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사토시 1만字 인터뷰

박은지2007.01.28
조회275

"만지면 안돼" 라고 듣자마자

통조림 뚜껑을 마져서 손가락을 쫙 베이거나
아빠 자전거 뒤에 타면 "다리 조심해" 라고 듣고는

자전거 바퀴에 다리를 끼어서 15바늘 꿰메거나 다른데도

상처가 많이 있어. 말썽쟁이였지.

 

그외에는 평범한 아이였다고 생각해.

친구랑 막과자가게에 가거나 가재잡거나 하면서 놀았어.

집 근처에 강이 있었거든.

초등학교 1학년때 브루스 리(이소룡)에 빠졌었어.

원래 아빠가 팬이어서 같이 비디오 보는 동안에 

"죽인다-!! 멋있다-!!"라면서 빠져들었지.

그때부터는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집에서

혼자 아뵤아뵤 소리내면서 놀았어.
기분은 브루스 리가 되어서 누나한테 까불다가 싸우곤 해서
"아-정말- 만나기만 하면 싸움이야."가 엄마 말버릇처럼

되버렸었어.

 

초등학교 6학년때 정말 좋아했던 것은 장끌로드 반담.
'킥복서'라는 영화가 멋있었거든.

양다리를 쫘-악 벌릴수있게 아파하면서도 훈련하는 장면이 있었어.
그게 진짜 하고 싶어서 나도 연습했어.

아팠지만 "쟝이랑 똑같다" 라면서 기뻐했었지.
그런데 매일 계속했더니 어느날 진짜로 쫘-악하고 벌어지는거야. 그거 감동했었네.

 

격투기는 좋아했지만 실제로 가라데라던지

배우러 갈 마음은 안 생겼어.
그게 절대 약할걸 뭐. 혼자서 하면 맘대로

우쭐해진 기분이 될 수 있잖아.
슬로우 모션으로 싸우거나 자유자재잖아.(笑)

 

아라시의 비디오에서 카포에라에 도전했던 것도

오랫만에 격투기를 좋아하는 피가 끓은거지(笑)
킥같은 춤동작이 있었는데

"오오, 이 그리운 감각은.."라고 생각했었어.
그렇지만 실제로 해보니까 생각한 것보다 정말 힘들었어.
"역시 나는 실전에는 안 맞아봐-아"라고 생각했지.(笑)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때.

같은 반에 캇짱의 영향이었어.
그때까지도 그림은 그리긴했었지만

캇짱이 그린 '드래곤 볼'그림을 봤을때는 불이 붙었어.
굉장히 잘 그렸어서 "지고 싶지 않아!" 라고 생각했었던 거지.
그때부터 공부도 안하고 오로지 그림만 그렸었어.

 

매주 '소년챔프'를 사와서 둘이서 노트에 베껴

그리고는 서로 보여주는데.
캇짱은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거야.

"안닮았지 않아?" 라면서. 그러면 또 불이 붙는 거야.
아마 원래 그림을 좋아했던 거겠지.

 

그런 식으로 "지고 싶지 않아" 라고 생각한적이 그때까지 없었는 걸.

캇짱은 재미있는 녀석이어서 둘이서 노는 사이에

자연히 나까지 '재미있는 녀석'이라도 보여지게 됐어.
그렇게 되면 그때까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재미있는 소리라고는

해본적도 없는데도 말할 수 있게 되나봐.
성격까지 변한것 같아.

캇짱한테 받은 영향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

 

중학교에 가서 내가 이 일을 시작하면서는

그다지 놀지 않게 되어 버려서. 그러다가 연락처도 모르게 되버렸어

그게 19살때, 우연히 동네역에서 만난거야.

캇짱은 얼굴도 머리모양도 앞머리가 일직선인 것까지

전혀 변하지 않아서 기뻤어.
그때부터 둘이서 계속 옛날 얘기를 했지.

"나, 그때 지고 싶지 않았었어" 라고 말했더니 캇짱은 웃더라구.

