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엄마 푸른학교 가셔야 하잖아. 언니 오빠들 공부 시켜야 돼" 큰딸이 야무지게 동생 말을 자르며 말한다. 처음 몇 달 동안 푸른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우리 둘째가 매일 아침마다 하는 소리였다. 기어 다니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는 9개월 난 셋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푸른학교 교사로 일하겠다고 했을 때 같이 사시는 시부모님은 썩 내켜 하시지 않으셨다. “네 자식 잘 간수도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자식을 건사 할 수 있겠냐?”며 말씀하셨다. 괜찮다고 잘 할 수 있다며 씩씩하게 나왔다.
푸른학교 아이들은 툭하면 싸우고 소리 지르고 가만있질 못했다. 내가 경험이 없어 우왕좌왕 할 동안 아이들도 똑같이 혼란스러워 했다. 매일 이런 상황이 되풀이 되어 집에 가면 파김치가 되어 잠만 자던 힘든 상황이었다.
2005년 12월 24일, 푸른학교 크리스마스 사랑의 산타 준비를 하느라고 밖에 나와 있었다.
오후 5시경에 집에서 전화가 왔다.
“외숙모, 호정이가 죽었어요.” “뭐?, 너 지금 나랑 장난 하냐?”
“아니에요, 지금 호정이가 숨을 안 쉬어요. 빨리 와요. 엉 엉 엉”큰 조카애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 18개월 된 셋째아이가 죽었다며 전화를 했다. 뭔 소린지 감이 안와서 다시 전화를 했더니 큰 시누이가 전화를 받았다. “승희야, 빨리 와. 호정이가 숨을 안 쉬어. 죽었나봐. 빨리 와”그제서야 나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멍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그냥 눈물만 나왔다.
집에 와보니 온 식구가 울고 있었다. “ 호정이 인공호흡하고 심장마사지해서 인제 숨 쉰다. 지금 자니까 진정 되면 병원에 데리고 가라.”눈을 감고 가늘게 숨을 쉬고 있는 아이를 보며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리 일이 중해도 자식만큼 중하냐? 응, 응? 네 자식 죽으면 어떡할래? 나는 인제 절대 네 자식 안 봐줄란다”며 어머니가 울면서 말씀하셨다. 장염에 걸려서 밥도 못 먹고 토하고 설사하는 아이를 그냥 두고 나왔다. 종일 축 늘어져서 아무것도 못 먹다가 미음을 먹였더니 그게 기도를 막아서 호흡을 멎게 했었다는 것이다.
호정이를 안고 병원 응급실로 가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다. 숨이 한번 멎었기 때문에 뇌에 이상이 있을지 모른다며 검사를 하자고 할 땐 아이를 집에 두고 밖으로 나온 곳이 정말 후회되었다. 며칠동안 병원에 입원한 아이의 곁을 지키면서 푸른학교와 아이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나, 고민을 심각하게 했다. 아무런 결정을 못 내리고 출근을 했다. 나를 보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선생님 호정이 인제 괜찮아요?” 하며 물어 보는 아이를 보며 꼭 안아 주었다.
“선생님 이혼해요” “응? ” “선생님 이혼 하고 우리 아빠랑 결혼해서 울 엄마 하면 안돼요? 네?” 내 손을 꼭 잡고 심각하게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 고민이 우습게 느껴지면서 후회되었다.
“그냥 나 이혼 안하고 그냥 오래도록 푸른학교 선생님 하면 안 될까? 네가 푸른 학교 졸업할 때 까지 언제나 여기 있을게.”
선생님의 푸른 일기
"엄마 언제 와요? 오늘도 늦어요?" 하며 둘째 아이가 눈을 빛내며 아침마다 묻는다.
"바보야, 엄마 푸른학교 가셔야 하잖아. 언니 오빠들 공부 시켜야 돼" 큰딸이 야무지게 동생 말을 자르며 말한다. 처음 몇 달 동안 푸른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우리 둘째가 매일 아침마다 하는 소리였다. 기어 다니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는 9개월 난 셋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푸른학교 교사로 일하겠다고 했을 때 같이 사시는 시부모님은 썩 내켜 하시지 않으셨다. “네 자식 잘 간수도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자식을 건사 할 수 있겠냐?”며 말씀하셨다. 괜찮다고 잘 할 수 있다며 씩씩하게 나왔다.
푸른학교 아이들은 툭하면 싸우고 소리 지르고 가만있질 못했다. 내가 경험이 없어 우왕좌왕 할 동안 아이들도 똑같이 혼란스러워 했다. 매일 이런 상황이 되풀이 되어 집에 가면 파김치가 되어 잠만 자던 힘든 상황이었다.
2005년 12월 24일, 푸른학교 크리스마스 사랑의 산타 준비를 하느라고 밖에 나와 있었다.
오후 5시경에 집에서 전화가 왔다.
“외숙모, 호정이가 죽었어요.” “뭐?, 너 지금 나랑 장난 하냐?”
“아니에요, 지금 호정이가 숨을 안 쉬어요. 빨리 와요. 엉 엉 엉”큰 조카애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 18개월 된 셋째아이가 죽었다며 전화를 했다. 뭔 소린지 감이 안와서 다시 전화를 했더니 큰 시누이가 전화를 받았다. “승희야, 빨리 와. 호정이가 숨을 안 쉬어. 죽었나봐. 빨리 와”그제서야 나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멍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그냥 눈물만 나왔다.
집에 와보니 온 식구가 울고 있었다. “ 호정이 인공호흡하고 심장마사지해서 인제 숨 쉰다. 지금 자니까 진정 되면 병원에 데리고 가라.”눈을 감고 가늘게 숨을 쉬고 있는 아이를 보며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리 일이 중해도 자식만큼 중하냐? 응, 응? 네 자식 죽으면 어떡할래? 나는 인제 절대 네 자식 안 봐줄란다”며 어머니가 울면서 말씀하셨다. 장염에 걸려서 밥도 못 먹고 토하고 설사하는 아이를 그냥 두고 나왔다. 종일 축 늘어져서 아무것도 못 먹다가 미음을 먹였더니 그게 기도를 막아서 호흡을 멎게 했었다는 것이다.
호정이를 안고 병원 응급실로 가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다. 숨이 한번 멎었기 때문에 뇌에 이상이 있을지 모른다며 검사를 하자고 할 땐 아이를 집에 두고 밖으로 나온 곳이 정말 후회되었다. 며칠동안 병원에 입원한 아이의 곁을 지키면서 푸른학교와 아이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나, 고민을 심각하게 했다. 아무런 결정을 못 내리고 출근을 했다. 나를 보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선생님 호정이 인제 괜찮아요?” 하며 물어 보는 아이를 보며 꼭 안아 주었다.
“선생님 이혼해요” “응? ” “선생님 이혼 하고 우리 아빠랑 결혼해서 울 엄마 하면 안돼요? 네?” 내 손을 꼭 잡고 심각하게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내 고민이 우습게 느껴지면서 후회되었다.
“그냥 나 이혼 안하고 그냥 오래도록 푸른학교 선생님 하면 안 될까? 네가 푸른 학교 졸업할 때 까지 언제나 여기 있을게.”
“그래요 내가 봐줬다. 나도 클때까지 여기 다닐래요”이 말을 들으면서 정말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