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접할 수 있는 초기의 재즈 레코딩 들은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초반의 것 들이다.트럼펫 연주자이자 보컬리스트인 루이 암스트롱은 이시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그는 핫 파이브 그리고 핫 세븐이라는 그룹들과 연주하였으며 이 그룹들과 관련한 어떠한 레코딩들도 추천할 만 하다.이 시기의 그룹들은 모두 뉴올리온즈나 딕시랜드 재즈의 영향을 받았다.
뉴올리온즈 와 딕시랜드(1910년대)
초기 뉴올리언즈 밴드는 듣는이를 트럼펫과 트럼본 그리고 클라리넷 소리로 끌어들이는 것이 마치 고적대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뉴 올리언저 사운드"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는 시드니 비셋, 젤리 롤 모튼, 키드 오리 등이 있는데 루이 암스트롱이라는 이름의 젊은 트럼펫 주자가 처음으로 활약한 곳이 바로 키드 오리 밴드에서 였다. 이 새로운 재즈는 주로 뉴 올리언즈에 있는 스트로빌... 음... 그러니까, 말하자면 "심야생활"과 관련된 장소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1917년 시위원들이 스트로빌을 셰쇄하자 재즈 뮤지션들은 미국 전지역의 수많은 재즈 클럽으로 흩어져야만 했는데 이로인해 재즈는 전국적인 현상으로 확산될 준비를 갖추게 된 셈이다. RCA 빅터는 1917년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밴드의(Tiger Rag)를 발매함으로서 재즈를 최초로 녹음한 레이블로 기록되게 되었다.
가수로서의 암스트롱은 보컬리스트가 즉흥적인 곡조를 부르기 위해 의미없는 음절들을 만들어내는 스캣(scat)의 창시자로 인식되고 있다.
이 시대에 유행했던 다른 유형의 곡들은 랙타임(ragtime),할렘스트라이드(harlem stride),부기우기(boogie-woogie)등을 포함한 피아노재즈의 다양한 형식들이 있었다.
Big band
재즈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바로 스윙과 함께 하던 시기였다. 깊은 경제공황의 수렁에도 불구하고 모든 미국인들은 스윙에 흠뻑 취했으며 RCA 빅터는 수백곡의 히트 싱글을 녹음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재즈는 소위 두번째의 네번째 박자에 강세를 두는 '두박자' 음악이었는데 스윙은 모든 네 박자에 강세를 두는 전형적인 '포비트 재즈(Four-Beat Jazz)'를 탄생시키게 된다. '스윙의 왕' 베니 굿맨의 성공을 시발점으로 글렌 밀러, 아티 쇼, 헤리 제임스, 잭 티어가든, 듀크 엘리언, 찰리 바넷 등이 이 시대를 수놓게 되는데 이 시대는 동시에 콜맨 호킨스, 진 쿠르파, 베니 카터, 로이 엘드릿지와 같은 솔리스트들의 시대이기도 했다. 레코드의 인기도 크게 증가했는데 이는 전 미국에 빅 밴드 사운드를 방송했던 라디오 생방송에 힘입은 바가 컸으며 점차 열렬한 추종자들을 확보하기 시작합니다. 아울러 30년대 재즈는 기악음악이 지배적이었지만 가수 역시도 이들 밴드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당시 빌리 할리데이는 아티 쇼 밴드에 소속되어 RCA 빅터와 녹음을 남겼으며 토미 도시는 이후 그 인기가 치솟게 되는 한 젊은 남성 보컬리스트와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프랭크시나트라이다.
