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 이야기에 대하여 미국에 있는 ytn워싱턴 특파원으로 부터 아래와 같은 소식을 듣고 요코의 아버지의 의혹에 대하여 조사에 착수하였다!
요코이야기란 소설이 1986년 부터 미국에서 발간되어 한국의 역사교육에 많은 왜곡된 부분이 있어 교재로써 부적합함에도 미국의 한인청소년들의 역사교재로 널리 채택되고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전후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박해가 강하게 묘사되어 미국인들과 미국내 한인 청소년들에게 해방후 한국인의 인식에 대해 부정적 시각으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코이야기란 2차대전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열두 살 일본 소녀의 시각으로 체험한 일본의 패망당시 한국에서의 피난길에서 체험하고 목격한 이야기이다. 해방 직전, 열두 살 난 요코는 가족과 함께 조선의 나남(함경북도 청진시의 한 구역)에 살고 있다. 태평양 전쟁 패망의 조짐이 뚜렷해지자, 평화로웠던 요코의 삶 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일본이 패전하고 조선이 해방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요코는 오빠를 북한에 남겨둔 채 어머니와 언니를 따라 생사를 넘나드는 피란길에 오른다. 일본까지 가는 이들의 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험난하기만 하다. 생전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응석받이로 자란 어린 요코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아비규환이나 다를 바 없다. 일본인에 대한 무차별 테러, 인민군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아슬아슬한 상황, 폭격으로 인한 부상의 고통과 심한 굶주림…… 요코의 가족은 전쟁의 참혹한 현실과 인간성 말살의 현장과 마주하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고향 일본. 하지만 그곳의 현실은 더욱 처참하기만 하다. 피란민에 대한 일본인들의 멸시와 냉대, 폭격으로 부서진 도시의 참혹함, 쓰레기통을 뒤져 연명해야 하는 절박한 굶주림, 그리고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가족과의 이별과 절절한 슬픔. 이 모든 고난을 묵묵히 이겨낸 요코는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남을 위할 줄 아는 의젓한 아이로 성장한다.
허나 이 소설이 미국 보스톤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사로 왜곡된 한국의 역사를 인식시킨다하여 큰 논란거리로 진행되고 있다.
수잔나 박, 6개월간 투쟁 끝 수업교재 사용않기로 “평범한 주부였는데 딸 덕분에 마치 독립투사라도 된 느낌입니다.” 수잔나 박(46·뉴욕 웨스트체스터 거주)씨는 최근 미국내 학교에서 한국 역사 왜 곡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요코 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본보 2006년 12월16일자 A3면 등>에 대한 자료수집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씨가 ‘요코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순전히 딸(라이 컨트리 데이스 쿨 7학년) 아이 때문이었다. 딸이 6학년이던 지난 3월 학교 수업교재로 채택돼 두 달간 학습하게 된 ‘요코 이야기’를 읽고는 한국 역사 왜곡은 물론, 한국인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 전달을 문제로 지적하며 스스로 수업거부를 공개 선언했던 것. 부모나 주변인의 어떠한 지시나 강요 없이 딸이 스스로 택한 결정이었기에 박씨는 남편과 더불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6개월간의 투쟁 끝에 승리를 얻었다. 학교와 끈질긴 줄다리기 끝에 마침내 지난해 9월 ‘요코 이야기’를 수업교재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학교의 최종 결정을 이끌어냈던 것.
박씨의 성과는 비슷한 시기에 보스턴에서 학교와 교재 채택 문제로 갈등 중이던 한인학부모들에게도 큰 힘을 실어줘 학교의 1차 삭제 결정을 이끌어내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씨는 “히틀러나 나찌 독일장군의 딸이 이런 책을 썼다면 유대인들도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요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일본인의 만행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채 패망한 일본인의 모습을 피해자로 과장되게 묘사한 것도 문제지만 어른도 아닌 어린 학생들에게 정규학교에서 수개월씩 수업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라이 컨트리 데이스쿨에서는 벌써 13년째 이 책을 6학년 교재로 사용해오던 터였다. 박씨는 학교의 최종 승복을 받아내는데 만족하지 않고 지금도 계속해서 관련 자료 를 수집하고 있다.