 

인생, 어디서 어떤 중요한 사람을 만날지는 모르는 거네.

캇짱이 없었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걸.

집에서 그리고 있을 때,

한가해 보여서 누나한테도 그려보라고 한적이 있었어.
그랬더니 나보다 잘 그려서 질렸어.

 

그림 따위 그려 본적도 없는 주제에.

"큰일났다!" 라고 생각해서
두번다시 그림그려야지 생각하지 않게

"그림 그리는거 힘든 일이네-" 라던지 말하면서 얼버무렸어.(笑)
이상하지. 우리 부모님은 그림 못그리는데.

 

우리 부모님은 굉장히 자유롭게 나를 키워주셨어.

"공부해"라던지 들어본적 없어.

아빠는 낚시를 좋아해서 자꾸 데려가 주셨어.

전날 밤에 아빠가 낚시 도구를 손보고 있으면 기뻤었어.
"내일은 낚시다-!!" 라면서.

나, 그런 전날 밤에 정말 좋아. 바베큐도 그래.
고기 꺼내와서 여러가지 끼우거나 하는게 즐거워.

 

오노집안이라 하면 바베큐.

지금도 1년에 두번은 가족끼리 하고 있을껄,

나는 일때문에 못가기도 하지만.
그러면 "못쉬는거야?" 라는 거야. 엄마가.

예를 들어 '엠스테'에 나만 없어서

타모리상이 "오늘, 오노는?"라고 물으면
멤버가 "바베큐 먹으러 갔어요" 라는건 무리잖아?

웃기기는 하지만 (笑)

 

 

 

엄마

 

그럴때는 엄마한테 메일이 와.

"지금부터 고기 먹는다아!" 어이어이!?
일분후에는 "맛있다!"라던지, 아- 됐다니까!! 처럼되는거야(笑)

엄마는 팝음악을 좋아해.

그래서 집에는 항상 팝이 흐르고 있어.

지금 잘나가는 노래 대부분 듣고 있는 것도 엄마덕분.
"좋은데"라고 생각해서 "이거 누구야?"라고 묻거나 해.

 

엄마는 내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

일로 풀죽어 있거나 할때도 엄마는 바로 알아버려.

아무리 내 귀가가 늦어져도 깨서 기다려 주셔.

"자도 괜찮아"라고 메일 보내놔도 반드시 기다리고 있어.
"왜?"라고 물어보니까

"일하고 지쳐서 돌아오는데 집이 캄캄하면 싫잖아"라더라구.
그 말은 감동했네.

그게 당신도 일이 있어서 아침 5시에 일어나야되는데

뭔가 엄마,어머니라는 느낌이잖아.
더 가까워. 친구라는 느낌.

 

쟈니즈에 들어가는 걸 추천해준 것도 엄마였어.

"싫어"라고 말했는데 "어차피, 너는 떨어져"라면서 

이력서를 보내고 말이야.

오디션에는 엄마도 같이 가주셨어.

회장에 가니까 갑자기 카토리 싱고군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
우리 누나가 좋아해서 자주 TV를 봤었으니까

 "실물이다!"라고 말이지.

 

그때부터 전부 춤추라고 했는데 나, 제일 뒤에서 춤도 안추고 엄마한테 손 흔들고 있었어.(笑)
그게 사람이 많아서 뭐하고 있는지 전혀 안보였거든.

그랬더니 쟈니상이 "뭐하고 있어! 앞에서 춤춰"라고 혼났어.
진지하게 춤추니까 "리듬감이 좋네"라고 칭찬받았어.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번, 레슨받으러 다니게 됐지.

처음엔 50명 정도 있었는데 점점 줄어서 마지막에는 4명.
그 중에 한명이 마치다였어. 둘이서 열심히 춤췄었는데-

마치다랑은 그때부터 쭉 함께.

서로 이제 MA랑 아라시가 되었을때,

4-5년 만에 둘이서 쇼핑을 갔었어.

 

마치다가 "다이칸야마에 가자"고 하니까
나는 가본적 없지만 따라가면 괜찮겠지 싶었어.

