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민현식200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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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결핍을 느낀다.
항상 부족해 보이고 그 결핍에서 서로를 연민의 눈으로 바로보게 되어 있다.
그렇게 타인을 이해하고 그를 동정하고 서로 위안한다.

 

또한 우리는 모두 자학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 자학을 통해 그 고통을 견뎌낸 자신에게 만족한 미소를 보낸다.
그러나 그 만족의 웃음은 결코 행복한 웃음이 아니다.
자학 뒤에 오는 웃음은 쓴 웃음일 뿐이다.

  질투는 나의 힘


감독 박찬옥은 아마 결핍과 자학의 공통 분모를 모아 '질투'라고 표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풀어가는 이 '질투'는 원상의 시선을 따라 이동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원상(박해일분)의 행동은 질투라고 하기에는 그 표출 방식이 너무 약하다.
오히려 자학에 가깝다. 소심하고 자신없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우며, 미래도 불확실하다. 사랑의 실패로 모든 것을 잃은 듯하다.
그가 찾은 편집장은 어쩌면 그 자학과 결핍의 보상심리의 작용일 가능성이 크다.

질투는 나의 힘


 

편집장 역시 자학과 결핍의 결합체로 해석하고 싶다.
"남은 건 로맨스"라고 말하는 그는 결코 로맨티스트가 아니다.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지 '사랑'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로맨티스트'라고 이야기 한다.
자기 결핍을 스스로 정당화 한다. 사랑의 결핍을, 중년의 비애의 결핍을.
그리고 그 결핍의 보상을 위한 자기 행동의 몸짓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라고 말한다.
당당한 그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그는 쓸쓸하다.

 

둘 사이에 놓인 사진기자 성연(배종옥분) 역시 결핍과 자학 사이에 머물러 있다.
노처녀인 그는 애인이 없고 가족이 없다. 그래서 방은 늘 쓸쓸하다.
그런데 그 공간을 애써 채우지 않는다. 항상 물은 없고 지저분하다.
자기 결핍을 자학하며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그 경계에 있다.
자학과 결핍의 선상에서 자기 만족을 하거나 자기 분노를 하거나...

 

한편, 원상의 소심함은 경제적 부담으로부터 오는 소심함이다.
여자를 잃은 것도 권력관계이지만 경제력의 부제로 인한 상대적 패배이다.
그의 박탈감은 항상 그렇다. 그의 자신 없음도 항상 그렇다.
그는 대학원생이고, 하숙을 하고 있으며 미래를 담보할 유학을 고민하다 그것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성연을 보내면서 원상은 "나는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가 없어요"라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사랑은 이제 너무 버거운 짐이 되어 버렸다.

상황이 그에게 사랑마저도 짐이 되도록 만들어 버렸다.

패배의식과 경제적 힘겨움과 그로 인한 박탈감이 가질 수 없는 것을 너무 많게 만들어 버렸다.

질투는 나의 힘


 

현대의 공간이 분명 그렇다.
자기 스스로 자아의 성숙함을 긍정하기 보다는 혹은 그것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돈의 힘 앞에 항상 무력하고 작아지고 돈을 기준으로 자신의 높이를 가늠한다.
원상의 좌절은 거기에서 시작해 일상은 그렇게 지속되어 간다.

 

결말의 편집장과의 결합은 모든 일상이란 격하지만 언제든 평범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순간은 모든 것을 잃은 것 같과 처절한 상황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화해와 반목을 반복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원상과 편집장과 술을 먹으며 애인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며 한 장면이 떠올랐다.
'두 친구가 있다. 한 친구가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는데, 둘 사이가 잠시 삐그덕하는 틈에 다른 한 친구가 들어와 상대를 가로 챈다.
그러나 그 친구 역시 얼마 뒤 상대와 해어지고 두 친구는 함께 만나 술을 기우리며, 떠난 여자를 두고 대화를 나눈다.'

 

자학과 결핍의 스스로 삶을 긍정할 때 보상된다.
우리의 '부족'은 항상 '충만'을 지향하고 우리의 '자학'은 항상 '끝'을 지향한다.
우리가 '충만한 끝'을 원한다면 긍정해야 한다. 마지막 장면의 그 웃음처럼.
그리고 그렇게 삶은 그 문제와 해결의 연속 속에서 계속되는 것이다.

 

삶은 평범하다. 그 평범의 연속이다.
우리는 그 평범한 삶에 가끔 파동이 치는 걸 지나치게 유난을 떨거나 지나치게 집착한다.
그러나 평범하기에 무의미한 삶은 아니다.
삶은 그 자체로 언제나 존재의 기막힘이며 그 기막힌 존재들이 개인으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모르겠다. 사랑을!
원상의 사랑에 대해서도,

편집장의 사랑에 대해서도,

성연의 사랑에 대해서도
예전에는 사랑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 사랑을 모르겠다. 모든 사랑은 항상 말 줄임표의 여운이 되어 버렸다.

질투는 나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