저자인 요코 카와시마 왓킨스의 아버지가 마루타 실험으로 악명 높았던 731 부대 고위 간부였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보다 확실한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기모노 차림으로 오랜 세월 전국의 공·사립학교에서 강연 중인 저자가 가족사까지 거짓으로 포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에서는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한국어 번역본은 영어원본과 다 른 내용으로 쓰여진 부분이 많아 한국인들조차 이 책이 한국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뉴욕과 보스턴에서 펼쳐지는 교재 목록 삭제 운동에도 적극 동참할 예정인 박씨는“단순한 한국역사 왜곡만을 문제 삼으면 교재 목록 삭제 요청이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A2
따라서 오늘 미국으로 부터 자료조사에 대한 연락을 받아 조사에 착수하였으며, 본 일본731부대조선인피해자 진상규명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자료로 요코의 부친에대한 의혹의 가능성이 있는 일본731부대 의무소장으로 생산부장이었던 가와시마 기요시에 대해 소개한다.
1893년생으로 원적은 일본 천엽현 산부군 연소촌이다. 세균학 전문의사로 육군 군의소장으로 전 일본 관동군 제731부대 총무부장 ,제1생산부장, 제3부 부장을 역임하였다.
가와시마는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제731부대의 생산부장으로 있어서 세균무기의 대량적 생산을 조직하였다. 1941년4월부터 6월까지 총무부장 겸임으로 731부대의 마루타 공급문제를 취급하며 마루타로 생체실험을 할 목적으로 이용할 죄수를 공급받기 위하여 일본 헌병대와 특무기관들과의 연락을 지휘하였다.
제1생산부장 시에는 병균 생산공장의 책임을 맡아 페스트균, 탄저병균, 장티푸스균 , 콜레라균등을 생산하고, 그세균에 대한 전염병 치료방법을 연구하기위해 제1부 부속감옥에 수용되어 있던 마루타라고 불리는 중국인,러시아인,조선인등에 대해 생체실험을 직접 실시하여 피 실헙자들을 살해하였으며,매년 600명 정도의 죄수를 학살하였다.
1941년6월에는 731부대의 안달 야외연습장에서 15명의 마루타를 결박한뒤 페스트균 폭탄을 투하하여 살해하였다. 또한 731부대에서 행한 1942년의 중부중국의 절공지방에서 중국군대에 행한 세균 폭탄 살포에 직접 참가하여 전투용 세균인 탄저균을 약 100명의 731 특별출동대에 공급하는 임무를 직접 지휘하였다.
그밖에 1941년에 승덕지역,1940년에는 영파지역에서 중국군대에 페스트균을 사용하였다. 이상이 가와시마 기요시가 일본731부대에 근무하면서 저질런 엄청난 만행의 죄상 이다!
가와시마 기요시가 소련군에 체포된 경위와 하바르스크에서 6년형의 재판판결을 받고 수용된 사실과 그 가족의 철수행적및 일본귀국후의 행적과 1986년 사망원인 등에 대한 규명에 대해서는 추후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상이 일본731부대 조선인피해자 진상규명위원회가 요코의 부친으로 의혹이 되는가와시마 기요시에 대한 조사자료를 우선 미국에 통보할것이며, 일본패망시 731부대원의 철수행적과 가와시마 가족의 피난행적등에 대하여서는 사실관계를 더 조사하여 파악한뒤 추가로 통보하여주고 요코이야기를 읽어본뒤 왜곡된 부분과 사실관계를 규명하여 한국인의 시각에서 본 요코 이야기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예정이다. 2007-01-08 15:01:18
요코 이야기!
