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청계천 뒷골목... 가난한 사람들의 메카... 잊혀진 산업역군들의 회한과 서러움이 가득한 곳...
이곳엔 60년대와 70, 80, 90년대를 거쳐 이른바 '처녀불알만 없고 다있다!'는 속설의 마치 '마법램프의 지니'같은 농.상.공을 아루르는 물건 전체가 거래되던 곳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 이곳은 개발논리에 맞물려 땅값은 폭등되고 있는자와 없는자의 투기와 생존이 맞물려 갈등의 골이 깊은 땅으로 변했다.
한켠에서는 한가로이 청계천의 복원된 하천이 한가로이 흐르고 기러기는 그곳에 사는 작은 물고기를 먹으려 둥지를 틀었다. 천계천변엔 마천루와 같은 높은 빌딩들이 어깨를 부딪히며 올라가고 있고. 그 뒤켠 허름한 작은 공장들과, 곱창집, 그릇도매상, 중고잡품 매매상 들은 언제 이곳을 떠나야할지 시간을 재가면서 위태로히 생계를 이어간다.
이곳도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곱창구이에 소주 한잔 걸치고 집에서 들을 LP판을 사려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덤으로... 신기한 것들도 구경하고 장사꾼의 입담에 웃기도 하다가... 마음이 동하면 예정에 없던 싼값에 유용한 많은 생필품을 한보따리씩 사들고 기분좋게 집에 가기도 했다.
운이 좋으면 물건값 흥정에 치고 받고 싸우는 손님과 가게 주인의 주먹다짐도 볼 수 있었고...
삼일고가의 밑 바닥에서는 대낮에도 술취한 주정뱅이들이 술에 쩔어 잠을 자거나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고... 교복입은 청소년들은 삐끼들의 꼬임에 외설잡지와 비디오를 몰래사서 허기진 성적호기심을 듬뿍 채우기도 했다...
청계천...
이곳엔 '산업역군들'.... 우리네의 아버지 세대들의 한과 희망이 눈물과 고통이 젖어있던 곳 이기도 하다...
공업한다는 사람들... 싼값에 모터며 펌프, 파이프며 철강재들을 사가거나 임가공하여 국내의 산업시스템을 업그레이드 시켰고 각고의 노력으로 해외수출을 하여 외화벌이와 더불어 국력증진에 온 힘을 기울였다.... 애국자들...
그 때는 지금처럼 노조도 5일제도 없었다. 일요일도 으례 일하는 날이었다... 식비를 아끼려고 라면 하나에 국수를 가득 넣고 마장동에서 닭내장이며, 돼지 내장들을 얻어다 고추장을 풀어 동료들과 허기를 달래던...그런곳...
청계천에서 물건을 주고 물건을 받는 그 손들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불에 데이거나, 공작기계에 잘리거나, 기름때에 절어 구두약을 발라 놓은것 마냥 시커멓던 그 쇠덩이와 같던 손들... 어디 청계천 골목만 그러하랴... 성수동이며, 영등포 문래동.... 그 예전의 성한 몸뚱이와 패기만을 가지고 가족의 생존을 위해 혹사하던 청년들은 이젠 백발이 희끗한 몸성한데 없는 중장년의 노인이 되었다.
내 자식들 만큼은 서러운 공돌이 공순이로 기름밥, 눈치밥을 먹지 않게 하려고 그 고생을 했건만...
아이들은 내 맘대로 커주지도 않았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미련한 믿음들...
디지털 시대의 우리 아이들은 기름때를 묻히지는 않지만... 사는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고생스럽다....
이른바 '가난의 대물림'.... "돈 있던 자들만 돈을 벌기 마련이다..." 이것이 진실...!
그토록 죽을 고생을 했지만 돈도 모이지 않았다...
그럭저럭 입고 먹고 자는 때론 그보다도 못한 정도의
삶의 질...
이것이 우리네 아버지들의 청춘을 바친데에 대한 품삯...
2007년 지금 당신들 아버지들의 손을 보라! 그처럼 슬프게도 굵고 험한 손마디가 당신들의 몸과 영혼을 만든것이다... 디지털세대들... 당신들의 여유로운 삶의 질이 지금의 풍요로움이 바로 당신들 아버지 세대들의 서럽고 굽은 등허리를 밟고 올라선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청계천, 성수동, 문래동의 산업단지들.... 이젠 우리네 아버지들 처럼 수명이 다해가는 곳... 그리고 우리 아버지들 그들에게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아무런 보답도 고마워 하는 마음조차도 없다.
★''청계천''...에 대해서..★
이곳은 청계천 뒷골목... 가난한 사람들의 메카... 잊혀진 산업역군들의 회한과 서러움이 가득한 곳...
