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로렌

향수찾기200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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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랄프 로렌                                                                                                              

 

랄프로렌


 

올해 63세인 랄프로렌, 그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거물 아르마니와 비슷하다. 디자인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타이를 팔면서 야간학교에서 공부한게 전부다. 하지만 숍의 어시스턴트 바이어에서 출발해 남성 의류 디자인을 먼저 시작한 로렌의 20여년이 지난 현재, 그의 디자이너로서의 인기도는 대단한 것이다.

 

세계 어는 사람들에게도 잠재해 있는 가슴속 깊은 곳의 과거에 대한 동경을 미국적인 멋으로 표현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랄프 로렌은 그의 시대의 전설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랄프 로렌 자신은 그 전설을 구멍으로 가득 채우려는 듯 계속 펀치 뚫기를 하는 것처럼보인다. 한겨울의 활기찬 오후, 그는 매디슨 애비뉴의 사무실에 정장수트나 가죽 팬츠 차림이 아닌 플란넬 셔츠와 진즈를 입고 앉아 있었다.따뜻한 머쩌볼(matzo-ball) 수프를 마시고 있는 그는 감기 기운은 있어 보였지만 그런 대로 건강해 보였다."사실 저는 감기는 잘 걸리지 않는데... 종양이라면 모를까."농담처럼 그러나 허심탄회하게, 그는 몇해 전 뇌에 생긴 양성종양을 수술로 제거한 사실을 화제로 삼는다. 그 수술후, 그는 훨씬 부드럽고 원숙해졌으며, 의욕도 꺾이지 않았다.

 

작년 한 해만 해도 매디슨 애비뉴에 폴로 스포츠(Polo Sport)숍을 오픈하며 놀랄만한 에너지를 보여주었다. 기존의 4층 짜리 본사 건너편에 위치한 이 점포는 1만평방피트에 이른다. 그는 또 새 브랜드인 더블 알엘(Double RL)을 내놓기도 했다. 독웰 레스크 플란넬, 천연 건조의 가죽, 취노(chino 카키색의 튼튼한 면직물)등이 컬렉션의 모든 아이템은 '패션이 아닌 살아있는 것'이라고 그는 특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의 신조로 단단히 자리를 굳혀왔던 호전적인 앤티 패션(antifashion)의 자세는 완전히 수그러들었다. 거미집이 없어지듯 그렇게 사라졌다고나 할까. 'Ralph'라는친근한 명칭을 붇인 그의 새 모험적인 사업은 정제된 느낌을 주면서 역시 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특정한 시간을 내세우지는 않는다"고 그는 자신의 27년에 걸친 커리어의 중심 사상을 일깨우며 말한다. 그러나 역시 새로운 것이며, 나아가 패션이 있다.

 

물론 그가 고전을 버린 것은 아니다. 약간의 자극을 준 것 뿐이다. 제시카 랭(Jessica Lange)과 씨시 스파색(Sissy Spacek)이 광활한 농장의 냉정한 여주인역을 하면서 입었음직한 심플한 데님 셔츠가 그의 손에서 변형되었다. 은근히 환심을 사는 듯한 아늑한 형태와 섹시한 캡 슬리브는'델마와 루이스'의 지나 데이비스가 즐겨 입을 만큼 독특하고 생기가 있다. 장식없는 작은 슬립 드레스는 소박하고 전통적인 것으로, 골격좋은 랄프의 아내 리키(Ricky)에게 잘 어울릴 것같다. 그리고 그 입은 모습은 랄프가 펑키 티셔츠를 입었을 때처럼 오만하게 보일 것이다.랄프 로렌이 다시 발견한 '차가움'의 이미지 로렌은 55세에 '쿨(cool 시원함, 가라앉음)'을 다시 발견했던 것 같다. 그는 최근 자넷 젝슨이 그녀의 콘서트에 초청해준 사실에 놀라면서도 우쭐했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머지 않은 장래에 머리를 숙이고 손을 포켓에 찌른 그의 숫기없는 모습을 토크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에서 보게되는 것은 아닐까? 최근 들어 그는 '랄프 로렌'이란 이름이 주는 짐을 떨쳐내려고 하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랄프 로렌은 전통이라고 말한다"고 그는불평을 한다."다른 길로 가려고 해도 사람들은 볼 수 없어요. 모든 것이 이미지에 묻혀 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로렌은 좀 더 개방적이 되고 포용력을 지니려고 노력한다. 그는 그의 스태프들이 그를 바깥 세계의 침입과 질문, 전화 등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지나치게 열성적이었음을 인정한다. "내가 그런 과도한 보호를 원했는 지 나 자신도 확실히 모른다"고 그는 웃으며 말한다. 그가 때로 은둔자처럼 보였던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의 집이 있는 자마이카의 라운드 힐에서 그가 한 번이라도 눈길을 보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사고 지향형 인사들에게는 가장 즐거운 여가 선용이었다. 10여년 전만해도 그는 윈저궁의 무용담이나 정치 비화 등의 비디오 테이프에 심취했었다.

