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에서는 ‘요코 이야기’(원제목: 대나무 숲 저 멀리서)라는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다. 1866년 출판된 이 책은 저자 스스로 [일본판 안네의 일기]라고 자화자찬하며 홍보한 덕인지 모르겠지만 미국 전역에서 중학교 교재나 추천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어려웠던 시절 상상하기 어려운 고난을 이겨낸 한 소녀의 이야기는 미국 학생들에게 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실제로 `피스 투모로' '피스 애비' 같은 평화운동단체의 핵심 멤버이기도 하다.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요코가 "나는 가는 곳마다 `친절(kind)'과 `미소(smile)'를 외쳤습니다. 지난 60년간을 미소와 친절을 위해 바쳤습니다. 나에겐 적이 없지요. 그게 바로 평화입니다."라며 자신의 일제 말기 피난담이라는데, 누가 그 내용을 의심하겠는가?
그러나 예쁘다고 다 착한 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쓰레기도 잘 덮어 놓으면 깨끗해 보이고 걸레도 잘 빨면 덮고 잘 수 있다. 연못 가득히 아름답게 핀 연꽃을 보면서 누가 시궁창을 생각하겠는가? 호수 위를 아름답게 떠다니는 백조를 보면서 누가 물밑을 헤집는 물갈퀴를 생각하겠는가? 그러나 진실이 없이도 얼마든지 예뻐 보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요코는 무엇보다 자신이 한국인들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고백과 함께 이 책이 평화에 대한 책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제 당시 한국인들이 선량한 일본인들을 학대하고 성폭행을 일삼은 것처럼 묘사하여 미국 청소년들의 한국 인식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아시아 역사를 접한 적이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보게 되는 미국 중학생들은 잔인하고 냉정하게 묘사되어 있는 한국인들에게 나쁜 인상을 갖게 한다. 심지어 2차 대전 중 가해자는 ‘독일과 한국’이라고 말하는 학생들마저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요코이야기'가 잘못됐다고 항의하는 한 한국인 유학생에게 요코는 "사과를 원한다면 제가 일본 정부를 대신해 사과하겠습니다. 이제 마음이 편해졌습니까? 당신이 한국으로 돌아가 교사가 되든 미화원이 되든 어린 학생들에게 증오를 가르친다면 평화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인들을 괴롭힌 것은 일본 정부와 군인들이지요. 일본 시민들은 한국인들을 특별히 괴롭혔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뜻하지 않은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난장판에 힘없이 던져진 거지요. 세상을 끔찍하게 만드는 건 '나쁜 어른들'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천사 요코'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요코는 늘 "일본 정부는 일제 때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 고통을 준 사실을 역사교과서를 통해 정직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교과서같은 주장을 해왔고 그 때마다 일본의 사과에 굶주린 한국인들은 그것을 큰 전리품으로 삼아왔으니 지금와서 어쩌겠는가?
일본인을 ‘착한 피해자', 한국인을 '나쁜 가해자'로 묘사한 책에 대해서 날조와 조작이 잘못됐다고 항의하는 한인 학생과 학부모들이 오히려 그것 때문에 미국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학교도 미국 언론도, 다른 학생들도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금 한인사회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며, 싸울수록 나쁜 놈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전쟁이 나쁘다는데, 일본의 잘못에 대해 요코 자신이 앞장서 사과한다는데, 모두 용서하고 평화롭게 살자는데, 한일간의 역사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대다수 미국인들의 반응 때문이다.
[요코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맞은 놈이 우니 징징거리고 때린 놈은 그 울음을 달래면서 되레 칭찬을 받는 꼴이다. 때린 놈을 동정하고 맞은 놈을 손가락질한다고 해서 구경꾼을 욕할 이유는 없다. 다만 맞은 놈이 운다고 때린 놈이 욕하는 것이 두 번 죽이는 일임을 모르는 그 어리석음을 욕할 뿐이지... 그래서 맞은 놈이 다리 펴고 자는 건 옛날 얘기에나 있는가 보다. 하긴 다리 힘이 다 빠졌는데 오그릴 힘이나 있을까? 그렇게 맞고도 내 탓이오라고 외치는 인간들이 없지 않으니 욕하는 놈이 나쁜 놈이겠지.
일본에서 출판이 거부됐고, 중국에서도 내용상 문제로 인해 금서로 지정된 책이 한국에서는 이미 2년전에 출판되어 권장도서로까지 추천됐었다는 사실이 힘빠지게 한다. 2년전 이 책을 출판한 문학동네는 "아예 독자들에게 책을 보여주지도 않고 차단해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니냐? 다양한 시각의 책을 소개하는데 의의가 있었고 문학적으로 읽을 만한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히고 나선 것이다.
