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를 존경한다고요?"

이윤석2007.01.22
조회321

평소 가끔씩 찾곤 하는 언론고시 커뮤니티에 한 분이 ‘손석희를 존경한다고요?’라는 글을 올리셨습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답게 회원들의 지적 수준이 상당히 높기에, 글 남기는 것을 꺼리는 저이지만 해당 글을 읽고는 바로 답변을 달았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쯤은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아 이곳에도 올리게 되었습니다. 댓글도 굉장히 많았는데, 대부분 내용이 여러분의 짐작과 같은 것이기에 굳이 옮기진 않겠습니다. 게시판의 성격과 맞는지 의문이 가기는 하지만 마땅히 올릴 곳이 없기에 이 게시판에 게재 합니다.

 

1. 논란이 된 원본 글.

 

얼마 전 언론인을 지망하는 한 친구로부터 기이한 말을 들었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언론인이 손석희라나요? 그 친구는 손석희의 ‘공정함’을 높이 산다고 했습니다. 비단 이 친구만의 인식은 아닙니다. 자기소개서의 ‘존경하는 언론인’에 손석희를 거명하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에요. 지난해 시사저널이 조사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도 단연 손석희였지요. 하지만 이런 현상은 제게는 기이하기 짝이 없습니다. 적어도 근 수년 간 손석희는 ‘언론인’으로서 ‘존경받을만한’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물론 손석희는 대단히 매력적인 인물이에요. 그가 구사하는 언어의 절제미와 세련된 형식미는 단연 발군이지요. 토론 진행에서의 공정함은 물론이거니와, 때로는 마빡에 아로새겨져있는 ‘카.리.스.마.’라는 네 자로 뻘소리하는 인간들을 퇴치할 때는 제가 다 후련하기도하죠. 하지만 그게 다에요. 그에게는 컬러가 없어요. 향기가 없어요. 난립하는 의견들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그의 탁월함은 ‘존경받는 언론인’이라기보다는 ‘뛰어난 교통순경’이라는 표현이 훨씬 적합하지요.


다시 말해, 손석희의 문제는 ‘철학의 부재’입니다. 적어도 언론인이라면 자신이 몸담에 있는 세계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이의 설파를 통해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껏 자신의 철학을 밝힌 적이 없어요. 적어도 제가 주목해온 최근 수년간은 모든 이슈에 침묵으로 일관했지요.


이 나라를 뒤흔든 모든 이슈에 대해, 심지어는 PD수첩의 황구라 보도에 대해 사람들이 그의 고견을 청했을 때조차도 철저히 외면한 그였지만, 딱 한번 적극적인 입장 표명을 한 적이 있었지요. 바로 독도 문제였습니다. 그는 이름조차 외우기 힘든 일본 시골 의회의 월급쟁이와 지루한 논쟁을 벌이며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그의 ‘철학’을 새삼스럽게 밝혔었죠.


모든 문제에 굳게 함구하던 그가 왜 유독 독도 문제에서만 핏대를 세우며 지극히 ‘편향된’ 의견을 밝혔을까요. 그것은 적어도 이 나라 백성들 중에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그의 의견을 비판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황구라 문제와 같이 적을 만들 수 있는 민감한 문제에는 철저한 중립노선을 견지하고, 비판의 여지 없이 지지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는 안전한 이슈에서만 명쾌히 의견을 밝히는 것이지요. 손석희의 ‘공정함’과 ‘객관성’이라는 건 자신의 인기관리와 방송인으로서의 장수를 위해 상황에 따라 편의적으로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보다 ‘건전한’ 해석도 가능합니다. 언론인으로서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원론에 충실했다고 믿어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공정성 견지와 정견의 표출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에요. 예컨대 ‘아름다운 나라’의 언론인들은 뉴스나 토론은 중립적으로 진행하지만, 첨예한 이슈에 대해서도 확실한 의견을 표명합니다. 월터 크롱카이트의 경우가 그랬지요. CBS 앵커였던 그는 방송다큐멘터리를 통해 베트남전에 대해 “미군은 철수하고 이 전쟁은 끝나야한다”고 말했지만 그가 방송인으로서 공정성을 져버렸다고 비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발언 이전에도 이후에도 사람들은 변함없이 “대통령은 못 믿어도 크롱카이트는 믿을 수 있다”며 그를 ‘미국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꼽았지요.


공정한 혹은 무색무취한 손석희의 포지셔닝을 불온하게 보건 건전하게 보건, 이제는 그가 입을 열었으면 합니다. 그가 전작권환수에 대해, 북핵에 대해 입장을 밝혔으면합니다. 이념의 대립이 극에 달한 이 나라에서 공정성 견지와 정견의 표출을 동시에 담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실상 이를 이뤄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손석희 뿐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공정함의 이미지가 확고하기에, 그만의 능력과 가능성이 있기에 불만도 기대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나이 올해 쉰 살. 언론인으로서도 스물 세 번째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역사에 '탁월한 교통순경'으로 남을지 '철학을 지닌 언론인'으로 남을지 선택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2. 제가 답변한 글.

