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인천 가천의과대 길병원 본관 11층 회장실. 슬, 설, 솔, 밀. 하마터면 세상 빛을 보지 못했을 뻔한 황(黃)씨 성의 일란성 네 쌍둥이. 11일로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는 이들은 이길여 회장과 차례로 포옹을 했다.
넷째 밀이는 “태어난 곳에 다시 찾아오니 기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고 인사한 뒤, 네 쌍둥이가 집 앞에서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에 각자 사인을 해 이 이사장에게 선물로 줬다. 옆에 있던 설이는 “평소에는 돌려가며 입으려 서로 다른 옷을 사는데 오늘은 일부러 같은 옷을 사 입고 왔다”며 배시시 웃었다. 첫째와 넷째는 수원여대 간호학과, 둘째와 셋째는 강릉영동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병원측은 이들에게 검은 띠에 이름을 새겨 넣은 태권도복을 선물로 주고, 이어 이 회장이 올해 대학에 들어간 이들에게 입학금과 1년치 학비로 총 2400여 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아버지 황영천(53·경기도 용인시)씨와 어머니 이봉심(53)씨는 두 손을 모으며 “불러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꿈만 같다”고 했다.
이들의 사연은 198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 삼척에서 광부로 일하던 황씨는 결혼 5년째인 1988년, 둘째가 임신된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는 놀랍게도 70만분의 1 확률이라는 네 쌍둥이였다. 당시 황씨 부부는 월세 2만원짜리 방 한 칸에서 살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한 명만 낳고 나머지는 포기하라고 권유했다.
“그럴 수는 없지요.” 이씨는 넷을 모두 낳겠다고 고집했고, 친정이 있는 인천의 한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인큐베이터 시설이 없던 이 병원은 더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고, 이씨는 중앙길병원으로 옮겨 1989년 1월 11일 오전 9시쯤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 출신으로 당시 수술을 지시했던 이길여 회장은 인천에서 처음 난 네 쌍둥이인데다 형편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수술비와 입원비를 받지 않았다. 나중에 네 쌍둥이가 대학에 들어가면 학비를 대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만남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황씨 부부는 1992년 황씨가 광부를 그만둔 뒤 10여 년 동안 장사를 하고, 요즘은 경기도 용인에서 노동일 등을 하며 살고 있다. 넷은 모두 구김살이 없고 공부도 잘해 고등학교 내내 성적이 상위권 5% 안에 들었고, 반장도 여러 차례 맡았다고 한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될 만큼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네 쌍둥이는 이번 대학 입학이 큰 고민이었다. 입학금과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부족한 돈은 학자금을 대출 받아 충당하려 했다. 그러던 중 길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다.
네 쌍둥이 아이들이 길병원에서 퇴원할 때 이길여 이사장이 농담처럼 “잘 커서 간호사가 돼 나의 일을 이어받으라”고 했다. 황씨 가족은 그 말이 생각나 가족 회의 끝에 네 쌍둥이 모두 간호학과에 진학하게 됐다고 한다.
이 회장은 “아이들이 공부를 마친 뒤 원한다면 모두 길병원 간호사로 뽑겠다”고 또 하나의 약속을 했다.
18년전 길병원에서 태어난 네쌍둥이에게 대학에 가면 학자금을 대주겠다고 한 이길여 회장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10일 이들을 병원으로 불러 2400만원 상당의 장학금을 주었다. / 조선일보 최재용기자
네 쌍둥이 출산 도왔던 병원 ‘18년 전 약속’ 지켰다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 4명에 대학 장학금 네 쌍둥이도 약속대로 모두 간호학과 진학
“아, 안녕하세요.”
“그래, 아기들 왔구나. 몰라보겠네. 그때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던 게 누구지?”
“솔이요. 셋째.”
10일 오전 인천 가천의과대 길병원 본관 11층 회장실. 슬, 설, 솔, 밀. 하마터면 세상 빛을 보지 못했을 뻔한 황(黃)씨 성의 일란성 네 쌍둥이. 11일로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는 이들은 이길여 회장과 차례로 포옹을 했다.
넷째 밀이는 “태어난 곳에 다시 찾아오니 기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고 인사한 뒤, 네 쌍둥이가 집 앞에서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에 각자 사인을 해 이 이사장에게 선물로 줬다. 옆에 있던 설이는 “평소에는 돌려가며 입으려 서로 다른 옷을 사는데 오늘은 일부러 같은 옷을 사 입고 왔다”며 배시시 웃었다. 첫째와 넷째는 수원여대 간호학과, 둘째와 셋째는 강릉영동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병원측은 이들에게 검은 띠에 이름을 새겨 넣은 태권도복을 선물로 주고, 이어 이 회장이 올해 대학에 들어간 이들에게 입학금과 1년치 학비로 총 2400여 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아버지 황영천(53·경기도 용인시)씨와 어머니 이봉심(53)씨는 두 손을 모으며 “불러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꿈만 같다”고 했다.
이들의 사연은 198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 삼척에서 광부로 일하던 황씨는 결혼 5년째인 1988년, 둘째가 임신된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는 놀랍게도 70만분의 1 확률이라는 네 쌍둥이였다. 당시 황씨 부부는 월세 2만원짜리 방 한 칸에서 살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한 명만 낳고 나머지는 포기하라고 권유했다.
“그럴 수는 없지요.” 이씨는 넷을 모두 낳겠다고 고집했고, 친정이 있는 인천의 한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인큐베이터 시설이 없던 이 병원은 더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고, 이씨는 중앙길병원으로 옮겨 1989년 1월 11일 오전 9시쯤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 출신으로 당시 수술을 지시했던 이길여 회장은 인천에서 처음 난 네 쌍둥이인데다 형편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수술비와 입원비를 받지 않았다. 나중에 네 쌍둥이가 대학에 들어가면 학비를 대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만남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황씨 부부는 1992년 황씨가 광부를 그만둔 뒤 10여 년 동안 장사를 하고, 요즘은 경기도 용인에서 노동일 등을 하며 살고 있다. 넷은 모두 구김살이 없고 공부도 잘해 고등학교 내내 성적이 상위권 5% 안에 들었고, 반장도 여러 차례 맡았다고 한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될 만큼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네 쌍둥이는 이번 대학 입학이 큰 고민이었다. 입학금과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부족한 돈은 학자금을 대출 받아 충당하려 했다. 그러던 중 길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다.
네 쌍둥이 아이들이 길병원에서 퇴원할 때 이길여 이사장이 농담처럼 “잘 커서 간호사가 돼 나의 일을 이어받으라”고 했다. 황씨 가족은 그 말이 생각나 가족 회의 끝에 네 쌍둥이 모두 간호학과에 진학하게 됐다고 한다.
이 회장은 “아이들이 공부를 마친 뒤 원한다면 모두 길병원 간호사로 뽑겠다”고 또 하나의 약속을 했다.
18년전 길병원에서 태어난 네쌍둥이에게 대학에 가면 학자금을 대주겠다고 한 이길여 회장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10일 이들을 병원으로 불러 2400만원 상당의 장학금을 주었다. / 조선일보 최재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