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이영주200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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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Pay It Forward, 2000) 감독 : 미미 레더   변화를 만들기 위한 절차     며칠 전 어느 모임에서 라는, 참으로 구태의연한 제목의 영화를 본 뒤, 내가 이 영화를 왜 안 보고 지나쳤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우선은 이 구태의연한 한글제목 때문이었을 테고, 개봉 당시 예쁘장하게 생긴 어린이가 주인공인 데다가 '도움주기 다단계'라는 설정에 '뻔한 내용일 거야' 단정지었을 게다. 아마도 영문제목의 뜻을 그대로 살렸더라면, 영문포스터의 내용(when someone does you a big favor, don't pay it back... Pay it forward)을 그대로 살렸더라면, 이 영화를 개봉관에서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사 이 영화를 개봉관에서 봤다 하더라도 처음 가졌던 편견 섞인 단정이 그리 크게 변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 발견한 보석, 이런 수사를 쓰기에는 참으로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내게 도움을 주었을 때, 그 도움을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이에게 돌려주라. 그것이 퍼지고 퍼지면 세상은 변할 것이다. 말은 쉽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을까? 깜찍한 11살 소년 트레버의 '도움주기 다단계 프로젝트'는 개인의 사적인 선행이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에 기대있다. 그리고 이 순진한 믿음은 끝내 마약을 끊지 못하는 제리나 자신의 완고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시모넷, 난폭한 친구들 앞에서 끝내 친구가 맞는 것을 방관할 뿐인 트레버 자신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긴 하지만, 결국 트레버의 엄마로부터 시작된 도움주기는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확산된다. 마지막 트레버의 무덤 앞에 모인 군중의 촛불은 도움주기 다단계 프로젝트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순진한 결론을 기대하기엔, 개인의 선행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갇기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영화가 단지 순진하고 착하기만 했다면, 난 이 영화의 리뷰 쓰기를 시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혹여 쓰더라도 "너무 순진한 거 아냐?" 하고 비웃음 살짝 섞인 까칠한 한 마디를 내뱉고 끝냈을지도. 이 영화의 미덕은 한글제목인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도, 영문포스터 카피인 when someone does you a big favor, don't pay it back... Pay it forward도 아닌 그 너머에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실천을 찾아내라는 사회 선생님의 과제를 받고 트레버가 한 첫 번째 일은 '관찰'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싸움꾼으로 보이는 친구들로부터 이지메를 당하는 친구를 '관찰'하고, 길거리에서 주운 빵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제리를 '관찰'한다. 지독한 외로움을 술로 잊으려 애쓰는 엄마를 '관찰'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지, 그냥 슬쩍 돕는 것 말고 현재의 처지를 뒤바꿀 만한 도움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제서야 도움주기를 시도한다. 이때의 도움은 단지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빵이나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술이 아니라, 현재를 바꿀 만한 '큰' 도움이어야 한다. 물론 그런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 11살 트레버도 이미 알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변화에 대해서 너무 겁을 많이 먹는것 같아요. 처지가 아무리 나빠도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바꾸기 힘든 가봐요. 그래서 결국 포기하고 자신한테 지는 거죠." - 트레버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인터뷰 중 그렇지만 또 알고 있다. 쉽게 변화하지 않으려는, 고통에 익숙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은 어렵지만, '자전거 고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쉽게 포기하기엔 '세상이 그리 엿같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도.   11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소년 트레버는 인간의 변화를 만들기 위한 절차를 정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거창하게만 들리는 세상의 변화도 구체적인 사람들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을 때, '도움주기 다단계 프로젝트'라는 순진한 겉포장 그 너머에 있는 트레버의 '변화를 만들기 위한 절차'는 이 영화를 단지 '구태의연하지만 착한 영화'류에 머물지 않게 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