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그대에게 힘과 사랑을 돌려준다. 어디든 갈 곳이 없다면 마음의 길을 따라 걸어보라. 그 길은 빛이 쏟아지는 통로처럼 걸음마다 변화하는 세계. 그곳을 여행할 때 그대는 변화하리라.
-잘랄루딘 루미-
Dear My Friend. 펜을 들어 자네에게 무엇인가를 적어본 지도 참 오랜만이군. 다 늙어서 웬 청승이냐고 할 테지만 자네가 아마 나였더라도 지금쯤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며 이렇듯 무언가를 적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 빠끔히 열려 있는 발코니 창문 사이로 부드러운 리넨 커튼이 바닷바람에 거침없이 펄럭이고 내 키를 훌쩍 넘는 길다란 창문 너머 온통 짙푸른 바다 물결이 출렁이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말이야. 떠나기 전날 자네와 한 전화 통화가 생각나는군. 지금껏 이렇게 설레는 여행은 처음이라는 말 기억하나? 오죽했으면 떠나기 전날 와이프가 나를 보고, 달력에 X자를 그려가며 손꼽아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다는 말을 했겠나.
싱가포르에 도착해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오후 3시에 크루즈 터미널에 도착했다네. 눈이 부실 정도의 새하얀 크루즈가 ‘웅’ 소리와 함께 기적을 뽑아내며 길을 재촉하더군. 28,000톤의 웅장한 크루즈를 보며 지금껏 상상만으로 만족해야 했던 꿈의 여행이 드디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지. 다행히 서두른 덕분에 시원스런 발코니가 있는 방을 예약할 수 있었다네. 방도 넓고 바로 눈앞에서 드넓은 바다를 감상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라고 할까?
싱가포르 크루즈 터미널 갑문을 빠져나가 두둥실 싱가포르 해협의 품에 안겼던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네. 잔잔한 바다 저편으로 아득하게 원을 그린 수평선이 나를 맞는 느낌. 자네, 상상이 되나? 크리스털 글라스에 담긴 와인의 한치의 흔들림도 허용치 않는 크루즈를 보며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걸세. 승객들 대부분은 유럽과 미국에서 온 상류층이었다네. 승무원들도 거의 백인이었지. 게다가 승객 수가 280명에 승무원이 250명이니, 서비스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걸세. 한번은 바에서 피나 콜라다 칵테일을 시켰는데, 다음날 다시 바에 갔더니 세상에 웨이터가 나를 기억해내곤 전날과 같은 칵테일을 갖다 주는 게 아닌가? 여느 여행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걸세. 아침 식사는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했다네. 그들은 대부분 나이가 있는 사업가들로 여행 경험도 많고 어느 정도의 부도 이룬 사람들이었지. 물론 젊은 신혼부부도 몇 팀 있었다네. 하나 감탄한 것은 그들은 처음 본 사람들과도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것이네. 누구에게나 맘을 열고 다가오는 것 같아 보기가 좋단 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한국인처럼 잘 웃지 않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게다가 처음 본 사람과 인사하길 꺼리기란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단 말일세. 하지만 여기서는 누구에게나 인사를 건네야 하는 게 일반적이라 나도 자연히 실없는 사람이 되었다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물론 드라이브만 제외하고 말이야. 골프며 농구, 수영, 테니스 등 지상에서 가능한 모든 취미를 크루즈에서도 즐길 수 있으니 배 자체가 하나의 레저 타운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 피트니스 센터와 에어로빅 룸은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시설도 좋았고, 특히 여자들이 많았다네. 아마 멋진 젊은 남자 트레이너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네. 남자인 내가 봐도 샘이 날 정도로 멋진 근육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야외 수영장에 는 2개의 월풀이 있다네. 한국에서는 툭 튀어나온 배 때문에 일광욕은 꿈도 못 꾸었지만 이곳에서는 왠지 자신감이 생긴단 말이야. 