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새싹이라는 "초등학생"을 만나 질적인 만남을 가진다는게 기대되기도 했답니다.
과외를 가기 위해 교재들을 가방에 챙길 때쯤, 잠시 저희 집에 묵던 친척 동생이 그럽답니다.
"형, 그 시키 , 장난 없어. 완전 개념 0%의 '초딩'이야. 5분만 같이 있어도 성질 폭발하고
과외 때려치게 될걸? 하하하"
그 때는 동생의 말이 이해가 안 갔고, 또 "아무리 까불어봤자 겨우 애인데 뭘"하는 생각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죠.
그리고 얼마 후에 과외생의 집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녀석이 막 글짓기 학원에서 돌아올 쯤이라, 녀석의 부모님이 손수 깎아놓으신 과일 및 제과류도 대접받기도 해 기분도 막 상승 상태였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벌~컥" 열리며,
"과외 아저씨 왔어~? 어딨어 어디??" 이러더니 어디서 멧돼지(?) 한 마리가 저를 향해 맹돌진을 하는 겁니다.. 중학생 못지 않은 체격의 초등학생 3학년 짜리가 몸에 봉긋이 솟아나온 육감적인 근육(?)을 내세우고 저의 옆구리와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난간에서 굴러 팔 부러진 이후로 이렇게 심한 충격은 처음 느끼는 줄 알았습니다..."요즘 애들은 육식 위주로 먹나..."
어머니는 아이를 혼내며 "과외 선생님한테 그러면 못 써!"라고 애써 말씀하셨지만, 글쎄요.....단순히 말 한 마디가 그 아이의 생활 패턴이나 행동 방식을 고칠 수 없듯이, 저 또한 이 아이를 맡으면서 "고생 꽤나 하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가 가관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니까 반말은 그렇다고 칩시다. 과외 중에 다리를 제 무릎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제 사생활까지 묻는 건 어린 아이만 부릴 수 있는 애교라고 칩시다.
그렇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욕은 정말 들어줄 수 없더군요.
어린 녀석이 뭔 욕을 그렇게 잘한다냐.....도 싶었지만, 일단은 과외도 부탁받았고, 내가 단순히 이 아이에게 학문적인 그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되겠구나, 싶었죠.
일단은 시도 때도 없이 친척 동생의 "5분만 같이 있어도 성질 폭발할걸?" 라는 말이 리마인드되었지만 애써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과외에 갈 때마다 우리 속담인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를 기억했습니다.
최소한 이 아이는 자기가 하는 행동이 잘못된 건 줄 모를 것이고, 안다 할 지라도 그 자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만큼 성숙한 나이는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버릇이 없고, 욕을 하고, 철없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처벌이나 손찌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인격을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우선은 차근차근 그 노력을 성사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중 바로 첫번째 제 아이디어는, "내 언행을 먼저 바꾸자" 였습니다.
물론 제 언행이 그 아이의 인격체를 꾸몄다거나 영향을 주지는 않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욕도 거의 잘 쓰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믿거나 말거나겠지만..하하) 어쨌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법 아닙니까 . 이제라도 이 아이가 받은 외향적 영향이나 임팩트를 내가 내 노력으로 상쇄시켜주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 아이를 방문할 때마다 꾸준히 "존댓말"을 썼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죠. 10살은 더 어린 녀석한테 존댓말이라니요. 이 부분에서는 제 자신과의 딜레마가 심했습니다.
"넌 단순히 그 녀석에게 영어만 가르치고 돈만 받으면 돼, 무엇하러 신경 써?"
맞는 말입니다. 처음 본 녀석인데다가, 내가 애써 노력한다 해도 무엇이 굳이 바뀔거라는 확신조차 안 드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내가 괜히 이 아이의 인생에 접근했다가 이 아이의 가족에게 쓸데없는 질타마저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죠.
그렇게 얼마 동안을 고민과 고심 속에 빠져 살았지만, 결국 제 결론은 이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받은 사회적 피해에 내가 책임을 져보자.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든건 이 사람의 부모 뿐만이 아니고,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이 아닐까 . 결국 윗 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을텐데 말이야."
책임 의식을 가졌습니다. 학문적인 그 무언가보다 인간을 먼저 만들어야 겠다는 책임 의식.
그리고.......꾸준히 존댓말을 썼습니다.
"안녕하세요?" "밥은 먹었어요?" "숙제는 다 했어요?"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
"그런 말을 쓰면 안되요." "다음부터는 조심해주시구요~~"
처음 일주일 정도는 저 혼자 쌩쇼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나에게 명령조로 반말, 욕을
번갈아 쓰는데 나는 무슨 과외시키러 온 하인도 아니고, "굳이 이럴 필요없었는데.."라는 후회와 자괴감이 해일처럼 몰려왔습니다.
