게 만드는 디자이너이다.

 

중국인 2세라는점, 패션 사진 작가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과의 특별한 우정등으로도 대중의 시선을 끄는 그녀는 지금, 뉴욕 패션의 정상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젠 저의 시대죠" 뉴욕의 아방가르드한 패션 디자이너 안나 수이(Anna Sui)가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난 사회적 지위, 돈 같은 것들에 연연하거나 그들 근처에 가려고 한 적도 없어요. 90년대부터 모든게 변하고 있어요. 우린 지금 70 년대의 스타일을 그리워하고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죠. 모든 사람들이 에스닉하고 앤티한 스타일을 즐기려고 하는 것. 바로 제가 지향하는 스타일 입니다.

 

중세의 로맨틱한 프릴에서 60 년대 후반과 70년대 초의 시크한 히피 스타일까지 폭넓은 인스피레이션을 발휘하는 디자이너 안나수이. 결코 비싸지 않는 그녀의 작품들은 나이와 상관 없이 늘 마음 한쪽에 동심과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모든 여성들을 만족 시켜주고 있다. 안나수이는 1950년대 중반 미국의 미시간주에서 태어난 중국인 2세. 파리 유학생이었다가 미국으로 이민온 부모 사이의 3남매중 둘째로 태어 났다. 그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적 그녀가 즐겨하는 놀이는 망가진 장난감 병정에게 옷을 만들어 입혀 그 병정을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오는 멋진 영화 배우 처럼 변신 시키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적 그녀가 즐겨하는 놀이는 망가진 장난감 병정에게 옷을 만들어 입혀 그 병정을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오는 멋진 영화 배우 처럼 변신 시키는 일이었다. 그녀는 옷을 뜯어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느질을 했고 신발까지도 자투리천을 패치시켜 근사하게 변신 시키기도 했다.(이런 스타일은 후에 그녀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 룩의 하나가 되었다.) 이런 그녀의 노력은 교내 베스트 드레서로 뽑히게 하기도 했다.10대의 안나 수이는 패션 메거진의 아티클을 꼼꼼하게 수집하는 패션 메니어 였다. 그녀 스스로 'Genius Files'라고 이른을 붙인 이 파일은 그녀의 커리어에 있어서 현재까지도 꾸준히 인스피레이션을 제공하는 아이디어의 원천. 누군가 그녀에게 패션에 관련된 인물이나 정보를 묻는다면 그녀는 정확하게 모든것을 설명 할 뿐 아니라 단 몇 초 이내에 그녀가 수집한 파일을 들고 나올 정도.

 

