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책은 보라고 있는 것이지, 베고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나는 오늘도 책을 교활하게 사용하고 있던 중인가보다. 애드거 앨런 포에게는 미안하지 않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버지한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아버지가 오랜만에 집에 오시는 날인데 이렇게 늦게까지 정신을 놓고 잠을 자고 있었다니, 불효 막심하다. 아버지는 서울에 계실 때가 많다. 정확히 서울에서 무엇을 하시는지는 잘 모른다. 평택에 사는 삼촌은 아버지가 국가기밀에 관련된 아주 비밀스러운 일을 하시는 분이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 말은 신뢰할 수 없다. 언젠가 삼촌이 우리 집 안방에서 전화에 대고 '그 녀석 곧이 듣는 모냥이더라구.'라며 실금실금 웃는 것을 엿들었기 때문이다. 삼촌은 장난을 좋아한다. 아버지께서는 장난을 싫어하신다. 나는 장난을 좋아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옆 집 김 아저씨의 말에 더 신빙성이 넘쳐난다. 아버지께서는 서울에서 음식점을 하시고 있는데, 여기엔 식자재 때문에 가끔 오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나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서울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아버지께서 현명하신 것이다. 민주적인 것이다. 내가 아버지한테 서울에 가서 살기 싫다고 말했던 것을 존중해주신 것이다. 그런데 왜 삼촌이 생각이 날까. 내가 또 곧이 곧대로 믿고 있는 것일까.
이런. 적어도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세심한 작업을 할 때는 이런 잡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오른쪽 다리가 물에 빠졌다. 하필! 어제 빠졌던 다리가 또 빠지다니. 이래선 신발이 마를 날이 없겠다. 날씨는 화창한데 내 오른쪽 다리만 언제나 음습하다. 잠시만 내버려두어도 곧잘 다른 생각에 빠지는 나의 정신 덕에 고생하는 것은 쓰디쓴 내 육체이다.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삼촌은 나에게 '사람은 30세가 되면 몸의 퇴화가 진행되는 거야. 너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건강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해.'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그렇지. 내 나이가 이제 겨우 15살인데. 지금 내가 키워야 하는 것은 근육이 아니라 대가리라고. 이런 생각을 하며 삼촌에게 '그럼 삼촌은 벌써 퇴화가 진행되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삼촌은 '난 28살이다. 임마!'라고 대답했다. 뭐야. 자기도 잘 모를 나이면서 어줍잖게 아는 척은. 하기사 나도 삼촌 나이를 잘 몰랐으니까 비긴 셈 되겠다. 아, 이것 봐. 또 잡생각.
다음날. 아버지가 돈을 주고 서울로 가셨다. 거금 5만원! 나는 하교 길에 학교 근처 서점에 들렸다. 애드거 앨런 포의 [우울과 몽상]을 구입했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던 적은 분량의 단편집에 비해 훨씬 크고, 애드거 앨런 포의 모든 단편이 담겨있는 책인 것 같다. 표지도 검은 색인 것이 무척 맘에 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두껍다. 베고 자기에도 좋을 듯싶다. 미소를 지으며 책을 옆구리에 끼고 서점을 나섰다. 책이 가방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핑계로,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 잔뜩에 책을 소중히 가슴에 품어본다. 역시 뿌듯하다. 오늘은 절대 잠들지 않겠다 라고 다짐을 하긴 하지만 사실, 개울가 옆에 누워 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것은 나의 최고의 낙이다. 항상 따뜻한 햇살이 나를 비춰주고 있으며-덕분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긴 했지만-개울물이 흐르는 청량한 소리는 마치 잠의 여신이 나에게 불러주는 자장가와도 같다. 뭐, 개울가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겐 퍽이나 할 일 없고 한심한 놈으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그런 것쯤은 상관없다고 생각한지 오래다. 사람은 제 멋에 살아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젊은 삼촌은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개울가. 신발을 벗었다. 햇볕이 따가운 곳에 신발을 뒤집어 가지런히 놓는다. 알량한 균형감각 때문에 늘 고생인 오른쪽 신발이 오늘은 강한 햇살을 맞아 간만에 뽀송해지길 간절히 바라는 중이다. 늘 앉던 장소에 앉아 개울가를 유심히 관찰한다. 사람들이 많이들 지나다닌다. 나는 조용히 기다리는 편이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면 책을 읽기 어렵다. 오후 4시경이 되면 사람들이 드물어지는 편인데 그때부터가 책을 읽는데 적기가 되겠다. 손목의 시계를 본다. 지금은 3시 40분. 아직은 아니다.
