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신앙은 스스로의 삶에 안식을 가져다주는 방편이었을 때가 마땅하다. 물론 생의 저편을 증명하지 못하면서도 간증하는 종교의 태도안에서 현세란 불가치한 추춧돌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단위적 가치안에서 신앙의 기능은 그 현실을 보좌하는 기능으로 발휘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광신이라는 것은 그런 기능이 역류하여 보좌되어야 하는 가치가 보좌받아야 하는 가치를 전복했을 때 발생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광신이라는 행위가 종종 공포영화에서 소재로 차용되는 것은 그 믿음의 진실함이 병적인 집착을 보이기도 하기 떄문이다. 그 광기어린 믿음이 신앙적 순결함과는 무관하게 그 믿음을 지속하기 위한 사악한 행위에 결부시켜지는 과정은 모순적인 충격을 발생시키는데 꽤나 효과적이다.
이 영화는 안소니 쉐퍼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1973년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영화는 그 광란의 기운을 습자지에 머금듯 지닌 기묘한 섬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음모를 토대로 관객을 압박하려 한다.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예감과 불현듯 등장하는 불길한 암시, 그리고 그것을 좇는 인물의 심리를 통해 관객은 영화가 벌여놓은 서스펜스의 맥을 짚어간다.
경찰인 쉐리프(니콜라스 케이지 역)는 어느날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자동차 사고를 경험하고 자신도 부상을 입어 한동안 업무를 쉬게 된다. 착란에 시달리던 그는 자신을 갑자기 떠났던 옛 약혼녀로부터 그녀의 딸이 사라졌다는 기묘한 서신을 받고 그녀가 있다는 서머시슬로 향한다.
일단 영화는 초현실적인 경향을 통해 관객에게 경외적인 두려움을 품게 한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눈에 띄는 섬은 마치 마녀들의 은닉처같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악함을 감지하게 한다. 영화는 무언가가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으로 관객의 목줄을 죄려고 하는 셈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예감에서 빚어지는 긴장감을 발전시켜나가기 보다는 지속되는 그 수준덕분에 지독한 지루함으로 몰락한다.
영화는 마치 오컬트적인 분위기와 미스테리한 공간과 인물로 설정의 효과를 누리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과 함께 상승되지 못하는 심리적 긴장감 덕분에 오히려 장르적인 만족감을 상쇄시켜 버리는 것만 같다. 물론 마지막의 결정적 상황에서 보여지는 영화의 과감한 작업은 그 지루함 끝에 던져진 일말의 충격요법이기도 하다.-유명배우의 생존에 무감각하다니!- 하지만 그 한번으로 보상받기에는 영화의 긴 기다림이 지루함을 감출 수 없다.
물론 최후반부의 부록같은 덧붙임을 후속편의 예고로 봐서는 곤란하다. -물론 미국에서의 흥행성적을 봐도 후속편 제작은 꿈도 못 꿀 일인 듯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화가 의도하는 여운에 대한 장치이다. 다만 그것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밋밋한 영화의 형식적인 구색맞추기에 불과해보이는 것은 유감이다. 사악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그 섬이 보여주는 비극적인 결론은 의외의 반전이지만 그 한순간을 제외하고는 관객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서스펜스의 자제는 이 영화의 장르를 의심하게 한다. 정말이지 미스테리할 정도로 관객을 지루하게 만드는 스릴러는 마치 필자가 이 영화의 장르를 착각했던 것인지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다.
<위커맨>장르를 헤매는 미스테리
사실 신앙은 스스로의 삶에 안식을 가져다주는 방편이었을 때가 마땅하다. 물론 생의 저편을 증명하지 못하면서도 간증하는 종교의 태도안에서 현세란 불가치한 추춧돌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단위적 가치안에서 신앙의 기능은 그 현실을 보좌하는 기능으로 발휘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광신이라는 것은 그런 기능이 역류하여 보좌되어야 하는 가치가 보좌받아야 하는 가치를 전복했을 때 발생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광신이라는 행위가 종종 공포영화에서 소재로 차용되는 것은 그 믿음의 진실함이 병적인 집착을 보이기도 하기 떄문이다. 그 광기어린 믿음이 신앙적 순결함과는 무관하게 그 믿음을 지속하기 위한 사악한 행위에 결부시켜지는 과정은 모순적인 충격을 발생시키는데 꽤나 효과적이다.
이 영화는 안소니 쉐퍼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1973년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영화는 그 광란의 기운을 습자지에 머금듯 지닌 기묘한 섬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음모를 토대로 관객을 압박하려 한다.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예감과 불현듯 등장하는 불길한 암시, 그리고 그것을 좇는 인물의 심리를 통해 관객은 영화가 벌여놓은 서스펜스의 맥을 짚어간다.
경찰인 쉐리프(니콜라스 케이지 역)는 어느날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자동차 사고를 경험하고 자신도 부상을 입어 한동안 업무를 쉬게 된다. 착란에 시달리던 그는 자신을 갑자기 떠났던 옛 약혼녀로부터 그녀의 딸이 사라졌다는 기묘한 서신을 받고 그녀가 있다는 서머시슬로 향한다.
일단 영화는 초현실적인 경향을 통해 관객에게 경외적인 두려움을 품게 한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눈에 띄는 섬은 마치 마녀들의 은닉처같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악함을 감지하게 한다. 영화는 무언가가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으로 관객의 목줄을 죄려고 하는 셈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예감에서 빚어지는 긴장감을 발전시켜나가기 보다는 지속되는 그 수준덕분에 지독한 지루함으로 몰락한다.
영화는 마치 오컬트적인 분위기와 미스테리한 공간과 인물로 설정의 효과를 누리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과 함께 상승되지 못하는 심리적 긴장감 덕분에 오히려 장르적인 만족감을 상쇄시켜 버리는 것만 같다. 물론 마지막의 결정적 상황에서 보여지는 영화의 과감한 작업은 그 지루함 끝에 던져진 일말의 충격요법이기도 하다.-유명배우의 생존에 무감각하다니!- 하지만 그 한번으로 보상받기에는 영화의 긴 기다림이 지루함을 감출 수 없다.
물론 최후반부의 부록같은 덧붙임을 후속편의 예고로 봐서는 곤란하다. -물론 미국에서의 흥행성적을 봐도 후속편 제작은 꿈도 못 꿀 일인 듯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화가 의도하는 여운에 대한 장치이다. 다만 그것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밋밋한 영화의 형식적인 구색맞추기에 불과해보이는 것은 유감이다. 사악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그 섬이 보여주는 비극적인 결론은 의외의 반전이지만 그 한순간을 제외하고는 관객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서스펜스의 자제는 이 영화의 장르를 의심하게 한다. 정말이지 미스테리할 정도로 관객을 지루하게 만드는 스릴러는 마치 필자가 이 영화의 장르를 착각했던 것인지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다.
-written by kharisma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