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6)
감독 : 켄 로치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비극
원래 영화란 즐기기 위한 것이고, 때문에 비극적인 영화라 하더라도, 그래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 영화라 하더라도, 종국에는 그 눈물이 카타르시스적 쾌감을 주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물론 거기에 사색과 성찰, 지적인 고민이라는 보너스까지 덤으로 얹어준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좌파감독 켄 로치에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주었다는 은 도저히 즐길 수가 없다. 영화를 즐기려면 영화와 내가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거리두기 자체가 불가능하다.
영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맞선 아일랜드의 투쟁이라는, 식민지 조선과 분단의 역사를 거쳐온 한국관객에게는 익숙할 수밖에 없는 소재라서 그런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치면 이 영화와 비슷한 갈등구조(형제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되는)를 가진 우리나라 영화 를 보면서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던 내 감정이 이토록 요동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제규보다는 세계적 거장이라는 켄 로치의 표현력이 월등히 뛰어나서일까? 물론, 그런 면이 없지 않겠지만, 의 전체적인 이야기얼개가 아주 빼어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소 상투적이기도 하고 생략이 많은 데다가, 온건한 민족주의자인 형 테디에 비해 확실한 사회주의자로 변모해가는 동생 데미안에게 쏠린 감독의 애정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나 감독의 화술이 단편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너무나 아프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테디가 되고 데미안이 되어 갈등에 갈등을 거듭해야 했다. 영국군에 맞서 IRA의 단원으로 싸울 때는 손톱이 다 뽑혀나가는 고통은 있었지만 갈등은 없었다. 형 대신 자신이 테디라고 나서는 용감한 형제애가 있고 손톱이 뽑혀나가는 고문을 당하는 테디의 고통에 모든 동지들이 아일랜드 구전가요를 함께 부르는 눈물어린 동지애가 있어서 오히려 행복했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분할통치 전략이 시작되는 그 시점부터 진짜 비극은 시작된다. 영어로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고 어머니 앞에서 자식을 때려죽이고, IRA를 숨겨주었다고 집을 불태워버리던 영국군이 아일랜드를 떠난 뒤에(데미안은 북쪽으로 약간 이동했을 뿐이라고 했지만) 비로소 비극은 시작된다. 조국 아일랜드를 위해 함께 피를 흘리며 싸우던 동지들은 이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동료이지만 배신자였던 크리스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데미안이 "조국이란 게 이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겠죠" 하고 뇌까리던 주문(이것은 감정으로는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자신의 정당성을 얻기 위한 간절한 주술이다)은 동생을 향해 장전, 발사를 외치는 형 테디의 주문으로 되풀이된다. 그들이 그토록 증오했던 영국군이 했던 행동을 되풀이하는 아일랜드 자치군을 보며 역사의 비극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이 영화에 거리두기를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시 질문해 본다.
물론 나는 계급적 관점이 있는 데미안들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야말로 현실주의자라고 믿는 테디를 무턱대고 욕하기에는 인간이란 존재가 역사 앞에서 참으로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 또한 절실하게 느낀다. 나를 그 시대에 앉혀놓는다면 나 또한 데미안과 테디 사이에서 우왕좌왕 갈등하는 빈약한 심지의 소유자로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느 편에도 서기 어려운 갈등상황 때문에 이 영화를 힘들게 봤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런 류의 갈등은 분단을 다룬 우리영화들도 많이 써먹었던 것이고, 오히려 양비론의 유용한 수단으로 쓰였던 선례들 때문에 불쾌함이 더 컸던 소재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끊임 없이 내게 물었다. 너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냐고, 네 삶의 목적에는 누가 있냐고. 권력인가? 사람인가? 권력이라면 어떤 권력인가? 사람이라면 또 어떤 사람인가?
감독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댄이 말했듯, "싸워야 할 적을 알아채기는 쉽지만,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기란 어렵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누구와 싸워야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