개울가 옆 숲. 고개를 돌려 숲을 바라보았다. 개울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숲이 있다. 그러니까 나는 항상 개울가와 숲 사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아 놓고 있는 것이다. 숲은 개울가와는 달리 매우 음습하다.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개울가-그래서 항상 물이 맑은 적이 별로 없는-와는 달리 숲은 한낮에도 어두운 편이다. 그리고 숲은 우리 마을에서 가장 먼저 해가 지는 곳이다. 숲에서 어둠이 출발해서 개울가를 건너 마을에 다다른다. 숲에는 사람이 다니질 않는다. 아니, 다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습하고 어두운 곳이라 사람들이 숲으로 왕래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숲을 가로지르면 집에 더 빨리 갈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숲을 가로질러 다니질 않는다. 이건 생활의 지혜이다. 때로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숲을 돌아 개울가를 건너는 것이 곧 생활의 지혜이다. 숲을 무서워하는 것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는데, 사실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다. 나처럼 호기심이 많은 인간에게 미지의 숲이 어찌 흥미로운 공간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의 호기심보다 더욱 큰 것은 눅눅함에 대한 짜증이다. 매일 오른 발이 젖어 있는 것도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닌데 온 몸으로 습기를 받아들이는 짓을 애써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난 호기심이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또한 게으르다.
검은 고양이. 나는 이미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반가운 마음에 목차에서 ‘검은 고양이’부터 찾는다. ‘검은 고양이’는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다. 애초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데다가 실제로 얼마 전까지 집에서 검은 고양이를 길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검은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런데 사실, 내가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다 읽은 것은 아니다. 읽은 부분은 ‘검은 고양이’를 포함해서 채 몇 편 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 중 ‘검은 고양이’를 가장 좋아한다니, 참람한 노릇이다. 이래서야 서른도 안 된 삼촌이 나에게 건강이 최고라고 말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줍잖은 지식은 결국 잘난 척을 하기 위한 도구 이외에는 아무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르며 애드거 앨런 포에게 처음으로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 [우울과 몽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으리라 마음 먹는다. 책을 편다. 근사하다. 용돈 주고 가신 아버지가 고맙다. 사업 번창하시길. 음식점 맛있다고 서울에 소문이 자자해지길.
패배했다. 사람의 버릇이란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요상하게도 일어나보니 여지없이 책을 베고 자고 있더란 말이다. 그전에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지난 겨울이었던가. 아버지 몰래 삼촌 집에서 삼촌이 주는 막걸리를 받아 마신 적이 있었다. 삼촌은 다 인생공부라고 했었지만 지금 생각으론 그저 장난을 친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표정으로 삼촌이 따라준 막걸리 두 잔에 정신을 잃었었다. 토사와 버무려져 잠이 들었던 나는 자랑스럽게도 그 정신에 평상시 버릇처럼 주섬주섬 입었던 겨울 옷을 깍듯이 벗어놓고 자고 있더란 말이다. 참으로 세심한 작업을 술기운에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버릇이란 무서운 것이다. 지금이 그렇다. 검은 표지의 번떡거리는 세련된 책 뒷면에 조그만 돌맹이에 찍힌 듯한 작은 흠집이 생겨버렸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숨을 죽이고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얼마 읽지도 못했는데. 아버지, 죄송합니다. 사업 번창하시길.
