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을 바삐 빠져나간 한비서와 지훈은 한비서가 출발하기 전에 손회장 쪽에 미리 연락해 대기시켜놓았던 검은 승용차 한대에 몸을 실었다.
미끄러지듯 출발을 한 승용차 안에서 줄곧 그는 침묵을 이루고 있었고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한국의 이미지를 눈 안에 가두고 있었다.
‘ .. 아무리 싫다 싫다 해도, 한국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군.. 그 놈의 빌어먹을 기자들만 뺀다면 말이야 ’
장시간을 걸쳐 도착한 한국은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 덧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은 커다란 저택 앞에 차가 멈추었고, 기사가 먼저 문을 열고 나와 지훈 쪽 문을 열어 주었다. 피곤함에 나른해진 지훈이 내리자 한비서도 따라 내렸고 ,지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굳게 잠겨진 대문을 바라보았다. 한비서는 곧 나서서 초인종을 누르자 익숙한 가정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누구세요”
“ 도련님 오셨습니다 ”
찰칵하는 소리와 문이 열리고 지훈은 여전히 묵묵한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변한 게 하나 없는 사치스러운 정원이 눈앞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정부가 곱게 지훈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한비서가 내미는 지훈의 간단한 짐을 받아 들었다.
지훈은 실내화로 갈아 신고 아무런 미동도 없이 거실을 가로질러 자신의 방이 있는 2층으로 가고 있었다. 저쪽 왼편에는 쇼파에 기대 앉아 지훈을 쳐다보지도 않는 손회장이 있었다. 지훈은 그런 손회장을 힐끗 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이리와서 앉거라 ”
손회장의 목소리에 잠깐 멈칫한 지훈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옷부터 갈아입고요, ”
“ 이리와 앉으래도 ”
조금 커진 손회장의 목소리에 지훈이 얕은 한숨을 내쉬며 손회장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손회장쪽의 사선으로 놓여있는 쇼파에 주저앉듯 앉았다.
“ 대체 어쩌자고 이러는 게냐 ”
“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 몰라서 묻는 게냐 , 이렇게 무턱대고 오면 어쩌자겠다는 거야 "
” 당장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버지 말 잘 듣는 아들도 문제가 됩니까 “
“ 니가 어린애냐 응? 그걸 못 알아들어서 내가 전화한 직후 온거냐, 니가 이러는 건
이 애비를 향한 반항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 구나 “
“ 제가 미국에 하루라도 더 있는다면 아버지께서 붙혀 놓으신 수행비서 때문에 불안해서 살수가 없을 거 같더군요. 제가 이러는 게 반항으로 보이신다면 전 아버지의 행동이 자신의 사리이욕으로 아들까지 걸림돌로 여기신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 뭐야 ? ”
서슬이 시퍼런 손 회장을 보고는 지훈이 일어섰다.
“ 더 이상 할말 없으시면 올라가보겠습니다. 피곤해서요 ”
그리고 손 회장에게 가볍게 인사하곤 걸음을 재촉했다. 손회장은 그런 아들이 못마땅한지 주먹으로 쇼파 손잡이를 내리치곤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간 지훈은 깔끔하게 정돈 되 있는 자신의 방을 휙 둘러보곤 목을 조이던 넥타이를 한 손으로 풀어 헤쳤다. 그리고선 자신의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피곤에 금방이라도 잠이 들것 같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옷을 하나 둘 씩 벗어 걸어놓고 속옷차림으로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살이 데이지 않을 정도로만 뜨겁게 해놓고 한참을 샤워기에 온몸을 맡기고 있었다.
피곤함과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싹 달아나는 듯 했다. 꽤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난 후 그가 욕실에서 걸어나왔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몸을 수건으로 가볍게 닦아내곤 편안한 바지 하나만 걸쳐 입고 침대에 풀썩 누웠다. 그리고 언제 잠들었는 지도 모르게 깊이 꿈속을 헤메고 있었다.
지훈은 한 한달정도는 혼자서 보냈다. 집안에서 TV를 보던가 아니면 음악을 듣던 가 , 때론 너무 답답할 땐 드라이브 가는 정도 그게 전부였다.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 지훈은 오죽했으면 다시 차라리 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옷가지들을 꺼내 정리도 해보고 한국으로 와서 머리도 좀 더 짧게 치고 하얘지리만큼 머리를 진하게 탈색도 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 해가 서산마루에 걸릴 즈음 지훈이 침대에 누워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 여보ㅅ..
