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식 경영 기업은 모두 세계
초일류 삼성·포스코·GE·홍콩 청쿵그룹·일본 혼다·도큐호텔의 경영시스템도 로마를 닮아
오픈 마인드와 강력한 리더십·실력 중심의 인사·잘 갖춰진 시스템으로 기업
운영해
“사상 최강의 기업, 로마를 벤치마킹하라!”
▲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천년 세계제국’ 로마의 성공 비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가 지난 12월 13일 시리즈 마지막 권인
제15권을 출간한 것이 로마 붐이 다시 이는 직접적인 계기다. 이 책은 새해 1월 말 번역판이 나올 예정이다. 비슷한 시기에 로마를 경영의
관점에서 다룬 책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김경준 저)도 나와 로마 붐이 고조되고 있다.
로마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세계제국’이었기 때문이다. 로마보다 영토가 넓은 제국도 있었지만 로마처럼 개방적인 태도로 주위 민족을 포용한 제국은 없었던 탓이다. 후세에
남긴 유산과 영향력 면에서도 로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이 로마의 후예를 자처하며 로마의 정신을 이어받았음을 강조해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000년 전 로마의 성공 스토리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 실력과 노력의 결과였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전무는 “로마인의 경영 키워드는 ‘개방성, 리더십, 시스템, 실력주의’라는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마의 장점 중
단연 돋보이는 것으로 개방성이 꼽힌다. 로마인이 어느 정도 개방적이었냐 하면 전쟁을 치른 적(敵)까지 포용할 정도였다. 개방성 면에서 로마와
그리스는 대조적이다. 그리스인이 생각하는 시민은 ‘피를 나눈 자’였다. 아테네에서는 부모가 모두 아테네인이어야만 시민권을 부여했다. 반면
로마인이 생각하는 시민은 ‘뜻을 같이 하는 자’라는 점에서 달랐다. 로마인은 건국 초기부터 정복한 부족을 죽이지 않고 유력자에게 원로원 의석을
제공해 로마의 지배계급으로 편입시키는 전통이 있었다. 이는 경쟁자의 역량을 로마의 역량으로 M&A(인수·합병)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가져왔다.
▲ 그림·권오택 요즘 ‘글로벌 시대’ ‘글로벌 경영’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글로벌의 핵심은 개방성과 네트워크다. 우리 기업 중 가장 앞서간다는 평을 듣는 삼성전자는 로마식 개방성에 중점을 두고 신경영을 펼쳐
소니를 따라잡았다. 삼성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소니에 납품하던 처지였으나 신경영 이후 ‘개방화’와 ‘질 위주 경영’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결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1996년 말에 소니의 10분의 1 수준이었으나 2003년 하반기에는 소니의 2배 정도로 완전히
역전됐다.
로마는 약 200년 단위로 개혁을 시도해 기득권층이 기득권을 개방했다. 이는 로마인이 실력주의를 신봉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시아 최고 갑부인 리카싱(李嘉誠) 홍콩 청쿵(長江)그룹 회장도 로마식 경영의 좋은 사례다. 그는 기업이 성장단계에 접어들자 서양인을
과감히 기용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경영과 해외시장 공략을 염두에 두고 외국 인재를 영입한 것이다. 그런 후 경영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젊은 인재를 적절히 발탁했다. 그는 창업 원로의 충성심과 경륜, 외국인의 선진 경영스타일, 젊은이의 활력을 적절히 섞어 큰 성공을
거뒀다.
오픈 마인드가 강한 개인이나 집단은 모든 것을 자기가 다 하려고 들지 않는다. 로마는 이미 2000년 전에 아웃소싱의
개념을 확립하고 있었다. 에트루리아인은 토목, 시칠리아인은 식량생산, 그리스인은 바다를 통한 교역, 그리스와 소아시아 출신 지식인은 교육,
갈리아인과 게르만인은 기병 전력을 담당하는 식이었다. 로마의 역내 분업은 카이사르의 시대에 오면 로마에서 활동하는 교사와 의사에게 인종과 출신
지역을 불문하고 로마시민권을 부여하는 형태의 기능분업으로까지 발전했다. 로마는 이처럼 핵심기능조차 아웃소싱했고 이 같은 로마식 국제분업체제가
세계제국의 밑거름이 됐다.