이곳엔 60년대와 70, 80, 90년대를 거쳐 이른바 '처녀불알만 없고 다있다!'는 속설의 마치 '마법램프의 지니'같은 농.상.공을 아루르는 물건 전체가 거래되던 곳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 이곳은 개발논리에 맞물려 땅값은 폭등되고 있는자와 없는자의 투기와 생존이 맞물려 갈등의 골이 깊은 땅으로 변했다.
한켠에서는 한가로이 청계천의 복원된 하천이 한가로이 흐르고 기러기는 그곳에 사는 작은 물고기를 먹으려 둥지를 틀었다. 천계천변엔 마천루와 같은 높은 빌딩들이 어깨를 부딪히며 올라가고 있고. 그 뒤켠 허름한 작은 공장들과, 곱창집, 그릇도매상, 중고잡품 매매상 들은 언제 이곳을 떠나야할지 시간을 재가면서 위태로히 생계를 이어간다.
이곳도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곱창구이에 소주 한잔 걸치고 집에서 들을 LP판을 사려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덤으로... 신기한 것들도 구경하고 장사꾼의 입담에 웃기도 하다가... 마음이 동하면 예정에 없던 싼값에 유용한 많은 생필품을 한보따리씩 사들고 기분좋게 집에 가기도 했다.
운이 좋으면 물건값 흥정에 치고 받고 싸우는 손님과 가게 주인의 주먹다짐도 볼 수 있었고...
삼일고가의 밑 바닥에서는 대낮에도 술취한 주정뱅이들이 술에 쩔어 잠을 자거나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고... 교복입은 청소년들은 삐끼들의 꼬임에 외설잡지와 비디오를 몰래사서 허기진 성적호기심을 듬뿍 채우기도 했다...
청계천...
이곳엔 '산업역군들'.... 우리네의 아버지 세대들의 한과 희망이 눈물과 고통이 젖어있던 곳 이기도 하다...
공업한다는 사람들... 싼값에 모터며 펌프, 파이프며 철강재들을 사가거나 임가공하여 국내의 산업시스템을 업그레이드 시켰고 각고의 노력으로 해외수출을 하여 외화벌이와 더불어 국력증진에 온 힘을 기울였다.... 애국자들...
그 때는 지금처럼 노조도 5일제도 없었다. 일요일도 으례 일하는 날이었다... 식비를 아끼려고 라면 하나에 국수를 가득 넣고 마장동에서 닭내장이며, 돼지 내장들을 얻어다 고추장을 풀어 동료들과 허기를 달래던...그런곳...
청계천에서 물건을 주고 물건을 받는 그 손들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불에 데이거나, 공작기계에 잘리거나, 기름때에 절어 구두약을 발라 놓은것 마냥 시커멓던 그 쇠덩이와 같던 손들... 어디 청계천 골목만 그러하랴... 성수동이며, 영등포 문래동.... 그 예전의 성한 몸뚱이와 패기만을 가지고 가족의 생존을 위해 혹사하던 청년들은 이젠 백발이 희끗한 몸성한데 없는 중장년의 노인이 되었다.
내 자식들 만큼은 서러운 공돌이 공순이로 기름밥, 눈치밥을 먹지 않게 하려고 그 고생을 했건만...
아이들은 내 맘대로 커주지도 않았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미련한 믿음들...
디지털 시대의 우리 아이들은 기름때를 묻히지는 않지만... 사는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고생스럽다....
이른바 '가난의 대물림'.... "돈 있던 자들만 돈을 벌기 마련이다..." 이것이 진실...!
그토록 죽을 고생을 했지만 돈도 모이지 않았다...
그럭저럭 입고 먹고 자는 때론 그보다도 못한 정도의
삶의 질...
이것이 우리네 아버지들의 청춘을 바친데에 대한 품삯...
2007년 지금 당신들 아버지들의 손을 보라! 그처럼 슬프게도 굵고 험한 손마디가 당신들의 몸과 영혼을 만든것이다... 디지털세대들... 당신들의 여유로운 삶의 질이 지금의 풍요로움이 바로 당신들 아버지 세대들의 서럽고 굽은 등허리를 밟고 올라선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청계천, 성수동, 문래동의 산업단지들.... 이젠 우리네 아버지들 처럼 수명이 다해가는 곳... 그리고 우리 아버지들 그들에게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아무런 보답도 고마워 하는 마음조차도 없다.
다만, 죽도록 고생했던 시절들에 대한 회한과 서러움만 있을 뿐...
- 그 시절 손가락 한마디를 잃어가며 우리 삼형제를 키우신 우리아
버지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