Be bob
1940년대 bebob의 탄생은 종종 모던 재즈의 출발을 기록하는 것으로 인식 된다.40년대 초 많은 밴드 리더들과 연주자들은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당시 아티 쇼는 미 해군 소속이었으며 글렌 밀러는 미공군 대위가 된다. 사실 2차 세계대전은 재즈를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는데 당시 스윙은 재즈의 제왕이었지만 아울러 뉴욕, 특히 할렘 52번가를 중심으로한 새로운 사운드가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 바로 비밥이다. 이 이름은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의 노래하는 스타일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비밥은 음계에서 특정한 몇 음을 반음씩 내려서 연주하는 '블루노트'를 사용하는데 여기에 빠른 악절과 박자를 결합시켜 비밥의 독특한 사운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40년대 비밥의 즉흥연주 (우연히 만들어진 연주)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데 길레스피와 더불어 알토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 피아니스트 텔로니오스 몽크, 드러머 케니 클락은 이 스타일을 창안해내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다
Cool jazz
스테레오 그리고 12인치 LP 시대의 도래는 새로운 재즈 사운드를 몰고 왔는데 그것은 보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릴렉스한 '쿨' 스타일이라고 소개된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이다. RCA 빅터는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과 존 루이스, 찰스 밍거스 6중주단과 50년대 재즈의 고전들을 녹음했으며 테너 색소폰 주자 알 콘과 주트 심즈, 제리 멀리건, 데이브 브루벡은 이 스타일의 다른 대표주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 50년대 사운드를 다른 말로 '서해안 재즈(West-Coast Jazz)'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 스타일을 연주하는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헐리우드스튜디오에서 활약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시대는 절제되고 차가운 그리고 매우 서정적인 사운드의 피아니스트겸 작곡가 빌 에반스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쿨스타일의 많은 그룹들은 코드진행의 개요를 나타내기위해 피아노를 이용하지 않는대신 호른 악기들-일반적으로 섹소폰 과 트럼펫-을 이용한 대위법과 화성에 의존한다.이러한 유파에서 발전하여피아노가 리드하는 그룹들로 데이브 그루벡(Dave Brubeck),레니 트리스타노(Lenni Tristano)의 그룹들과 모던 재즈 쿼텟(MJQ)을 들 수 있는데이들은 클래식 음악의 소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재즈에 클래식음악을 도입한 시도를 흔히들 제3의 조류 라고 부른다.
Hard bob
비방의 확장이든 쿨에대한 반발이든 하드밥이라고 알려진 음악 스타일은 1950년대 발전 하였다.
이 스타일은 비밥에서 기술적인 것을 요구하며 멜로디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지만그 강렬함까지 양보한 것은 아니다.
이는 불르스나 가스펜 음악에서 보여지는 기운들을 지니면서도 비밥의 리드믹한 연주를 유지하면서 가능할 수 있었다.
60년대 재즈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 주된 이유는 록 음악의 대단한 인기와 엘비스, 처비 첵커, 그리고 비치 보이스 레코드의 선풍적인 히트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뉴욕을 중심으로 재즈 뮤지션의 신세대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들은 재즈의 근원에 더욱 접근하였으며 연주상에 있어서 기교적인 완벽성을 추구하게 된다.
이 시기는 테너 섹소폰주자 소니 롤린스와 존 콜트레인, 트럼펫 주자 리 모건 그리고 드러머 맥스 로치와 같은 뮤지션들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이들의 음악인 하드 밥은 다양한 리듬과 결합하여 다이나믹하고 격렬하여 정성된 스타일의 재즈를 탄생시킨다.
아울러 같은 시기에 브라질 음악은 재즈로 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보사노바는 위대한 안토니오카를로스 조빔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이 물결의 중심에는 역시 섹소포니스트 스탄 게츠와 그 밖에 많은 60년대 재즈 뮤지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의 자유스럽고 편안한 즉흥연주는 이전에 결코 들을 수 없는 매력으로 가득차 있던 것이다.
Free&avant garde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동일한 시기를 거치면서도 몇몇 음악가들은 재즈를 보다 모험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갔다.
프리재즈와 아방가드라는 용어는 전통적인 형식,멜로디,하모니,리듬등을 상당부분 확장하거나 때로는 폐기하는 그러한 시도들을 묘사하기 위해 종종 사용됬다.
이러한 스타일들은 한때 프리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기도 했다.아방가드운동의 다른 주요한 인물로 피아니스트 세실 테일러(Cecil Tayler)가있다.
그의 연주는 다른 어떤 하모니와 리듬의 경향에도 근거하고 있지 않는 듯한 연속적 음정의 불협화음과 빠른 기술적 악절의 진행들을 함축한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Post bob
Post란 단어가 모호한 것두 있겠지만 포스트밥을 하나의 쟝르이기보다 성향에 가깝다고 한다.