개방성은 패자부활전과 연결된다. 로마는 패자에게도 명예회복의 기회를 주는 사회였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풍이 형성됐고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을 사회가 공유했다. ‘기술의 혼다’를 이룩한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는 생전에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다. 혼다는 그런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저서 ‘미래로 가는 길’에서 “실패한 기업에 몸담은 경력이 있는 간부를 의도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실패할 때는 창조성이 자극되게
마련이다. 밤낮 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을 주위에 두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이
무엇이냐에 대한 답은 제각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인생은 구질구질한 면이 적지 않다. 인간은 싫든 좋든 먹고, 자고, 배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마인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현실적 목표를 추구했다. 로마 지도자 또는 황제의 기본 책무는 정의·평등·인권·자주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그의 기본 책무는 ‘식량의 안정적 확보, 외침으로부터의 안전 유지, 도로·교량 등 사회간접자본의 정비’라는 세 가지로
규정됐다. 따라서 로마에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사고가 희박했다. 그들은 전쟁조차도 정의와 불의의 대결로 보지 않고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이라고
봤다.
이 같은 로마인의 사고를 기업에 대입하면 ‘기업의 목표는 이윤 창출에 있다’가 될 것이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전무는
“기업의 사회적 기여는 기부금이나 사회봉사활동이 아니라 사업을 성장시켜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라는 기본적 관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실력주의’다. 로마가 개방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철저한 실력주의가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갈리아·아프리카 출신이 시민권을 획득해 공동체로 편입되고 해방노예가 시민이 되는 개방적 사회였다. 이
과정에서 체제가 사회적 갈등으로 붕괴되지 않은 요인은 실력주의였다.
로마의 신분제는 꽉 막힌 분리벽이 아니라 소통되는 삼투막이었다.
기원전 367년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법이 제정되면서 평민도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로마는 왕정-공화정-제정(帝政)을 거쳤는데
건국 초기 왕정에서도 왕위는 세습이 아니라 선거로 뽑았고, 매년 국가지도자를 선출하는 공화정은 당연히 실력주의가
원칙이었다.
제정시대에는 혈연을 후계자로 삼는 방식이 도입됐지만, 이런 경우에도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시민들에게 인정 받아야 했다. 현재 후계자 승계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의 기업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로마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프리미엄은 인정했지만, 비천한 신분에서 출발한 사람도 자신의 실력으로 출세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따라서 제정 중기에는 해방노예의
아들이라는 비천한 신분에서 출발해 황제가 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로마식 경영 기업은 모두 세계 초일류
삼성·포스코·GE·홍콩 청쿵그룹·일본 혼다·도큐호텔의 경영시스템도 로마를 닮아
오픈 마인드와 강력한 리더십·실력 중심의 인사·잘 갖춰진 시스템으로 기업 운영해
“사상 최강의 기업, 로마를 벤치마킹하라!”
▲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천년 세계제국’ 로마의 성공 비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가 지난 12월 13일 시리즈 마지막 권인
제15권을 출간한 것이 로마 붐이 다시 이는 직접적인 계기다. 이 책은 새해 1월 말 번역판이 나올 예정이다. 비슷한 시기에 로마를 경영의
관점에서 다룬 책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김경준 저)도 나와 로마 붐이 고조되고 있다.
▲ 그림·권오택
fontSet();로마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세계제국’이었기 때문이다. 로마보다 영토가 넓은 제국도 있었지만 로마처럼 개방적인 태도로 주위 민족을 포용한 제국은 없었던 탓이다. 후세에 남긴 유산과 영향력 면에서도 로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이 로마의 후예를 자처하며 로마의 정신을 이어받았음을 강조해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000년 전 로마의 성공 스토리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 실력과 노력의 결과였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전무는 “로마인의 경영 키워드는 ‘개방성, 리더십, 시스템, 실력주의’라는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마의 장점 중 단연 돋보이는 것으로 개방성이 꼽힌다. 로마인이 어느 정도 개방적이었냐 하면 전쟁을 치른 적(敵)까지 포용할 정도였다. 개방성 면에서 로마와 그리스는 대조적이다. 그리스인이 생각하는 시민은 ‘피를 나눈 자’였다. 아테네에서는 부모가 모두 아테네인이어야만 시민권을 부여했다. 반면 로마인이 생각하는 시민은 ‘뜻을 같이 하는 자’라는 점에서 달랐다. 로마인은 건국 초기부터 정복한 부족을 죽이지 않고 유력자에게 원로원 의석을 제공해 로마의 지배계급으로 편입시키는 전통이 있었다. 이는 경쟁자의 역량을 로마의 역량으로 M&A(인수·합병)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가져왔다.