그 수많은 패션 아티클중에 그녀의 인생 진로를 정해준 결정적인 자료가 있다. 'LIFE'지에 실렸던,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Design) 출신의 두 젊은 디자이너에 관한 기사가 바로 그것으로, 디자이너의 기질은 충분했지만 디자이너가 되는 길에 대해선 잘 몰랐던 그녀에게 그 기사는 아주 심플한 계기가 되었다. "전 그때 단숨에 결정했죠. '파슨스를 가자!'라고 말이에요" 복고풍을 펑키한 스타일로 리바이벌하는 패션리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70년대초, 그녀는 원하는 대로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했고 거기에서 절친한 친구이자, 협력자인 패션사진작가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을 만나게 된다.단순한 우정 이상의 크리에이티브한 협력관계인 그들의 관계는 파슨스를 떠난 후에도 지속 되었다. 수이가 한 스포츠 웨어 회사에서 수영복에서 니트웨어까지 모든 옷들을 소화해 내는 디자이너가 되었을 즈음, 그녀는 스티븐 마이젤의 패션지 화보 스타일리스트로서 활동하기도 했다."그들이 우리에게 스키 웨어를 보내면 우린 그옷에 모피 베스트와 타피스트리 부츠를 매치 시켜 모터사이클을 타는 히피스타일로 바꾸어 놓곤 했죠."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갈 무렵, 그녀는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옮겨 다녔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는 Simultance라는 여성 스포츠웨어 제조 회사였다. 이곳에서 수이는 그녀의 기질을 서서히 발휘하기 시작한다. 복고풍의, 장난기 넘치는 디자인의 옷들이 그녀의 머리와 손끝에서 태어났다. 이 수년간의 직장 생활은 그녀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준 시기이기도 했다. "오랜동안 난 스타일리스트와 디자이너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요. 그건 일종의 환상 같은 거였죠. 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러나 난 기본적인, 그리고 아주 중요한 건 약속한 시간에 좋은 퀼리티의 옷들을 선적해야 한다는 걸 전 그 기간을 통해서 배웠죠."이 기간은 또한 수이가 그녀만의 디자인 컨셉트를 발견한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 그녀는 부티크 쇼에서 6벌의 라이크라 소재 의상을 선보였는데, 곧 메이시(Macy's)백화점으로부터 주문을 받았으며 이때부터 그녀는 회사에서 독립. 본격적인 크리에이션을 통해 그녀의 생동감 넘치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1983년 가을 컬렉션에서 그녀는 크고 늘어진 주머니가 달린 블랙 튜닉, 블랙 베스트, 물결치는 듯한 블랙 스커트, 그리고 형광빛의 코튼 셔츠를 발표했고 이듬해에는 몬드리안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은 loose-but-lean look을 발표했다. 수이의 각 시즌 컬렉션을 돌아보면 그녀의 디자인 경향과 더불어 대중 문화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가 있다. 어떤 해에는 1970년대의 패션이 그녀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밑단 부분에 긴 술을 늘어뜨린 짧은 스웨이드 드레스가 바로 70년대 패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다른 해에는 짧은 스커트나 주름 장식을 넣은 쇼트 팬츠와 같은 코코 샤넬 스타일을 발표했다. 그녀는 또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행 스타일을 변형, 리바이벌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1950년대의 남성복 스타일 롱 재킷 수트와 카프리 팬츠(몸에 꼭 끼는 바지), 힙 허깅 팬츠등이 그녀를 통해 새롭게 재현된 아이템들이다. 직장 생활을 그만 둔 이후 자신의 아파트에서 시작한 그녀의 사업은 80년대를 통해 이렇게 꾸준히 성장한다. 1991년 4월, 수이는 친구 스티븐 마이젤과 홍보 담당 폴카바코(Paul Cavaco)의 격려로 첫번째 정식 컬렉션을 시도한다. 이 쇼에는 나오미 갬벨, 린다에반젤리스타 등의 슈퍼 모델들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스티븐 이벨의 소개로 출연료 없이, 수이의 의상과 소품을 받는 조건으로 출연했다. 뉴욕 타임즈에 의하면 그녀의 이데뷔 무대는 '히피 스타일과 하이 패션이 성공적으로 어우러진 무대였다. 원색의 비닐 재킷, 얼룩 무늬 플리츠 스커트와 모자, 골드 체인으로 턱 아래를 묶게 되어 있는 스컬 캡(skull cap. 테두리 없는 실내 모자)과 한 세트를 이룬 베이비 돌 드레스와 샤넬 스타일의 수트, 모터 사이클 재킷 등이 그 무대를 통해 발료되었다. 또 다른 작품들로 60년대의 스트레치 레이스 타이츠, 부츠, 코트 등도 있었다. "60년대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요. 그래서 의상을 통해서 그 시대를 지금 다시 살고 있죠 나는 그 시절의 제품과 패턴을 좋아합니다." 데뷔 무대의 성공은 그녀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같은 해, 수이는 그녀의 비좁은 아파트에서 나와 맨해튼의 유명한 부티크 거리에 사무실을 오픈한다."제의상은 모두 네 블럭 이내에서 만듭니다. 품질에 관한 한 전 엄격한 걸 제 신조로 삼고 있어요. 작은 공간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직접 감독할 수 있고 어떤 실수라도 문제가 되기 전에 잡아낼 수 있거든요."

 

