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여생 절대로 행복하지 마세요<그놈 목소리>

이주연2007.02.02
조회4,468
남은 여생 절대로 행복하지 마세요<그놈 목소리>


 

 

이상하게도 사실에 기반을 둔 영화, 드라마는
나에게는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 "그놈목소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개봉하면 꼭 봐야지..."하고 벼르던
영화중에 하나였다.


다채로운 역할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설경구라는
배우의 존재감 역시
그 결심을 부추기기에 충분했었고.

 

남은 여생 절대로 행복하지 마세요<그놈 목소리>


 

오늘 드디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네이버에는 이 영화를 일컬어
"드라마", "범죄", "스릴러", "미스테리"라고
상당히 길다랗게 장르소개가 되었었는데
뚜껑을 열어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 영화는
저 긴 수식어에 비해 상당히 단편적인 구성을 지닌다.

 

한 아이가 유괴되고,
아이를 유괴한 범인으로부터 걸려오는 협박 전화,
신고할 수도 그렇다고 신고하지 않을수도 없는 부모,
과학수사를 표방하지만 육탄공세가 전부일뿐인 경찰의 이야기가 
전부.

 

멜깁슨의 "랜섬"처럼
유괴범과 경찰, 부모의 엎치락 뒤치락하는 심리전과
손에 땀을 쥐는 긴박감을 기대했다면
어쩌면 실망스러운 영화일 수도 있다.

 

이미 언론매체로부터 경고받은 대로
이 영화속에는 유괴범과의 숨막히는 줄다리기는 없었다.
(여러 장르를 한발짝씩 걸쳐 다양한 관객을 확보해보려는
속임수처럼 보이기도 해서 유쾌하지는 않다....
정공법을 택하지....)

 

단지,
섬득하지만치 차분했던 "그놈"의 당당함과
그에 이끌려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어진
"잘나가는 앵커"였던 아버지와 "현모양처"였던 어머니가 있을뿐.

 

시종일관
사건들의 나열만이 계속되어 마치
일류 "재연"배우들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 무거운 느낌이 오히려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기대했던 대로 설경구는
그만이 가진 아우라를 제대로 보여준다.
그의 연기는 200% 아이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심정,
그것이었다.

 

또 주먹을 움켜쥐고 피멍이 들 정도로 가슴을 치던
김남주의 모성 연기 역시
아주 훌륭했다.

 

묵직한 부성애와 처절한 모성애의 협연을 보며
가슴이 아파올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으니까.
Good casing!

 

남은 여생 절대로 행복하지 마세요<그놈 목소리>


 

그치만 정작 칭찬을 해 주고 싶었던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놈"이다.
(미리 말하건데 나는 그의 "빠"가 아니다.)

 

지극히 한정된 역할이었던 "그놈" 강동원의
제한적인 몸짓과 눈빛.
아무 액션도 하지 않아서 인상적으로 느껴졌을까?
모르겠다. 그럴지도 모른다.

 

멀찍이 지켜보면서 소름끼치게 차분한 동작으로
부부를 바라보고, 경찰을 희롱하며
냉정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허허거리기까지 할때엔
실제 "그놈"도 저랬겠거니.... 하는 증오심마저 부글부글
끓어오를 지경이었다.


어느 누구하나 빠지지 않는
모든 주, 조연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펑펑 눈물을 흘릴만큼의 극한 감동을 얻지는 못했다.

 

마지막부분,
실제 "그놈"의 목소리를 뉴스에서 들려주며
이 목소리를 잘 듣고 모두 합심해서 범인을 잡아보자고
선동(?)할때에는
묘한 이질감마저 느껴졌다.

 

어쩌면 이 영화,
차라리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처럼 갔더라면....
차라리 르뽀처럼 갔더라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그래, 그런 사건이 있었지....
잠시 떠올리다가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잊어버리고 마는
그런 누를 범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공소시효마저 끝난 이 마당에
이러한 외침(?)이나 다짐들이 부질없는 일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남은 여생 절대로 행복하지 마세요<그놈 목소리>

그러다가 느닷없이 뒷통수를 강타하는 어떤 생각.

 

단란한 한 가정을 순식간에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그 놈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유괴하자마자 아이를 죽여놓고도
44일간 뻔뻔하고도 섬뜩하게 돈을 요구했던 그놈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15년전 7000만원(영화속에는 2억원)으로
그 놈은 두다리 뻗고 잘 먹고 잘 살수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크다면 큰돈일 수도 있지만,
사실 요즘 입만 열면 십억, 백억 하는 세상에
고작 몇천만원때문에,
영화속에서의 금액이라손 쳐도
고작(? 나 간이 너무 커졌다) 2억원때문에
아이를 유괴하고 죽이고, 야산에 버리는 것도 모자라
가슴에 피멍드는 부모에게 협박까지.

 

어디에서 무얼하며 살고 있더라도
절대 행복하지 않기를.
절대 오금 펴고 살지 않기를.
죽을때까지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를.

 

그래. 그 이유 하나때문에도,
그놈이 결코 행복해서는 안된다는 이유 하나때문에라도
이 영화의 선동질에 기꺼이 동참당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수의 나쁜 놈때문에 다수의 착한 놈이 상처받고 피해받고
그로인해 모든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면 안되니까.

단지 그것만을 위해서라도
이 영화가 주장하는대로
그놈의 실체가 드러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할 수 있는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어떤 영화평론가의 말처럼
영화 혹은 대중매체가 가지는 견인력과
여론이 가지는 무서운 힘들로
어쩌면 15년만에 범인이 검거되고
(혹은 자수를 하고)
절망적이고 불행하게 지냈던 형호네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안락하고 편안한 미래를 열어준다면.......

 

"현상수배극"이라는 메인카피에 걸맞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자식 앞세우고 한날 한시도 행복할수 없었던,
즐거울 수 없었던 또다른 부모들에게도
실낱같은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은 여생 절대로 행복하지 마세요<그놈 목소리>


 


덧글:

어느날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국민여러분, 믿어주세요... 하고 외치면서
극악무도한 범죄들을 종식시키기 위해
전면전을 불사하겠노라고 했다.

 

학생 운동권과의 전쟁을 치르시느라
공권력이 많이 모자라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그 숭고한 전쟁의 시기에 발생한 훙악범죄들이
무척이나 많았다는 아이러니.

언듯 떠오르는 사건만해도 지존파니, 막가파니...

그 당시의 대표적인 미해결사건들이
모조리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한다.

살인의 추억으로 대변되는 "화성연쇄 살인사건"과
개구리 소년들, 그리고 이형호군 유괴사건까지.

 

피해자는 가해자들을 용서하지 않았는데,
법이 나서서 범법자를 용서해버리는 오지랖.
피해자와 가족을 두번 죽이는 행위가 아닐까.

 

범법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소시효"라는 제도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사라져주어야만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진정한 법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아닐런지.

 

마음이, 정신이, 그리고 어깨가 점점 무거워진다.
참 세상 살기 힘들다.
나이 먹어가면 갈수록
알아야 할것, 지켜야 할것, 그리고 고쳐야 할것들이 너무 많아서
꿀꿀하다.
어른이 되는것, 늙어가는것.............. 어렵다.
나이는 거저 먹는게 아니다.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