바닷물을 사용해 마치 바다에서처럼 물위에 동동 떠 있을 수 있었지. 이틀 전에는 발을 잘못 디뎌 풀장의 물을 잔뜩 마신 적이 있는데, 아, 생각하기도 싫다네. 풀장에서 진한 소금물을 먹는 기분이란….특히 여자들은 만다라 스파를 좋아하더군. 발리 스타일의 스파라나? 우리 와이프도 벌써 세 번이나 이용하곤 피부가 달라졌다며 꽤나 좋아하더구만. 여자들이란 참…. 그리고 자네, 크루즈 안에 조깅 트랙까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나? 나도 아침마다 러닝머신 대신 야외 트랙을 뛰었다네. 내리쬐는 햇살 덕분에 한바퀴만 뛰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뒤덮이지만, 그래도 바다 한가운데서 내가 뛰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할 때마다 설레고 기분 짜릿한 일이란 말이지. 안 그런가? 그뿐인 줄 아나? 이것저것 배울 수 있는 클래스도 다양하다네. 마침 이태리어를 배울 수 있는 클래스가 있어서 나도 두 번 참석했는데, 이탈리아 여선생이 인사말을 비롯해 기초적인 단어를 가르쳐주더군. 8명 정도가 있었는데, 거의 미국인들이었지.
7박 8일간 매일 저녁 다양한 영화와 뮤지컬 연주회가 펼쳐졌다네. 신기한 매직쇼와 서커스 또한 빠지지 않았지. 뿐만 아니라 낮 시간에는 투어와 댄스 교실, 게임과 기항지 강연 등의 특강 시간도 있었다네. 그러고 보니 강연을 맡았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스태프가 기억나는군. 전역한 주베트남 영국 대사였는데 7, 80년대에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대사 활동을 펼쳤다고 하더군. 그는 이번 여행 중 두 번에 걸쳐 승객들에게 한국과 일본, 태국 등 아시아 각 나라와 문화에 대한 강의를 했지. 승객들 대부분이 서양인인 것을 고려한 수업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헌데 그가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너무 오래 전 것이어서 마이크를 빼앗아 차라리 내가 강의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였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짧은 영어 실력 덕분에 눈물을 머금고 참아야만 했다네. 영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크루즈에서는 영어가 필수라네. 모든 의사소통이 영어로만 이루어지지. 대부분 유럽인이었고, 또한 직업상 해외 출장이 잦은 사업가들이라 영어는 유창하더군. 하지만 너무 부담을 갖지는 말게. 기본적인 영어만 가능하다면 배 안에서의 의식주는 문제없으니 말일세.
출항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은 태국 코사무이 섬에 정박해 반나절 동안 투어를 즐겼다네. 태국 남동쪽 태국만(Gulf of Thailand) 지역에 위치한 코사무이는 우리나라의 강화도 크기 정도였는데, 마침 지금은 건기로 온도가 30~38℃까지 오르락내리락한다네. 무척 덥기는 했지만 눈부신 태양과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어 좋았지. 미지의 섬이었던 코사무이는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국제적인 배낭 여행객들이 휴양지로 발견해 유럽에 점차 알려진 케이스라고 하더군. 와이프와 나는 코사무이 공항까지 둘러봤는데, 국제 공항으로서 규모는 작지만 유러피언 국제 공항 콘테스트에서 입상할 정도로 자연과 조화를 이룬 단층의 열대 건축물들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네. 또한 코코넛이 얼마나 많은지 거리에서 발에 채일 정도였다니까. 한 가지 진풍경은 코코넛 열매를 까고 있는 사람들 옆에서 하얗게 피어나는 코코넛 껍질을 태우는 연기였는데, 바로 모기를 쫓기 위해서라는군. 재미있지 않은가? 꼭 60~70년대의 우리나라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나흘째 되던 날은 베트남 호치민에 정박해 1박 2일간 묵었다네. 지난해 12월 베트남 통일 이후 26년 만에 미국과 베트남 간의 무역 정상화가 성사된 사실을 알고 있지? 그래서인지 ‘아시아의 마지막 거대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 호치민은 사람들로 붐볐다네. 유난히 프랑스풍 건축물이 많았는데, 17세기 후반 프랑스인들이 점령한 후 이곳에 배수 시설을 설치해 전형적인 식민 도시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 북동쪽의 식물원에서 남서쪽의 옛 대통령 관저에 이르는 푸른 가로수를 보며 시원한 풍취를 느낄 수 있었다네. 오죽했으면 유럽인들이 이곳을 ‘동양의 파리’라고 부르겠는가.