그랬더니 역에 내려서 점점 반대방향으로 갔나봐(笑)
정말 폼안나서 둘이서 웃었어.

 

 

 

 

교토

 

첫 일은 토키오의 무도관 콘서트.

거기서 처음으로 '쟈니즈 환성'을 듣고 집에 갈까 하고 생각했어.
깜짝놀랬거든. 불이 꺼진 순간, 쿵하고 왔어.

사람의 소리라고는 생각할수 없었어. 정말 무서워져서.
스테이지에 나가서도 주변을 보고 있을 여유는 없었네.

순서에 머리가 꽉 차서.

 

그날 학교를 쉬고 거기에 있었어. 그게 뭔가 특별한 느낌이 들어서.
친구들은 학교에서 언제나처럼 수업받고 있는 시간,

그런데서 춤추고 있는 자신이 믿겨지지 않았어.

근데 솔직히, 연예계라든지 일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어.

특별히 드라마에 나가고 싶다고 생각지도 않았어.
그저 춤추는 것 만큼은 "정말 즐겁다!"라고 생각했어.

춤만큼은 어쨌든 잘추고 싶었어.

 

교토에는 반년이상 가있어야 된다는 걸 알았는데 내가

"가고 싶어"라고 말했어.
일단, 그때의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어.

후배가 차례차례 들어와서, 인기있는 녀석들이 점점 앞에 서잖아.
나는 계속 그 뒤. "왜야? 내가 더 잘해!"라고 쭉 생각했었어.
그런 상황이었으니까 '앞에서 춤추고 싶어'라는 기분이 강했었어.

그래서 교토에서는 메인으로 할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고민 안했어. 엄마도 기뻐해주셨구 말이야.

 

그때 나, 고등학교도 그만두었구,

마치다랑 같이, 입학 3일째에 교문에서 되돌아와서 그대로.
그래도 부모님은 아무말도 안하셨어. "그만둘꺼니?"  "응" 그것뿐.

그래도 고등학교에 다녔다면, 교토에는 못갔어.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었다고 생각해.
교토에서의 경험은 내안에서는 굉장히 큰 경험이 되있으니까.

 

실은 정말 힘들었지만 말이야. 매일 5공연에 흐느적흐느적.

그래도 시작한 직후 여름은 관객이 있어서 다행이었어.
가을이 되니까 텅! 관객이 50명 있었던 적도 있었어.

1000명 들어올수 있는 극장에서야.
5줄 정도밖에, 관객이 었는거야.

 

게다가 수학여행으로 억지로 온 것같은 남자 아이가

젤 앞줄에서 지루하다는 듯이 보고 있거나 하는거야.

그게 매일 5번 연속되었는걸, 장난아냐.

"5번이나 할 필요가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어.
"나, 뭐하고 있는거지"라고 생각하게 됐어.

 

나는 牛若丸역이어서, 극중 플라잉이 있는거야.

무대의 윙에 묶여서 무대에 등장하는데.

어느 날 묶이면서 울었었어.
그대로 무대에 나가야 되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

"도쿄에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어..."하고(笑)

그래도 도쿄에서 온 동료들은 모두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모두들이랑 얘기라거나 하는 동안 자연히 회복됐어.

 

2년째 공연에도 내가 "가고 싶다"고 말했어.

솔로로 춤출수 있다고 들어서, 가고 싶어서 가고 싶어서.
도쿄에서 여러가지 비디오를 보고 연습하고 갔어.

이때의 솔로 'cool'은 처음으로 납득할수 있는

춤이 되었던 추억의 곡.


지금도 그정도로 춤출수 없을것 같을 정도로,

생각한대로 몸이 움직였어.
쇼타임도 모두랑 "어른처럼 하자"고 스스로 생각해서,

여자 댄서들에게도 "어떤 거 하고 싶어?"라던지 물어서
2년째는 점점 좋은 스테이지가 되어 갔다고 생각해.
1년째는 "이렇게 하고 싶어"라는 게 있어도 말 못했거든.

