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부인이 도망가려다 금와에게 죽임을 당한다. 헐~ 이것부터가 어이가 없다. 그런데 도망쳤던 예소야와 유리는 장안에서 온 황대인에게 잡혀서 '현토'로 끌려간다. 이야기 참 '어이없게' 스토리 진행된다. 물론 5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지만서도 부여에서 도망쳐야 하는데 현토로 끌려갔다가 부여로 와서 도망치게 하려는 스토리인가?
지금 유리의 나이를 보건데 아무리 못봐도 4-5세다. 5년후면 열살이다. 열살에 고구려 왕위에 오른다고? 헐~~
맛배기로 '유리왕 본기' 를 살짝 살펴보자.
유리명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유리인데, 혹은 유류라고도 하였다. 그는 주몽의 맏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예씨이다. 에전에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에게 장가 들었는데 그녀에게 태기가 있었다. 그녀는 주몽이 떠난 뒤에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유리였다. 유리가 어렸을 때, 거리에 나가 놀면서 참새를 쏘다가 물긷는 부인의 물동이를 잘못 쏘아 깨뜨렸다. 그 부인이 꾸짖어 말하기를 "이 아이는 애비가 없어서 이렇게 논다"라고 하였다. 유리가 부끄럽게 여기고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우리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며 지금은 어디에 계십니까?"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너의 아버지는 비상한 사람이어서 나라에서 용납하지 않았기에, 남쪽 지방으로 도망하여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 아버지가 떠날 때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만약 아들을 낳으면, 나의 유물이 칠각형의 돌 위에 있는 소나무 밑에 숨겨져 있다고 말하시오. 만일 이것을 발견하면 곧 나의 아들일 것이오'라고 말했다." 유리가 이 말을 듣고 바로 산골로 들어가 그것을 찾았으나 실패하고 지친 상태로 돌아왔다. 하루는 유리가 마루에 앉아 있었는데, 기둥과 주춧돌 사이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듯하여 가보니, 주춧돌이 칠각형이었다. 그는 곧 기둥 밑을 뒤져서 부러진 칼 조각을 찾아냈다. 그는 마침내 이것을 가지고 옥지·구추·도조 등의 세 사람과 함께 졸본으로 가서, 부왕을 만나 부러진 칼을 바쳤다. 왕이 자기가 가졌던 부러진 칼 조각을 꺼내어 맞추어 보니, 하나의 칼로 이어졌다. 왕이 기뻐하여 그를 태자로 삼았는데, 이 때에 와서 왕위를 잇게된 것이다.
전혀 이런 이야기도 없는데... (그럼 이 이야기는 현토성으로 끌려갔을때 나오는 것일까? 그럼 예소야가 주몽에게 받은 칼 조각은 예소야가 숨기는 것일까?) 그런데 지금 드라마의 유리는 5살 - 그것도 많이 봐서 5살이다. 그리고 주몽에게 와서 그해 주몽이 죽고 왕위에 오른다. 10살이다.
2년 가을 7월, 다물후 송양의 딸을 왕비로 맞았다. 9월, 서쪽 지방으로 사냥을 나가 흰 노루를 잡았다. 겨울 10월, 이상한 새들이 대궐에 모였다. 백제 시조 온조가 왕위에 올랐다.
자... 유리왕 2년이면 11살이다. 11살에 왕비를 맞고 .. 유리와 비슷한 나이 또래인 온조 또한 백제를 세운다... 물론 백제야 '소서노'의 지휘하에 있었지만 그렇다면 비류와 온조는 10 여살의 나이에 비류백제와 온조백제를 세웠다는 이야기다. 헐~ 자.....
3년 가을 7월, 골천에 이궁을 지었다. 겨울 10월, 왕비 송씨가 죽었다. 왕이 다시 두 여자에게 장가를 들어 후취를 삼았는데, 한 사람은 화희이니 골천 사람의 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치희이니 한 나라 사람의 딸이었다.
바로 이 이야기가 그 유명한 황조가의 이야기다. 유리왕 3년 그렇다면 유리왕 12살에 최초의 서정시를 12살의 어린애가 지었다는 이야기다, 헐~~
주몽의 문제는 첫째로 유리 나이를 너무 어리게 잡았다는 거다. 둘째로 유화가 도망치다가 죽었다는 것은 (물론 증거는 없지만) 너무 금와와 유화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끌고갔다는 점이고 셋째로 부여를 한나라 속국 비스무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부여는 고조선 이후 자랑스럽게 찬란한 우리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를 띄우려다 보니 강짜를 썼다.