 

안녕하세요. 저는 손석희 교수님을 굉.장.히 존경하는 대학생입니다.


오늘 우연히 게시판의 글들을 보다가 ‘소드’님께서 쓰신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몇 번 ‘소드’님의 글을 읽고 감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글은 ‘소드’님이 쓰신 게 맞는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과연 ‘소드’님이 손석희 교수님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까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무릇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밑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을 갖고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비판하는 것은 지성인이라면 당연히 경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소드’님의 글은 그러한 면에서 조금 성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여기서 ‘소드’님이 자신은 손석희 교수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충분히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반박하신다면 제가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사견으로는 ‘소드’님의 글은 분명히 그 분을 제대로 모르면서 비판하신 것이기에 제 나름의 주장을 해 보고자 합니다.


‘소드’님의 글을 종합해 보면 “손석희 교수는 매력적인 ‘교통순경’이지만, 아직까지는 철학적 마인드를 갖춘 언론인이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근거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침묵했다고 하셨습니다. ‘소드’님이 지적 하셨듯이 언론인에게는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철학적인 마인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법조인에게는 ‘리갈 마인드’가 중요하듯 말입니다. 그렇다면 손석희 교수님에게는 그런 철학적인 마인드가 없을까요?


저 역시 얼마 전까지 ‘소드’님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물었습니다. “국장(당시 아나운서 국장이셨습니다.)님이 진정으로 우리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고 싶으시다면 직접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게 국가의 미래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정치를 하지는 않더라도 논평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국장님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잖아요.”


질문을 할 당시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건방진 질문일 수도 있었지만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다행히 손석희 교수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답변해 주시더군요.


“사람들은 내 생각을 밝히지 않는다고 하곤 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아. 시선집중을 진행할 때 나는 ‘이러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방식으로 내 생각을 밝히곤 하지. 깊이 들어가면서 꼬치꼬치 캐묻다 보니까 출연자들이 피하기도 하고 말이야. 언론인이라면 드러내놓고 특정한 방향으로 기울지 않는 게 중요해. 특히나 국론이 크게 분열된 상황에서는 말이지. 자칫하면 신뢰성에 큰 위협을 받을 수도 있거든. 언론은 신뢰가 생명이니까. 그리고 내가 내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정치인들이 나랑 인터뷰 하려고 하겠어? 지금도 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는 법이지. 나는 지금의 내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은데, 그 생각들을 정리해서 국민에게 전?주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혹시라도 그 생각에 오류가 있다면 지적하는 것 역시 나의 몫이고.”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위와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전 그 때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방송을 들을 때는 통쾌하게 웃다가도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말이죠. 그 누구보다도 언론인으로서의 양심과 역할을 꿋꿋하게 지켜나가고 계신 분이 손석희 교수님입니다.


과연 ‘소드’님 말씀처럼 손석희 교수님이 자신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저는 국가의 미래가 밝아지기는커녕 그걸 갖고 더 심하게 국론이 분열될 것이라 짐작합니다. 언론인으로서 손석희 교수님의 역할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의 의견을 고루 전달하고,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이고 바꿔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공정하게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대한민국 아나운서들 굉장히 싫어합니다. 철학적 마인드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써준 원고 그대로 따라 읽고,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나운서들 너무 많습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비판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실제로 만나 보아도 이 사람은 ‘박문각 최신시사상식’ 달달 외운 것 말고는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손석희 교수님이 ‘마주치다 눈뜨다’라는 책에서 “노조를 안 할 이유가 없어서 노조를 했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 한 마디를 통해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언론인 중 한 분인 손석희 교수님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소드’님께서는 한번쯤 언론인으로서 손석희 교수님은 철학적 마인드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그 분의 심오한 철학적 마인드를 찾아내지 못한 자신이 무지한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버릇없는 말투의 두서없는 글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처음으로 이곳에 글을 남겼습니다. 저 역시 철학적 마인드는커녕 기본적인 개념 탑재도 안 된 무지한 사람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손석희 교수님을 비판 혹은 폄하하는 ‘소드’님의 글을 읽고 참을 수 없었습니다. ‘소드’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글을 보면 단어 선택 하나하나가 손석희 교수님을 폄하하고 있다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철학적 마인드를 갖춘 언론인을 꿈꾼다면 단어 선택 하나하나도 신중하게 하셔야 될 겁니다.


이상으로 대한민국의 뛰어난 '교통순경'을 존경하는 '기이한 학생'의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