최근 네티즌들의 항의로 홈피가 다운되는 등의 사태가 일어나자 “한일 관계에서 한국인은 계속 피해자의 입장이었는데 일본인 중에서도 피해자일 수도 있는 요코의 삶을 통해 전쟁과 평화 등과 관련한 다양한 시각을 청소년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해 출간했다”는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변명을 했다. 편집국장은 “‘요코 이야기’는 역사책도, 다큐멘터리도 아닌 소설이다. 한국 독자들이 일제 강점기 역사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전쟁 상황에서의 개연성 있는 일로 인식하며 거부감 없이 읽을 걸로 봤다”고 했다.
게다가 문학동네는 이 책을 번역소개하면서 요코의 아버지가 시베리아에서 6년을 복역했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 출판사의 후기를 뺏는데, 현재 요코 아버지가 731부대 책임자일 수 있다는 논란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이다. 또 책의 홍보를 위해 1986년 뉴욕타임스와 위클리 퍼블리셔의 우수도서에 선정됐다는 있지도 않은 내용까지 소개했다. 이 책이 미국의 한인사회에서 민족차별까지 불러일으키면서 지난 해 부터 정부와 총영사까지 나서서 시정조치 필요성을 각 주 정부 등에 설명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 문학동네가 취한 조치는 우수도서 선정 내용을 담은 뒷 표지를 바꾼 것이 전부였다.
지들이 무슨 자선 사업가 아니면 예수란 말인가? 다양성 좋아하고 있네. 역사 책도 다큐멘타리도 아닌 소설 한편을 갖고 왜 지랄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소설이 상당히 의도적으로 쓰인 것이라면 어찌 역사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이며,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지금 날조되고 있는 역사를 외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 요코 이야기에 대해 학교 당국에 항의하는 한인사회, 미국 주정부 등에 문제점을 설명하는 총영사관에 대해 요코를 포함한 일본인들이 가하는 음해가 그 예가 될 것이다. 어떤 미친 일본인이 보냈다는 협박장은 일본 침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짓이 까발려질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요코가 한국인들을 사랑한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평화와 한국인을 그렇게 사랑한다는 그녀가 쓴 책 때문에 11살, 12살, 저 어린 한인 학생들이 놀림 받고 있는 것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다. 그것이 요코의 교묘하고 사특한 이미지 조작의 결과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가증스러움에 치가 떨릴 뿐이다.
책 제목부터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대나무는 북방한계선이 차령산맥인 아열대성 식물이므로 요코가 살았던 함북지역에서는 대나무가 숲을 이룰 수 없었다. 아무리 철부지 어린 소녀의 흐린 기억 속이라 하지만 있지도 않은 대나무 숲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다. 다른 많은 부분들이 사실과 거리가 먼 것이 밝혀지고 있다. 그렇게 요코는 자신의 경험이 아닌 의도된 조작인 이 책을 썼으며, 그 결과물을 자기 자신의 평화주의자로서의 성장에 이용하는 것 같다. 지난해 여름에는 원폭 피해지인 나가사키에서 히로시마까지 34일간의 도보행진을 벌이기도 했으며,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스톤워크(stonewalk)'운동에 나서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대나무 숲은 일본 본토의 대나무 밭은 아니었을까? 그 대나무 숲에는 원래 음습한 바람이 분다. 겨울 밤 대나무 숲에 바람이 부는 소리는 마치 유령이 출몰하는 듯한 사특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꼬마 요코야, 일본 열도에서 태어난 너는 12살 때 이미 알았을 테지만, 대나무 숲에는 음습한 바람만 분단다. 그리고 맞은 놈이 다리를 뻗고 자는 일은 없단다. 다만 오그릴 힘조차 없이 맞은 것뿐이란다. 한국인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고 굴레를 씌운 채 뭇매질 좀 그만했으면 어떨까 싶은데...
그리고 이제 요코만 욕할 것이 라니라 우리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된 듯하다. 때린 놈이 항상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맞은 놈들이 비굴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특히 혼자 맞을 때보다 집단으로 매질을 당한 놈들이 더 그럴 수 있다. 개중에는 네 탓이라는 놈도 있고, 개중에는 우리가 맞을 만 했다는 놈도 있기 때문이다.
