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내가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기 위해서 강당에 서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내가 실수 하면 안되는 것들을 암기하고, 체크했다. 밥도 글러 부랴부랴 college로 달려갔다. 그래도 첫날이다 보니, 세미정장풍에 한껏 멈을 부리고 가던터이라 괜히 내가 어색하고, 어깨가 더 무거웠다. 도착하자 마자 Mesfin이라는 교장이 나를 맞았다. 하지만, 나의 긴장감을 무너지게 한 마디 " 오늘은 수업이 없으니, 내일부터 시작하는게 어때? 미안해 Tesfa!!" (아, Tesfa라는 이름은 이번에 만든 나의 이름이다. 여기 에티오피아는 비슷한 이름이 많다. 내 이름도 그 중에 하나다. "Hope"라는 희망의 뜻을 가진 이름이다. 나의 아말릭 선생님께서 나를 위해 지어주신거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그리고 왠지 모를 섭섭함이 몰려왔다. 너무 기대를 한 것일까? 아니 좀 더 준비하라는 나의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교장이 나에게 함께 차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여기 에티오피아는 차(샤이) 문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이야기 할 것이 많다. 차가 에티오피아의 문화의 큰 영향을 준다. 심지어, 샤이기제(차 마시는 시간)에 모든 거래나 성공적인 대화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고유 전통의 샤이와 마끼야토(전통커피에 우유를 섞어서 만든 오리지널 커피)가 유명하다. 한가지 더 부가한다면, 여기 츠마키(주스)는 세계 어디에서도 맛볼수 없는 가장 달콤한 맛이라고 나는 자부한다. 거의 나는 츠마키의 스프리스(Mixed)에 중독자이다. 매일 하루에 한번씩 먹는다. 생과일을 매일 한잔씩 먹는다. 가격도 일반적으로 2.5 Birr(약 250원)정도 이다. 그래서, 늘 즐겨먹곤 한다. 그렇게 발길을 옮기면서 가고 있다가 내 집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내가 교장을 데리고, 나의 집으로 발길을 옮기도록 했다. 여기 college에서 나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 주었다. 집도 알아봐주었고, 가구도 다 준비해 주었다. 정말이지 난 운이 좋은 녀석인거 같다. 그리고, 한국의 보리차를 대접했다. 다음에 한국음식도 대접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곤, 오전은 그렇게 지나갔다. 같은 단원이 나의 집을 방문해서, 점심을 김치 볶음밥과 된장찌개를 대접했다. 아직은 요리가 많이 익숙하지 않지만, 오늘은 썩 괜찮은 편이었다. 저녁에는 미역국에 도전해 볼려고 한다. 한국에 돌아갈 때 쯤에는 아마도 요리는 자신있어질 것 같다.헤헤
오후가 되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바이러스가 걸렸다는 컴퓨터를 고치러 갔다. 내 예상대로 USB를 이용한 바이러스였다. 여기는 네트워크가 그렇게 활성화가 안되어 있다. 하지만, USB장치를 이용해서 바이러스가 배포되고 있었다. 우선적으로 노턴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지우고, 한국의 바이러스 프로그램과 악성코드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최대한 피해를 막았다. 그리고, 나머지 몇대를 내일 손 보기 약속했다. 컴퓨터의 대한 실정은 여기 에티오피아는 열악하다. 사양도 낮을 뿐더러 교육 시스템의 무분별한 구성이 아무리 봐도 문제점이 있어보인다. Technical college(TVET)끼리 단합해서, 교육 시스템 개선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기 곤다르는 여건이 좋지만, 다른 지방만 해도 컴퓨터가 없는게 허다하다고 한다. 이만큼 교육 환경의 문제점이 많이 있다. 하지만, 내가 있는 지방은 교육열이 한국과 비슷하다고 느낄정도인지 몰라도 환경은 그런대로 좋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하고서 집으로 갔다. 하지만, 조금 있다가 정전이 되었다. 캄캄한 방에서, 페이퍼에는 어떤 이야기를 적을까 고민하던중에 세라탱냐(일하는 사람:가정부)가 찾아와서, 빨래를 건네고, 인젤라 누룽지(이건 내가 지었다. 왜냐면, 누룽지와 너무비슷해서...)을 먹어보라고 주었다.