하드밥의 용어가 정점에 달햇던 1950년대 이후 밥의 언어로 밥의 언어를 초월하려고 했던 다양한 흐름들을 post란 언어로 법주화 시키면서
그 분기점 즉 단절의 계기를 마일즈의 50년대 퀀텟에서 찾고 있고 모달의 출현을 그 경계로삼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밥의 언어안에서 진행된 그 내부의 다양한 해체적 흐름들을 통칭하는 언어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Fusion
재즈는 갑작스럽게 모든 문화에 그 문화를 열어 놓게 된다. 일본에서부터 유럽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아프리카로부터 인도에 이르기까지 재즈는 오늘날의 '월드 뮤직'이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70 년대 뮤지션들에게 재즈는 너무도 엄격하고 고정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연주기법 을 찾기 시작했 는데 오넷 콜맨, 롤란드 커크, 마일즈 데이비스 등에 의해 주도되어진 당시의 새로운 재즈는 어떠한 구조로부터도 자유로왔던 것이다. 즉 템포에서 변화를 주기 시작했고 록으로부터 빌려운 사운드와 리듬 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전자 악기를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재즈와 록의 '융합(Fusion)'은 70중반의 재즈계를 지배했으며 블러드 스윗 티어즈나 시카고와 같은 밴드들은 대단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동시에 존 맥러플린과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허비핸콕, 그룹 웨더 리퍼트 등은 전자 사운드를 전면에 내걸고 이 퓨전 사운드를 대표하는 밴드로 활약하게 됩니다.
post modern jazz
90년대 재즈는 팝 음악으로부터영향받은 새로운 컨템포러리 크로스 오버 스타일을 우리에게소개 해주고 있습니다. 이 음악은 즉흥적인 솔로의 중요성보다는 멜로디에 대한 강조로다시 돌아서 고 있는데 이로 인해 스파이로 자이라, 케니 G, 퀸시존스 등이 히트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한편 90년에 모던 재즈 사운드는 새로운 방향에 대한 모색만큼이나 전통적인 스타일에 대한 계승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마커스로버츠, 로이 하그로브, 그리고 조 라바노와 같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습 니다. 오늘날 재즈는 모든 음악으로부터 그 방향 을 모색해왔고 클럽이나 콘서트 홀, 라디오, 음반 등을 통해 광범위한 그리고 진지한 팬들을 확보한 음악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post modern jazz도 하나의 장르라기 보다는 음악의 성향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재즈
Early Jazz
쉽게 접할 수 있는 초기의 재즈 레코딩 들은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초반의 것 들이다.트럼펫 연주자이자 보컬리스트인 루이 암스트롱은 이시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그는 핫 파이브 그리고 핫 세븐이라는 그룹들과 연주하였으며 이 그룹들과 관련한 어떠한 레코딩들도 추천할 만 하다.이 시기의 그룹들은 모두 뉴올리온즈나 딕시랜드 재즈의 영향을 받았다.
뉴올리온즈 와 딕시랜드(1910년대)
초기 뉴올리언즈 밴드는 듣는이를 트럼펫과 트럼본 그리고 클라리넷 소리로 끌어들이는 것이 마치 고적대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뉴 올리언저 사운드"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는 시드니 비셋, 젤리 롤 모튼, 키드 오리 등이 있는데 루이 암스트롱이라는 이름의 젊은 트럼펫 주자가 처음으로 활약한 곳이 바로 키드 오리 밴드에서 였다. 이 새로운 재즈는 주로 뉴 올리언즈에 있는 스트로빌... 음... 그러니까, 말하자면 "심야생활"과 관련된 장소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1917년 시위원들이 스트로빌을 셰쇄하자 재즈 뮤지션들은 미국 전지역의 수많은 재즈 클럽으로 흩어져야만 했는데 이로인해 재즈는 전국적인 현상으로 확산될 준비를 갖추게 된 셈이다. RCA 빅터는 1917년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밴드의(Tiger Rag)를 발매함으로서 재즈를 최초로 녹음한 레이블로 기록되게 되었다.
가수로서의 암스트롱은 보컬리스트가 즉흥적인 곡조를 부르기 위해 의미없는 음절들을 만들어내는 스캣(scat)의 창시자로 인식되고 있다.
이 시대에 유행했던 다른 유형의 곡들은 랙타임(ragtime),할렘스트라이드(harlem stride),부기우기(boogie-woogie)등을 포함한 피아노재즈의 다양한 형식들이 있었다.
