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을 정리했다. 지난 번 "이동" 때 많은 수의 책을

이용택200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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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을 정리했다.

지난 번 '이동' 때 많은 수의 책을 버렸다. 오늘은 한권도 버리지 않고 손이 잘 가는 책을 손에서 가까운 거리에 배치했을 뿐.

 

소설 등의 문학서적은 잘 읽지 않는 통에 (지금 보니 소설은 삼국지, 현의 노래, 칼의 노래, 앵무새 죽이기, 노크 소리가... 딱 5종 10권이네), 대부분 때가 지나면 버려야 하는 기술서적이고, 대부분 국사 관련, 고서 번역본, 인문학 관련이다. 어학 서적도 한 몫 하는군...

가만 생각해 보니 엔지니어였던 내가 이러한 인문학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아이러니 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들이 내 잠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얼마 전 TV에서 논술은 뭐니뭐니해도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한다. 물론 여기엔 과거 내 책의 주류가 되었던 기술서적은 제외한 것이겠지...

 

아마도 난,

철저히 현재의 현실을 간파했기 때문에, 여러 문학 장르가 주는 상상력 내지 창조성, 희망을 일찌기 버리고 스스로 숨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내 도처에 있는 그 현실의 무게를 이기지도 못하고, '역사'라는 어쩌면 과거 지향적인 고루한 사람이 되어 버렸는지 모른다. 역사라는 주제가 결코 가벼운 것도 아니고, 나 또한 단순한 호기심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는 어쨋든 지금 이 순간 이전의 것들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라는 뜬구름만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왜?

 

...

 

정리하던 중, 여분이 한참 남은 여러 권의 노트와 수첩들을 발견했다. 영어, 일어 공부하며 적어놓은 어색한 필체들과 전화 메모, 울티마라는 방대했던 게임 메모, 술 마시고 주욱 주욱 그어간 낙서, 누군가에게 썼지만 보내지 못했던 편지, 심지어는 오목까지... (혼자한 흔적이 역력하다. 혼자놀기의 진수!)... 잡다하지만 결국 나의 '역사'의 조각들...

 

순간, 썼던 부분은 모두 찢어내어 새로운 노트 내지 수첩으로 변모시키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쉽사리 찢어내지 못하고 그 중에 가장 낡아보이는 '인터넷 나우누리'라고 적혀 있는 기다린 스프링 노트를, 썼던 부분을 대강 훑고 휘휘 넘겨 깨끗한 페이지를 가장 앞으로 펼처 놓고 친구를 찾아 주기로 했다. 쓸 것...

 

만년필이 있더라. 결코 내가 산 것은 아닐텐데 누가 준 것인지 모르겠다. 몽블랑이니 꽤나 고급 만년필이었는데, 뒷꼭지가 없어서 흉물스러웠고, 무엇보다 앉은뱅이 잉크병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작은 버킷 모양의 펜꽂이 던져두고...

 

샤프를 들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때 쓰던 것 같은데, 그 당시 마이크로의 제도 사프가 대 유행을 했었다. 당시 천원... 그런데 같은 게 싫어서 샀던 모나미의 MIT인가... (샤프에 인쇄된 글귀는 닳아서 보이지도 않는데...) 그 샤프였다. 금색. 수첩에 잘 어울렸다. 그러나, 샤프심이 없더라... 다시 작은 버킷 모양의 펜꽂이 던져두고...

 

볼펜? 멋대가리도 없고, 만년필도 그렇지만 한번 쓰면 고칠 재간이 없다. (만년필은 만년동안?? -.-;) 다시 작은 버킷 모양의 펜꽂이 던져두고...

 

한참을 뒤적거리고 여기저기 책상 주변의 모든 서랍을 뒤진 결과, MITSUBISHI Uni-Star라고 적혀있는 B 연필을 찾아냈다. 아마도 중학교 시절 시험 때 애용(?)하던 OMR 마킹용이 아닌 듯 싶다. 고등학교 때는 분명 컴퓨터용 수성 싸인펜을 썼으니까, 중학교가 맞겠지..

당시에 나는 무척이나 게을렀는지, 연필심은 모두 닳아 연필을 깎은 끝부분에 이미 닿아있었고, 깎은 부분은 더 이상 나무색이 아닌 뭔가 변색된 느낌이었다. 난 칼을 찾아 깎기 시작했다. 칼 역시 묵직한 느낌으로 괜찮은 녀석이었지만 녹이 너무 많이 끼어있었다. 버걱버걱. (내일은 반드시 이 녀석의 칼날을 사서 자존심을 일깨워주리라)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그 유행하던 '샤파' (sharper 겠지)를 사주시지 않으셨다. 넉넉치도 못한 집안이었지만, 그것보다는 교육상 목적이라는 얘기가 생각난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동작이 커서 연필을 깎으면 손을 무척이나 많이 베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결코 '샤파'를 가져본 적이 없다. 남들은 '하이샤파'도 가질 적에...

 

여튼 연필을 곱게(?) 깎아, 아까 그 수첩 스프링에 쑤욱 끼워넣었다. 뭔가 멋져 보인다. 키보드 옆.. 엔 마우스 녀석 자리니까 마우스 위..는 재털이 자리니까, 재털이 자리 옆에 나란히 두었다. 근데 뭔가 끄적이고 싶었다.

 

말쑥해진 '미쯔비시 유니스타' B 연필군을 쑤욱 빼서, 수줍은 듯 하얀 속내와 뭔가 여사감 선생 같은 수많은 가로선을 가진 '인터넷 나우누리' 수첩양에 나는 적었다.

 

'낙서금지' (밑줄 쫙)

영원한 낙서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