이런 문제 많은 '시대물'을 '사극'으로 보면 큰일난다.
최완규는 '상도'와 '허준' 혹은 '올인'처럼 시대물에 적합한 드라마 작가라는 것을 이번 '주몽'에서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사서'는 보기라도 하는 것인가? 벌써 유화를 죽여버리면 5년간의 이야기는 그럼 '유리'이야기로 끌고가려고 하는건가? 소서노와 온조, 비류의 이야기로 끌려는 건가? 그런데 문제는 '2세대들'이 너무 어리지 않은가 말이다.
이거 '사극'아니다. '시대물'이야. 이런 드라마를 '수출'한다고... 어머님 맙소사..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나라 망신 대망신이다!!!
시대물 "주몽"일뿐, 사극 "주몽"은 없다.
오늘 주몽을 보고 속된 말로 '학'을 띠었다. 아무리 주몽이 제멋대로 가는 퓨전 팩션 신화 창조라고 하더라도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지 아니한가 말이다. 고구려 본기를 아래에 그대로 적어본다.
二年夏六月, 以國來降, 以其地爲, 封爲主. 語謂復舊土爲「多勿」, 故以名焉.
2년 여름 6월, 송양이 나라를 바치며 항복했다. 그곳을 다물도로 개칭하고, 송양을 그곳의 군주로 봉했다. 고구려 말로 옛 땅을 회복한 것을 '다물'이라 하기 때문에 그곳의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
三年春三月, 黃龍見於. 秋七月, 慶雲見南, 其色靑赤.
3년 봄 3월, 황룡이 골령에 나타났다.
가을 7월, 상서로운 구름이 골령 남쪽에 나타났다. 그 빛이 푸르고 붉었다.
四年夏四月, 雲霧四起, 人不辨色七日. 秋七月, 營作城郭宮室.
4년 여름 4월,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일어나 7일 동안이나 사람들이 색깔을 분별하지 못했다.
가을 7월, 성곽과 궁실을 건축하였다.
六年秋八月, 神雀集宮庭. 冬十月, 王命․, 伐東南, 取其地爲城邑.
6년 가을 8월, 이상한 새가 대궐에 날아 들었다.
겨울 10월, 왕이 오이와 부분노에게 명하여 태백산 동남방에 있는 해인국을 치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성읍을 만들었다.
十年秋九月, 鸞集於王臺. 冬十一月, 王命伐, 滅之, 以其地爲城邑.
10년 가을 9월, 난새가 왕대에 모였다.
겨울 11월, 왕이 부위염에게 명하여 북옥저를 격멸하고, 그 지역을 성읍으로 만들었다.
十四年秋八月, 王母薨於. 其王以太后禮葬之. 遂立神廟. 冬十月, 遣使饋方物, 以報其德.
14년 가을 8월, 왕의 어머니 유화가 동부여에서 죽었다. 그곳의 왕 금와가 그를 태후의 예로 장례지내고, 그의 신묘를 세웠다. 겨울 10월, 사신을 부여에 보내 토산물을 주어 그 은덕에 보답하였다.
十九年夏四月, 王子自與其母逃歸. 王喜之, 立爲太子. 秋九月, 王升遐, 時年四十歲. 葬, 號.
19년 여름 4월, 왕의 아들 유리가 부여로부터 그 어머니와 함께 도망해오니, 왕이 기뻐하여 태자로 삼았다.가을 9월, 왕이 붕어하였다.이 때 왕의 나이 40세였다. 용산에 장사지내고, 호를 동명성왕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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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왕편의 이야기다. 오늘 16일 주몽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유화부인이 도망가려다 금와에게 죽임을 당한다. 헐~ 이것부터가 어이가 없다. 그런데 도망쳤던 예소야와 유리는 장안에서 온 황대인에게 잡혀서 '현토'로 끌려간다. 이야기 참 '어이없게' 스토리 진행된다. 물론 5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지만서도 부여에서 도망쳐야 하는데 현토로 끌려갔다가 부여로 와서 도망치게 하려는 스토리인가?
지금 유리의 나이를 보건데 아무리 못봐도 4-5세다. 5년후면 열살이다. 열살에 고구려 왕위에 오른다고? 헐~~
맛배기로 '유리왕 본기' 를 살짝 살펴보자.
