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는 지금 스파이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오른쪽으로 굽어진 길 앞에 펼쳐질 상황이 어떤 것일지 무서워서 숨은 것은 아니다. 애당초 무서웠으면 눅눅한 숲에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하필 아버지가 실제로 국가 기밀기관에 근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나의 낙천적인 성격 탓이겠다. 좋아. 나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야. 첩보는 나의 소명인 것이야. 잡생각이 많은 것은 아버지 탓이로구나. 무릇 스파이란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는 고뇌의 직업 아니던가. 그래, 좋다. 나는 지금 절대 숨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저에게 힘을 주세요! 기밀기관에서 일하시는 게 사실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음식 집 아들에게 잠깐의 용기를 더해주시길. 나는 굽어진 코너에 몸을 숨기고 앞을 바라본다.
쟤가 누구더라.
그러니까 내가 숨어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인위적 공터에 쭈그리고 앉아 ‘윽아’하고 울고 있는 저 아이 말이다. 어디서 봤는데 누군지 깍듯이 기억이 안 나는 것이었다. 흔하게 생긴 외모여서는 아니다. 주근깨투성이의 피부와 살짝 들린 들창코는 한국인이 아니라고 해도 믿을 만큼 특이한 외모였으니까. 다행히도 그 아이 주변에 있는 두 명의 심술 궂은 얼굴들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 반 껄렁이들이다. 보통 껄렁이들은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서 나름 아웃사이더의 면모를 과시하는데 반해, 저 두 놈은 교실 가운데에 앉아서 반 분위기를 흐리는 고약한 녀석들이다. 즉, 고상함도 없는 하급 껄렁이 녀석들이란 말이다. 무섭지도 않은 것들이다. 무튼 그 놈들 때문에 주근깨 들창코가 우리 반의 어떤 놈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굉장히 조용하고 밥도 혼자 먹는 구석쟁이어서 몰라봤던 것인가. 아니, 그보다는 그의 특이한 외모를 능가하는 특별한 행동을 하고 있어서 몰라본 것임에 틀림없다.
울고 있었다.
주근깨 들창코는 울고 있었다. 조용히 흐느끼는 것이 아니고 ‘윽아’라는 굉음을 내며 크게 울고 있었다. 울면서 큼직하고 뾰족한 돌맹이를 들어 바닥에 놓인 검은 색 고양이를 내리 찍고 있었다. 불쌍한 고양이를 다지는 들창코의 손놀림은 내키지는 않지만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아마도 과거 여러 번 도살을 한 모냥이다. 기계적으로 고양이를 내리치는 손짓은 거침없기는 하지만 여전히 떨리기는 하나보다. 도구를 든 손등의 힘줄이 순간 불끈거리다가 파르르 사라진다. 그 리듬에 맞춰 들창코의 콧구멍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 같았다. 이유도 없이 몸이 다져지는 핏빛 검은 고양이보다도 주근깨 들창코가 더 불쌍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두 껄렁이에게 들창코는 고양이보다 결코 나을 게 없어 보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저 나쁜 놈들, 여태 여러 번이나 들창코에게 이런 살생을 시켰나 보다. 지켜보는 자태가 들창코의 팔놀림 만큼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 참혹한 살생의식에는 들창코와 피해자인 고양이, 그리고 또 다른 가해자들이 모여있다. 들창코의 손놀림이 강해질 때마다 고양이의 살점이며 피가 들창코의 팔뚝과 그 녀석들의 발 끝에 튀어난다. 그에 비례하여 내리찍는 퍽퍽 소리와 그 아이의 ‘윽아’가 반복될 때마다 나의 마음의 놀라움은 걷히고 분노심이 포개져만 간다.
시골은 서울이 아니다.
