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 심리 분석-`유니" 자살과 관련하여

황혜진2007.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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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 상황:

유니의 자살이 악플과 관련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유니가 누군지 몰랐던 나는 '유니'를 검색해 보고 상당히 예쁘고 섹시한 가수임과 그녀가 성형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근데 악플러들은 왜 악의적으로 한 사람을 집요하게 비방할까 한번 생각해 보았다.

 

2. 분석 동기:

이부영의 에서 융의 '그림자' 이론을 여러가지 상황과 문화에 적용하여 설명하였다. 이 책이 너무 흥미로왔기에 어제, 오늘 이틀만에 독파했는데 이 책의 이론을 적용하여 악플러의 심리 분석을 행하고 싶었다. 

 

3. '그림자'란?:

분석심리학에 따르면 그림자는, 의식에 가장 가까이 있는 무의식의 내용으로 '열등한 인격'에 해당한다. 무례함, 여우짓, 속임수, 낭비벽, 게으름, 공격적 자기 주장, 교태, 탐욕, 고집, 지배욕, 독설, 교만, 음란, 비굴함 등(다 나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인격들을 묻어둔 무의식이 바로 그림자라는 것이다.

 

4. 투사 이론:

자기가 심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자기의 그림자에 해당하는 인격을 드러내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자기의 그림자를, 원망, 혐오하는 대상에게 발견(투사)하고선 그를 속속들이 파헤쳐 비난하는 것이다.

 

5. 유니가 보여준 그림자:

범박하게 말하면, 유니가 (가수로서) 보여준 것은 교태로움, 섹시함, 외모지상성 등인데 이건 우리의, 우리 문화의 그림자이다. 이 그림자는 우리에게 부정되고 있는 것인 동시에 우리의 일부이다.

 

6. 있을 수 있는 반론:

과연 우리가, 우리 문화가 그렇게 윤리적이었던가? --> 사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위선적임은 분명하다. 자식 앞에서 자신의 교태스러움과 섹시함을 뽐내던 백설공주의 계모는 여전히 나쁜년이지 않나?  

 

7. 그림자에 대한 건강한(?) 반응:

"우와, 저 여자 정말 섹시하군. 나도 그러길 바라지만 타고난 조건이 안 되는걸. 저 여자는 성형도 했다지? 난 성형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수술을 받고 싶은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야. 어쨌든 저 가수의 흔들리는 가슴을 살짝 가리고 있는 저 옷의 실밥이 풀렸으면 좋겠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얼마나 음탕한 사람인가? 그치만 좀 음탕하면 어때, 다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저 섹시 가수 코드가 우리 문화에 먹히는 거 아니겠어?"

 

8. 있을 수 있는 반론:

과연 위의 건강한(?) 반응이 사회적 선인가? 그림자를 드러내고 인정하여 나쁜 사람이 되란 얘기냐는 것인데, 나도 이에 대해 의아해 하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부영은 이를 조심스럽게 설명한다. 심리학의 선과 사회적 선은 다르다고. 심리학에서는 전일적인 인격을 갖는 게 선이다. 그리고 그림자를 조금씩, 의식적으로 표현하다보면 그것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표출하는 방식을 익힐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내 놓는다. ....의식적이라는 것은 통제 가능하다는 얘기도 되니까 그럴 수 있지 않을까?

 

9. 그림자에 대한 건강하지 않은 반응:

(실감나게 묘사하지 못하겠다....) 대부분의 악플러들의 인신공격성 발언들.

 

10. 9에 대한 분석:

(아마도) 대다수 악플러들은 매우 바람직한 윤리의식을 갖고 있으면서 자신은 섹시함, 교태스러움, 외모지상성 등에 대한 것과 거리가 먼 것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지만 그건 자아에 대한 협소한 이해일 뿐, 원래의 자기(참고로 분석심리학에서는 자아와 자기를 구분한다. 자아는 의식된 자기일 뿐.)는 상당히 음탕하다. 유니에게 자아의 억압된 측면을 투사하여 그 부분(사실 자신의 무의식 일부)을 맹렬하게 비판한다. 왕따를 만들듯이 말이다. 그럼으로써 자기는 완전한 인격을 갖게 되는 것 같은 착각이 가능하다.

 

11. 악플러들의 심리 분석:

익명성은 자신의 그림자를 드러내기 쉬운 환경을 제공한다. 특정 대상에 대한 비난은 자기 그림자의 투사이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싫어하는 대상은 어쩌면 내가 의식적으로 억압한 나의 일부일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나'(진짜 나)를 인정할 용기도, 내가 '나'로서 살아갈 의지도 없다. 나는 악플을 통해 '나'를 부정하면서 오히려 의식적인 나만을 공고히 만들어 나아간다.

 

12.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부디 '나'를 인정하자.

'나'는 종종 부지런하며 종종 게으르다.

'나'는 종종 합리적이며 종종 감정적이다.

'나'는 종종 숭고하며 종종 천박하다.

'나'는 종종 권위적이며 종종 비굴하다.

'나'는 종종 고상하며 종종 음탕하다.

.......

그리고 이 상반된 나는 모두 다 삶의 조건으로 존재 가치가 있다!

 

악플을 달기 전에, 너 자신을 알고, 너 자신이 다르게 하고 싶은 것(Anderswollen)을 인정하라.

 

13. 악플러에게:

융은 말했다.

"전체성('나'를 전일적으로 사는 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원만성이다."

바람직한 인격을 모두 모아 나를 만드는 게 다 좋은 게 아니다. 자아와 자기가 한 존재 내에서 원만히 지내지 못하는 게 뭐 그리 행복하겠냐.....너도 참 불쌍한 인간이다.

 

14. 어쩌면 과도한 적용:

적은 서로 닮는다 했던가? 근데 싸우면서 닮아지는 게 아니라 닮아서 싸우는 거다. (옛날의?) 좌익이나, 우익이나.(그넘의 지배욕...)

노무현이나, 조중동이나....너나, 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