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 Of Love - Erich Fromm

허수정2007.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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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사랑하게 되었다는 느낌은 보통 자신의 교환 가능성의 범위 내에 있는 인간 상품에 대해서만 나타난다.

 

 

         "당신은 얼마짜리 인간인가?" 라는 질문이 우리는 낯설지 않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얼마짜리 물건'을 넘어서 '얼마짜리 인간'으로 만들었다. 처음엔 자본주의가 인간을 상품화 시켰지만, 이제 인간은 스스로를 값비싼 포장을 한 상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갑'이라는 인간을 평함에 있어서 연봉은 0순위 항목이다.

 

  스스로 상품이 된 인간은 인간 상품들이 서로 사고 팔 수 있는 Personality Market을 형성한다. 이 시장에서 인간은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인 'Give & Take'를 바탕으로 인간 관계를 형성한다. 과거, 갑의 인품, 즉 정신으로 관계를 맺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스스로 상품화된 자신과 어울릴만한 넥타이나 구두를 찾아 관계를 맺는다. 사랑을 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는 사회적 가치의 관점에서 보아 바람직해야만 하며 동시에 상대자도 나의 숨겨진 재산과 능력을 고려한 다음 나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때, 즉, 자기 자신의 교환 가치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서로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아냈다고 느낄 때에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이와 같은 대표적 상황이 인성을 제외시킨 오늘날의 중매이다. 어쨌든, 사랑하게 되었다는 느낌은 보통 자신의 교환 가능성의 범위 내에 있는 인간 상품에 대해서만 나타난다.

 

  몇 개월 전의 일이다. 을에게서 고백을 받게 되었다. 평소 을과는 아무런 사심없는 사이였기 때문에 심히 놀랐다. 을과 안지는 별로 되지 않았고 을에 대한건 거의 겉모습과 활발한 성격과 이름이 전부였던터라 난 심히 당혹스러웠다. 나는 요리조리 말을 돌리며 거절의 기회만 보고 있었는데, 이야기 도중 을의 집안이 흔히 우리가 말하는 '-사'자 들아가는 집안이었다. 순간 내 눈엔 그가 백마를 타고 잠들어있는 나의 입술에 키스를 하기 위해 용감하게 용을 물리친 왕자로 보였다. 아니 이 오묘한 상황은 마치 믹키유천이 피아노를 치며 시아준수가 나를 보며 노래를 부르고 세븐과 비가 멋진 춤을 추며 이 네남자가 꽃을 들고 나에게 동시에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경이로움이었다. - 신이시여! 저에게 이런 경이롭고 찬란한 영광의 순간을 현실에서 맛보게 하소서! 물론 신께서는 냉수먹고 속차리라 하시겠지만...- 그리고 나는 마음 속으로 단 한마디를 외쳤다. '앗싸!' 결국 난 을과 잘 되지 않았지만 순간 그가 왕자로 보였고 속으로 쾌재를 부른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금을 사는 사람이라면 내 상황에 공감할 것이다. 지금도 난 '그들의 수다' 속에 함께하는 '나'를 발견한다. 다행히 을의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고, 난 말 그대로 '환상의 커플'이 될 뻔 했던 아찔한 기억만을 가지게 되었다. 휴~...

 

   현대인이라면, 자본주의가 팽배한 지금의 시대에 사는 이라면 어쩔 수 없는 감정이라 치부해 버리기에는 나 자신의 합리화 밖에 되지 않음을 알기에 '그들'로 치부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기로 하였다.

 

어떻게 하면 나는 스스로 상품화된 인간이 스스로의 상인이 되어 자신을 팔고 있는 Personality Market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첫번째 방법이자 내가 생각한 나만의 방법은 스스로를 상품화 시키지 않는 방법이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뭐 눈엔 뭐만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가 상품이 되지 않으면 남도 상품으로 보일 이유가 없다. 인간은 대부분 외부 세계를 자신의 내적 세계 안에서 해석하기 때문에 자신의 최고의 가치를 인성 즉 정신으로 해석한다면, 상대방의 최고의 가치도 정신이라 해석할 것이다. 즉, 스스로의 내적 세계에서 외부 세계를 해석할 때 올바른 가치를 기준으로 해석할 때 비로소 퍼스넬리티 시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그 '올바른 가치'에 대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가치 판단에 있어서 절대 가치 기준에 관한 문제는 그것이 비록 상대적 성격을 지녔다 하더라도 - 시대와 환경마다 가치의 기준이 달라지므로- 고정 불변한 절대 가치는 존재함을 믿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분명 매우 깊은 지식을 요구하므로 다음편에 자세히 이야기 하기로 한다.

 

   자연과 합일의 상태에서 떨어져 나와 고립된 인간은 합일의 상태에서 느꼈던 안정과 소속감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자연으로 다시 되돌아 가려하면 남주작, 북현무, 좌청룡, 우백호가 무섭게 노려보며 가로막고 서있다.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면서 사유함과 선택의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고립의 문제를 불러온지라 인간은 이제 서로와의 합일을 통해서만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더 크고 안정된 합일을 위해 자신 스스로를 버리고 예쁜 포장에만 신경쓰는 당신은 인간이기 때문에 합일이 가능하다는 본질을 스스로 버렸기 때문에 언제나 남의 눈에 들기 위하여 오직 겉모습으로만 남을 충족시킴으로 타인과의 합일만을 바라고, 당신이 직접 선택하는 것이 아닌 남의 선택만을 기다림으로써 선택의 자유를 스스로 벗어버린채 불안 초조해 한다. 그리고 선택 받은 후에도 '이 포장지가 질리면 분명 나를 떠날텐데...'하는 의심의 사랑을 하게되고 이것은 '언제나 사랑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을 불러 일으킨다. 결국엔 이 보상으로 주어지는 사랑, 즉 내 포장지가 예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것은 사랑 받는게 아니라 이용될 뿐이라는 씁쓸함만을 느끼게 된다. -이에 대한 것은 다음에 더 자세히 이야기 하기로 한다-

 

   이것은 스스로 인간 그 자체의 본질을 버리고 스스로 상품화 되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자신의 내적 세계 안에서 자신을 상품으로 해석하는 그 헛된 가치는 이제 무참히 버려 버리고 스스로의 본질을 찾아 스스로의 두 발로 이 땅위에 서야 할 것이다. 스스로 서는 것은 그 누구의 의지도, 도움도, 선택도 아닌, 당신의 의지요, 당신의 자유로운 선택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편하게 스스로를 상품화 시킨채 의심의 사랑을 하며 불안 초조해 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 합일의 본질을 찾고 만족의 합일을 할 것인가? 비록 가시밭길이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