이 나라의 특징 중에 큰 특징은 이 인젤라 일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모든 사람의 주식이 인젤라인다. 이 인젤라는 테프라는 (현지에서만 나는 식물) 식물을 갈아서 반죽한 다음 구워서 인젤라에 각종 와뜨(닭, 야채)와 뜸스(한국의 불고기와 비슷하다)를 먹는다. 하지만, 이것이 에티오피아의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왜냐면, 와뜨와 뜸스 그리고, 인젤라 자체가 기름기가 많다보니, 젊은 애고, 여인이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배가 나와 있다. 식생활의 습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많이 해본다. 에티오피아 단원분 중에도 식품영양관련에 계신 분도 이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신 다고 한다. 병원 음식도 그리고, 모든 음식점에서 인젤라가 기본이다 보니, 식생활의 변화가 힘들다고 하신다.
인젤라는 에티오피아에 오게 된다면, 첫번째 코스가 될 것이다. 요즘은 먹기가 너무 힘들다. 맞지 않는다는 것보다 매일 이것만 먹는다는 것은 한국인의 다양한 음식문화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은 세라탱냐에 관한것이다. 봉사를 하러 온 사람의 입장에서 가정부를 쓴다는 것이 하나의 오해소지가 있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가정부자체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편하게 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고용창출 및 현지인과 좀 더 편한 교류를 위해서 이다. 이게 어떤 의미를 하는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세라탱냐는 현지어를 쓰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그에게 일 거리를 제공하며, 현지인과의 의사소통을 보다 좀 더 다가가기 쉽게 함으로써, 각자 맡은 역할을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도 사실 처음에는 꺼려졌지만, 어제 나는 그들에게 그저 일에 대한 대가만 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세라탱냐가 갑자기 보이지 않아서, 알아보니 아팠던 것이다. 그래서, 간호 단원의 도움으로 그리고, 나은 방법을 구상하고, 세라탱냐를 도와주었다.
별 것도 아니지만, 작은 애뜻함을 느꼈고, 정말로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간호 단원에게 감사해 했다. 마찬가지로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손길을 나누어 줄 수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요즘 사실 집을 구한지 별로 안되어서, 요청한 것이 조금 있었다. 그 전부터 좀 아팠다고 했지만, 나도 그 병을 도운거 같아서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이렇게 도우는 것도 하나의 봉사라고 느꼈다.
화제를 돌려서, 이때까지 지나온 코이카(한국해외봉사단원)의 교육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겠다. 국내훈련(1개월)을 거쳐서, 현지훈련(2개월)을 하는데, 국내훈련은 훈련소가 있으며, 많은 것을 교육한다. 종교의 이해와 안전교육 그리고 현지어에 대한 공부등등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단체활동등 여러가지 의미있는 교육을 가지며, 단합을 배운다. 그리고, 실질적인 교육과정인 현지교육과정(2개월)이 있다. 이때는 현지어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과정을 거치며, 앞으로 일하게 될 유사기관에서 교육을 받는다. 특히, 선배들의 흔적과 함께 선배님들의 좋은 교육과 배려를 받게 된다. 나는 지방 파견 단원 이라서 미리 지방으로 빨리가서, 홈스테이를 바로 착수 했다. 현지인의 집에서 일주일동안 생활 하는 것인데, 보기보단 만만치 않은 훈련과정이었다. 곤니짜(벼룩)의 희생양이 된 나에게는 하지만, 두번 다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고, 또 다른 나의 가족을 만들었다. 그분들에게 입은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홈스테이 과정 중에 앞으로 단원 스스로 살아야 할 집을 알아본다. 나는 이때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이 들었고, 안되는 언어와 싸우다보니, 몸이 두개였어도 바빴을 그런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가장 기억이 많이 나는 기간이 이 기간인 것 같다.