허나, 이미 시작한 것,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이 아이가 아직 어른보다는 순진하고 순수할 거라는 단 한가지의 가능성을 믿고 . 내가 이 아이의 삶에, 그 것도 감수성과 도덕성이 예민하게 성장하는 이 틴에이저에게 내가 긍정적인 영향을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아이로 하여금 이 아이의 친구들인 또 다른 "초딩"들이 바뀌어질 수 있다면 .
내가 먼저 앞장서서 이 아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그리고는 3주 동안 꾸준히 존댓말과 예의를 갖춘 결과, 아이에게 무언가 아주 미세한 결과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첫째가,
이 아이가 나의 언행에 적응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바보같이 보이니까 기고만장하고, 더 기세등등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꾸준히 똑같은 언행을 유지한 결과, 이 아이는 제 말과 행동을 더 이상 바보의 그 것이 아니라 처음 발견하는, 신기한 그 무언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금새 이 아이는 저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딱딱 맞춘 언행을 이 아이에게 쓰는지, 타인을 인격체로 존중하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이 아이에게 원하는 게 어떤 것인지 이 아이가 스스로 궁금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 두번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의 언어 구조에 변화가 따른 것입니다.
예전에는 "아저씨, 이거 먼저 풀어봐 . 내가 아저씨 푸는 거 볼게." 라는 표현이
"이 것 좀 풀어주시길..." 로 조금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표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단순한 변화에 얼마나 제가 놀랐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 방법을 시작할 당시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니깐요.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이후로는 저 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나 친구들을 대할 때도 이 아이의 언행의 변화가 실로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집 안에서 뛰어다니지 않고, 부모님에게 (존댓말 까지는 아니지만) 높임말을 자주 쓰게 되고, 친구들과의 교제에서도 욕 사용을 곧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글쎄요. 혹자는 저의 경험이 "뭐 대수냐?"라고 그저 넘어가실지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뭐 대수입니까? 인간과의 인간의 만남이 . 인생살이에서 주축이 되는 "만남"이 뭐 대수겠냐구요.
문제는, 그 "대수"라는 걸 우리가 가볍게 그냥 지나쳐버리니깐, 이 "초딩" 문제가 사회적으로 확대재생산되는게 아닐까요? (뭐,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이 집단 패싸움을 했다, 물건을 훔쳤다, 혹은 성인도 생각지 못할 아주 몹쓸 짓을 했다"하면 종종 혀를 차게 되죠 .
그리고 보통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요즘 꼬마들 아주 개념이 없네 . 대체 부모들이 누구인지.."
이 것은 남과 나는 서로 다르다는 이기적인 발상에서 우러나온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그 아이들에 대한 영향은 1차적으로 그 아이들의 부모들의 잘못이겠지만, 부모 이상으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침을 아무데나 뱉고, "18"을 아무데서나 연발하며, 노골적인 성 & 폭력 애기를 할 때, 혹시 그 주변에 말로만 듣던 "초딩"들이 있지는 않았는지요?
초등학생들도 그렇고, 중학생들도 그렇고, 고등학생들도 그렇겠지만, (저 또한 경험했듯이)
우리는 보다 빠르게 어른처럼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어른처럼 행동하기를 원하고 어른처럼 말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분출적 욕구와 우리의 무관심이 시너지 효과로 맞물려 돌아가며 오늘의 "초딩"이라는 몬스터를 창조해냅니다.
과거의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인 헤겔은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어린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성장 과정을 거쳐 어른으로 성장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 정신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며 절대 정신에 이르게 된다."
나는 초등학생의 순수함이 부럽습니다.
그들의 순진무구함과 자유분방함이 좋습니다.
현실에 지지 않고 끝까지 꿈을 꾸는 그들의 삶에 질투를 느끼고,
그들의 힘찬 등교, 하교 모습을 볼 때마다, 50년 후에 이들이 농후하고 삶의 무게에 지쳐있는 어른들의 무거운 발걸음으로 변할 거 같아 무척이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나는 그들의 꿈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로 하여금 피해를 보고 그리고 그 것을 다시 우리에게끔 욕을 먹도록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초딩, 아니 초등학생들과의 전쟁을 종식시킵시다 . 우리가 물려줄 건전한 언행 및 사고관을 그들이 다시 그들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그 먼 날을 기대하며 !!
이제 ''초딩''과의 전쟁을 종식시키자!
안녕하세요. 조진형입니다. 광장에 글을 쓰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앞으로는 이틀마다 꾸준히 글을 올릴 계획입니다.
아직 22년밖에 못 산 초짜 인생이지만, 제가 나름대로 겪었던 삶의 교훈들을 말할
생각입니다. 굳이 교훈(?)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혹시나 다른 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까봐, 특히나 노출도가 강한 온라인 상에서는
글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무지막지한 효과를 일으키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저번 이야기는 '진정한 종교인'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
이번에는 우리가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수많은 이들에 공공의 적(?)인 '초딩'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모든 초등학생이 '초딩'이라는 이유는 아닙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제 초딩(?)과의 전쟁을 종식시키자 !'