요코이야기, 대나무 숲에는 원래 음습한 바람이 분다!
지금 미국에서는 ‘요코 이야기’(원제목: 대나무 숲 저 멀리서)라는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다. 1866년 출판된 이 책은 저자 스스로 [일본판 안네의 일기]라고 자화자찬하며 홍보한 덕인지 모르겠지만 미국 전역에서 중학교 교재나 추천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어려웠던 시절 상상하기 어려운 고난을 이겨낸 한 소녀의 이야기는 미국 학생들에게 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실제로 `피스 투모로' '피스 애비' 같은 평화운동단체의 핵심 멤버이기도 하다.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요코가 "나는 가는 곳마다 `친절(kind)'과 `미소(smile)'를 외쳤습니다. 지난 60년간을 미소와 친절을 위해 바쳤습니다. 나에겐 적이 없지요. 그게 바로 평화입니다."라며 자신의 일제 말기 피난담이라는데, 누가 그 내용을 의심하겠는가?
그러나 예쁘다고 다 착한 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쓰레기도 잘 덮어 놓으면 깨끗해 보이고 걸레도 잘 빨면 덮고 잘 수 있다. 연못 가득히 아름답게 핀 연꽃을 보면서 누가 시궁창을 생각하겠는가? 호수 위를 아름답게 떠다니는 백조를 보면서 누가 물밑을 헤집는 물갈퀴를 생각하겠는가? 그러나 진실이 없이도 얼마든지 예뻐 보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요코는 무엇보다 자신이 한국인들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고백과 함께 이 책이 평화에 대한 책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제 당시 한국인들이 선량한 일본인들을 학대하고 성폭행을 일삼은 것처럼 묘사하여 미국 청소년들의 한국 인식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아시아 역사를 접한 적이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보게 되는 미국 중학생들은 잔인하고 냉정하게 묘사되어 있는 한국인들에게 나쁜 인상을 갖게 한다. 심지어 2차 대전 중 가해자는 ‘독일과 한국’이라고 말하는 학생들마저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요코이야기'가 잘못됐다고 항의하는 한 한국인 유학생에게 요코는 "사과를 원한다면 제가 일본 정부를 대신해 사과하겠습니다. 이제 마음이 편해졌습니까? 당신이 한국으로 돌아가 교사가 되든 미화원이 되든 어린 학생들에게 증오를 가르친다면 평화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인들을 괴롭힌 것은 일본 정부와 군인들이지요. 일본 시민들은 한국인들을 특별히 괴롭혔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뜻하지 않은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난장판에 힘없이 던져진 거지요. 세상을 끔찍하게 만드는 건 '나쁜 어른들'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천사 요코'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요코는 늘 "일본 정부는 일제 때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 고통을 준 사실을 역사교과서를 통해 정직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교과서같은 주장을 해왔고 그 때마다 일본의 사과에 굶주린 한국인들은 그것을 큰 전리품으로 삼아왔으니 지금와서 어쩌겠는가?
일본인을 ‘착한 피해자', 한국인을 '나쁜 가해자'로 묘사한 책에 대해서 날조와 조작이 잘못됐다고 항의하는 한인 학생과 학부모들이 오히려 그것 때문에 미국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학교도 미국 언론도, 다른 학생들도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금 한인사회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며, 싸울수록 나쁜 놈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전쟁이 나쁘다는데, 일본의 잘못에 대해 요코 자신이 앞장서 사과한다는데, 모두 용서하고 평화롭게 살자는데, 한일간의 역사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대다수 미국인들의 반응 때문이다.
[요코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맞은 놈이 우니 징징거리고 때린 놈은 그 울음을 달래면서 되레 칭찬을 받는 꼴이다. 때린 놈을 동정하고 맞은 놈을 손가락질한다고 해서 구경꾼을 욕할 이유는 없다. 다만 맞은 놈이 운다고 때린 놈이 욕하는 것이 두 번 죽이는 일임을 모르는 그 어리석음을 욕할 뿐이지... 그래서 맞은 놈이 다리 펴고 자는 건 옛날 얘기에나 있는가 보다. 하긴 다리 힘이 다 빠졌는데 오그릴 힘이나 있을까? 그렇게 맞고도 내 탓이오라고 외치는 인간들이 없지 않으니 욕하는 놈이 나쁜 놈이겠지.