삼촌은 말버릇처럼 아버지 따라 서울 가봐야 별 것 없다고 말했다. 서울은 무서운 곳이라고. 눈 뜨면 코 베가는 곳이라나. 눈 뜨면 코 베가는 곳이 무서운 곳인가. 실제로 그렇다면 무섭긴 하겠지만 에이 설마, 하고 마음 속으로 무작정 무시해버렸다. 왠지 마음에 와 닿질 않는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전통적인 ‘서울 가서 김서방 찾기’가 더 무섭다. 그렇게 사람이 바글거리는 곳이라는 상상을 하면 굉장히 무섭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람이 많은 것도 두려운데 그 곳에서 나만 아는 김씨의 유부남을 찾아야 한다니, 참담한 노릇이다. 오싹하다. 한편 눈 뜨면 코 베가는 것과 더불어, 삼촌이 무서운 서울을 말하며 항상 언급하는 것 중 하나는 왕따라는 것이다. 서울에는 왕따가 있단다. 서울에서 최근에 생긴 이 괴상한 행태는 반 친구들이 한 친구를 집단으로 괴롭히는 것이라고 하는데, 매우 무서운 것이어서 너는 가봤자 벌벌 떨기만 할 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건 좀 무서웠다. 나는 붙임성도 없는데다가 싸움도 별로 못한다. 서울에선 제법 당할 법도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쨌든 여기선 아니다. 여기선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있다. 저 두 껄렁이를 포함해 우리 반 누구도 감히 나에게 시비를 거는 녀석은 없다. 이유야 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다. 저 녀석들은 무섭지 않다. 정작 무서운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골이라는 곳이다. 서울에서는 최소한 고양이 찍어 죽이기는 안 시킬 것 아닌가. 삼촌이 말하는 서울 왕따 놀이보다 어쩌면 저 놈들이 더 잔인한 놀음을 즐기는 것 아닐까. 하기사, 모르지. 서울에서는 으리으리한 건물 뒤편에서 도둑 고양이들을 짓이기는 들창코들이 더 많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다면 조금은 무섭겠다.
조금도 무섭지 않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나는 두 껄렁이들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지금 아버지의 기운을 받고 있다. 기밀기관이든 음식점이든 상관없이 아버지는 나에게 용기를 합쳐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도움에 힘입어 순간 나는 다시 봐도 후회 없을 정도의 멋진 포즈로 탐색자세에서 전투자세로 튀어나갔다. 우렁찬 목소리로 ‘야. 니들 모야!’를 외치면서 말이다. 숲과 그 수하인 나무들은 나의 목소리를 두 배로 키워주었고, 그 바람에 껄렁이들과 들창코는 잔혹한 의식을 멈추고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쳐다보는 눈빛은 틀렸다. 주근깨 들창코의 눈빛은 여전히 겁에 질려있었다. 나를 구원자라고 생각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저, ‘너는 어떻게... 그런데 지금 네 눈엔 내가 어떻게 보이니.’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두 껄렁이들의 표정도 제 각각이었다. 편의상 이름 붙인 껄렁이 원은 나를 보며 ‘넌 뭐야. 죽고 싶냐?’의 표정을 짓고 있었고, 껄렁이 투는 ‘젠장, 골치 아프군.’의 표정이었다. 종합해서 결론 지으면 뭐, 셋 다 맘에 안 드는 표정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아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장난을 좋아하는 삼촌이 아닌 과묵한 아버지를 닮아있다. 나는 나름대로 굉장히 용기 있고 진지하다. 정신 없는 저 들창코는 제외하더라도 두 껄렁이 중 한 놈은 압도하는 나의 공기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 모냥이다. 껄렁이 원이 ‘너는 뭐야? 너 우리 반이지? 죽고 싶냐?’를 연발하며 나에게 달려드는 것을 그보다 똑똑하고 기민한 껄렁이 투가 말렸던 것. ‘야, 그냥 가자. 재수 존나 없는 날이다.’라고 하자, 뭣도 모르는 껄렁이 원의 반발이 심하다. 껄렁이 투가 껄렁이 원에게 무언가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한다. 전부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이제는 나의 편인 것이 확실한 숲과 나무 부하들이 소리를 키워준 바람에 조금은 들을 수 있었다. ‘골치 아파……쟤네 삼촌……비밀……기밀기관에서 일하는……건드리면 안 된다니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씩씩거리는 껄렁이 원이 나를 한 동안 꼬나보더니 껄렁이 투와 어깨 동무를 하고 반대편 길로 걷기 시작한다. 그래. 무릇 패잔병이란 그런 모습이어야지. 서로 부축하고 썩 꺼져버려라. 쓸모 없는 동료애나 실컷 느껴보면서 말이다. 나한테 안 보인다고 해서 울거나 그러진 말아라. 숲이 지켜보고 있다. 나는 돌아가는 패잔병들에게 결정적으로 멋지게 한 마디를 더해주었다. ‘니들, 한 번만 더 이러면 죽는다!’숲은 빙그레 웃으며 나의 경고를 웅장하게 포장해서 그 녀석들에게 전달해주었다. 병신들. 고작 내 삼촌이 무서워서 나한테 덤비지도 못하는 비겁한 껄렁이들. 아, 그런 거였구나. 평소 반에서 애들이 나를 건들지 못하는 것은 삼촌 때문이었구나. 그런데 너희들, 잘못 알고 있어. 기밀기관에서 일하는 건 삼촌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라구. 나는 지금 삼촌을 등에 업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용기를 짊어진 거란 말이다. 그래서 무서울 것이 없는 것이란다.