“ 나야 ”
- ....지훈?
“ 어, 나올래 ? ”
- 너 뭐야 미국 갔잖아
“ 한국 왔어, 한달 전에
- 뭐 ? 뭣 땜에, 그리고 왔단 소리도 없었잖아
“ 여하튼 그렇게 됐다. 나 따분해 죽겠어 , 나 한국 온거 여럿 알면 귀찮아 지니까 들통나
기 전에 니가 나랑 좀 놀아주라
- 집이니 ?
“ 어”
- 내가 그리로 갈까 아니면 니가 올래
“ 우리 잘 가던 더블에서 보자 ”
- 더블? , 그래 나쁠 거 없지, 이따 봐
“ 응 ”
민주였다.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지훈이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여자 캠퍼스 동기였다. 언제나 항상 지훈에게 잘 보살펴주고 상냥한 그녀는 누나 같은 존재였고 엄마 같은 존재였고 남자였다면 사우나도 같이 해보고 싶었을 정도의 편한 친구였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캐쥬얼틱 하게 차려입고 살짝 들뜬 마음으로 빠르게 움직여 나갔다. 어디가시냐는 유모의 말에 바람쐬러 간다고 대충 떼우고선 오랜만에 운동화도 신고 나갔다.
상쾌한 바람의 향기가 지훈의 코끝에 걸리었다. 기분이 좋아진 그가 개인 주차장에 주차 되어있는 자신의 번쩍거리는 회색 스포츠를 끌고 나왔다.
탁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가 시동을 켰다. 밤거리를 질주하는 회색의 독수리처럼 괜히 기분도 내고 음악도 크게 틀고 달리고 있었다. 빨간 간판이 반짝이는 더블 전용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지훈이 땅에 발을 내딛었다.
더블로 향하는 익숙한 발걸음에 지훈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항상 바나 호프집을 즐겨찾던 지훈은 오랜만에 더블의 체리에이드가 먹고 싶어졌다.
더블의 검은 배경 안에서 민주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 거렸지만 그녀는 아직 오지 않은 듯 했다. 지훈은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급하게 체리에이드를 주문했다.
그 시각 민주는 은지와 함께 더블을 향하고 있었다.
“ 내가 너 미국에 있을 때 줄곧 말하던 남자애 있잖아 그 애 보러가는거야 ”
“ 그 지훈 오빠라는 사람?"
“ 그래, 언니가 너 보여주고 싶다고 난리난리 쳤었잖아 ”
“ 아 , 그 돈많다는 동생? ”
순간 당황한 민주가 얼굴을 붉히자 은지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 근데 벌써 한국 왔어 ? 그 오빠도 LA에 있었다며”
“몰라 사정상 그렇게 됐대 ”
“ 뭐야 그럼 단둘이 만나지 나는 왜 ”
“ 얘가 워낙 시간이 안 나는 애야 또 언제 만날 줄알고, 만나자 할 때 그냥 너 확 데려가는거야 니가 한번 봐봐 얼마나 멋진앤데”
“ 참네.. 나 기대한다? ”
은지는 조용히 웃음 짓고 민주의 팔에 팔짱을 끼고 함께 더블로 들어가고 있었다.
은지도 LA에서 유학생활을 하다가 한달 전에 귀국을 했는데 미국을 가기 전에 민주가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동생이었다. 그 후 친한 언니동생사이처럼 허물없이 지내고 은지가 귀국 후 은지가 한국에서 완전히 정착하기 전까지 민주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줄곧 지훈의 얘기를 해오던 민주가 오늘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은지에게 지훈을 소개하는 날이다. 뜬금없는 표정의 지훈의 반응이 걱정되긴 했지만, 지훈을 보고난 후 은지의 반응이 더 중요한 오늘이었다.
몇 분째 말없이 체리에이드만 들이키는 지훈이었다.
잠깐 인사 몇 마디 나누고선 민주는 주차문제 때문에 잠깐 나갔다 온다 했다.
지훈은 난데없는 민주의 행동에 불쾌했지만 그래도 나름 참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지훈과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가 마주 앉아있었다.
작은 키에 큰 눈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고 화장기 전혀 없는 단발머리의 수수한 그녀
분명 LA에서 본 그 애였다.
계속해서 그를 보면서 웃고만 있다.
