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 허니와 클로버

최용진200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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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젠 이 말 하는 것도 지겹네..ㅎ 다음부턴 불친절하게 안 하고 글 쓰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나 소설, 애니메이션, 만화 등은 좋아하는데 유독 일본 드라마는 싫다. 소소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을 담는 아기자기한 일본 영화나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방법으로 일본 전통에 도전하는 은유를 말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드라마는 정말 엉뚱하기 짝이 없다. 일본 드라마는 아주 묘한 신파를 담는데, 국민적 정서가 달라서인지 공감하기 어려운 장면에서 심각함의 극치를 달리다가 끝내는 이유없이 행복해진다. 사실, 한국 드라마나 미국 드라마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따지고 보면 그냥 드라마가 싫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오이 유우가 나온다길래 냉큼 보러 갔던 [허니와 클로버]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꼭 케이블에서 보는 일본 드라마 같아서 싫었다. 풋풋한 청춘들이 '우리는 바로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라고 아주 대놓고 시원스럽게 소리치는, 가슴 뽀개지게 뿌듯한 드라마 같은 영화이다. 원작 만화 열 권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여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영화는 제목의 상큼함과는 달리, 설익은 풋사과처럼 떫은 맛이 난다. 일단 크게 두 가지가 맘에 안 들었는데 차례로 열거하겠다.

 

 

첫째로 맘에 안 들었던 점은 116분 내내 한 번도 진중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청춘 영화답게 116분 내내 자의식 과잉으로 진지함은 넘쳐난다. 진중하지 못한 진지함은 마음에 와닿질 않는다. 전체적으로 영화에 페이드 아웃이 너무 많다. 인물이 인물을 만나 무언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치기 전에 의도적으로 화면이 닫히고 장면이 전환된다. 그들은 그저 안부를 묻기나 하고 조금 주제에 걸맞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다가 단편적인 대답에 그치며 다음 시퀀스에 밀려 허무하게 사라진다. 길게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 도피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덕분에 영화는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다. 본질에 대한 이야기는 최대한 피한 채 피상적인 것들에서 스쳐가는 청춘의 감정들을 잡으려 했다면 분명 실패라고 말해주고 싶다. 전혀 진중함 없이 너무 토막으로 끊어간다. 그리고 그러지 말아야 할 장면에서 자의식이 넘쳐난다. 바닷가에 가서 청춘을 찬미하듯 대놓고 소리치는 다섯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왜 이와이 슌지의 [릴리슈슈의 모든것] 중 오키나와 여행 장면이 그토록 멋진 장면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둘째로,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 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리얼리티가 전혀 없다. 영화 팜플릿에 써 있는 캐릭터 설명을 보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영화 보기 전에 시간 남아서 팜플릿 보다가 불운을 감지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방랑자 - 모리타, 에스라인의 일편 단심..누구, 이런 식은 어디서든 많이 보아왔던 스테레오 타입들. 게다가 그 인물들은 예술을 공부하면서도 의외로 편견이 심하다. 물론, 정확히는 극작가나 영화 감독이 그러했을 것이다. 미술에 어떤 진지한 견해나 식견이 없다고 생각하고 싶다. 하구(아오이 유우)에게 비엔날레 출품을 권하는 어떤 여교수는 하구가 추상화를 그리면 입상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일반화를 그리라고 충고한다. 물론, 실제로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하구의 친척인 교수가 추상화를 그리는 것이 마치 세속적인 것에 물들지 않는 순수한 행위인 것처럼 얘기하는 데에 있다. 천연덕스럽게 여교수에게 아직은 하구에게 꿈을 꾸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도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하지만 그 장면을 보는 나는 너그러운 웃음을 지을 수 없었다. 추상화를 그리면 꿈을 꾸는 것이고, 아니면 세속의 길을 걷는 건가? 그런 얄팍한 이분으로 이토록 진지해져도 되는 건가? 다음 예시는 더욱 끔찍하다. 문제의 '자유로운 영혼의 방랑자 - 모리타'군은 사실 굉장히 재능이 넘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하구의 그림에서 자극을 받아 거대한 목조 조각을 완성했는데 놀랍게도 5백만엔에 팔리게 된다. 하구가 옆에 와서 가격을 한 번 보고 모리타를 한 번 본다. 마치 미술품을 비싸게 팔아먹는 것은 타락의 길인 것처럼 꼬나본다. 미술 전시회와 작품의 판매라는 것은 또 다른 편견의 피해자인 미술 비지니스의 두 게이 브라더스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만다. (아직도 동성애자를 이런 식으로 등장시키는 영화가 있다니!)

 

 

영화에 몰입이 어려워서 자꾸 딴 생각이 들었다. 아오이 유우가 연기한 하구는 말 그대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캐릭터이다. 천재들이 항상 그렇게 멍하고 어눌한 것만은 아닐텐데, (이것도 스테레오 타입이다.) 아무튼 이 천재는 슬럼프에 빠져서 거의 헤어나오지 못하는 동물과도 같은 습성을 보여준다. 그녀를 좋아하는 주인공 다케모토와 모리타는 그녀의 슬럼프를 깨뜨리기 위해 살벌한 노력들을 한다. 모리타는 하구에게 자신의 5백만엔짜리 조각을 불태우는 것을 보여준다. 우유부단하여 영화 내내 무엇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답답해 마지 않았던 우리의 주인공 다케모토는 역시 그답게,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자아성찰을 하느라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쏘다니다 거의 죽을 것 같은 모습으로 하구 앞에 나타난다. 그 순간 문득 아, 저런 사람을 사랑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지간한 자극으로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꾸준하면서도 더욱 자극적인 이벤트로 기쁘게 해주어야만 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하구는 그런 인물이었다. 영화관을 나서며 여친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참 색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본다며 웃었다. 색다른 시각이 아니다. 그저 말했듯 영화에 몰입이 안 되서 딴 생각이 든 것 뿐이었다.  

 

 

청춘은 [허니와 클로버]에서 보듯 그렇게 싱그러운 것만은 아니다. 단편적인 조각들로 일관하기엔 청춘이란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한 면이 많다. 가슴 아리는 정도의 아픔만을 열거하면 족히 나타낼 수 있는 얄팍한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시절, 그러나 그 어떤 추억과 경험도 절대 쓸모 없는 것이 하나도 없는, 그것이 20대이고 청춘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