 

오늘날 그는 훌륭한 전기 문학에 더 흥미를 느낀다. 특히 '심리학적인 깊이가 있는 것' 이라면 더 좋다고 그는 말한다. "리키는 한 때 저를 몽상가라고 말했었어요."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한다. "그래서 전 무척 화를 냈지요."얼마후 그는 자신의 터무니 없었던 환상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어느 곳에나 모습을 나타내고 만족해 한다. 오프닝에 나타나 축하도 하고, 자선 무도회,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의 레스토랑에 나타나 분위기에 젖고 그의 문화적 안테나를 예리하게 만든다. "저는 성(城)에 살지 않습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외출해 밖을 관찰합니다. 무엇이 그 곳에 있는지 이해하려면 그 곳에 다이얼을 항상 맞춰둬야 할 것이니까요." 그는 대화중에 주문을 외우듯 자꾸 이 말을 반복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방울을 단 길잡이라고 표현한다. 자신과, 이제 20대가 된 자녀가 본 것에 대하여 디자인하는 선도자라는 것이다.

 

그는 그가 1년전 보여주었던 코삭코트(cossack coats 러시아 코삭 지방의 민속복에서 힌트를 얻은 옷차림)와 화려한 튜닉에 대해 언급한다."저는 패션이 너무 미니멀라이즈드(최소화)해졌다는 생각에서 러시안 컬렉션들을 디자인했었어요.좀 더 장식적이고 로맨틱해졌으면 합니다." 사람들의 취향을 알아내는 그의 정확한 판단 감각은 그 자신의 희망 사항과 부합하는 것이다."오로지 수트만 입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진즈를 입고 싶어요." 그는 80년대를 지배했던 분위기를 이렇게 회고한다."10년전, 사람들은 좀 더 안정적인 확립된 느낌을 원했었어요.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바랐으며, 특히 구세계(Old World 유럽)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것에 애착을 보였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그 진자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되돌아감으로써 더 행복해 한다"는 것이다."그들은 더 느슨해졌으며 더 자유로워졌고 더 실험적이 됐습니다. 욕심은 훨씬 적어졌구요 아마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신세대에게 재발견된 랄프 로렌의 패션 세계 랄프 로렌, 1939년 미국 뉴욕출생, 그의 본명은 립쉬츠(Lifshitz)다.

 

그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거물 아르마니와 비슷하다. 디자인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부룩스 브라더스에서 타이를 팔면서 야간학교(The City College of N.Y)에 다니며 경영학을 공부한 후 얼라이드(Allied) 스토어에서 어시스턴트 바이어가 된다. 아르마니처럼 그도 여성 의류를 접하기 전 먼저 남성 의류를 디자인한다. 미국적 외형에 영국적 풍미를 겸비한 남성 의류인 폴로를 1968년에 창안하여 'Polo by Ralph Lauren'이란 명칭을 얻어낸다. 그의 성공을 눈여겨 본 블루밍데일은 그로부터 3년후 남성 의류와 같은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여성 의류 몇 점을 부탁한다.

 

이렇게 여성 의상에도 손을 대기 시작한 랄프 로렌은 향수, 가방, 아동복, 저렴한 가격의 남성복, 가죽팬츠(카우보이들의)등을 내놓게 돼는데 그 중에서 가장 히트한 작품은 1979년의 '폴로웨스턴 웨어'이다. 이것들은 특출한 디자인은 없지만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왜냐하면 미국 남녀들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에게도 잠재해 있는 가슴 속 깊은 곳의 과거에 대한 동경이 그의 '와일드 웨스트'감각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로렌은 서부 대초원에 이주해 살던 전통적인 느낌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시키고 있다. 순수한 미국적 개척자의 배경이 배어있는 퀼팅된 패치워크 스커트, 점퍼, 데님 등을 발표한다. 이러한 의상들의 디자인에 대해선 논쟁할 여지가 있들지 몰라도, 그 인기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대단한 것이다. 고가품인데도 불구하고 경이적으로 팔려나가고 있는 데서 입증되고 있다.

 

1973년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보여준 의상이나, 1978년 '인니 홀'에서 나나난 그의 의상들은 지금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1973년 Neiman-Marcu상을 수상했고 코티 아메리카 패션 비평가들의 상을 6번이나 수상했다1970년에는 Men's Award를, 1976년 Hall of Fame Men's Wear와 Woman's Wear Return Award, 1977년 Hall of Fame Women's Wear를 각각 수여받았다. 랄프 로렌이 매우 미국적인 특별한 방법으로 패션계에 상당히 오랫동안 공헌할 것이라는점은 트위드와 자연 섬유를 많이 애용하고 그러한 직물들을 사용하여 세련된 멋을 창조해 내며, 그런 의상을 입어서 느끼는 편한 착용감 등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가 떠올리는 멋진 착상은 파리의 그것과는 동떨어진 순전히 미국적인 것들이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팬츠와 캐시미어 스웨터 또한 1950년대 대학생들이 즐겨입던 플란넬 스커트와 네이비 블루의 부드러운 어깨선을 가진 블레이저를 갖고 그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신의 독특한 멋을 연출해내고 있다. 그에게도 그 자신이 바로 영감을 주는 매개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