내일을 위해서 나는 이렇게 나의 인생을 써 내려가고, 그리고 준비하고 있다. 달려야 할 길은 아직 많은데 시간은 너무 짧은 거 같다. 요즘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지금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어리석었던 시간에 대해서 오늘은 나는 잠시라도 반성해본다. 그리고, 내일을 준비하겠다. 즐겨라!!
2007년도 01월 29일
2007년도 01월 29일
긴장된 하루의 시작이다. 왜냐면,
오늘이 내가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기 위해서 강당에 서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내가 실수 하면 안되는 것들을 암기하고, 체크했다. 밥도 글러 부랴부랴 college로 달려갔다. 그래도 첫날이다 보니, 세미정장풍에 한껏 멈을 부리고 가던터이라 괜히 내가 어색하고, 어깨가 더 무거웠다. 도착하자 마자 Mesfin이라는 교장이 나를 맞았다. 하지만, 나의 긴장감을 무너지게 한 마디 " 오늘은 수업이 없으니, 내일부터 시작하는게 어때? 미안해 Tesfa!!" (아, Tesfa라는 이름은 이번에 만든 나의 이름이다. 여기 에티오피아는 비슷한 이름이 많다. 내 이름도 그 중에 하나다. "Hope"라는 희망의 뜻을 가진 이름이다. 나의 아말릭 선생님께서 나를 위해 지어주신거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그리고 왠지 모를 섭섭함이 몰려왔다. 너무 기대를 한 것일까? 아니 좀 더 준비하라는 나의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교장이 나에게 함께 차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여기 에티오피아는 차(샤이) 문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이야기 할 것이 많다. 차가 에티오피아의 문화의 큰 영향을 준다. 심지어, 샤이기제(차 마시는 시간)에 모든 거래나 성공적인 대화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고유 전통의 샤이와 마끼야토(전통커피에 우유를 섞어서 만든 오리지널 커피)가 유명하다. 한가지 더 부가한다면, 여기 츠마키(주스)는 세계 어디에서도 맛볼수 없는 가장 달콤한 맛이라고 나는 자부한다. 거의 나는 츠마키의 스프리스(Mixed)에 중독자이다. 매일 하루에 한번씩 먹는다. 생과일을 매일 한잔씩 먹는다. 가격도 일반적으로 2.5 Birr(약 250원)정도 이다. 그래서, 늘 즐겨먹곤 한다. 그렇게 발길을 옮기면서 가고 있다가 내 집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내가 교장을 데리고, 나의 집으로 발길을 옮기도록 했다. 여기 college에서 나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 주었다. 집도 알아봐주었고, 가구도 다 준비해 주었다. 정말이지 난 운이 좋은 녀석인거 같다. 그리고, 한국의 보리차를 대접했다. 다음에 한국음식도 대접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곤, 오전은 그렇게 지나갔다. 같은 단원이 나의 집을 방문해서, 점심을 김치 볶음밥과 된장찌개를 대접했다. 아직은 요리가 많이 익숙하지 않지만, 오늘은 썩 괜찮은 편이었다. 저녁에는 미역국에 도전해 볼려고 한다. 한국에 돌아갈 때 쯤에는 아마도 요리는 자신있어질 것 같다.헤헤
오후가 되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바이러스가 걸렸다는 컴퓨터를 고치러 갔다. 내 예상대로 USB를 이용한 바이러스였다. 여기는 네트워크가 그렇게 활성화가 안되어 있다. 하지만, USB장치를 이용해서 바이러스가 배포되고 있었다. 우선적으로 노턴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지우고, 한국의 바이러스 프로그램과 악성코드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최대한 피해를 막았다. 그리고, 나머지 몇대를 내일 손 보기 약속했다.