그런거 말할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식으로 2년째는 굉장히 충실했었어.

그래도 "'KYO TO KYO'는 최악"이라는 소문이 나거나 해서 분했어.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텐데 " 왜야!?"라고 생각했어.

"연예계는 이제 됐지 않나" 라고 생가한 것도 그때.
실은 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었거든.

 

메이크업 해주시는 분중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한테 배우거나 하기도 했고

내가 납득할수 있는 춤도 완성됐고

도쿄에 돌아가면 사무실 그만두고

새롭게 그림 관계 일을 하자고 생각했어.

 

 

 

 

 

아라시 데뷔

 

일단 "그만둔다"고 의지는 전했었어.

근데 왜인지 'MASK'에 나가게 되고

그대로 'PLAYZONE'에도 나가게 되버렸어.

그리고 그대로 아라시예요.
굉장히 고민했었어. 나한테는 마지막 찬스니까

"이 흐름을 타 보자"라고 생각하고부터도
좀처럼 마음에서 적극적으로 되지 않았어.

 

하와이에서의 데뷔 회견가 끝나고

10월에 주니어 콘서트에 나갔잖아.
MC에서 한명씩 인사하는데 "사쿠라이쇼입니다!" "꺄아"

"마츠모토 준입니다." "꺄아"
"오토 사토시입니다." " 웅성웅성" " 에에에!? 였어(笑)
"빨리 내려가고 싶어, 스테이지에서 내려가고 싶엇!" 라고 생각했어.
"나, 멤버한테 한발 뒤지고 있다" 그때부터 필사적이 되서

"팬레터 답장 해야지!"라던지 말이지.

 

생각해보니, 다른 4명은 TV에도 많이 나와서 인기도 있었지만

나는 계속 교토. 나는 왜 아무도 모르는거야.
데뷔곡이 1등 하거나 해서 아라시가 인기가 있는 건 알았지만

"내 팬은 없어"라고 생각했어.

그게 "누구야. 이 사람?"같은 말, 많이 귀에 들어왔고

"왜 타키가 아니야?" 라던지, "몰라!"라고 생각했던 반면,
"나여서 괜찮은걸까"라고 굉장히 마이너스 생각에 혼란스러웠어

.

그래도 아라시 5명이서 있을때가 정말 즐거워서 처

음부터 정말 마음이 편했었어. 여러가지 불안한 일들이

있었지만 5명이 있을때는 공기감에 위로받았어.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1ST콘서트는 굉장히 불안했었네.

 

"내 우치와를 들고와 주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객석에 내 우치와를 많이 찾았을 때는 기쁨과 한숨놓은

기분은 잊을수 없어.
거기서 겨우, 마음부터 적극적으로 될수 있었어.

 

 

 

 

무대

 

아라시가 되고 부터 많은 일들을 해냈고

그때마다 점점 적극적으로 일에도 의욕적으로 된것도 기뻐.

그중에서도 무대일은 자신의 변화를 느끼는 일이 많아서

추억도 많은 것 같아.

 

01년의 무대 "PLAYZONE"은 정말 최고 였어. 너무 행복했었어.

처음은 마츠오카군, 이노하라군이랑 트리플 캐스팅.

그것만으로도 부담인데 전회 출연했을때 나,
사무실을 그만두려고 생각했었잖아.

 

주의받아도 그냥저냥 의욕이 없는 느낌으로 굉장히 실례였지.
조금은 반성하고 최종적으로는 "좋아졌어"라고 들었지만.

그랬었으니까, 처음부터 굉장히 긴장했어. 연습이 말이야,

100명 가까이 출연자가 둘러싸고 앉아 있는 가운데에서,
차례로 나와서 연기를 해야 되는거야. 그게 싫고 싫어서.

전혀 안됐었어.


"본방에서 제대로 할테니까 봐줘!"라고 생각했어.

소년대 3명도 아무말도 안해주는 거야.