호치민에서 다시 태국으로 돌아가면서는 작은 파도가 계속되며 배 흔들림이 심했지. 모두들 뱃멀미 때문에 고생하고, 나도 속이 좋지 않아 화장실에서 수십여 분을 보낸 후 5층에 있는 의무실에 내려가 약을 먹고, 파스 향이 나는 약을 코와 귀에 뿌렸더니 겨우 진정되더군. 마지막 날에는 큰 파티가 있었다네. 정해진 드레스 코드에 따라야 했는데, 어제는 포멀한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어야만 했지.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크루즈 사무소에서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귀띔해준 덕분에 와이프는 한복을, 나는 포멀한 블랙 턱시도를 챙겨 왔지. 고운 자주 쪽빛의 한복에 전통적인 태극 문양이 고급스럽게 수놓인 노리개까지 하고 나타난 와이프에게 외국인들은 찬사를 보내더군.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거의 환호성을 보내며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없겠냐고 하더라구. 덕분에 나도 우쭐해졌지.
아참, 크루즈만의 좋은 점을 하나 알려줄까? 바로 나만을 위한 것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지.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편지지의 윗부분과 편지봉투에 내 이름이 멋지게 프린트되어 있는 것이 보이나? 객실로 처음 들어온 날 고급스런 데스크 위에 바로 이 편지지와 엽서가 한 움큼 놓여 있더군. 순간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 그리고 체크인과 체크아웃, 환전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크루즈만의 독특한 매력 중 하나라네. 또 하나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하루에 한 번씩 우편물을 걷어 각 나라에 정박할 때마다 각국으로 우편물을 부쳐준다는 점이지. 자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면 난 싱가포르에 도착해 시내 투어와 쇼핑을 즐기고 있을 걸세. 싱가포르에 며칠 더 묵을 생각이거든. 5월부터 실버시 섀도 호가 지중해와 유럽 노선을 운항할 예정이라고 하더군. 그리고 9월에는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와 뉴욕을 잇는 뉴잉글랜드 노선을 운항하고, 10월 이후에는 카리브해와 남미 노선을 계획 중이라고 하니 어떤가? 자네도 한번 이 여행에 동참해보는 것이…. 아참, 제일 중요한 걸 잊을 뻔했네. 내가 이렇다니까. 바로 크루즈 비용인데, 자네도 무척이나 궁금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네. 나와 와이프는 이번 여행을 위해 각각 약 6,000달러를 지불했다네. 거기에 싱가포르까지의 왕복 항공료를 추가하면, 자, 이제 계산이 되나? 약간 비싼 것 같다는 말을 하려거든 그만두게. 그 비용에는 크루즈 내에서의 모든 것, 식사를 비롯해 음료, 시가, 심지어는 팁도 포함되니까. 물론 카지노를 즐기고 싶다면 주머니가 두둑해야겠지만 말일세.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아니겠나? 그것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귀한 것이니 말이야. 창밖으로 서서히 지평선이 보이는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의 여행도 막을 내리게 되는구만. 와이프와 함께 발코니에서 바라보았던 석양의 아름다운 낙조는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네. 자, 이제 그만 줄여야겠네. 와이프가 옆에서 짐 싸는 것 좀 도와달라고 난리야. 갑자기 자네 얼굴이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는군. 2002년 4월
추신. 내 생애 마지막 순간에 지금 이 시간을 떠올릴 수만 있다면 아마 난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걸세
생애 최고의 순간
Dear My Friend.