컴퓨터의 대한 실정은 여기 에티오피아는 열악하다. 사양도 낮을 뿐더러 교육 시스템의 무분별한 구성이 아무리 봐도 문제점이 있어보인다. Technical college(TVET)끼리 단합해서, 교육 시스템 개선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기 곤다르는 여건이 좋지만, 다른 지방만 해도 컴퓨터가 없는게 허다하다고 한다. 이만큼 교육 환경의 문제점이 많이 있다. 하지만, 내가 있는 지방은 교육열이 한국과 비슷하다고 느낄정도인지 몰라도 환경은 그런대로 좋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하고서 집으로 갔다. 하지만, 조금 있다가 정전이 되었다. 캄캄한 방에서, 페이퍼에는 어떤 이야기를 적을까 고민하던중에 세라탱냐(일하는 사람:가정부)가 찾아와서, 빨래를 건네고, 인젤라 누룽지(이건 내가 지었다. 왜냐면, 누룽지와 너무비슷해서...)을 먹어보라고 주었다.
인젤라는 에티오피아에 오게 된다면, 첫번째 코스가 될 것이다. 요즘은 먹기가 너무 힘들다. 맞지 않는다는 것보다 매일 이것만 먹는다는 것은 한국인의 다양한 음식문화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은 세라탱냐에 관한것이다. 봉사를 하러 온 사람의 입장에서 가정부를 쓴다는 것이 하나의 오해소지가 있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가정부자체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편하게 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고용창출 및 현지인과 좀 더 편한 교류를 위해서 이다. 이게 어떤 의미를 하는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세라탱냐는 현지어를 쓰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그에게 일 거리를 제공하며, 현지인과의 의사소통을 보다 좀 더 다가가기 쉽게 함으로써, 각자 맡은 역할을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도 사실 처음에는 꺼려졌지만, 어제 나는 그들에게 그저 일에 대한 대가만 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세라탱냐가 갑자기 보이지 않아서, 알아보니 아팠던 것이다. 그래서, 간호 단원의 도움으로 그리고, 나은 방법을 구상하고, 세라탱냐를 도와주었다.
별 것도 아니지만, 작은 애뜻함을 느꼈고, 정말로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간호 단원에게 감사해 했다. 마찬가지로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손길을 나누어 줄 수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요즘 사실 집을 구한지 별로 안되어서, 요청한 것이 조금 있었다. 그 전부터 좀 아팠다고 했지만, 나도 그 병을 도운거 같아서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이렇게 도우는 것도 하나의 봉사라고 느꼈다.
화제를 돌려서, 이때까지 지나온 코이카(한국해외봉사단원)의 교육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겠다. 국내훈련(1개월)을 거쳐서, 현지훈련(2개월)을 하는데, 국내훈련은 훈련소가 있으며, 많은 것을 교육한다. 종교의 이해와 안전교육 그리고 현지어에 대한 공부등등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단체활동등 여러가지 의미있는 교육을 가지며, 단합을 배운다. 그리고, 실질적인 교육과정인 현지교육과정(2개월)이 있다. 이때는 현지어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과정을 거치며, 앞으로 일하게 될 유사기관에서 교육을 받는다. 특히, 선배들의 흔적과 함께 선배님들의 좋은 교육과 배려를 받게 된다. 나는 지방 파견 단원 이라서 미리 지방으로 빨리가서, 홈스테이를 바로 착수 했다. 현지인의 집에서 일주일동안 생활 하는 것인데, 보기보단 만만치 않은 훈련과정이었다. 곤니짜(벼룩)의 희생양이 된 나에게는 하지만, 두번 다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고, 또 다른 나의 가족을 만들었다. 그분들에게 입은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홈스테이 과정 중에 앞으로 단원 스스로 살아야 할 집을 알아본다. 나는 이때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이 들었고, 안되는 언어와 싸우다보니, 몸이 두개였어도 바빴을 그런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가장 기억이 많이 나는 기간이 이 기간인 것 같다.
내일을 위해서 나는 이렇게 나의 인생을 써 내려가고, 그리고 준비하고 있다. 달려야 할 길은 아직 많은데 시간은 너무 짧은 거 같다. 요즘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지금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어리석었던 시간에 대해서 오늘은 나는 잠시라도 반성해본다. 그리고, 내일을 준비하겠다. 즐겨라!!
신상아~~!!!(Tesfa)
I will my 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