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애 상실의 바벨탑

송민영2007.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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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Babel은, 누구나 알듯이, 신의 뜻을 거역하고 바벨탑을 짓던 인간들에게 서로 다른 언어를 쓰게하는 벌이 내려졌다는 구약성경속의 이야기에 나오는 그 바벨이다.)

 

영화는 모로코 변두리 지방의 한 남자가 자신의 친구가 일본인 관광객으로부터 선물받은 사냥총을 사면서 시작된다. 이 남자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총을 건네주며 염소들을 해치는 자칼을 총으로 없애는 데에 사용하라고 한다. 그러나 기다란 사냥총은 호기심 많은 어린 소년들에게 새로운 장난감이 되었고, 결국 이들은 저 멀리 지나가던 관광버스에 총을 겨누게 된다.

 

아이를 잃은 뒤로 사이가 틀어진 수잔과 리처드 부부는 관계를 회복해보려는 리처드의 바램 속에 이집트와 모로코 등을 관광하던 중이었고, 마침내 둘 사이에 닫혔던 문이 조금씩 열려가는 듯 했다. 뭔가 불편한 침묵을 유지하며 버스에 앉아있던 둘. 그런게 갑자기 창가에 앉아있던 수잔이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맞아버린것. 아비규환이 된 관광버스를 되돌려 근처 작은 마을로 급히 응급처치를 하러 가지만, 총에 맞은 사람이 자신 또는 자신의 배우자가 아니기에 남의 일로만 치부하는 다른 관광객들의 태도는 피를 흘리며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리처드를 더욱 깊은 심리적 공황에 빠뜨린다. 

 

<다정하게 손잡는 것 조차 어려웠들 이 둘 사이의 높은 벽은

수잔의 부상으로 인해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사진출처: 싸이월드 영화정보

 

한편, 모로코로 여행을 떠난 수잔과 리차드 부부의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던 멕시코인 유모 아멜리아는 자신의 아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날임에도 아이들을 계속 맡아야할 수 밖에 없게 되자, 하는 수 없이 꼬마들을 함께 데리고 결혼식이 열리는 멕시코로 가기 위에 샌 디에고를 떠난다. 다함께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는 것은 간단했지만, 문제는 멕시코-미국 국경을 넘을 때 발생한다.

 

그리고,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 일본이 비춰진다. 청각 장애를 가진 소녀 치에코는 총기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함께 산다. 모로코인에게 총을 선물한 일본 관광객이 바로 치에코의 아버지로, 한때 사냥을 취미로 즐겼었다. 사춘기 소녀 치에코는 남자를 사귀고 어울리고 싶어하지만 '그들과 소통할 수 없음'의 벽에 계속 부딪히게 되고, 결국은 몸으로 소통하는 프로토콜을 사용하게 된다.

 

 

<소통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치에코>

사진 출처: 싸이월드 영화정보

 

영화는 매우 다른 네 가지 문화의 사람들이 전개하는 행동들을 조명하며, 다른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이해의 부족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짜 바벨탑이라고 말한다. 또 동시에, 관객이 직접 그 "이해의 부족"을 체험하고, 각성을 해보도록까지 한다.

 

- 다른 문화와의 소통장애

영화의 초기에는 다른 문화에 대한 부족한 지식/이해가 불러오는 '소통되지 않음'이 침착하게 제시된다. 우선, 수잔과 리처드가 보여주는 행동들은 그러한 이해와 소통의 불완전함을 잘 보여준다. 미국인 관광객 수잔에게는 낯선 이국땅의 모든 것이 낯설고 비위생적이기만 해보인다. 콜라에 넣어 마시는 얼음까지도 의심스럽다. 모로코 마을의 의사가 수잔의 총상을 꿰매기 위해 꺼낸 바늘도 혐오스럽기만 하다. 모로코인들은 긴 세월을 그런 식으로 잘만 살아왔는데도 말이다.

 

이 총격 사건에 대한 미국정부의 과민반응은 더 우스꽝스럽다. 사건에 대해 듣자마자 그놈의 "테러와의 연관성"을 들먹이며 온갖 호들갑을 떨어대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응급처치를 위한 지원을 보내는 일에는 늑장이다. 소통하려 하지않고 전달만 하려는 자의 표본이다.