펜을 들어 자네에게 무엇인가를 적어본 지도 참 오랜만이군. 다 늙어서 웬 청승이냐고 할 테지만 자네가 아마 나였더라도 지금쯤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며 이렇듯 무언가를 적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 빠끔히 열려 있는 발코니 창문 사이로 부드러운 리넨 커튼이 바닷바람에 거침없이 펄럭이고 내 키를 훌쩍 넘는 길다란 창문 너머 온통 짙푸른 바다 물결이 출렁이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말이야.
떠나기 전날 자네와 한 전화 통화가 생각나는군. 지금껏 이렇게 설레는 여행은 처음이라는 말 기억하나? 오죽했으면 떠나기 전날 와이프가 나를 보고, 달력에 X자를 그려가며 손꼽아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다는 말을 했겠나.
싱가포르에 도착해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오후 3시에 크루즈 터미널에 도착했다네. 눈이 부실 정도의 새하얀 크루즈가 ‘웅’ 소리와 함께 기적을 뽑아내며 길을 재촉하더군. 28,000톤의 웅장한 크루즈를 보며 지금껏 상상만으로 만족해야 했던 꿈의 여행이 드디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지. 다행히 서두른 덕분에 시원스런 발코니가 있는 방을 예약할 수 있었다네. 방도 넓고 바로 눈앞에서 드넓은 바다를 감상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라고 할까?
싱가포르 크루즈 터미널 갑문을 빠져나가 두둥실 싱가포르 해협의 품에 안겼던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네. 잔잔한 바다 저편으로 아득하게 원을 그린 수평선이 나를 맞는 느낌. 자네, 상상이 되나? 크리스털 글라스에 담긴 와인의 한치의 흔들림도 허용치 않는 크루즈를 보며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걸세.
승객들 대부분은 유럽과 미국에서 온 상류층이었다네. 승무원들도 거의 백인이었지. 게다가 승객 수가 280명에 승무원이 250명이니, 서비스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걸세. 한번은 바에서 피나 콜라다 칵테일을 시켰는데, 다음날 다시 바에 갔더니 세상에 웨이터가 나를 기억해내곤 전날과 같은 칵테일을 갖다 주는 게 아닌가? 여느 여행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걸세.
아침 식사는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했다네. 그들은 대부분 나이가 있는 사업가들로 여행 경험도 많고 어느 정도의 부도 이룬 사람들이었지. 물론 젊은 신혼부부도 몇 팀 있었다네. 하나 감탄한 것은 그들은 처음 본 사람들과도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것이네. 누구에게나 맘을 열고 다가오는 것 같아 보기가 좋단 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한국인처럼 잘 웃지 않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 게다가 처음 본 사람과 인사하길 꺼리기란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단 말일세. 하지만 여기서는 누구에게나 인사를 건네야 하는 게 일반적이라 나도 자연히 실없는 사람이 되었다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물론 드라이브만 제외하고 말이야. 골프며 농구, 수영, 테니스 등 지상에서 가능한 모든 취미를 크루즈에서도 즐길 수 있으니 배 자체가 하나의 레저 타운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 피트니스 센터와 에어로빅 룸은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시설도 좋았고, 특히 여자들이 많았다네. 아마 멋진 젊은 남자 트레이너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네. 남자인 내가 봐도 샘이 날 정도로 멋진 근육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야외 수영장에 는 2개의 월풀이 있다네. 한국에서는 툭 튀어나온 배 때문에 일광욕은 꿈도 못 꾸었지만 이곳에서는 왠지 자신감이 생긴단 말이야. 바닷물을 사용해 마치 바다에서처럼 물위에 동동 떠 있을 수 있었지. 이틀 전에는 발을 잘못 디뎌 풀장의 물을 잔뜩 마신 적이 있는데, 아, 생각하기도 싫다네. 풀장에서 진한 소금물을 먹는 기분이란….특히 여자들은 만다라 스파를 좋아하더군. 발리 스타일의 스파라나? 우리 와이프도 벌써 세 번이나 이용하곤 피부가 달라졌다며 꽤나 좋아하더구만. 여자들이란 참…. 그리고 자네, 크루즈 안에 조깅 트랙까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나? 나도 아침마다 러닝머신 대신 야외 트랙을 뛰었다네. 내리쬐는 햇살 덕분에 한바퀴만 뛰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뒤덮이지만, 그래도 바다 한가운데서 내가 뛰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할 때마다 설레고 기분 짜릿한 일이란 말이지. 안 그런가?