얼마 전에 제가 부모님들의 친구분 건넛다리 소개로 초등학생 영어 과외를 맡게 되었습니다.
제가 외국에서 있다가 고국에 돌아온지 얼마 안된터라, 한국에서 과외생을 소개받는다는 것이
설레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새싹이라는 "초등학생"을 만나 질적인 만남을 가진다는게 기대되기도 했답니다.
과외를 가기 위해 교재들을 가방에 챙길 때쯤, 잠시 저희 집에 묵던 친척 동생이 그럽답니다.
"형, 그 시키 , 장난 없어. 완전 개념 0%의 '초딩'이야. 5분만 같이 있어도 성질 폭발하고
과외 때려치게 될걸? 하하하"
그 때는 동생의 말이 이해가 안 갔고, 또 "아무리 까불어봤자 겨우 애인데 뭘"하는 생각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죠.
그리고 얼마 후에 과외생의 집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녀석이 막 글짓기 학원에서 돌아올 쯤이라, 녀석의 부모님이 손수 깎아놓으신 과일 및 제과류도 대접받기도 해 기분도 막 상승 상태였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벌~컥" 열리며,
"과외 아저씨 왔어~? 어딨어 어디??" 이러더니 어디서 멧돼지(?) 한 마리가 저를 향해 맹돌진을 하는 겁니다..
중학생 못지 않은 체격의 초등학생 3학년 짜리가 몸에 봉긋이 솟아나온 육감적인 근육(?)을 내세우고 저의 옆구리와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난간에서 굴러 팔 부러진 이후로 이렇게 심한 충격은 처음 느끼는 줄 알았습니다..."요즘 애들은 육식 위주로 먹나..."
어머니는 아이를 혼내며 "과외 선생님한테 그러면 못 써!"라고 애써 말씀하셨지만, 글쎄요.....단순히 말 한 마디가 그 아이의 생활 패턴이나 행동 방식을 고칠 수 없듯이, 저 또한 이 아이를 맡으면서 "고생 꽤나 하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가 가관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니까 반말은 그렇다고 칩시다. 과외 중에 다리를 제 무릎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제 사생활까지 묻는 건 어린 아이만 부릴 수 있는 애교라고 칩시다.
그렇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욕은 정말 들어줄 수 없더군요.
어린 녀석이 뭔 욕을 그렇게 잘한다냐.....도 싶었지만, 일단은 과외도 부탁받았고, 내가 단순히 이 아이에게 학문적인 그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되겠구나, 싶었죠.
일단은 시도 때도 없이 친척 동생의 "5분만 같이 있어도 성질 폭발할걸?" 라는 말이 리마인드되었지만 애써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과외에 갈 때마다 우리 속담인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를 기억했습니다.
최소한 이 아이는 자기가 하는 행동이 잘못된 건 줄 모를 것이고, 안다 할 지라도 그 자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만큼 성숙한 나이는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버릇이 없고, 욕을 하고, 철없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처벌이나 손찌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인격을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우선은 차근차근 그 노력을 성사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중 바로 첫번째 제 아이디어는, "내 언행을 먼저 바꾸자" 였습니다.
물론 제 언행이 그 아이의 인격체를 꾸몄다거나 영향을 주지는 않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욕도 거의 잘 쓰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믿거나 말거나겠지만..하하) 어쨌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법 아닙니까 . 이제라도 이 아이가 받은 외향적 영향이나 임팩트를 내가 내 노력으로 상쇄시켜주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 아이를 방문할 때마다 꾸준히 "존댓말"을 썼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죠. 10살은 더 어린 녀석한테 존댓말이라니요. 이 부분에서는 제 자신과의 딜레마가 심했습니다.
"넌 단순히 그 녀석에게 영어만 가르치고 돈만 받으면 돼, 무엇하러 신경 써?"
맞는 말입니다. 처음 본 녀석인데다가, 내가 애써 노력한다 해도 무엇이 굳이 바뀔거라는 확신조차 안 드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내가 괜히 이 아이의 인생에 접근했다가 이 아이의 가족에게 쓸데없는 질타마저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죠.
그렇게 얼마 동안을 고민과 고심 속에 빠져 살았지만, 결국 제 결론은 이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받은 사회적 피해에 내가 책임을 져보자.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든건 이 사람의 부모 뿐만이 아니고,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이 아닐까 . 결국 윗 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을텐데 말이야."
책임 의식을 가졌습니다. 학문적인 그 무언가보다 인간을 먼저 만들어야 겠다는 책임 의식.
그리고.......꾸준히 존댓말을 썼습니다.