비명소리. 그렇다. 저 비명소리다. 내가 잠을 깬 이유는 어디선가 들려온 작은 비명소리 때문이었다. 잠귀가 밝은 내가 그 독특한 비명소리를 그냥 넘겼을 리 없다. 사람의 소리 같지도 않고 동물의 것 같지도 않은 기묘한 비명소리는 일상의 소리가 아니었다. 명쾌한 개울물 소리에 잠이 들었다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에 잠이 깬 것이 아귀가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하고 있던 순간, 또 한 번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희미한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숲이었다. 소리는 숲 안에서 나는 것이었다. 이미 어둠이 깔린 숲, 그 숲에서 출발한 땅거미는 이제 개울가를 지나 마을로 향하는 중이었다. 검은 숲, 검은 고양이, 검은 비명소리.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귓가에 남아있는 잔소리의 파동이 몰입에 충실히 도움을 주는 듯 했다. 시야가 좁아지고 눈에 보이는 천연색의 다른 색들이 탈색되어 검은 색만이 남아있게 된 몰입의 단계. 나는 책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습하기에 짜증이 앞섰던 저 숲에 들어갈 마음이 생긴 것이다. 중간자의 입장에서 항상 한 편 택하기를 꺼려하던 정치적 중립을 버리고 난생 처음으로 개울가가 아닌 숲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란 말이다. 걸음을 한 걸음 옮겼을 때 나를 부르는 비명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아, 이젠 어쩔 수 없다. 들어가 볼 테다. 내 눈으로 저 의뭉스러운 소리의 진상을 확인할 테다. 긴장으로 손바닥이 젖어 들었다. 습한 손바닥은 이미 숲이다. 나는 새로 산 [우울과 몽상] 검은 표지에 습기의 수장을 찍었다. 그걸 바라보자니 꽤나 어울리는 무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꼭 쥔 채 나는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창작 소설] - 숲의 내부 (1)
[숲의 내부]는 예전에 쓰다가 말았던 단편 소설이었는데 최근 완성의 욕구가 불일듯 일어서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시나리오가 잘 안 써진지 오래되서 머리도 식히고 다시 발동도 걸 겸해서 다시 쓰고 있는데, 대충 완결을 본 터라 페이퍼에 하나씩 올려봅니다.
예전 아오즈 양의 말대로 서투른 티가 팍팍 나는 풋풋한(?) 창작물입니다..소설은 써 본 적이 없어서 말이죠. ^^ 그래서인지 읽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 거립니다만 워낙이 부끄러운 것을 즐기는 성격이라(후훗) 그냥 담백하게 태클 받고 싶어서 공개해버립니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올릴테니 부족하지만 읽어주시고 열라 지적 부탁합니다. 어차피 시나리오 쓰는 게 주된 일이라 소설에서 욕 먹어도 전혀 기죽지 않습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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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내부] - 1부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책은 보라고 있는 것이지, 베고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나는 오늘도 책을 교활하게 사용하고 있던 중인가보다. 애드거 앨런 포에게는 미안하지 않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버지한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아버지가 오랜만에 집에 오시는 날인데 이렇게 늦게까지 정신을 놓고 잠을 자고 있었다니, 불효 막심하다. 아버지는 서울에 계실 때가 많다. 정확히 서울에서 무엇을 하시는지는 잘 모른다. 평택에 사는 삼촌은 아버지가 국가기밀에 관련된 아주 비밀스러운 일을 하시는 분이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 말은 신뢰할 수 없다. 언젠가 삼촌이 우리 집 안방에서 전화에 대고 '그 녀석 곧이 듣는 모냥이더라구.'라며 실금실금 웃는 것을 엿들었기 때문이다. 삼촌은 장난을 좋아한다. 아버지께서는 장난을 싫어하신다. 나는 장난을 좋아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옆 집 김 아저씨의 말에 더 신빙성이 넘쳐난다. 아버지께서는 서울에서 음식점을 하시고 있는데, 여기엔 식자재 때문에 가끔 오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나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서울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아버지께서 현명하신 것이다. 민주적인 것이다. 내가 아버지한테 서울에 가서 살기 싫다고 말했던 것을 존중해주신 것이다. 그런데 왜 삼촌이 생각이 날까. 내가 또 곧이 곧대로 믿고 있는 것일까.
이런.