분명 좋지않은 연기를 하고 있던 나에게..
"방치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어느날,

이노하라군이 "오노, 부끄럼타지?" 라고 말걸어줬었어.

"엄청 있어요." "응.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라고
그래서 한숨놨어. 나뿐이 아니구나 하고.

 

힘껏 할수 있게 되니까 우에쿠상이 "오노, 좋아졌네" 라고 말해줬어.
그 말을 들었을땐 "다행이다"라고 목소리가

뒤집어져 버릴정도로 안심했어.

 

연습도 중반에 들어섰을때 쯤.

감동시키는 중요한 장면에서, 연출가가 말하는 대로 마음껏 해봤어.
그랬더니 여자댄서가 울어버렸어.

깜짝놀랬어. 내 연기에 우는 사람이 있다니. 어떻게 됐었나봐.


천추락은 감동적이었어.

공연중, 우에쿠사상이 나를 여러가지로 신경써 주고 있었으니까
끝에 눈이 맞았을때는 어쩔수 없었어. 울어버렸어.(笑)
그게 내가 4살때부터 계속되어 온 무대에 선거야.

그것도 후회없이 연기가 되었다.
먼가 자신한테 이긴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또 무대를 하고 싶은걸"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바로 "아오키상집의 부인"이 결정되서.

게다가 주연이라고 듣고 "우와"했지.
거의 애드립 연기니까 매일 정말로 궁지에 몰렸었어.

이때 한번 살 빠졌었을껄.
매일, 뭘 말할까 필사적으로 부끄러움 타는 것도 잊었었어.

 

2003년의 '센고쿠푸푸"에서는 또 댄스에 관한

열정같은걸 생각나게 해줬어.
교토에 있었을때처럼. "좀 더 춤추고 싶어. 잘추고 싶어"라는 생각.
교토에서 먼저 달성감을 맛본 이상에는

"만족해" 라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센고쿠푸푸'에서 오랫만에 격렬하게 움직였더니

꽤 움직일수 있었어.


그게 기뻐서 무턱대고 춤추고 싶어졌어.

그때부터는 불이 붙은 것처럼 해외아티스트의 비디오를 보거나
레슨받거나 했어. 그런 나 자신, 오랫만이었어.

 

04년의 'TRUE WEST'는 마츠오카군이랑

두명이 연기하는 부분이 많아서 대사도 장난아니게 많아서.
그때까지 어떤 무대보다도 대본을 읽은 순간에

"우와~"라고 도망가고 싶어졌어.
그래도 이 해의 다른 하나 'WEST SIDE STORY'에서도 느꼈지만

이렇게 곤경에 빠지면 빠질수록 달성감은 크네.

 

알고 있어도, 항상 무대 일이 정해지면 우울해져버려(笑)
불안해서 도망가고 싶어서,

대본도 아슬아슬할때까지 읽지 않아, 무서워서,
한번 읽으면, 그걸로 머리속이 가득차 버리니까.


그러니까 '배우'라고 들으면 곤란해. "하지 말아줘!" 라는 느낌.

그래도 드라마나 영화에 비교하면,

무대쪽이 더 맞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해.

'피칸치'에서도, 현장에서 자신의 연기를 체크하고

"그냥그렇잖아"라고 생각해도
"한번 더 하게 해주세요"라고 말못하는거야.

 

무대는 반복해서 연습을 할수 있잖아.
그러면서 자신이 납득할수 있는 곳까지 갈수 있어.

영화나 드라마는 나한테 있어서는 '일발승부'야.

'피칸치'를 하게 될땐 Vの嵐이후로 5명이서 하는 게

뭔가 그리운 기분이 들었어.


'Vの嵐'이래잖아. 그것보다는 절대로 재미있어지겠구나 하고

생각했어. 우리들 공기가 다른걸.
그때는 정말 처음이었으니까 다소는 서로를 관찰하면서...

이런 느낌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해도 나는 정말 연기가 어려워.

굉장히 긴장해 버려.


쇼군 드라마에 살짝 게스트로 출연했을때도

일주일전부터 긴장했었는걸.