"안녕하세요?" "밥은 먹었어요?" "숙제는 다 했어요?"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
"그런 말을 쓰면 안되요." "다음부터는 조심해주시구요~~"
처음 일주일 정도는 저 혼자 쌩쇼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나에게 명령조로 반말, 욕을
번갈아 쓰는데 나는 무슨 과외시키러 온 하인도 아니고, "굳이 이럴 필요없었는데.."라는 후회와 자괴감이 해일처럼 몰려왔습니다.
허나, 이미 시작한 것,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이 아이가 아직 어른보다는 순진하고 순수할 거라는 단 한가지의 가능성을 믿고 . 내가 이 아이의 삶에, 그 것도 감수성과 도덕성이 예민하게 성장하는 이 틴에이저에게 내가 긍정적인 영향을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아이로 하여금 이 아이의 친구들인 또 다른 "초딩"들이 바뀌어질 수 있다면 .
내가 먼저 앞장서서 이 아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그리고는 3주 동안 꾸준히 존댓말과 예의를 갖춘 결과, 아이에게 무언가 아주 미세한 결과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첫째가,
이 아이가 나의 언행에 적응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바보같이 보이니까 기고만장하고, 더 기세등등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꾸준히 똑같은 언행을 유지한 결과, 이 아이는 제 말과 행동을 더 이상 바보의 그 것이 아니라 처음 발견하는, 신기한 그 무언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금새 이 아이는 저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딱딱 맞춘 언행을 이 아이에게 쓰는지, 타인을 인격체로 존중하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이 아이에게 원하는 게 어떤 것인지 이 아이가 스스로 궁금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 두번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의 언어 구조에 변화가 따른 것입니다.
예전에는 "아저씨, 이거 먼저 풀어봐 . 내가 아저씨 푸는 거 볼게." 라는 표현이
"이 것 좀 풀어주시길..." 로 조금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표현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단순한 변화에 얼마나 제가 놀랐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 방법을 시작할 당시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니깐요.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이후로는 저 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나 친구들을 대할 때도 이 아이의 언행의 변화가 실로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집 안에서 뛰어다니지 않고, 부모님에게 (존댓말 까지는 아니지만) 높임말을 자주 쓰게 되고, 친구들과의 교제에서도 욕 사용을 곧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글쎄요. 혹자는 저의 경험이 "뭐 대수냐?"라고 그저 넘어가실지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뭐 대수입니까? 인간과의 인간의 만남이 . 인생살이에서 주축이 되는 "만남"이 뭐 대수겠냐구요.
문제는, 그 "대수"라는 걸 우리가 가볍게 그냥 지나쳐버리니깐, 이 "초딩" 문제가 사회적으로 확대재생산되는게 아닐까요? (뭐,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이 집단 패싸움을 했다, 물건을 훔쳤다, 혹은 성인도 생각지 못할 아주 몹쓸 짓을 했다"하면 종종 혀를 차게 되죠 .
그리고 보통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요즘 꼬마들 아주 개념이 없네 . 대체 부모들이 누구인지.."
이 것은 남과 나는 서로 다르다는 이기적인 발상에서 우러나온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그 아이들에 대한 영향은 1차적으로 그 아이들의 부모들의 잘못이겠지만, 부모 이상으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침을 아무데나 뱉고, "18"을 아무데서나 연발하며, 노골적인 성 & 폭력 애기를 할 때, 혹시 그 주변에 말로만 듣던 "초딩"들이 있지는 않았는지요?
초등학생들도 그렇고, 중학생들도 그렇고, 고등학생들도 그렇겠지만, (저 또한 경험했듯이)
우리는 보다 빠르게 어른처럼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어른처럼 행동하기를 원하고 어른처럼 말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분출적 욕구와 우리의 무관심이 시너지 효과로 맞물려 돌아가며 오늘의 "초딩"이라는 몬스터를 창조해냅니다.
과거의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인 헤겔은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어린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성장 과정을 거쳐 어른으로 성장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 정신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며 절대 정신에 이르게 된다."
나는 초등학생의 순수함이 부럽습니다.
그들의 순진무구함과 자유분방함이 좋습니다.
현실에 지지 않고 끝까지 꿈을 꾸는 그들의 삶에 질투를 느끼고,
그들의 힘찬 등교, 하교 모습을 볼 때마다, 50년 후에 이들이 농후하고 삶의 무게에 지쳐있는 어른들의 무거운 발걸음으로 변할 거 같아 무척이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나는 그들의 꿈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로 하여금 피해를 보고 그리고 그 것을 다시 우리에게끔 욕을 먹도록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초딩, 아니 초등학생들과의 전쟁을 종식시킵시다 . 우리가 물려줄 건전한 언행 및 사고관을 그들이 다시 그들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그 먼 날을 기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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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저에게 과외 받으실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