일본에서 출판이 거부됐고, 중국에서도 내용상 문제로 인해 금서로 지정된 책이 한국에서는 이미 2년전에 출판되어 권장도서로까지 추천됐었다는 사실이 힘빠지게 한다. 2년전 이 책을 출판한 문학동네는 "아예 독자들에게 책을 보여주지도 않고 차단해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니냐? 다양한 시각의 책을 소개하는데 의의가 있었고 문학적으로 읽을 만한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히고 나선 것이다.
최근 네티즌들의 항의로 홈피가 다운되는 등의 사태가 일어나자 “한일 관계에서 한국인은 계속 피해자의 입장이었는데 일본인 중에서도 피해자일 수도 있는 요코의 삶을 통해 전쟁과 평화 등과 관련한 다양한 시각을 청소년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해 출간했다”는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변명을 했다. 편집국장은 “‘요코 이야기’는 역사책도, 다큐멘터리도 아닌 소설이다. 한국 독자들이 일제 강점기 역사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전쟁 상황에서의 개연성 있는 일로 인식하며 거부감 없이 읽을 걸로 봤다”고 했다.
게다가 문학동네는 이 책을 번역소개하면서 요코의 아버지가 시베리아에서 6년을 복역했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 출판사의 후기를 뺏는데, 현재 요코 아버지가 731부대 책임자일 수 있다는 논란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이다. 또 책의 홍보를 위해 1986년 뉴욕타임스와 위클리 퍼블리셔의 우수도서에 선정됐다는 있지도 않은 내용까지 소개했다. 이 책이 미국의 한인사회에서 민족차별까지 불러일으키면서 지난 해 부터 정부와 총영사까지 나서서 시정조치 필요성을 각 주 정부 등에 설명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 문학동네가 취한 조치는 우수도서 선정 내용을 담은 뒷 표지를 바꾼 것이 전부였다.
지들이 무슨 자선 사업가 아니면 예수란 말인가? 다양성 좋아하고 있네. 역사 책도 다큐멘타리도 아닌 소설 한편을 갖고 왜 지랄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소설이 상당히 의도적으로 쓰인 것이라면 어찌 역사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이며,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지금 날조되고 있는 역사를 외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금 요코 이야기에 대해 학교 당국에 항의하는 한인사회, 미국 주정부 등에 문제점을 설명하는 총영사관에 대해 요코를 포함한 일본인들이 가하는 음해가 그 예가 될 것이다. 어떤 미친 일본인이 보냈다는 협박장은 일본 침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짓이 까발려질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요코가 한국인들을 사랑한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평화와 한국인을 그렇게 사랑한다는 그녀가 쓴 책 때문에 11살, 12살, 저 어린 한인 학생들이 놀림 받고 있는 것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다. 그것이 요코의 교묘하고 사특한 이미지 조작의 결과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가증스러움에 치가 떨릴 뿐이다.
책 제목부터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대나무는 북방한계선이 차령산맥인 아열대성 식물이므로 요코가 살았던 함북지역에서는 대나무가 숲을 이룰 수 없었다. 아무리 철부지 어린 소녀의 흐린 기억 속이라 하지만 있지도 않은 대나무 숲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다. 다른 많은 부분들이 사실과 거리가 먼 것이 밝혀지고 있다. 그렇게 요코는 자신의 경험이 아닌 의도된 조작인 이 책을 썼으며, 그 결과물을 자기 자신의 평화주의자로서의 성장에 이용하는 것 같다. 지난해 여름에는 원폭 피해지인 나가사키에서 히로시마까지 34일간의 도보행진을 벌이기도 했으며,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스톤워크(stonewalk)'운동에 나서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대나무 숲은 일본 본토의 대나무 밭은 아니었을까? 그 대나무 숲에는 원래 음습한 바람이 분다. 겨울 밤 대나무 숲에 바람이 부는 소리는 마치 유령이 출몰하는 듯한 사특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꼬마 요코야, 일본 열도에서 태어난 너는 12살 때 이미 알았을 테지만, 대나무 숲에는 음습한 바람만 분단다. 그리고 맞은 놈이 다리를 뻗고 자는 일은 없단다. 다만 오그릴 힘조차 없이 맞은 것뿐이란다. 한국인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고 굴레를 씌운 채 뭇매질 좀 그만했으면 어떨까 싶은데...
그리고 이제 요코만 욕할 것이 라니라 우리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된 듯하다. 때린 놈이 항상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맞은 놈들이 비굴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특히 혼자 맞을 때보다 집단으로 매질을 당한 놈들이 더 그럴 수 있다. 개중에는 네 탓이라는 놈도 있고, 개중에는 우리가 맞을 만 했다는 놈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