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say --------
내가 '요코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중3이 되는 동생으로부터다. 나에게 동생이 전해 준 '요코이야기'에 대한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미국에서 교재로 채택한 '요코이야기'엔 일제 식민지 시대에 한국인들이 여자 일본인들에게 폭력적인 성행위를 저질렀다는 식의 내용이 담겨져 있었는데 이를 읽은 한국인 아이가 수업거부를 하며 등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전해지고 전해진 몇몇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의 조합으로 알게 된 일명 '요코사건'에서 난 일본이 갈 때까지 갔구나 싶었고 그걸 또 교재로 채택한 미국 역시 자체적 두뇌 활동을 중단한건가 했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요코이야기.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에 대한 많은 기사와 논평 칼럼 등은 이미 그에 대한 많은 의견들을 얘기하고 있었다.
'반일'이 아닌 '극일'사상을 지니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소설 속에 두어 번 나오는 짧고 간접적인 성폭행 묘사 부분은 화살 촉처럼 직격탄을 날리는 것이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책을 읽다 그 부분과 마주치게 되었다면 '말도 안돼, 미쳤군. ' 이란 말을 내뱉었을 테니까.
아주 순각적인 반응일 것이다.
위의 기사에서처럼 일본에 있어 한국인들은 피해자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욱'한 감성에서 우리는 이성을 한 번 찾아봐야 한다 생각한다. 감성에 기울어버린 행동은 한 번의 침묵적 고뇌를 거친 이성 앞에서 패배하기에.
소설의 전체적인 메세지가 무엇인가를 따져봤다면, 수업거부를 한 소녀가 조금은 더 정당하게 항의를 내세울 수 있었을 테고, 이토록 거품이 일어버린 사건으로 '요코? 에? 일본이 또 뭐?' 하는 극단적인 반일(한편으로는 극일) 감정을 돋우지 않았을테니까.
'요코이야기'는 일종의 전쟁소설의 한 부류이다. 작가가 12살 때의 눈으로 바라보고 겪었던 잔혹하고도 잔인한 전쟁의 모습에서 반전메시지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왜, 중·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듯 말이다) 결국 요코는, 참혹했던 전쟁을 말하려 했던 거다. 그에 대한 마음을 함께 알고 나누고자 했던게다. 책장을 넘기다 작은 종이 끝에 찔린 아픔으로 그런 마음을 담은 책을 조각조각 내어 모두 찢어버리는 말과 행동은 상식적으로도 배운 자의 모습으로 옳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요코이야기'가 지니는 문제는 이 소설이 미국에서 중학교 교재로 채택된 데에 있다.
중학생의 시각에선 보이고 들리는 대로 모든걸 수이 받아들여 버리기 쉽다. 그런 아이들을 상대로 이 소설이 어떻게 비춰질 지도 모르는데 교재로 채택된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만은 나 역시, 두어 번 나온다지만 한국인이 일본인을 성폭행한다는 내용의 묘사를 미국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미국 정부가 들을 수만 있다면 교재 채택을 취소해 달라는 안건을 전하고 싶다. 왜, 미국인들 논평 좋아하지 않는가. 차라리 서점에 책을 출간하여 그런 논평의 주제로 요코이야기를 정하는 것이 아직은 연약한 사고의 소유자인 중학생들의 발전에 틀을 정해버리는 일보다 더 멋지지 않을까.
요코 이야기
(중략)
소설은 말하자면, 열두 살 소녀의 파란만장 피난기다.
일본인 '요코가와시마 윗킨스'가 60년 전의 일을,
겨우 열두 살 때의 기억을 토대로 소설을 쓴 것이다.
그렇다 보니 사실과 다를 수 있다.
기억이란 본래 온전한 것이 못된다.
…
그렇다 해도 소설의 메시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조선인이 일본인을 성폭행하는 장면도
소설의 주제는 흩뜨리지 못한다고 믿는다.
부정적이었지만 악의적이진 않았다.
소설은 전쟁의 참혹함을 말하고 있었다.
소녀에게 적은 조선만이 아니었다.
굶주림이었고 가난이었으며, 일본인이기도 했다.