나인지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아니면 , 정말 모르는 걸까..
상관없었다.
그저 미식거리는 저 웃음 때문에 짜증이 머리 끝까지 차는 것 만 같았다.
붉은색의 체리에이드를 벌컥 마신다.
앞에 있는 저 아이,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아무데서나 웃음 흘리고 다니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레몬에이드를 마시고 있으니 , 여러 가지로 마음에 안 든다.
“ 왜 자꾸 웃어 ? ”
“ 체리에이드가 좋아요 ?”
자꾸 웃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지훈에게 생글거리면서 그녀가 다른 질문을 한다.
“ 왜 자꾸 웃냐고 ”
“ 체리에이드 좋아하는 사람들은 레몬에이드를 싫어하더라. 오빠도 그래요 ?”
“ 어 ”
“ 저는 레몬에이드를 좋아해요 ”
지훈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왠지 싫지만은 않은 느낌에 빨대로 얼음을 휘휘 저었다. 사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왜냐하면.. 체리는 독한 갈증을 남기지만 레몬은 혀끝에 진한 향기를 남겨두거든요. 그리움이라고나 할까.. 체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갈증 때문에 체리를 다시 찾고.. 레몬은 그 향기때문에.. "
" 시쓰냐 ?“
“ 레몬에이드 드셔볼래요 ?”
지훈은 달콤하게 말려들어가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흘끗보고는 컵 안에 있던 체리를 콕 찍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관심 없다는 듯 창가만 계속 바라보다가 다시 은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방긋방긋 웃고 있는 그녀였다.
미식거릴정도로 웃는 그녀의 모습이 ... 싫지만은 않은 그였다.
오히려 그 웃음에 매료되 덩달아 피식 웃음이 나올거 같았다.
“ 밝은노란색보단 와인색이 더 잘어울릴거같아요 ”
지훈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은지를 바라보자 은지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머리색깔말이에요 한번 바꿔보세요 ”
지훈은 그 비릿한 은지의 웃음을 자꾸만 받아들이는 자신에게서 짜증나기 시작했고 자꾸만 힐끗하게 쳐다보게 되는 자신에게 이해가 가지않았다. 지훈은 빨갛게 물든 얼음하나를 입에 덥썩 넣는다.
밤하늘처럼 온통 까맣게 인테리어 되어 있는 더블에선 Alica keys 의 If I aint got you가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요하게 흐르는 침묵을 대신해주는 듯 평소 지훈이 즐겨듣던 음악이 흘러나오니 그게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다.
“ 둘이 인사좀 했어 ?”
때마침 늘씬하게 빠진 민주가 마치 워킹이라도 하듯 또각또각 걸어왔다.
은지는 언니왔냐는 표정으로 싱긋 웃어보였고 지훈은 너뭐냐 라는 식의 표정으로 민주를 쳐다보자 슬쩍 당황한 민주가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 왜왜 지훈아 뭐 그렇게 쳐다보니”
“ 좀 나와봐봐 ”
지훈은 터벅 걸어나가면서 민주의 오른손을 잡아 이끌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 어머 얘 왜이러니, 야야 은지야 잠깐만 ”
민주는 끌려나가듯이 이끌려갔고 더블을 벗어나서야 지훈은 민주의 손을 놔주었다.
“ 뭔데 은지한테 화난거있어 ?”
“ 쟨 뭐야 , 왜 데리고 나왔어”
“ 아는 동생이라고 소개시켰잖아 나는 그냥 뭐 너 ..”
“ 오랜만에 만났는데 내 의사도 안물어보고 저런 애를 데리고오면 어쩌겠다는거야
그리고 왜 저렇게 실실거려 뭐 병 걸렸대? , 미식거려 죽는 줄 알았거든?“
“ ... 너 말이 너무 심한거아니니?”
민주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씩씩대고 있었다.
사실 지훈은 은지랑 있었던 자리가 그렇게까지 불쾌한건 아니었다.
그냥 단지 그 웃음에서 묻어나오는 뭔지 모를 자신의 울컥함이랄까
“ .. 갈게 ”
“ 야 손지훈!! ”
지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차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렇게까지 자리를 벅차고 나올 필요까진 없었는데.. 싶은 후회와 그래도 그곳에서 견디고 있는 것보단 차라리 낫다는 위로가 교차하면서 차문을 열고 있었다.