요코 이야기에 대하여 미국에 있는 ytn워싱턴 특파원으로 부터 아래와 같은 소식을 듣고 요코의 아버지의 의혹에 대하여 조사에 착수하였다!
요코이야기란 소설이 1986년 부터 미국에서 발간되어 한국의 역사교육에 많은 왜곡된 부분이 있어 교재로써 부적합함에도 미국의 한인청소년들의 역사교재로 널리 채택되고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전후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박해가 강하게 묘사되어 미국인들과 미국내 한인 청소년들에게 해방후 한국인의 인식에 대해 부정적 시각으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코이야기란 2차대전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열두 살 일본 소녀의 시각으로 체험한 일본의 패망당시 한국에서의 피난길에서 체험하고 목격한 이야기이다. 해방 직전, 열두 살 난 요코는 가족과 함께 조선의 나남(함경북도 청진시의 한 구역)에 살고 있다. 태평양 전쟁 패망의 조짐이 뚜렷해지자, 평화로웠던 요코의 삶 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일본이 패전하고 조선이 해방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요코는 오빠를 북한에 남겨둔 채 어머니와 언니를 따라 생사를 넘나드는 피란길에 오른다. 일본까지 가는 이들의 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험난하기만 하다. 생전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응석받이로 자란 어린 요코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아비규환이나 다를 바 없다. 일본인에 대한 무차별 테러, 인민군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아슬아슬한 상황, 폭격으로 인한 부상의 고통과 심한 굶주림…… 요코의 가족은 전쟁의 참혹한 현실과 인간성 말살의 현장과 마주하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고향 일본. 하지만 그곳의 현실은 더욱 처참하기만 하다. 피란민에 대한 일본인들의 멸시와 냉대, 폭격으로 부서진 도시의 참혹함, 쓰레기통을 뒤져 연명해야 하는 절박한 굶주림, 그리고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가족과의 이별과 절절한 슬픔. 이 모든 고난을 묵묵히 이겨낸 요코는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남을 위할 줄 아는 의젓한 아이로 성장한다.
허나 이 소설이 미국 보스톤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사로 왜곡된 한국의 역사를 인식시킨다하여 큰 논란거리로 진행되고 있다.
수잔나 박, 6개월간 투쟁 끝 수업교재 사용않기로 “평범한 주부였는데 딸 덕분에 마치 독립투사라도 된 느낌입니다.” 수잔나 박(46·뉴욕 웨스트체스터 거주)씨는 최근 미국내 학교에서 한국 역사 왜 곡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요코 이야기(So Far From The Bamboo Grove)'<본보 2006년 12월16일자 A3면 등>에 대한 자료수집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씨가 ‘요코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순전히 딸(라이 컨트리 데이스 쿨 7학년) 아이 때문이었다. 딸이 6학년이던 지난 3월 학교 수업교재로 채택돼 두 달간 학습하게 된 ‘요코 이야기’를 읽고는 한국 역사 왜곡은 물론, 한국인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 전달을 문제로 지적하며 스스로 수업거부를 공개 선언했던 것. 부모나 주변인의 어떠한 지시나 강요 없이 딸이 스스로 택한 결정이었기에 박씨는 남편과 더불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결국 6개월간의 투쟁 끝에 승리를 얻었다. 학교와 끈질긴 줄다리기 끝에 마침내 지난해 9월 ‘요코 이야기’를 수업교재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학교의 최종 결정을 이끌어냈던 것.
박씨의 성과는 비슷한 시기에 보스턴에서 학교와 교재 채택 문제로 갈등 중이던 한인학부모들에게도 큰 힘을 실어줘 학교의 1차 삭제 결정을 이끌어내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씨는 “히틀러나 나찌 독일장군의 딸이 이런 책을 썼다면 유대인들도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요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일본인의 만행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채 패망한 일본인의 모습을 피해자로 과장되게 묘사한 것도 문제지만 어른도 아닌 어린 학생들에게 정규학교에서 수개월씩 수업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라이 컨트리 데이스쿨에서는 벌써 13년째 이 책을 6학년 교재로 사용해오던 터였다. 박씨는 학교의 최종 승복을 받아내는데 만족하지 않고 지금도 계속해서 관련 자료 를 수집하고 있다.
