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너는 자유다

김미나2007.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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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년 여름 방학, 거의 출간과 동시에 잠실 교보에서 눈에 발라봤던 책이다. 표지도 괜찮고 또 나랑 이름이 같은데다가(손미나, 김미나?ㅋ) 평소에 좋아하는 아나운서가 썼다니까 한번 읽어볼까 했는데 그 때 당시에 내 심정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기보다는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진 정신 상태를 빨리 정상적인 궤도로 돌려놓기 위해서 나를 긁어줄 책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만 슬쩍 슬쩍 봤었다. 나에겐 '자유'라는 단어로 사람들을 선동할 뿐인 단순한 여행기 쯤으로 여겨졌었다.

 

그로부터 한두달 후, 휴학을 신청한 무렵 코엑스에서 JH를 거의 반년만에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이런 저런 앞으로의 고민거리를 얘기하다가

 

“미나. 내가 진짜 읽고 감동 받은 책이 있는데 이 책 읽으면서 왜 자꾸 니가 생각났지?”

라며 강추했던 책이 스페인, 너는 자유다 였다.

 

“나랑 이름이 똑같아서 아냐?”

속으로 설마 이런 유치뽕짝한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 하면서.

 

“아니야. 어쨌든 너랑 뭔가 닮았어. 근데 생긴 것도 좀 닮았어. 눈꼬리 그렇고 쌍꺼풀 없는 것도 닮았고.. 어쨌든 읽어봐.”

 

당시 지난 1학기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힘겹게 보냈던 JH는, 항상 자기는 원하는 게 있어도 용기가 부족해서 망설이다가 결국은 마음이 원하는대로 하지를 못하는데, 미나 넌 용기가 있다는 거였다. 솔직히 들을 땐 좋다고 헤벨쭉 했다.ㅋ You flatter me.

 

여튼 나는 대구로 내려왔고 이런 연유로, 왜 내가 생각났다는건지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사서 읽게 되었다. 일단 손미나 아나운서는 자타공인 열정 자체다. 아나운서, 그것도 KBS 9시 뉴스 아나운서라는 타이틀 자체가 손미나는 보통 열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게다가 재벌가들이 신부감 1위로 꼽는 여성상을 갖춘 그녀가 무엇이 아쉬워서 였을까 대체...? 나이는 30대로 접어들었고 무언가를 도전하기에는 어쩌면 이때까지 공들여 쌓아놓은 탑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은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간절히 외치는 소리를 따라 모든 것은 운명에 맡기고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스페인에 가게 된다. 떠나기 전의 자신과 양치기 산티아고는 아주 적합한 비유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지금까지 열심히 한 스스로가 대견스럽다는 말을 직접 자기 입으로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경지에 오른 손미나는 인복도 참 많은 것 같다. 물론 스페인어가 유창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사람은 각자 자기 그릇의 크기대로 인생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는 만큼 보게 된다는 논리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신이 지금까지 빚어온 성향, 도량, 재량 혹은 내공, 딱 그만큼만,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운명이 그에게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며 냉정하고 때로는 포근한 우주의 질서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나도 부지런히 갈고 닦고 무너지고 깨지고 닳고 쌓아야 한다.

 

모든 자유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수반된다. 일상에서 벗어나 스페인에서 자유를 누렸다는, 그래서 자신에게 스페인은 자유라는 의미로 다가온다는 손미나는, 분명 1년동안 자신이 선택한 운명에 스스로 책임진다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피곤하고 힘겨운지 그 누구보다도 혹독히 배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멋지게 해냈다. 세상 만물에 대한 관심과 모든 사람과 그들의 삶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만 진정한 언론인이라 일컬을 수 있다는 나의 생각에 의하면, 열정만으로는 부족했을 것이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 역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데 한몫 했으리라...

 

스페인 체류 마지막 날, 온세상을 붉은 빛으로 물들인 몬주익 기적의 분수 앞에서 찍은 사진속에서처럼,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 속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영민하고 반짝이는, 자아신화를 이루어낸 감동에 모든 감정이 뒤범벅된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미나야.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을 용기가 없다고 해서 네 꿈을 저버려서는 안 돼. 이제 나는 미리 걱정하지 않아. 모든 걸 훌훌 털고 떠나와 1년을 채우고 돌아갈 나는 지금 너무 마음이 벅차서 그 어떤 말로도 이 묘한 감정을 표현할 수 없어. 네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그 모든 것. 그래, 네 선택이 옳다는 걸 믿고 떠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