적어도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세심한 작업을 할 때는 이런 잡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오른쪽 다리가 물에 빠졌다. 하필! 어제 빠졌던 다리가 또 빠지다니. 이래선 신발이 마를 날이 없겠다. 날씨는 화창한데 내 오른쪽 다리만 언제나 음습하다. 잠시만 내버려두어도 곧잘 다른 생각에 빠지는 나의 정신 덕에 고생하는 것은 쓰디쓴 내 육체이다.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삼촌은 나에게 '사람은 30세가 되면 몸의 퇴화가 진행되는 거야. 너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건강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해.'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도 그렇지. 내 나이가 이제 겨우 15살인데. 지금 내가 키워야 하는 것은 근육이 아니라 대가리라고. 이런 생각을 하며 삼촌에게 '그럼 삼촌은 벌써 퇴화가 진행되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삼촌은 '난 28살이다. 임마!'라고 대답했다. 뭐야. 자기도 잘 모를 나이면서 어줍잖게 아는 척은. 하기사 나도 삼촌 나이를 잘 몰랐으니까 비긴 셈 되겠다. 아, 이것 봐. 또 잡생각.
다음날.
아버지가 돈을 주고 서울로 가셨다. 거금 5만원! 나는 하교 길에 학교 근처 서점에 들렸다. 애드거 앨런 포의 [우울과 몽상]을 구입했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던 적은 분량의 단편집에 비해 훨씬 크고, 애드거 앨런 포의 모든 단편이 담겨있는 책인 것 같다. 표지도 검은 색인 것이 무척 맘에 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두껍다. 베고 자기에도 좋을 듯싶다. 미소를 지으며 책을 옆구리에 끼고 서점을 나섰다. 책이 가방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핑계로,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 잔뜩에 책을 소중히 가슴에 품어본다. 역시 뿌듯하다. 오늘은 절대 잠들지 않겠다 라고 다짐을 하긴 하지만 사실, 개울가 옆에 누워 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것은 나의 최고의 낙이다. 항상 따뜻한 햇살이 나를 비춰주고 있으며-덕분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긴 했지만-개울물이 흐르는 청량한 소리는 마치 잠의 여신이 나에게 불러주는 자장가와도 같다. 뭐, 개울가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겐 퍽이나 할 일 없고 한심한 놈으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그런 것쯤은 상관없다고 생각한지 오래다. 사람은 제 멋에 살아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젊은 삼촌은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개울가.
신발을 벗었다. 햇볕이 따가운 곳에 신발을 뒤집어 가지런히 놓는다. 알량한 균형감각 때문에 늘 고생인 오른쪽 신발이 오늘은 강한 햇살을 맞아 간만에 뽀송해지길 간절히 바라는 중이다. 늘 앉던 장소에 앉아 개울가를 유심히 관찰한다. 사람들이 많이들 지나다닌다. 나는 조용히 기다리는 편이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면 책을 읽기 어렵다. 오후 4시경이 되면 사람들이 드물어지는 편인데 그때부터가 책을 읽는데 적기가 되겠다. 손목의 시계를 본다. 지금은 3시 40분. 아직은 아니다.
개울가 옆 숲.
고개를 돌려 숲을 바라보았다. 개울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숲이 있다. 그러니까 나는 항상 개울가와 숲 사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아 놓고 있는 것이다. 숲은 개울가와는 달리 매우 음습하다.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개울가-그래서 항상 물이 맑은 적이 별로 없는-와는 달리 숲은 한낮에도 어두운 편이다. 그리고 숲은 우리 마을에서 가장 먼저 해가 지는 곳이다. 숲에서 어둠이 출발해서 개울가를 건너 마을에 다다른다. 숲에는 사람이 다니질 않는다. 아니, 다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습하고 어두운 곳이라 사람들이 숲으로 왕래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숲을 가로지르면 집에 더 빨리 갈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숲을 가로질러 다니질 않는다. 이건 생활의 지혜이다. 때로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숲을 돌아 개울가를 건너는 것이 곧 생활의 지혜이다. 숲을 무서워하는 것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는데, 사실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다. 나처럼 호기심이 많은 인간에게 미지의 숲이 어찌 흥미로운 공간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의 호기심보다 더욱 큰 것은 눅눅함에 대한 짜증이다. 매일 오른 발이 젖어 있는 것도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닌데 온 몸으로 습기를 받아들이는 짓을 애써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난 호기심이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또한 게으르다.