 

수잔처럼 주류 미국문화에"만"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나를  포함하여), 이 영화는 너무 많은 "이해 안되는 일"로 가득 차 있다. 감독은 친절하고 냉정하게도 이러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집어넣어놨다. 하나의 커다란 쟁반에 음식을 모두 담아 맨손으로 식사를 하고, 어린 아들에게 사냥총을 쥐어주며 동물을 쏴죽이라고 말하는 모로코인. 아이들에게 '목 잘린 닭 쫓기 놀이'를 시키고, 하늘을 향해 총을 쏘며 파티의 흥을 돋구는 멕시코인들.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러한 장면들을 들이대며 관객을 "어쩜 저럴수가"라고 당황하게 만든다. 정작 그 인물들은 그런 방식으로 잘 살기만 하는데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영화는 "그것 봐라. 너도 소통을 못 하는구나!!"라고 호통을 치며 극중 인물들과 이질감을 느끼는 관객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 그 바탕에 깔린 '이해하지 않음'

그러나, 문화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영화는 문화간 불소통의 원인은 사실 인간에 대한 몰이해에 있다는 진실을 상기시킨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이는 인간과 인간이 연결될 수 없다고 얘기한다.

 

함께 버스에 타고 있던 다른 관광객들은 무더운 날씨에 자신들의 일정이 지체된다는 이유로 수잔과 리차드를 그 마을에 버리고 떠나버린다. 그런 한편,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는 수잔을 지켜보던 모로코인 할머니는 수잔에게 진통효과가 있는 담배를 말없이 건네고, 수잔 부부를 도와준 청년은 리차드가 감사의 표시로 건네는 두툼한 돈뭉치를 거절한다. 그는 그저 진심으로 수잔을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청각장애 소녀 치에코가 겪는 좌절들도, 얼핏 보기에는 다른 언어에 근거한 소통 불가능 (입으로 발성하는 말 vs 손으로 보여주는 말) 때문인것 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인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는 심판에게 불공정한 판정에 대해서 따질 수도 없다. 관심있는 남학생으로부터 자신이 청각장애자라는 이유로 조롱어린 웃음을 당한 치에코는 결국 극단적인 방법 - 신체에서 가장 사적인 부분을 보여주기 - 을 사용하여 관심을 얻어낸다.

 

그러나 이 방법은 결코 성공적인 "소통"을 보장해주지 않고, 오히려 치에코에게 더 큰 혼란만을 안겨줄 뿐이다. 치에코에 대한 인간적 이해가 부족했던 남학생들은 치에코를 클럽에 데려간다. 굉장히 세련된 리믹스의 September - Earth, Wind, and Fire 는 치에코의 귀에 들릴리가 없고, 그저 알록달록한 조명들과 비청각장애인들의 몸짓만이 의미있는 자극으로 다가올 뿐이다.

 

- 소통장애가 주는 아픔들

후반부에 들어서면, 영화는 인간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내는 소통장애로 인한 아픔들을 소개한다.

 

이성과의 친밀한 관계를 간절히 경험해보고픈 치에코는 결국 '몸으로 의사전달하기' 방법의 강도를 높여가고, 결국은 호감을 품고 있던 형사 앞에 나신으로 나타나기까지 한다. 치에코의 이러한 급작스럽고 과감한 변화는 '소통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그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반복적인 소통실패는 그 사람을 깊은 외로움의 웅덩이에 빠지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지 음성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적절한 이성관계를 시작하는 것 조차 힘든 치에코. 자신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하더라도 상대방은 언제나 자신의 진심/본뜻을 결코 이해해주지 않는 치에코. 누구든 이런 종류의 절망에 빠진다면 자신의 나신을 들이대는 것 보다 더한 원초적 제스쳐라도 하지 않을까? 답답함과 무기력함의 사슬에 묶인 이들은 극단적으로 분신자살까지도 감행하지 않던가!

 

아멜리아가 겪은 사건은 제도의 비인간적인 면을 꼬집어 보여준다. 법이라는 것은 사회와 개인의 소통 방법이건만, 그 법은 한 인간에 대한 이해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개인의 인생을 뿌리부터 흔드는 폭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며 삶의 터전을 일구고 수잔네 부부의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돌봐주던 아멜리아는 눈과 귀를 막은 법 앞에서 그저 "부모의 동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위험에 방치한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뿐이다.

 

 

<뒷자석에 잠들어있는 백인 아이 둘 때문에 의심을 받는 아멜리아와 그녀의 사촌.

아이들이 타고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의심을 받지 않고 국경을 넘을 수 있었을까?>

사진출처: 싸이월드 영화정보

 

마치 나비효과의 사례라도 보여주는 듯한 '치에코의 아빠-모로코인-수전-다시 치에코의 아빠'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냥총 사건 스토리는 이 영화의 진정한 주제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되는 동시에 세상을 풍자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 상표(Winchester)가 붙은 사냥총이 일본에서 치에코의 엄마를 죽이고, 모로코까지 흘러가서는 미국인 수잔을 쏜다. 치에코의 가정과 모로코 소년의 가정을 망쳐놓은 총이 아이러니하게도 수전과 리처드 부부의 사이를 급속도로 회복시켜주는 촉매가 되지만, 그 총 때문에 어린 모로코 소년은 죽어야했다. 이는 현재 중동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미국의 폭행에 대한 항의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죽은 소년의 형제 유세프의 눈물섞인 외침이 이러한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내가 미국인을 죽였어요!! 방금 총을 쏜 사람도 저에요!! 아빠랑 제 동생은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정말 아무짓도 안 했어요!! 죽이려면 차라리 나를 죽이고 제 동생을 살려주세요!! 동생은 정말 아무짓도,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요!!"