요즘 ‘글로벌 시대’ ‘글로벌 경영’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글로벌의 핵심은 개방성과 네트워크다. 우리 기업 중 가장 앞서간다는 평을 듣는 삼성전자는 로마식 개방성에 중점을 두고 신경영을 펼쳐 소니를 따라잡았다. 삼성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소니에 납품하던 처지였으나 신경영 이후 ‘개방화’와 ‘질 위주 경영’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결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1996년 말에 소니의 10분의 1 수준이었으나 2003년 하반기에는 소니의 2배 정도로 완전히 역전됐다.
로마는 약 200년 단위로 개혁을 시도해 기득권층이 기득권을 개방했다. 이는 로마인이 실력주의를 신봉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시아 최고 갑부인 리카싱(李嘉誠) 홍콩 청쿵(長江)그룹 회장도 로마식 경영의 좋은 사례다. 그는 기업이 성장단계에 접어들자 서양인을 과감히 기용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경영과 해외시장 공략을 염두에 두고 외국 인재를 영입한 것이다. 그런 후 경영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젊은 인재를 적절히 발탁했다. 그는 창업 원로의 충성심과 경륜, 외국인의 선진 경영스타일, 젊은이의 활력을 적절히 섞어 큰 성공을 거뒀다.
오픈 마인드가 강한 개인이나 집단은 모든 것을 자기가 다 하려고 들지 않는다. 로마는 이미 2000년 전에 아웃소싱의 개념을 확립하고 있었다. 에트루리아인은 토목, 시칠리아인은 식량생산, 그리스인은 바다를 통한 교역, 그리스와 소아시아 출신 지식인은 교육, 갈리아인과 게르만인은 기병 전력을 담당하는 식이었다. 로마의 역내 분업은 카이사르의 시대에 오면 로마에서 활동하는 교사와 의사에게 인종과 출신 지역을 불문하고 로마시민권을 부여하는 형태의 기능분업으로까지 발전했다. 로마는 이처럼 핵심기능조차 아웃소싱했고 이 같은 로마식 국제분업체제가 세계제국의 밑거름이 됐다.
개방성은 패자부활전과 연결된다. 로마는 패자에게도 명예회복의 기회를 주는 사회였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풍이 형성됐고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을 사회가 공유했다. ‘기술의 혼다’를 이룩한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는 생전에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다. 혼다는 그런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저서 ‘미래로 가는 길’에서 “실패한 기업에 몸담은 경력이 있는 간부를 의도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실패할 때는 창조성이 자극되게 마련이다. 밤낮 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을 주위에 두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이 무엇이냐에 대한 답은 제각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인생은 구질구질한 면이 적지 않다. 인간은 싫든 좋든 먹고, 자고, 배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마인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현실적 목표를 추구했다. 로마 지도자 또는 황제의 기본 책무는 정의·평등·인권·자주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그의 기본 책무는 ‘식량의 안정적 확보, 외침으로부터의 안전 유지, 도로·교량 등 사회간접자본의 정비’라는 세 가지로 규정됐다. 따라서 로마에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사고가 희박했다. 그들은 전쟁조차도 정의와 불의의 대결로 보지 않고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이라고 봤다.
이 같은 로마인의 사고를 기업에 대입하면 ‘기업의 목표는 이윤 창출에 있다’가 될 것이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전무는 “기업의 사회적 기여는 기부금이나 사회봉사활동이 아니라 사업을 성장시켜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라는 기본적 관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실력주의’다. 로마가 개방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철저한 실력주의가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갈리아·아프리카 출신이 시민권을 획득해 공동체로 편입되고 해방노예가 시민이 되는 개방적 사회였다. 이 과정에서 체제가 사회적 갈등으로 붕괴되지 않은 요인은 실력주의였다.
로마의 신분제는 꽉 막힌 분리벽이 아니라 소통되는 삼투막이었다. 기원전 367년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법이 제정되면서 평민도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로마는 왕정-공화정-제정(帝政)을 거쳤는데 건국 초기 왕정에서도 왕위는 세습이 아니라 선거로 뽑았고, 매년 국가지도자를 선출하는 공화정은 당연히 실력주의가 원칙이었다.
제정시대에는 혈연을 후계자로 삼는 방식이 도입됐지만, 이런 경우에도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시민들에게 인정 받아야 했다. 현재 후계자 승계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의 기업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로마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프리미엄은 인정했지만, 비천한 신분에서 출발한 사람도 자신의 실력으로 출세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따라서 제정 중기에는 해방노예의 아들이라는 비천한 신분에서 출발해 황제가 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박영철 주간조선 차장대우 yc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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