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라는 가수가 유명을 달리 했다. 어제 오늘 회자되는 이야기 가운데 단연 수위일 것이다.
유니라는 가수.. 물론 개인적으로 별 큰 관심없이, 춤 잘 추고 끼 많은 섹시댄스 가수였으며 과거에 이혜련이라는 이름으로 연기의 경험이 있었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유니였다. 유니는 며칠뒤 새로운 앨범으로 컴백을 앞두고 있었는데 부담감과 악성댓글에 대한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요즘 인기있는 일본영화 데스노트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는 사신이 떨어뜨린 죽음의 노트에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쓰면 정해진 시간에 심장마비 또는 계획된 사인으로 죽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있다.
예절도 없고, 상식도 없고, 책임도 없는 익명의 특징을 가지는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의 여느 연예인의 죽음은 어쩌면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 검색엔진에 10대의 검색어 중 '힘들어'라는 단어가 오를 정도로 우리는 언제부턴가, 인터넷이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부터 또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물리적인 것을 의존하였고 이제는 인간의 고유의 정신마저 기대려 하는 터에, 대중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연예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악플과 증오섞인 말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우리는 익명성이라는 큰 무기를 가지고 인터넷이라는 데스노트에 '유니'라는 이름을 계속 써내려오진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번 해본다. '어차피 내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데 한번쯤 재미로 다는 기분 나쁜 글' 들의 작은 힘들이 모아져 어쩌면 데스노트를 능가하는 사신의 힘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는가?
인터넷의 이러한 잔혹무도함이 영화와 다른 것은, 소수의 몇몇의 손에만 들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의 손에 들려 여러 이름이 쓰여내려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두명의 키라가 아니라, 몇천 몇만의 키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키라는 노인이 될 수도 있고, 초등학생도 될 수 있다. 이 말은 제 2의 유니도, 제 3의 유니도 더 잔혹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니 너무도 무섭게 느껴진다.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당신, 또다른 이름의 '키라'가 아닐지 자문해 보지 않으련가?
그냥 미니홈피에 생각을 적어 광장보내기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읽어주실지는 사실 몰랐습니다. 글에 대해서 이런 저런 평을 내려주시는 것도 사실 낯설고 어색하지만 공감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고인이 되신 유니씨의 팬도, 데스노트라는 영화의 팬도 아닙니다. 한 연예인의 죽음을 영화와 억지로 연결시키려는 의도도 없었구요. 저 또한 네티즌으로써, 인터넷에서의 자아정체성을 상실하는 데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글을 썼습니다. 모두가 글로써 누구에게 이유없는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한번씩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다른 이름의 데스노트
'유니'라는 가수가 유명을 달리 했다. 어제 오늘 회자되는 이야기 가운데 단연 수위일 것이다.
유니라는 가수.. 물론 개인적으로 별 큰 관심없이, 춤 잘 추고 끼 많은 섹시댄스 가수였으며 과거에 이혜련이라는 이름으로 연기의 경험이 있었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유니였다. 유니는 며칠뒤 새로운 앨범으로 컴백을 앞두고 있었는데 부담감과 악성댓글에 대한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요즘 인기있는 일본영화 데스노트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는 사신이 떨어뜨린 죽음의 노트에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쓰면 정해진 시간에 심장마비 또는 계획된 사인으로 죽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있다.
예절도 없고, 상식도 없고, 책임도 없는 익명의 특징을 가지는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의 여느 연예인의 죽음은 어쩌면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 검색엔진에 10대의 검색어 중 '힘들어'라는 단어가 오를 정도로 우리는 언제부턴가, 인터넷이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부터 또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물리적인 것을 의존하였고 이제는 인간의 고유의 정신마저 기대려 하는 터에, 대중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연예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악플과 증오섞인 말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우리는 익명성이라는 큰 무기를 가지고 인터넷이라는 데스노트에 '유니'라는 이름을 계속 써내려오진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번 해본다. '어차피 내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데 한번쯤 재미로 다는 기분 나쁜 글' 들의 작은 힘들이 모아져 어쩌면 데스노트를 능가하는 사신의 힘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는가?
인터넷의 이러한 잔혹무도함이 영화와 다른 것은, 소수의 몇몇의 손에만 들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의 손에 들려 여러 이름이 쓰여내려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두명의 키라가 아니라, 몇천 몇만의 키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키라는 노인이 될 수도 있고, 초등학생도 될 수 있다. 이 말은 제 2의 유니도, 제 3의 유니도 더 잔혹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니 너무도 무섭게 느껴진다.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당신, 또다른 이름의 '키라'가 아닐지 자문해 보지 않으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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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미니홈피에 생각을 적어 광장보내기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읽어주실지는 사실 몰랐습니다. 글에 대해서 이런 저런 평을 내려주시는 것도 사실 낯설고 어색하지만 공감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고인이 되신 유니씨의 팬도, 데스노트라는 영화의 팬도 아닙니다. 한 연예인의 죽음을 영화와 억지로 연결시키려는 의도도 없었구요. 저 또한 네티즌으로써, 인터넷에서의 자아정체성을 상실하는 데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글을 썼습니다. 모두가 글로써 누구에게 이유없는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한번씩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