그러니까 '피칸치'도 불안해서 어쩌지를 못했었다니까.

츠츠미상도 처음에는 굉장히 무서운 이미지가 있어서 쫄았었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즐거운 사람이었어.

게다가 'KYO TO KYO' 비디오를 만든것도 츠츠미상이었어.

깜짝놀랐지만


그 괴로웠던 날들을 알아주고 있을꺼라고 생각하니까 기뻐져서,

한번에 가까워진 것같은 느낌이 들었어.

하루처럼 그렇게 자신이 만든 캐릭터는 없어.

머리모양이나 목소리내는 방법을 생각하거나,

멍하게 있는 표정을 연구하거나
서있는 방법도 여러가지로 궁리하거나.

그러니까 최근 츠츠미상에게 "이미지대로 였어"라고 들은게 기뻤어.

 

그래도 나는 다시 하고 싶은 장면도 있었어.

우연히 한 곳이지만 서있는 방법이라던지,

한순간 정신을 빼놓고 있었던지
하루가 아닌것같은 장면을 발견해 버려서 그게 좀 분했어.

무대였으면 항상 긴장하고 있으니까 그런 일은 없으니까 말이야.

 

하나 더, 무대의 좋은 점. 배우들이랑

사이가 좋아져서 식사하러 가거나 하는게 즐거워.
다른 세계의 얘기를 들을수 있잖아.

"계속 먹을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어" 라던지 듣고

"굉장하네-"라고 생각하거나 나는 복받았구나하고 생각했어.

 

겸허함을 잊고 있는 자신을 눈치채기도 하고,

굉장히 좋은 시간을 보낼수 있어.

그런 사람들의 연기를 보러가면 자신이

별거 아닌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무대위에 있으면 멋있어 보이잖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돌아가는 길에 대기실에 들르면 굉장히

시원하다는 얼굴로 "고마워!"라고.

분할정도로 상쾌하게 말이지.
"좋아. 나도 열심히 해야지!"라는 느낌이 들어.

 

 

 

 

 

 

콘서트

 

연기랑 달라서, 언제나 "빨리 하고 싶어!"라고 생각하는게 콘서트.
솔로 곡같은건, 투어중에 벌써 다음 투어를 생각하거나

작년 여름부터는 춤동작도 내가 생각하게 되었어.


곡도, 더욱더 맞는 팝의 간주를 악센트로 하거나,

자세하게 주문해서 어레인지를 했는 걸.
작년 겨울에는 "이 곡 괜찮네~"라고 정해졌어.

전철속에서 들으면서 춤동작 생각하면서 의상도

"스카잔 입고 싶네~" 라던지 그런건 생각하는게 굉장히 즐거워.

 

그렇지만 지금도 "내 팬은 없을지도 몰라"라는

기분이 매회 어딘가 드는거야.
스테이지에 나가면 먼저 내 우치와를 찾아.

그게 발견되면, 안심하고 "좋아!"라는 기분이 드는거야.

 

요 몇년 즐기고 있는 건,

팬이 들고 오는 우치와라던지 보드에 써있는 리퀘스트에 답하는 것.
모두 가지고 있어. 스테이지에서 전부 보여.
"손 흔들어줘"라던지 여러가지가 있는데, 하면 굉장히 재미있어.

팬이 굉장히 기뻐해주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 "하길 잘했다"라곡 생각하게 되고 말이야.

그런데 요즘,

팬들도 재미있어 해서 점점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거야.

 

"키스 날려줘"라던지. 부끄럽단말이야, 굉장히.
하긴하지만 도중까지 안되겠다. 내 캐릭터가 아닌걸.

또 다른건 "벗어줘"라던지.
일단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서 얼버무려봤어.(笑)


어쩔수 없잖아. 봐버린거는, 해야지. 내가 봤다는 건 팬도 아는걸.

콘서트가 시작하면, 인터넷을 체크해. 반응이 궁금하잖아.
팬레터가 손에 들어오는건 좀 시간이 걸리니까.