물고기 하늘을 날다 -3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을 바삐 빠져나간 한비서와 지훈은 한비서가 출발하기 전에 손회장 쪽에 미리 연락해 대기시켜놓았던 검은 승용차 한대에 몸을 실었다.
미끄러지듯 출발을 한 승용차 안에서 줄곧 그는 침묵을 이루고 있었고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한국의 이미지를 눈 안에 가두고 있었다.
‘ .. 아무리 싫다 싫다 해도, 한국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군.. 그 놈의 빌어먹을 기자들만 뺀다면 말이야 ’
장시간을 걸쳐 도착한 한국은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 덧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은 커다란 저택 앞에 차가 멈추었고, 기사가 먼저 문을 열고 나와 지훈 쪽 문을 열어 주었다. 피곤함에 나른해진 지훈이 내리자 한비서도 따라 내렸고 ,지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굳게 잠겨진 대문을 바라보았다. 한비서는 곧 나서서 초인종을 누르자 익숙한 가정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누구세요”
“ 도련님 오셨습니다 ”
찰칵하는 소리와 문이 열리고 지훈은 여전히 묵묵한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변한 게 하나 없는 사치스러운 정원이 눈앞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정부가 곱게 지훈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한비서가 내미는 지훈의 간단한 짐을 받아 들었다.
지훈은 실내화로 갈아 신고 아무런 미동도 없이 거실을 가로질러 자신의 방이 있는 2층으로 가고 있었다. 저쪽 왼편에는 쇼파에 기대 앉아 지훈을 쳐다보지도 않는 손회장이 있었다. 지훈은 그런 손회장을 힐끗 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이리와서 앉거라 ”
손회장의 목소리에 잠깐 멈칫한 지훈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옷부터 갈아입고요, ”
“ 이리와 앉으래도 ”
조금 커진 손회장의 목소리에 지훈이 얕은 한숨을 내쉬며 손회장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손회장쪽의 사선으로 놓여있는 쇼파에 주저앉듯 앉았다.
“ 대체 어쩌자고 이러는 게냐 ”
“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 몰라서 묻는 게냐 , 이렇게 무턱대고 오면 어쩌자겠다는 거야 "
” 당장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버지 말 잘 듣는 아들도 문제가 됩니까 “
“ 니가 어린애냐 응? 그걸 못 알아들어서 내가 전화한 직후 온거냐, 니가 이러는 건
이 애비를 향한 반항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 구나 “
“ 제가 미국에 하루라도 더 있는다면 아버지께서 붙혀 놓으신 수행비서 때문에 불안해서 살수가 없을 거 같더군요. 제가 이러는 게 반항으로 보이신다면 전 아버지의 행동이 자신의 사리이욕으로 아들까지 걸림돌로 여기신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 뭐야 ? ”
서슬이 시퍼런 손 회장을 보고는 지훈이 일어섰다.
“ 더 이상 할말 없으시면 올라가보겠습니다. 피곤해서요 ”
그리고 손 회장에게 가볍게 인사하곤 걸음을 재촉했다. 손회장은 그런 아들이 못마땅한지 주먹으로 쇼파 손잡이를 내리치곤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간 지훈은 깔끔하게 정돈 되 있는 자신의 방을 휙 둘러보곤 목을 조이던 넥타이를 한 손으로 풀어 헤쳤다. 그리고선 자신의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피곤에 금방이라도 잠이 들것 같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옷을 하나 둘 씩 벗어 걸어놓고 속옷차림으로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살이 데이지 않을 정도로만 뜨겁게 해놓고 한참을 샤워기에 온몸을 맡기고 있었다.
피곤함과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싹 달아나는 듯 했다. 꽤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난 후 그가 욕실에서 걸어나왔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몸을 수건으로 가볍게 닦아내곤 편안한 바지 하나만 걸쳐 입고 침대에 풀썩 누웠다. 그리고 언제 잠들었는 지도 모르게 깊이 꿈속을 헤메고 있었다.
지훈은 한 한달정도는 혼자서 보냈다. 집안에서 TV를 보던가 아니면 음악을 듣던 가 , 때론 너무 답답할 땐 드라이브 가는 정도 그게 전부였다.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 지훈은 오죽했으면 다시 차라리 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옷가지들을 꺼내 정리도 해보고 한국으로 와서 머리도 좀 더 짧게 치고 하얘지리만큼 머리를 진하게 탈색도 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 해가 서산마루에 걸릴 즈음 지훈이 침대에 누워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 여보ㅅ..