우리로선 당연히 기분 나쁠 수 있다.
그렇다고 가짜고짜 욕부터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굳이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면,
사리판단 안 되는 아이들에게
하필이면 이 책을 권한 미국 정부일 터이다.
다 큰 어른이 읽는 소설과
애들이 줄치며 외우는 교재는 차원이 다르다.
- 손민호 기자의 문학터치
이번 파문의 진앙은 미국이다.
아무리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해도
이 소설이 미국에서 중학교 교재로 사용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아시아 식민지 역사에 무지한 미국 학생들에게
일본이 자칫 전쟁의 피해자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교포들의 반발은 그래서 정당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한국에서도 출판되지 말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너무나 잘 알지 않는가.
오히려 이제는 일본은 가해자, 한국은 피해자라는 등식의
민족주의적 집단 주술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 시시각각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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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코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중3이 되는 동생으로부터다. 나에게 동생이 전해 준 '요코이야기'에 대한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미국에서 교재로 채택한 '요코이야기'엔 일제 식민지 시대에 한국인들이 여자 일본인들에게 폭력적인 성행위를 저질렀다는 식의 내용이 담겨져 있었는데 이를 읽은 한국인 아이가 수업거부를 하며 등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전해지고 전해진 몇몇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의 조합으로 알게 된 일명 '요코사건'에서 난 일본이 갈 때까지 갔구나 싶었고 그걸 또 교재로 채택한 미국 역시 자체적 두뇌 활동을 중단한건가 했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요코이야기.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에 대한 많은 기사와 논평 칼럼 등은 이미 그에 대한 많은 의견들을 얘기하고 있었다.
'반일'이 아닌 '극일'사상을 지니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소설 속에 두어 번 나오는 짧고 간접적인 성폭행 묘사 부분은 화살 촉처럼 직격탄을 날리는 것이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책을 읽다 그 부분과 마주치게 되었다면 '말도 안돼, 미쳤군. ' 이란 말을 내뱉었을 테니까.
아주 순각적인 반응일 것이다.
위의 기사에서처럼 일본에 있어 한국인들은 피해자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욱'한 감성에서 우리는 이성을 한 번 찾아봐야 한다 생각한다. 감성에 기울어버린 행동은 한 번의 침묵적 고뇌를 거친 이성 앞에서 패배하기에.
소설의 전체적인 메세지가 무엇인가를 따져봤다면, 수업거부를 한 소녀가 조금은 더 정당하게 항의를 내세울 수 있었을 테고, 이토록 거품이 일어버린 사건으로 '요코? 에? 일본이 또 뭐?' 하는 극단적인 반일(한편으로는 극일) 감정을 돋우지 않았을테니까.
'요코이야기'는 일종의 전쟁소설의 한 부류이다. 작가가 12살 때의 눈으로 바라보고 겪었던 잔혹하고도 잔인한 전쟁의 모습에서 반전메시지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왜, 중·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듯 말이다) 결국 요코는, 참혹했던 전쟁을 말하려 했던 거다. 그에 대한 마음을 함께 알고 나누고자 했던게다. 책장을 넘기다 작은 종이 끝에 찔린 아픔으로 그런 마음을 담은 책을 조각조각 내어 모두 찢어버리는 말과 행동은 상식적으로도 배운 자의 모습으로 옳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요코이야기'가 지니는 문제는 이 소설이 미국에서 중학교 교재로 채택된 데에 있다.
중학생의 시각에선 보이고 들리는 대로 모든걸 수이 받아들여 버리기 쉽다. 그런 아이들을 상대로 이 소설이 어떻게 비춰질 지도 모르는데 교재로 채택된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만은 나 역시, 두어 번 나온다지만 한국인이 일본인을 성폭행한다는 내용의 묘사를 미국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미국 정부가 들을 수만 있다면 교재 채택을 취소해 달라는 안건을 전하고 싶다. 왜, 미국인들 논평 좋아하지 않는가. 차라리 서점에 책을 출간하여 그런 논평의 주제로 요코이야기를 정하는 것이 아직은 연약한 사고의 소유자인 중학생들의 발전에 틀을 정해버리는 일보다 더 멋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