그뿐인 줄 아나? 이것저것 배울 수 있는 클래스도 다양하다네. 마침 이태리어를 배울 수 있는 클래스가 있어서 나도 두 번 참석했는데, 이탈리아 여선생이 인사말을 비롯해 기초적인 단어를 가르쳐주더군. 8명 정도가 있었는데, 거의 미국인들이었지.
7박 8일간 매일 저녁 다양한 영화와 뮤지컬 연주회가 펼쳐졌다네. 신기한 매직쇼와 서커스 또한 빠지지 않았지. 뿐만 아니라 낮 시간에는 투어와 댄스 교실, 게임과 기항지 강연 등의 특강 시간도 있었다네. 그러고 보니 강연을 맡았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스태프가 기억나는군. 전역한 주베트남 영국 대사였는데 7, 80년대에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대사 활동을 펼쳤다고 하더군. 그는 이번 여행 중 두 번에 걸쳐 승객들에게 한국과 일본, 태국 등 아시아 각 나라와 문화에 대한 강의를 했지. 승객들 대부분이 서양인인 것을 고려한 수업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헌데 그가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너무 오래 전 것이어서 마이크를 빼앗아 차라리 내가 강의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였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짧은 영어 실력 덕분에 눈물을 머금고 참아야만 했다네.
영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크루즈에서는 영어가 필수라네. 모든 의사소통이 영어로만 이루어지지. 대부분 유럽인이었고, 또한 직업상 해외 출장이 잦은 사업가들이라 영어는 유창하더군. 하지만 너무 부담을 갖지는 말게. 기본적인 영어만 가능하다면 배 안에서의 의식주는 문제없으니 말일세.
출항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은 태국 코사무이 섬에 정박해 반나절 동안 투어를 즐겼다네. 태국 남동쪽 태국만(Gulf of Thailand) 지역에 위치한 코사무이는 우리나라의 강화도 크기 정도였는데, 마침 지금은 건기로 온도가 30~38℃까지 오르락내리락한다네. 무척 덥기는 했지만 눈부신 태양과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어 좋았지. 미지의 섬이었던 코사무이는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국제적인 배낭 여행객들이 휴양지로 발견해 유럽에 점차 알려진 케이스라고 하더군. 와이프와 나는 코사무이 공항까지 둘러봤는데, 국제 공항으로서 규모는 작지만 유러피언 국제 공항 콘테스트에서 입상할 정도로 자연과 조화를 이룬 단층의 열대 건축물들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네. 또한 코코넛이 얼마나 많은지 거리에서 발에 채일 정도였다니까. 한 가지 진풍경은 코코넛 열매를 까고 있는 사람들 옆에서 하얗게 피어나는 코코넛 껍질을 태우는 연기였는데, 바로 모기를 쫓기 위해서라는군. 재미있지 않은가? 꼭 60~70년대의 우리나라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나흘째 되던 날은 베트남 호치민에 정박해 1박 2일간 묵었다네. 지난해 12월 베트남 통일 이후 26년 만에 미국과 베트남 간의 무역 정상화가 성사된 사실을 알고 있지? 그래서인지 ‘아시아의 마지막 거대 신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 호치민은 사람들로 붐볐다네. 유난히 프랑스풍 건축물이 많았는데, 17세기 후반 프랑스인들이 점령한 후 이곳에 배수 시설을 설치해 전형적인 식민 도시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 북동쪽의 식물원에서 남서쪽의 옛 대통령 관저에 이르는 푸른 가로수를 보며 시원한 풍취를 느낄 수 있었다네. 오죽했으면 유럽인들이 이곳을 ‘동양의 파리’라고 부르겠는가.