“ 나야 ”
- ....지훈?
“ 어, 나올래 ? ”
- 너 뭐야 미국 갔잖아
“ 한국 왔어, 한달 전에
- 뭐 ? 뭣 땜에, 그리고 왔단 소리도 없었잖아
“ 여하튼 그렇게 됐다. 나 따분해 죽겠어 , 나 한국 온거 여럿 알면 귀찮아 지니까 들통나
기 전에 니가 나랑 좀 놀아주라
- 집이니 ?
“ 어”
- 내가 그리로 갈까 아니면 니가 올래
“ 우리 잘 가던 더블에서 보자 ”
- 더블? , 그래 나쁠 거 없지, 이따 봐
“ 응 ”
민주였다.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지훈이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여자 캠퍼스 동기였다. 언제나 항상 지훈에게 잘 보살펴주고 상냥한 그녀는 누나 같은 존재였고 엄마 같은 존재였고 남자였다면 사우나도 같이 해보고 싶었을 정도의 편한 친구였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캐쥬얼틱 하게 차려입고 살짝 들뜬 마음으로 빠르게 움직여 나갔다. 어디가시냐는 유모의 말에 바람쐬러 간다고 대충 떼우고선 오랜만에 운동화도 신고 나갔다.
상쾌한 바람의 향기가 지훈의 코끝에 걸리었다. 기분이 좋아진 그가 개인 주차장에 주차 되어있는 자신의 번쩍거리는 회색 스포츠를 끌고 나왔다.
탁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가 시동을 켰다. 밤거리를 질주하는 회색의 독수리처럼 괜히 기분도 내고 음악도 크게 틀고 달리고 있었다. 빨간 간판이 반짝이는 더블 전용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지훈이 땅에 발을 내딛었다.
더블로 향하는 익숙한 발걸음에 지훈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항상 바나 호프집을 즐겨찾던 지훈은 오랜만에 더블의 체리에이드가 먹고 싶어졌다.
더블의 검은 배경 안에서 민주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 거렸지만 그녀는 아직 오지 않은 듯 했다. 지훈은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급하게 체리에이드를 주문했다.
그 시각 민주는 은지와 함께 더블을 향하고 있었다.
“ 내가 너 미국에 있을 때 줄곧 말하던 남자애 있잖아 그 애 보러가는거야 ”
“ 그 지훈 오빠라는 사람?"
“ 그래, 언니가 너 보여주고 싶다고 난리난리 쳤었잖아 ”
“ 아 , 그 돈많다는 동생? ”
순간 당황한 민주가 얼굴을 붉히자 은지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 근데 벌써 한국 왔어 ? 그 오빠도 LA에 있었다며”
“몰라 사정상 그렇게 됐대 ”
“ 뭐야 그럼 단둘이 만나지 나는 왜 ”
“ 얘가 워낙 시간이 안 나는 애야 또 언제 만날 줄알고, 만나자 할 때 그냥 너 확 데려가는거야 니가 한번 봐봐 얼마나 멋진앤데”
“ 참네.. 나 기대한다? ”
은지는 조용히 웃음 짓고 민주의 팔에 팔짱을 끼고 함께 더블로 들어가고 있었다.
은지도 LA에서 유학생활을 하다가 한달 전에 귀국을 했는데 미국을 가기 전에 민주가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동생이었다. 그 후 친한 언니동생사이처럼 허물없이 지내고 은지가 귀국 후 은지가 한국에서 완전히 정착하기 전까지 민주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줄곧 지훈의 얘기를 해오던 민주가 오늘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은지에게 지훈을 소개하는 날이다. 뜬금없는 표정의 지훈의 반응이 걱정되긴 했지만, 지훈을 보고난 후 은지의 반응이 더 중요한 오늘이었다.
몇 분째 말없이 체리에이드만 들이키는 지훈이었다.
잠깐 인사 몇 마디 나누고선 민주는 주차문제 때문에 잠깐 나갔다 온다 했다.
지훈은 난데없는 민주의 행동에 불쾌했지만 그래도 나름 참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지훈과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가 마주 앉아있었다.
작은 키에 큰 눈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고 화장기 전혀 없는 단발머리의 수수한 그녀
분명 LA에서 본 그 애였다.
계속해서 그를 보면서 웃고만 있다.