Big band
재즈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은 바로 스윙과 함께 하던 시기였다. 깊은 경제공황의 수렁에도 불구하고 모든 미국인들은 스윙에 흠뻑 취했으며 RCA 빅터는 수백곡의 히트 싱글을 녹음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재즈는 소위 두번째의 네번째 박자에 강세를 두는 '두박자' 음악이었는데 스윙은 모든 네 박자에 강세를 두는 전형적인 '포비트 재즈(Four-Beat Jazz)'를 탄생시키게 된다. '스윙의 왕' 베니 굿맨의 성공을 시발점으로 글렌 밀러, 아티 쇼, 헤리 제임스, 잭 티어가든, 듀크 엘리언, 찰리 바넷 등이 이 시대를 수놓게 되는데 이 시대는 동시에 콜맨 호킨스, 진 쿠르파, 베니 카터, 로이 엘드릿지와 같은 솔리스트들의 시대이기도 했다. 레코드의 인기도 크게 증가했는데 이는 전 미국에 빅 밴드 사운드를 방송했던 라디오 생방송에 힘입은 바가 컸으며 점차 열렬한 추종자들을 확보하기 시작합니다. 아울러 30년대 재즈는 기악음악이 지배적이었지만 가수 역시도 이들 밴드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당시 빌리 할리데이는 아티 쇼 밴드에 소속되어 RCA 빅터와 녹음을 남겼으며 토미 도시는 이후 그 인기가 치솟게 되는 한 젊은 남성 보컬리스트와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프랭크 시나트라이다.
Be bob
1940년대 bebob의 탄생은 종종 모던 재즈의 출발을 기록하는 것으로 인식 된다.40년대 초 많은 밴드 리더들과 연주자들은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당시 아티 쇼는 미 해군 소속이었으며 글렌 밀러는 미공군 대위가 된다. 사실 2차 세계대전은 재즈를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는데 당시 스윙은 재즈의 제왕이었지만 아울러 뉴욕, 특히 할렘 52번가를 중심으로한 새로운 사운드가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 바로 비밥이다. 이 이름은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의 노래하는 스타일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비밥은 음계에서 특정한 몇 음을 반음씩 내려서 연주하는 '블루노트'를 사용하는데 여기에 빠른 악절과 박자를 결합시켜 비밥의 독특한 사운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40년대 비밥의 즉흥연주 (우연히 만들어진 연주)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데 길레스피와 더불어 알토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 피아니스트 텔로니오스 몽크, 드러머 케니 클락은 이 스타일을 창안해내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다
Cool jazz
스테레오 그리고 12인치 LP 시대의 도래는 새로운 재즈 사운드를 몰고 왔는데 그것은 보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릴렉스한 '쿨' 스타일이라고 소개된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이다. RCA 빅터는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과 존 루이스, 찰스 밍거스 6중주단과 50년대 재즈의 고전들을 녹음했으며 테너 색소폰 주자 알 콘과 주트 심즈, 제리 멀리건, 데이브 브루벡은 이 스타일의 다른 대표주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 50년대 사운드를 다른 말로 '서해안 재즈(West-Coast Jazz)'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 스타일을 연주하는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헐리우드 스튜디오에서 활약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시대는 절제되고 차가운 그리고 매우 서정적인 사운드의 피아니스트겸 작곡가 빌 에반스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쿨스타일의 많은 그룹들은 코드진행의 개요를 나타내기위해 피아노를 이용하지 않는대신 호른 악기들-일반적으로 섹소폰 과 트럼펫-을 이용한 대위법과 화성에 의존한다.이러한 유파에서 발전하여피아노가 리드하는 그룹들로 데이브 그루벡(Dave Brubeck),레니 트리스타노(Lenni Tristano)의 그룹들과 모던 재즈 쿼텟(MJQ)을 들 수 있는데이들은 클래식 음악의 소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재즈에 클래식음악을 도입한 시도를 흔히들 제3의 조류 라고 부른다.
Hard bob
비방의 확장이든 쿨에대한 반발이든 하드밥이라고 알려진 음악 스타일은 1950년대 발전 하였다.
이 스타일은 비밥에서 기술적인 것을 요구하며 멜로디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지만그 강렬함까지 양보한 것은 아니다.
이는 불르스나 가스펜 음악에서 보여지는 기운들을 지니면서도 비밥의 리드믹한 연주를 유지하면서 가능할 수 있었다.