호치민에서 다시 태국으로 돌아가면서는 작은 파도가 계속되며 배 흔들림이 심했지. 모두들 뱃멀미 때문에 고생하고, 나도 속이 좋지 않아 화장실에서 수십여 분을 보낸 후 5층에 있는 의무실에 내려가 약을 먹고, 파스 향이 나는 약을 코와 귀에 뿌렸더니 겨우 진정되더군.
마지막 날에는 큰 파티가 있었다네. 정해진 드레스 코드에 따라야 했는데, 어제는 포멀한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어야만 했지.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크루즈 사무소에서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귀띔해준 덕분에 와이프는 한복을, 나는 포멀한 블랙 턱시도를 챙겨 왔지. 고운 자주 쪽빛의 한복에 전통적인 태극 문양이 고급스럽게 수놓인 노리개까지 하고 나타난 와이프에게 외국인들은 찬사를 보내더군.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거의 환호성을 보내며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없겠냐고 하더라구. 덕분에 나도 우쭐해졌지.
아참, 크루즈만의 좋은 점을 하나 알려줄까? 바로 나만을 위한 것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지.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편지지의 윗부분과 편지봉투에 내 이름이 멋지게 프린트되어 있는 것이 보이나? 객실로 처음 들어온 날 고급스런 데스크 위에 바로 이 편지지와 엽서가 한 움큼 놓여 있더군. 순간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
그리고 체크인과 체크아웃, 환전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크루즈만의 독특한 매력 중 하나라네. 또 하나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하루에 한 번씩 우편물을 걷어 각 나라에 정박할 때마다 각국으로 우편물을 부쳐준다는 점이지. 자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면 난 싱가포르에 도착해 시내 투어와 쇼핑을 즐기고 있을 걸세. 싱가포르에 며칠 더 묵을 생각이거든.
5월부터 실버시 섀도 호가 지중해와 유럽 노선을 운항할 예정이라고 하더군. 그리고 9월에는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와 뉴욕을 잇는 뉴잉글랜드 노선을 운항하고, 10월 이후에는 카리브해와 남미 노선을 계획 중이라고 하니 어떤가? 자네도 한번 이 여행에 동참해보는 것이….
아참, 제일 중요한 걸 잊을 뻔했네. 내가 이렇다니까. 바로 크루즈 비용인데, 자네도 무척이나 궁금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네. 나와 와이프는 이번 여행을 위해 각각 약 6,000달러를 지불했다네. 거기에 싱가포르까지의 왕복 항공료를 추가하면, 자, 이제 계산이 되나? 약간 비싼 것 같다는 말을 하려거든 그만두게. 그 비용에는 크루즈 내에서의 모든 것, 식사를 비롯해 음료, 시가, 심지어는 팁도 포함되니까. 물론 카지노를 즐기고 싶다면 주머니가 두둑해야겠지만 말일세.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아니겠나? 그것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귀한 것이니 말이야.
창밖으로 서서히 지평선이 보이는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의 여행도 막을 내리게 되는구만. 와이프와 함께 발코니에서 바라보았던 석양의 아름다운 낙조는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네.
자, 이제 그만 줄여야겠네. 와이프가 옆에서 짐 싸는 것 좀 도와달라고 난리야. 갑자기 자네 얼굴이 무척이나 보고 싶어지는군.
2002년 4월
추신. 내 생애 마지막 순간에 지금 이 시간을 떠올릴 수만 있다면 아마 난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