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만들기

이연규2007.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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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너에게 흘렸던 이야기들 가운데에서 그리움은 무척 많은 분량을 차지했겠지만 친구여! 그리운 이에게 그리움의 사연을 보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제는 더 이상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거나, 영혼 속에 내장되어 있던 그리움의 샘이 메말라 그리움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흔히 지나가는 말로 그리움을 이야기하고 깊어지는 정이 있는 것처럼 빈 가슴을 열며 자위행각을 벌이곤 하는데 엄격한 의미로 그것은 그리움이 아니다. 그렇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하면 마음이 봄눈 녹듯 녹아 내리고 솟아나는 기쁨에 빠져드는 것은 삶에 지치고-살아가는 것에 얽매이고 생존하기에 쫓기다- 무관심 속에서 생겨난 아집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리워할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는 가슴 깊은 곳에서 서서히 망각되었던 그리움이 일 순간에 생의 표면으로 표출되는 순간적인 현상이다. 나름대로는 동심을 꿈꾸며 살아가기 위해 무척 많은 애를 써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생존의 중간에서 발생되는 그리움의 기교적인 면과 내용적인 면은 상상을 초월한 빙벽의 두께로 만남의 자리를 차단하고 있다. 살면서 생긴 아집을 고집하며, 불신의 틈바구니 속에서 잉태된 오해가 자라나 마침내 “우리” 라는 이름 하에 생겨나고 만들어진 만남의 주체들은 산산이 깨어지고, 공중 분해되어 객체화된 사태 속에서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입고 만남을 후회하기도 한다.

친구! 만남은 그리움의 산물이어야 한다. 진정코 가슴 떨리도록 조바심 치며 갈구하는 그런 그리움은 아닐지라도, 은은한 향취가 배인 한 떨기 들국화 같은 그런 만남이라도 좋다. 가슴속에 그리움을 키울 여유가 있어야겠고, 생을 향유할 믿음과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틔워야 한다.

 

서정윤 시인은 만남을 허구와 좌절의 시련기로 보고 있지만, 일단은 만나야 한다. 내 마음을 모두 닫고 다시는 뼈아픈 이별을 만들지 않으려는 시인의 고집과 아집은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 가 만나는 것이다” 고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이것은 얼마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마음인가?

건방지게 한마디 한다면 이것은 상처받은 시인의 가슴에 흐르는 체액이다. 즉 상처받은 영혼 속에 내장된 이미지를 완전하게 시로 승화시키지 못한 시인의 아픔이요, 욕망인 것이지 결국 단 한 사람을 만나 한번만 꼭 한번만 사랑하고 싶다는 시인의 말도 결국은 만남에서 연유될 이야기인 것이야.

그 만남의 대상이 운명의 짝이고 아니고는 신의 영역에서 내리는 판단일 뿐이요, 우리들은 만남 속에서 열매가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과정 속에서 살아야 함을 직시하지 못한 까닭이지, 그렇다면 왜 이 시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안겨 주었는가? 그 까닭은 아마도 지금 우리들의 세대와 이 시대적 아픔의 현실을 그대로 표출하며 노래했기 때문이라 믿는다.

아픔을 아픔의 형태로 노래하여 너무 흔한 사랑과 고독의 병에 걸린 독자의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홀로 설 수 밖에 없지만 결과보다도 과정이나 동기에 집착해야 하는 인간들로서는 수 많은 만남들을 통해서 배우고 깨닫는 일어서기의 방법과 방향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과는 신의 몫이고 동기나 과정은 인간의 몫이라면 쓰러짐만을 강요하는 만남이라도 일단은, 만나고 볼 일이다. 숙명적인 원죄의 업보에 매달린 시인의 눈은 그것을 부정하고 있지만 쓰러지면 쓰러질수록 인간은 더욱 강하게 일어서고, 고통 받으면 고통 받을수록 만남의 기쁨이 커져가고 만남 자체가 원숙해져 간다는 사실에서 좌절을 딛고 일어서야 할, 인간의 한정된 길과 운명을 깨닫는다.

수없이 많은 쓰러짐 속에서 얻은 결론이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이라면, 인간의 타고난 좁은 테두리 속의 운명은 얼마나 가혹한 것이냐?

하지만 친구여! 그렇게 슬퍼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서정윤 시인의 시는 단편적인 만남과 슬픈 이들의 기억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들은 수 많은 좌절 속에서 절망하기 보다는 스스로 일어서기를 배우는 것이다.

이것보다는 시는 부족한 인간끼리 만나 서로 쓰러지지 않도록 일으켜 세워주고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쓰린 기억을 치유해주며 함께 일어서는 인연과 정리를 토대로 쓰여져야 한다. 그것이 승화된 만남의 철학이고 시이다.

 

사랑 찾기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만남은 헤어짐을 목적으로 해도 좋다.

남남의 거리 좁히며 이자리

헤어짐은 다시 만남을 이유로 해도 좋다.

 

싸늘하게 굳은 인간의 표정,

다가오는 이들과 멀어져 가는 이들의

중간 자리에서 고독해하는 당신

너에 타며, 너에 타며

한정된 하늘로 두 팔을 넓게 펼친다.

 

한번만

꼭 한번만 사랑하고 싶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만남과 이별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의 짝을 운명처럼 찾아

이제는 마음껏 사랑하리라

하지만 정성껏 돌보아왔던 정원수의 잎처럼

모든 것을 잃고 말았던 지난 겨울의 기억은

홀로서기를 체념하게 하나니

목련 꽃 피는 4월은

언제쯤 나의 슬픔 앞에 환한 기쁨으로 올까?

 

홀로서기는 혼자서 하는 것

홀로선 자는 성역에 속한 자

홀로서기는 혼자서 하는 것이지만

같이 서기는 둘이서 나누는 사랑이다.

 

온전하지 못한 육신과 영혼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나뒹굴며 이어온 삶

완전한 사랑일수록 그리움이 일고

완전한 사랑일수록 서로 마주보며

약속된 내일의 땅으로 간다.

 

혼자서 이루기엔 역부족인 사랑

신이 아니어서 엮은 만남 속에 움트는 사랑

아! 정성으로 심고 꽃피운

신의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