검은 고양이.
나는 이미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반가운 마음에 목차에서 ‘검은 고양이’부터 찾는다. ‘검은 고양이’는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다. 애초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데다가 실제로 얼마 전까지 집에서 검은 고양이를 길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검은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런데 사실, 내가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다 읽은 것은 아니다. 읽은 부분은 ‘검은 고양이’를 포함해서 채 몇 편 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 중 ‘검은 고양이’를 가장 좋아한다니, 참람한 노릇이다. 이래서야 서른도 안 된 삼촌이 나에게 건강이 최고라고 말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줍잖은 지식은 결국 잘난 척을 하기 위한 도구 이외에는 아무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르며 애드거 앨런 포에게 처음으로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 [우울과 몽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으리라 마음 먹는다. 책을 편다. 근사하다. 용돈 주고 가신 아버지가 고맙다. 사업 번창하시길. 음식점 맛있다고 서울에 소문이 자자해지길.
패배했다.
사람의 버릇이란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요상하게도 일어나보니 여지없이 책을 베고 자고 있더란 말이다. 그전에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지난 겨울이었던가. 아버지 몰래 삼촌 집에서 삼촌이 주는 막걸리를 받아 마신 적이 있었다. 삼촌은 다 인생공부라고 했었지만 지금 생각으론 그저 장난을 친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표정으로 삼촌이 따라준 막걸리 두 잔에 정신을 잃었었다. 토사와 버무려져 잠이 들었던 나는 자랑스럽게도 그 정신에 평상시 버릇처럼 주섬주섬 입었던 겨울 옷을 깍듯이 벗어놓고 자고 있더란 말이다. 참으로 세심한 작업을 술기운에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버릇이란 무서운 것이다. 지금이 그렇다. 검은 표지의 번떡거리는 세련된 책 뒷면에 조그만 돌맹이에 찍힌 듯한 작은 흠집이 생겨버렸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숨을 죽이고 얼굴을 조금 찡그렸다. 얼마 읽지도 못했는데. 아버지, 죄송합니다. 사업 번창하시길.
비명소리.
그렇다. 저 비명소리다. 내가 잠을 깬 이유는 어디선가 들려온 작은 비명소리 때문이었다. 잠귀가 밝은 내가 그 독특한 비명소리를 그냥 넘겼을 리 없다. 사람의 소리 같지도 않고 동물의 것 같지도 않은 기묘한 비명소리는 일상의 소리가 아니었다. 명쾌한 개울물 소리에 잠이 들었다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에 잠이 깬 것이 아귀가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하고 있던 순간, 또 한 번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희미한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숲이었다. 소리는 숲 안에서 나는 것이었다. 이미 어둠이 깔린 숲, 그 숲에서 출발한 땅거미는 이제 개울가를 지나 마을로 향하는 중이었다. 검은 숲, 검은 고양이, 검은 비명소리.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귓가에 남아있는 잔소리의 파동이 몰입에 충실히 도움을 주는 듯 했다. 시야가 좁아지고 눈에 보이는 천연색의 다른 색들이 탈색되어 검은 색만이 남아있게 된 몰입의 단계. 나는 책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습하기에 짜증이 앞섰던 저 숲에 들어갈 마음이 생긴 것이다. 중간자의 입장에서 항상 한 편 택하기를 꺼려하던 정치적 중립을 버리고 난생 처음으로 개울가가 아닌 숲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란 말이다. 걸음을 한 걸음 옮겼을 때 나를 부르는 비명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아, 이젠 어쩔 수 없다. 들어가 볼 테다. 내 눈으로 저 의뭉스러운 소리의 진상을 확인할 테다. 긴장으로 손바닥이 젖어 들었다. 습한 손바닥은 이미 숲이다. 나는 새로 산 [우울과 몽상] 검은 표지에 습기의 수장을 찍었다. 그걸 바라보자니 꽤나 어울리는 무늬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꼭 쥔 채 나는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