저자인 요코 카와시마 왓킨스의 아버지가 마루타 실험으로 악명 높았던 731 부대 고위 간부였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보다 확실한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기모노 차림으로 오랜 세월 전국의 공·사립학교에서 강연 중인 저자가 가족사까지 거짓으로 포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에서는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한국어 번역본은 영어원본과 다 른 내용으로 쓰여진 부분이 많아 한국인들조차 이 책이 한국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뉴욕과 보스턴에서 펼쳐지는 교재 목록 삭제 운동에도 적극 동참할 예정인 박씨는“단순한 한국역사 왜곡만을 문제 삼으면 교재 목록 삭제 요청이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A2
따라서 오늘 미국으로 부터 자료조사에 대한 연락을 받아 조사에 착수하였으며, 본 일본731부대조선인피해자 진상규명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자료로 요코의 부친에대한 의혹의 가능성이 있는 일본731부대 의무소장으로 생산부장이었던 가와시마 기요시에 대해 소개한다.
1893년생으로 원적은 일본 천엽현 산부군 연소촌이다. 세균학 전문의사로 육군 군의소장으로 전 일본 관동군 제731부대 총무부장 ,제1생산부장, 제3부 부장을 역임하였다.
가와시마는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제731부대의 생산부장으로 있어서 세균무기의 대량적 생산을 조직하였다. 1941년4월부터 6월까지 총무부장 겸임으로 731부대의 마루타 공급문제를 취급하며 마루타로 생체실험을 할 목적으로 이용할 죄수를 공급받기 위하여 일본 헌병대와 특무기관들과의 연락을 지휘하였다.
제1생산부장 시에는 병균 생산공장의 책임을 맡아 페스트균, 탄저병균, 장티푸스균 , 콜레라균등을 생산하고, 그세균에 대한 전염병 치료방법을 연구하기위해 제1부 부속감옥에 수용되어 있던 마루타라고 불리는 중국인,러시아인,조선인등에 대해 생체실험을 직접 실시하여 피 실헙자들을 살해하였으며,매년 600명 정도의 죄수를 학살하였다.
1941년6월에는 731부대의 안달 야외연습장에서 15명의 마루타를 결박한뒤 페스트균 폭탄을 투하하여 살해하였다. 또한 731부대에서 행한 1942년의 중부중국의 절공지방에서 중국군대에 행한 세균 폭탄 살포에 직접 참가하여 전투용 세균인 탄저균을 약 100명의 731 특별출동대에 공급하는 임무를 직접 지휘하였다.
그밖에 1941년에 승덕지역,1940년에는 영파지역에서 중국군대에 페스트균을 사용하였다. 이상이 가와시마 기요시가 일본731부대에 근무하면서 저질런 엄청난 만행의 죄상 이다!
가와시마 기요시가 소련군에 체포된 경위와 하바르스크에서 6년형의 재판판결을 받고 수용된 사실과 그 가족의 철수행적및 일본귀국후의 행적과 1986년 사망원인 등에 대한 규명에 대해서는 추후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상이 일본731부대 조선인피해자 진상규명위원회가 요코의 부친으로 의혹이 되는가와시마 기요시에 대한 조사자료를 우선 미국에 통보할것이며, 일본패망시 731부대원의 철수행적과 가와시마 가족의 피난행적등에 대하여서는 사실관계를 더 조사하여 파악한뒤 추가로 통보하여주고 요코이야기를 읽어본뒤 왜곡된 부분과 사실관계를 규명하여 한국인의 시각에서 본 요코 이야기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예정이다. 2007-01-08 15: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