나인지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아니면 , 정말 모르는 걸까..
상관없었다.
그저 미식거리는 저 웃음 때문에 짜증이 머리 끝까지 차는 것 만 같았다.
붉은색의 체리에이드를 벌컥 마신다.
앞에 있는 저 아이,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아무데서나 웃음 흘리고 다니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레몬에이드를 마시고 있으니 , 여러 가지로 마음에 안 든다.
“ 왜 자꾸 웃어 ? ”
“ 체리에이드가 좋아요 ?”
자꾸 웃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지훈에게 생글거리면서 그녀가 다른 질문을 한다.
“ 왜 자꾸 웃냐고 ”
“ 체리에이드 좋아하는 사람들은 레몬에이드를 싫어하더라. 오빠도 그래요 ?”
“ 어 ”
“ 저는 레몬에이드를 좋아해요 ”
지훈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왠지 싫지만은 않은 느낌에 빨대로 얼음을 휘휘 저었다. 사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왜냐하면.. 체리는 독한 갈증을 남기지만 레몬은 혀끝에 진한 향기를 남겨두거든요. 그리움이라고나 할까.. 체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갈증 때문에 체리를 다시 찾고.. 레몬은 그 향기때문에.. "
" 시쓰냐 ?“
“ 레몬에이드 드셔볼래요 ?”
지훈은 달콤하게 말려들어가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흘끗보고는 컵 안에 있던 체리를 콕 찍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관심 없다는 듯 창가만 계속 바라보다가 다시 은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방긋방긋 웃고 있는 그녀였다.
미식거릴정도로 웃는 그녀의 모습이 ... 싫지만은 않은 그였다.
오히려 그 웃음에 매료되 덩달아 피식 웃음이 나올거 같았다.
“ 밝은노란색보단 와인색이 더 잘어울릴거같아요 ”
지훈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은지를 바라보자 은지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머리색깔말이에요 한번 바꿔보세요 ”
지훈은 그 비릿한 은지의 웃음을 자꾸만 받아들이는 자신에게서 짜증나기 시작했고 자꾸만 힐끗하게 쳐다보게 되는 자신에게 이해가 가지않았다. 지훈은 빨갛게 물든 얼음하나를 입에 덥썩 넣는다.
밤하늘처럼 온통 까맣게 인테리어 되어 있는 더블에선 Alica keys 의 If I aint got you가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요하게 흐르는 침묵을 대신해주는 듯 평소 지훈이 즐겨듣던 음악이 흘러나오니 그게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다.
“ 둘이 인사좀 했어 ?”
때마침 늘씬하게 빠진 민주가 마치 워킹이라도 하듯 또각또각 걸어왔다.
은지는 언니왔냐는 표정으로 싱긋 웃어보였고 지훈은 너뭐냐 라는 식의 표정으로 민주를 쳐다보자 슬쩍 당황한 민주가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 왜왜 지훈아 뭐 그렇게 쳐다보니”
“ 좀 나와봐봐 ”
지훈은 터벅 걸어나가면서 민주의 오른손을 잡아 이끌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 어머 얘 왜이러니, 야야 은지야 잠깐만 ”
민주는 끌려나가듯이 이끌려갔고 더블을 벗어나서야 지훈은 민주의 손을 놔주었다.
“ 뭔데 은지한테 화난거있어 ?”
“ 쟨 뭐야 , 왜 데리고 나왔어”
“ 아는 동생이라고 소개시켰잖아 나는 그냥 뭐 너 ..”
“ 오랜만에 만났는데 내 의사도 안물어보고 저런 애를 데리고오면 어쩌겠다는거야
그리고 왜 저렇게 실실거려 뭐 병 걸렸대? , 미식거려 죽는 줄 알았거든?“
“ ... 너 말이 너무 심한거아니니?”
민주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씩씩대고 있었다.
사실 지훈은 은지랑 있었던 자리가 그렇게까지 불쾌한건 아니었다.
그냥 단지 그 웃음에서 묻어나오는 뭔지 모를 자신의 울컥함이랄까
“ .. 갈게 ”
“ 야 손지훈!! ”
지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차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렇게까지 자리를 벅차고 나올 필요까진 없었는데.. 싶은 후회와 그래도 그곳에서 견디고 있는 것보단 차라리 낫다는 위로가 교차하면서 차문을 열고 있었다.
많이 미흡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