 

 

<죽은 동생의 시체를 뒤로하고 잡혀갈 수 밖에 없는 모로코 소년 유세프>

사진출처: 싸이월드 영화정보

 

수잔 부부를 태우고 병원으로 날아가는 헬리콥터는 모로코의 아름다운 사막과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고, 이 장면에 울리는 불안하고 슬픈 가락의 음악은 '마침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는 미국인'이 나오는 장면이면 어김없이 환희로 가득찬 장조곡을 깔던 전통적 헐리우드 영화를 조롱한다 (멕시코 출신 감독 Alejandro Inarritu 의 센스!!)

 

- 인간애 상실의 바벨탑

영화 바벨에서 "서로 다른 언어"에 의한 갈등은 하나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적 이해의 부재" 에 의한 사건들만 가득할 뿐이다.

 

영화 Babel은 우리에게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활짝 열으라 한다. 우스개로 삼거나 비판을 하기 전에, 법을 정하고 집행하기 전에, 경계하고 방어하고 공격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을 충분히 이해해보라 한다. 사람에게, 나와 똑같은 사람에게, 비난을 던지고 상처를 주고 삶을 빼앗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까지도 하는 '닫힌 마음'이 우리 세상의 곧 바벨탑이며, 이를 허물어 없애자 한다. 이 바벨탑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영원히 이토록 살벌하고 위험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영화 속에 보여진 다양한 '비인간적 소통불능'들에 자신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면 서서히 세상을 바꾸어보라 한다. 나신으로 발코니에서 선 딸이 방금 무슨 행동을 저질렀는지 알면서도 커다란 진심이 담긴 포옹으로 딸을 감싸주는 치에코 아버지처럼. 자식에 대한 무한한 내리사랑을 건네주는 부모된 자의 마음처럼.

 

우리 사회에 널려있는 수많은 편견과 차별의 바벨탑들을 보라. 무척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만큼 그 높이는 하늘을 찌를듯 높디 높다. 우리들은 무척 이기적이고 과거를 쉽게 잊기까지 한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불같이 화를 내고 온갖 저주를 퍼부으면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조롱, 멸시, 비난, 혐오의 폭력을 갈겨댄다. 그 폭력의 결과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불태워버리는 것이든 혹은 심지어 그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이든 그런 폭넓은 인간적 이해는 하고싶지도 않아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이 미워서 그 사람의 허물을 부풀리고 죄목을 덧붙인다. 그러나, 여자 남자 늙은 사람 어린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 장애를 안 가진 사람 노란사람 하얀사람 검은사람 갈색사람 분홍사람 붉은사람 젓가락으로 밥먹는 사람 맨손으로 밥먹는 사람 이성을 좋아하는 사람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 이성동성 모두 좋아하는 사람 마른 사람 안 마른 사람 돈이 많이 없는 사람 돈을 많이 가진 사람 기독교를 따르는 사람 불교를 따르는 사람 이슬람교를 따르는 사람 조로아스터교를 따르는 사람 종교가 없는 사람 한명의 배우자를 두는 사람 여러명의 배우자를 두는 사람 모두 다 똑같은 인간이다. 행복과 안전을 추구하고 사는 다 똑같은 인간이다. 

 

이 영화는 "남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바탕으로한 평화를 호소한다는 점에서 영화 Crash 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더 정교하고 복잡한 이야기의 전개는 감독과 작가가 꽤 많은 정성과 고민을 쏟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사회적 약자의 표본을 인종/계층적 폭보다 더 넓고 다양하게 제시한 점에서 인종적/계층적 약자를 너머 문화적/국가적/ 크래쉬 보다 더 세련되었다 생각한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연기는 짧지만 무척 강한 인상들을 남겼고 (아역들까지도!!), 영상이 나의 개인적인(개인적인!!!) 취향과 조화되지는 않았지만 바삭바삭하게 말라버린 낙엽처럼 건조한 분위기의 장면들과 그에 어울리는 음악들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영화의 주제를 잘 뒷받침해준다. 솔직히 영화를 보는 중 약간 지루했던 시점도 약간 있으나 이는 모두 그 장면 속에 비추어진 이방세계에 대한 나의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괜찮은 문제의식과 괜찮은 주제, 괜찮은 연출과 연기,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많은 정성에 응하여 별 다섯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