60년대 재즈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 주된 이유는 록 음악의 대단한 인기와 엘비스, 처비 첵커, 그리고 비치 보이스 레코드의 선풍적인 히트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뉴욕을 중심으로 재즈 뮤지션의 신세대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들은 재즈의 근원에 더욱 접근하였으며 연주상에 있어서 기교적인 완벽성을 추구하게 된다.
이 시기는 테너 섹소폰주자 소니 롤린스와 존 콜트레인, 트럼펫 주자 리 모건 그리고 드러머 맥스 로치와 같은 뮤지션들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이들의 음악인 하드 밥은 다양한 리듬과 결합하여 다이나믹하고 격렬하여 정성된 스타일의 재즈를 탄생시킨다.
아울러 같은 시기에 브라질 음악은 재즈로 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보사노바는 위대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이 물결의 중심에는 역시 섹소포니스트 스탄 게츠와 그 밖에 많은 60년대 재즈 뮤지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의 자유스럽고 편안한 즉흥연주는 이전에 결코 들을 수 없는 매력으로 가득차 있던 것이다.
Free&avant garde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동일한 시기를 거치면서도 몇몇 음악가들은 재즈를 보다 모험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갔다.
프리재즈와 아방가드라는 용어는 전통적인 형식,멜로디,하모니,리듬등을 상당부분 확장하거나 때로는 폐기하는 그러한 시도들을 묘사하기 위해 종종 사용됬다.
이러한 스타일들은 한때 프리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기도 했다.아방가드운동의 다른 주요한 인물로 피아니스트 세실 테일러(Cecil Tayler)가있다.
그의 연주는 다른 어떤 하모니와 리듬의 경향에도 근거하고 있지 않는 듯한 연속적 음정의 불협화음과 빠른 기술적 악절의 진행들을 함축한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Post bob
Post란 단어가 모호한 것두 있겠지만 포스트밥을 하나의 쟝르이기보다 성향에 가깝다고 한다.
하드밥의 용어가 정점에 달햇던 1950년대 이후 밥의 언어로 밥의 언어를 초월하려고 했던 다양한 흐름들을 post란 언어로 법주화 시키면서
그 분기점 즉 단절의 계기를 마일즈의 50년대 퀀텟에서 찾고 있고 모달의 출현을 그 경계로삼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밥의 언어안에서 진행된 그 내부의 다양한 해체적 흐름들을 통칭하는 언어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Fusion
재즈는 갑작스럽게 모든 문화에 그 문화를 열어 놓게 된다. 일본에서부터 유럽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아프리카로부터 인도에 이르기까지 재즈는 오늘날의 '월드 뮤직'이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70 년대 뮤지션들에게 재즈는 너무도 엄격하고 고정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연주기법 을 찾기 시작했 는데 오넷 콜맨, 롤란드 커크, 마일즈 데이비스 등에 의해 주도되어진 당시의 새로운 재즈는 어떠한 구조로부터도 자유로왔던 것이다. 즉 템포에서 변화를 주기 시작했고 록으로부터 빌려운 사운드와 리듬 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전자 악기를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재즈와 록의 '융합(Fusion)'은 70중반의 재즈계를 지배했으며 블러드 스윗 티어즈나 시카고와 같은 밴드들은 대단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동시에 존 맥러플린과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허비핸콕, 그룹 웨더 리퍼트 등은 전자 사운드를 전면에 내걸고 이 퓨전 사운드를 대표하는 밴드로 활약하게 됩니다.
post modern jazz
90년대 재즈는 팝 음악으로부터영향받은 새로운 컨템포러리 크로스 오버 스타일을 우리에게소개 해주고 있습니다. 이 음악은 즉흥적인 솔로의 중요성보다는 멜로디에 대한 강조로다시 돌아서 고 있는데 이로 인해 스파이로 자이라, 케니 G, 퀸시존스 등이 히트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한편 90년에 모던 재즈 사운드는 새로운 방향에 대한 모색만큼이나 전통적인 스타일에 대한 계승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마커스 로버츠, 로이 하그로브, 그리고 조 라바노와 같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습 니다. 오늘날 재즈는 모든 음악으로부터 그 방향 을 모색해왔고 클럽이나 콘서트 홀, 라디오, 음반 등을 통해 광범위한 그리고 진지한 팬들을 확보한 음악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post modern jazz도 하나의 장르라기 보다는 음악의 성향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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