1992년, 메이시 측은 브로드웨이 매장 쇼윈도에 수이의 의상을 1주일 동안 전시한 것은 물론 헤럴드 스퀘어에 부티크를 내주었다. 부티크 오프닝은 간단한 패션쇼와 수이의 직접 인사말로 이루어?는데, 오픈식이 열린 90분 동안 메이시 측은 1만불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그해말, 수이는 메이시보다 더욱 수준 높은 백화점인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백화점에 픽업 되었고 92년 9월, ?은이 들과 예술인들의 거리인 소호에 지점을 오픈한다.1992년의 봄 컬렉션은 그녀에게 또다시 스포트 라이트를 받게 했다. 이 두번째 쇼에서 그녀는 독특한 소재에 시선을 끄는 액세서리를 매치한 개성있는 의상들을 선보이면서 그녀의 관중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뉴욕타임즈는 '패선에 관심은 많지만 의미이께 받아들이지는 않는 젊고 모험적인 기질을 가진 이들을 봄의 쾌활한 열정으로 사로잡았다'라고 그여늬 컬렉션을 평했다. 가장 멋진 가격에 멋진 옷을 제공하는 디자이너 1992년의 수이는 1970년대 스타일을 지향하고 유행시키는 디자이너로서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그녀는 벨보템, 힙허거, 비틀즈 재킷, 프린지, 시폰등을 다른 디자이너들보다 한발 앞서 발표했다. 그러나 수이는 유행을 리드하고 도입한 디자이너로서 받는 찬사를 사양한다."그 찬사가 제게 돌아도는 것은 옳지 않아요. 어린 아이들은 그런 옷을 벌써부터 입어왔거든요." 수이의 작품 세계는 이어지는 켈렉션을 통해 에드워디언풍과 빅토리안 시대의 벨벳, 화이트의 영국풍 베이비 돌 드레스, 시스루의 검정색 언더 웨어, 실버 메칼릭 가죽 스커트와 범버 재킷등을 선보이면서 확실하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펑키하고 기발한, 그리고 창의적인 수이의 패션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해 고객들에게 더욱 호소력 있게 어필하고 있기도 하다. 뉴욕의 그 어느 디자이너보다 같은 가격에 가장 많은 패션을 선사하는 디자이너, 가장 멋진가격에 가장 멋진 의상을 공급하는 디자이너, 뉴욕의 패션 전문가들의 그녀를 평가하는 말이다. "고객에게 부담을 줄 만틈 가격을 올리면 옷에 깃든 유머가 사라져 버릴 거예요. 고가품은 너무 점잖을 떠는 분위기가 되기 삽상이니까요. 그건 제 스타일은 아니에요. 크리스티앙 라크로와나 샤넬의 몫이죠."

 

수이는 맨해튼의 첼시 지구의 한 아파트에 산다. 그녀의 아파트는 벼룩 시장에서 모아들인 수집품으로 가득차 있다. 중고가고, 금테두리 거울, 해골, 중국식기, 디올과 샤넬의 옷을 입고 있는 인형 등등.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이 실내는 마치 유령의 카니발 장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파트 거실의 한가운데에는 실물 사이즈의, 다이아나 브리랜드(Diana Vreeland)마네킹이 서있다. 다이아나 브리렌드는 붉은 색에 편집중적 증세를 보였던 60년대의 전설적인 패션 전문가이자, 보그(Vogue)지의 편집장이었다. 난 브리랜드를 좋아했어요. 그녀는 패션 화보를 통해 나를 러시아, 중국 등지로 데려다 주었죠. 상상력과 환상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매우 중요하죠. 어쩌면 그것 때문에 내가 디자이너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난 그시절 내가 빠져 들었던 그 환상을 지금 다시 끌어내려고 하고 있어요." 94년 여름 컬렉션은그런 환상이 두두러진 무대였다. 미시건주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에서 영감을 얻은 ?화와 같은 작품들이 선보여졌다. 반짝이는 보석 왕관을 쓰고 짧은 양말에 엄의 하이힐을 신은 베이비 돌 룩이 그녀의 캣워크에 올려졌다.그러나 수이는 이 스타일로 인해 민감한 여권론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성을 '유아화'한다는 반발에 부딪쳤다. 난 내 고객을 위해 디자인했을 뿐이에요. 아이러니컬하게 비이비 돌을 부활시킨 것에 대해 난 만족스럽게 생각해요. 역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제가 구식 디자이너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인스피레이션이죠."95 S/S 뉴욕 켈렉션에서도 그녀 특유의 기지와 유며가 배어 있는 작품들을 발표. '역시 안나 수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언밸런스한 조화를 이룬, 소재와 디자인의 미스매치가 돋보였던 이번 컬렉션에서는 40년대 스타일의 글래머와 갱스터를 합쳐 놓은 강한 인상의 의상들을 펑키하고 재미있는(Funny), 그리고 스마트한 분위기로 이끌어 냈다는 평. 두개의 부티크와 세계적으로 2백개의 매장이 있고 일년에 2백만불의 매출을 올리는 안나 수이의 패션제국, 가장 뛰어난 신진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페리 엘리스 상을 수상한 이후 3년여 동안 뉴욕의 아방가르드한 디자이너로서 정상에 서 있는 안나 수이. 이모험심 강한 크리에이터는. 아시스버그의 새로운 영 브랜드 'CENTO X CENTO'의 고문 디자이너로 영입되는 또 하나의 성과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