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독일의 패망이 눈앞에 왔다. 그럼에도 전혀 산업시설이 없어 피난민밖에 없던 드레스덴을 불태운다. 특히 드레스덴은 연합군이 폭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많은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
- 공습날짜 : 1945년 2월 14일
- 투하된 폭탄 : 3,900톤
- 민간인 사망자 : 35,000명
드레스덴은 베를린에서 약 160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하였다
1945년 당신 인구 65만의 도시로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으며 군사적으로는 야전병원의 집결지일 뿐,군대 시설이나 부대가 없는 도시였다.
그런데 당시에 영국,미국의 연합군 공군은 스탈린의 요구에 의해 소련군이 입성하기전 1945년2월 13~15일과 3월2일에 무려 3천통이상의 폭탄과 소이탄을 퍼부어 무고한 시민 20~35만 명이나 몰살당했다.
이러한 사실이 스웨덴에서 처음 발표되고 ,뒤이어 영국의 bbc와 미국의 ap통신이 잠깐 취급하여 연합국의 명분 없는 고의적인 학살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며,일본의 남경학살에 견줄만한 사건으로 취급되어 많은 지성인들의 지탄을 받았다,그러나 승자인 연합국의 은폐공작으로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사건이다.
연합군의 드레스덴 대학살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독일의 패망이 눈앞에 왔다. 그럼에도 전혀 산업시설이 없어 피난민밖에 없던 드레스덴을 불태운다. 특히 드레스덴은 연합군이 폭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많은 많은 민간인들이 있었다.
- 공습날짜 : 1945년 2월 14일
- 투하된 폭탄 : 3,900톤
- 민간인 사망자 : 35,000명
드레스덴은 베를린에서 약 160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하였다
1945년 당신 인구 65만의 도시로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으며 군사적으로는 야전병원의 집결지일 뿐,군대 시설이나 부대가 없는 도시였다.
그런데 당시에 영국,미국의 연합군 공군은 스탈린의 요구에 의해 소련군이 입성하기전 1945년2월 13~15일과 3월2일에 무려 3천통이상의 폭탄과 소이탄을 퍼부어 무고한 시민 20~35만 명이나 몰살당했다.
이러한 사실이 스웨덴에서 처음 발표되고 ,뒤이어 영국의 bbc와 미국의 ap통신이 잠깐 취급하여 연합국의 명분 없는 고의적인 학살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며,일본의 남경학살에 견줄만한 사건으로 취급되어 많은 지성인들의 지탄을 받았다,그러나 승자인 연합국의 은폐공작으로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