유리명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유리인데, 혹은 유류라고도 하였다. 그는 주몽의 맏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예씨이다. 에전에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에게 장가 들었는데 그녀에게 태기가 있었다. 그녀는 주몽이 떠난 뒤에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유리였다. 유리가 어렸을 때, 거리에 나가 놀면서 참새를 쏘다가 물긷는 부인의 물동이를 잘못 쏘아 깨뜨렸다. 그 부인이 꾸짖어 말하기를 "이 아이는 애비가 없어서 이렇게 논다"라고 하였다. 유리가 부끄럽게 여기고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우리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며 지금은 어디에 계십니까?"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너의 아버지는 비상한 사람이어서 나라에서 용납하지 않았기에, 남쪽 지방으로 도망하여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었다. 아버지가 떠날 때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만약 아들을 낳으면, 나의 유물이 칠각형의 돌 위에 있는 소나무 밑에 숨겨져 있다고 말하시오. 만일 이것을 발견하면 곧 나의 아들일 것이오'라고 말했다." 유리가 이 말을 듣고 바로 산골로 들어가 그것을 찾았으나 실패하고 지친 상태로 돌아왔다. 하루는 유리가 마루에 앉아 있었는데, 기둥과 주춧돌 사이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듯하여 가보니, 주춧돌이 칠각형이었다. 그는 곧 기둥 밑을 뒤져서 부러진 칼 조각을 찾아냈다. 그는 마침내 이것을 가지고 옥지·구추·도조 등의 세 사람과 함께 졸본으로 가서, 부왕을 만나 부러진 칼을 바쳤다. 왕이 자기가 가졌던 부러진 칼 조각을 꺼내어 맞추어 보니, 하나의 칼로 이어졌다. 왕이 기뻐하여 그를 태자로 삼았는데, 이 때에 와서 왕위를 잇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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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이런 이야기도 없는데... (그럼 이 이야기는 현토성으로 끌려갔을때 나오는 것일까? 그럼 예소야가 주몽에게 받은 칼 조각은 예소야가 숨기는 것일까?) 그런데 지금 드라마의 유리는 5살 - 그것도 많이 봐서 5살이다. 그리고 주몽에게 와서 그해 주몽이 죽고 왕위에 오른다. 10살이다.
2년 가을 7월, 다물후 송양의 딸을 왕비로 맞았다.
9월, 서쪽 지방으로 사냥을 나가 흰 노루를 잡았다.
겨울 10월, 이상한 새들이 대궐에 모였다.
백제 시조 온조가 왕위에 올랐다.
자... 유리왕 2년이면 11살이다. 11살에 왕비를 맞고 .. 유리와 비슷한 나이 또래인 온조 또한 백제를 세운다...
물론 백제야 '소서노'의 지휘하에 있었지만 그렇다면 비류와 온조는 10 여살의 나이에 비류백제와 온조백제를 세웠다는 이야기다. 헐~ 자.....
3년 가을 7월, 골천에 이궁을 지었다.
겨울 10월, 왕비 송씨가 죽었다. 왕이 다시 두 여자에게 장가를 들어 후취를 삼았는데, 한 사람은 화희이니 골천 사람의 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치희이니 한 나라 사람의 딸이었다.
바로 이 이야기가 그 유명한 황조가의 이야기다. 유리왕 3년 그렇다면 유리왕 12살에 최초의 서정시를 12살의 어린애가 지었다는 이야기다, 헐~~
주몽의 문제는 첫째로 유리 나이를 너무 어리게 잡았다는 거다.
둘째로 유화가 도망치다가 죽었다는 것은 (물론 증거는 없지만) 너무 금와와 유화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끌고갔다는 점이고
셋째로 부여를 한나라 속국 비스무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부여는 고조선 이후 자랑스럽게 찬란한 우리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를 띄우려다 보니 강짜를 썼다.
이런 문제 많은 '시대물'을 '사극'으로 보면 큰일난다.
최완규는 '상도'와 '허준' 혹은 '올인'처럼 시대물에 적합한 드라마 작가라는 것을 이번 '주몽'에서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사서'는 보기라도 하는 것인가? 벌써 유화를 죽여버리면 5년간의 이야기는 그럼 '유리'이야기로 끌고가려고 하는건가? 소서노와 온조, 비류의 이야기로 끌려는 건가? 그런데 문제는 '2세대들'이 너무 어리지 않은가 말이다.
이거 '사극'아니다. '시대물'이야. 이런 드라마를 '수출'한다고...
어머님 맙소사..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나라 망신 대망신이다!!!
Written by 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