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

류정수2007.01.24
조회49
황금돼지

황금돼지

                                                류정수

아직 쌍춘년이라는 길년(吉年)이 유효해서 그런지 새해초입에 들어서서도 이곳저곳 결혼식장마다 성년식(成年式) 출가(出家)식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요즘 휴일은 새 가정을 탄생시키는 날이라는 의미를 부각 시키면서 예식장에 드나드는 날로 굳어지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품어보기도 한다. 

 세상이 발달하여 교통이 쉬워지고 보니 왕래의 개념이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지 오래다. 시간만 포개지지 않는다면 오늘은 부산에 다녀오고 내일은 전주에 다녀오고 하다 보니 바빠지기는 옛날 보다 더한 것 같다. 거기다가 때가 때인지라 신년인사라 뭐라하여 저녁모임에 참석하다 보면 쉬지 못하는 휴일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휴일풍경이다.


 사람들은 두 발 달린 중생이라는 특이한 점 때문인지 수백년 동안 묵혀온 이야기도도 잘 끄집어낸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다.

 정해(丁亥)년인 올해는 또 뭐 600년에 한번 찾아 올동말동하는 ‘황금돼지’의 해라나 뭐라나 하면서 올해에 아기를 낳으면 부자로 잘 산다고 하니 젊은이들이 늦게 퇴근할 이유를 잃어가고 있다. 메뚜기도 한때라 젊은 산부인과 의사들 역시 돈이 좋아 남의 여자 뱃속에 있는 아이만 열심히 돌보다가는 자기아이 만드는 숙제는 풀기 어려울 것 같은 걱정도 생긴다.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돼지 같이 멍청한 녀석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 왔지만 실물돼지에게 황금돼지니 무슨 돼지니 하면서 대접하는 때는 없었다. 기껏해야 복권이나 한 장 사고 나서 돼지꿈을 기다리거나 돼지  꿈을 꾸었기 때문에 복권을 사는 사례가 있었을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가 기르는 돼지들은 제법 귀한 대접을 받은 동물이었다. 우리 집 재산을 불려주는 화수분의 역할을 해온 것이 그 멍청한 돼지였기 때문이다, 그 돼지들은 적어도 나와 우리 형제들을 교육시킨 장학재단이었고 당시 아버지가 여러 마리의 소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준 원조이었고, 전라도 시골에서 논 마지가나 살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여 준 공로자였기 때문이다.


내 어려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새벽녘 무릎을 오그리면서 온돌방 이불 밑으로 발을 집어넣고 단잠에 들어갈 즈음이면 아버지는 나와 형을 깨우신다. 못들은 척 하고 이불을 둘러쓰면서 시간을 늦추기라도 하면  초가집 안방 앞뒤 문이 확 열리면서 찬바람이 들어오는가 싶다 느끼면서 별로 좋지도 않는 이불마저 제 자리를 이탈하고 만다. 그 속에는 꼭 방금 굽다가 꺼낸 오징어처럼 온몸을 오므라뜨린 두 아이가 ‘에이에이’ 하는 불평을 하면서 눈을 비비기 마련이다. 

 형하고 내가 일어나면 윗 뜸에 가서 돼지구정물을 받아온다. 아버지가 미리 가져다 놓은 구정물 통이 있는 집에 가서 윗물을 버리고 돼지에게 영양가 있는 구정물만 우리가 가지고간 수대에 따르고 그 수대(물통)의 손잡이에 작대기를 끼고 둘이서 메고 돌아오는 것이다. 지금생각하면 영화의 한 장면 같기만 하다.

 아버지께서는 길을 가다가 아이들이 먹다버린 고구마덩이가 보이거나  배추잎 무 줄거리 등등 돼지가 먹을 수 있는 것이 발견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전부 주워서 돼지에게 바친다.

 또, 들에 다녀오시든지 마실을 다녀오던지 집에 들어오시면 곧바로 돼지 밥을 챙겨주신다. 우리가 좋아하는 고구마도 절반은 돼지 양식에 쓰여 진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어디에 다녀오면서 사릿문에 들어서면 돼지들은 시끄럽게 꿀꿀이 합창을 한다. 심지어는 5일장을 보고 마을 동구 밖에 들어서면 돼지들은 벌써 아버지 오신 것을 알고 ‘꿀꿀꿀꿀’ 울어댄다. 이 때 어머니는 우리에게 ‘아버지 오신다. 빨리 나가 보아라’ 하면서 마중을 재촉한다. 동구 밖을 나가보면 정말 아버지가 오신다. 참 신통한 짐승이다.

 겨울에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는 우리식구들은 안방의 절반은 돼지에게 빼앗기는 불운을 맞기도 한다. 열 마리가 넘는 돼지새끼를 담은 둥우리를 아랫목에 놓고 이불을 덮어주기도 하고 죽을 끓여 대접을 하여야 아버지의 속이 풀리는 것이다. 봄 돼지는 값이 비싸서 이런 대우를 받을 만하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아버지가 키우는 돼지들은 다른 집에 비하여 유달리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새끼도 잘 낳는다. 1년에 두 번 씩 새끼를 낳다보면 송아지 한 마리가 생긴다. 그 송아지는 다른 사람이 가져다 키워준다. 송아지가 2년 정도 자라면 또 송아지를 낳는다.

 이렇게 하여 그 돼지들은 우리형제들에게 학비며 하숙비를 대주기 마련이었고 우리 집 살림을 부풀어주기 마련이었다. 아버지께서 우리 7남매를 가르치면서도 논마지기라도 장만한 것이 다 이 돼지들의 덕택이 아니라고 부인할 식구는 아무도 없다. 우리 집에서는 그야 말로 황금돼지를 키워온 것이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키워온 돼지들이 전부 황금돼지였을 것이다. 나 역시 아버지의 황금돼지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정해생 돼지띠다. ‘우리집에는 돼지띠인 네가 있어서 돼지 농사가 잘 되고 있다’ 고 돌아가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내가 황금돼지를 만드는 황금돼지라는 이야기다.

 2007.1.14  류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