"팬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거야" 라고 금방 알수 있는게 좋네.

 

지금까지 콘서트 비디오는 전부 가지고 있어, 나.
그걸 혼자서 가끔 다시 보는거야. 못해서 열받을 때도 있지만.

나한테 있어서는 아라시로서 보낸 시간이라는건

굉장히 소중한 거니까,

그런것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고 싶어.

 

콘서트는 각자 추억이 많지만, 아라시로서는 역시

'HERE WE GO!'투어일까.
아침까지 서로 얘기하고 5명의 기분을 각각 알게 됐어.

그때까지 그렇게 깊은 것까지는 몰랐었거든.
모두 아라시에 관해서 어떤 생각으로 있는지,

이제부터 아라시로서 개인으로서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걸 알게 되서,

"5명이서 앞으로도 해나가자"라는 기분이 모아진것같아.

각자가 아라시를 얼만큼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게 되서
나는 굉장히 기뻤는걸.

 

 

 

 

 

앞으로 아라시 , 앞으로 나

 

03년은 아라시의 변화를 굉장히 느꼈던 해.

개인적으로 놀기도 하고, 한단계 넘어선것같은 느낌이 들어.
주위로부터 무슨 말을 들어도,

5명이서 열심히 할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일하는 짬에도 무슨 일이 있으면 5명이서 얘기할수 있게되었구

 

그리고,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도 중요하구나 하고 생각해.

일할때 만나는 거랑 전혀 감각이 다르거든.
평범한 장난꾸러기 5명이 되는게 뭔가 기쁘거든,

모두들 성인이 되고 나서,

술같은것도 같이 마시거나 하는 것도 괜찮은 느낌이야.

 

내 개인적으로 변한걸로 말하면 적극적으로 된거랑,

목소리가 높아진것.
이거 신기하지 않아? 보통, 해가 가면 갈수록

낮아지는 이미지가 있는데 니노는 원래 높잖아.
CD를 들으면 뭔가 니노랑 굉장히 닮아서 듣고는 깜짝놀라(笑)

 

그렇지만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이 세계이외의 사람이랑 접할 기회가 없어서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때도 있어.
속거나 하는 일도 있으니까,

무심결에 방어가 단단해지거나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상대가 계속 신경써주는 그대로 이기도 하고.


어쩔수 없는 걸까 하고 생각할 시기도 있지만 역시 그런건 힘드네.

그렇게 생각하고 부터는 나 자신 변했다고 생각해.

내가 먼저 말을 걸게 됐어. 모르는 사람한테도.
"재미있을것같아"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을 알고 싶어져버려.


거리에서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 이라던지

잘 관찰하고 말 걸어도 괜찮을 것 같은 오라를 풍기고 있으면
"어디 가세요?" 라던지 물어봐,

그걸로 분위기가 업되던지 한다니까.

 

마음이 맞는 사람은. 눈과 눈이 맞았을때 알잖아.

또 잘 눈이 맞거나 하잖아. 왜 그럴까?
그래도 그것도, 말을 걸어 보지 않으면 눈이 맞는 걸로 끝나버려.

그건 아깝잖아.
자기부터 마음을 연 만큼 즐거움이나 괴로움은 오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그렇게 해서, 앞으로도 해 나갈꺼라고 생각해.

 

앞으로 개인적으로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림 개인전을 열고 싶은게 꿈.
10주년 때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러고보니 04년은 쟈니즈에 들어와서 10주년이었다.
잘도 살아 남았네(笑)


주니어때 5년, 아라시가 되고 5년, 어느쪽도 충실했었어.
주니어때는 책임감이 모자랐다는 반성점이 있지만.

그래도 여러가지 일이 쌓인 10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아라시도 앞으로 점점

좋은 상태가 되 갈거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고,
각자가 아라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

콘서트를 할때마다 결속이 단단해 지는 걸 느끼니까.
앞으로, 어떤 전개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5명의 사이좋음 만큼은 변하지 않을꺼라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