괜찮냐?
두 놈은 이미 숲의 일부가 되어 사라진 지 오래이다. 주근깨 들창코는 그 때까지도 사태 파악을 못 하고 있을 정도로 넋이 나간 상태였다. 나는 그 자리에 그냥 서서 들창코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영웅이 된 자만심으로 너그럽게 얘기하기엔 내가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들창코는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응, 괜찮아.’라고 겨우 조그만 소리로 대답했다. 그 다음으로 들창코가 취한 일련의 행동들은 끔찍했다. 우선 그 아이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손등으로 쓰윽 훔쳤다. 그러자 이번엔 들창코의 얼굴에 눈물 대신 고양이 피가 가로로 그려졌다. 손등에 묻어 있던 고양이 살점이 얼굴로 옮겨졌다. 섬찟했다. 그러더니 쭈그리고 앉은 채로 이번엔 자기가 도륙하던 고양이의 텅 빈 시체를 집어 올려 반으로 접었다. 정리 정돈이 철저한 녀석이었다. 죽은 검은 고양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순간 그걸 보고 있던 내가 움찔하며 반 발짝 뒷걸음을 치자 들창코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때 그 아이의 눈은 정말 잊지 못하겠다. 양쪽의 눈 색깔이 달라 보였다. 무슨 고양이의 눈이 그렇다던데, 저 놈은 자기가 죽인 고양이의 눈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건 내가 겁을 집어먹어서이다. 다시 보니 눈 색깔은 양쪽이 똑같이 정상이다. 숲이 어두워서 착각을 했나 보다. 다만, 들창코의 눈이 고양이를 닮은 것만은 사실이다. 미안해, 밝은 곳에서 다시 보면 귀엽게 느껴질 만도 한 눈이라고 생각해.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지금은 너무도 놀라서 하마터면 네가 그 고양이를 나한테 주는 걸로 착각할 뻔 했어.
숲에 널부러진 고양이 시체들.
하필 그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신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는 저 녀석의 섬찟한 행동 때문에도 오싹했지만 그것을 더욱 배가했던 건, 아까 숲에 들어올 때 했던 쓸데없는 잡생각이었다. 고양이 귀신보다도 더 짜증스러운 고양이 시체들에 대한 상상, 그것이 저 놈의 소행일까 싶은 공상의 발전적 보탬이 어우러져서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겁을 집어 먹었다. 들창코가 그제서야 생각났는지 나에게 ‘미안해.’를 말하며 피 묻은 손을 내밀고 다가오는 순간,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온 길을 되돌아 사정없이 달렸다. 아버지가 보태준 용기는 이미 약효가 다 됐다. 나무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나무 우듬지에 왠지 고양이가 한 마리씩 앉아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등 뒤에서 저 멀리 들창코가 ‘왜?’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왜? 왜냐고? 그게 지금 나한테 할 소린가? 그리고 내가 지금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워 보여? 정말 열심히 뛰었다. 뒤를 돌아보면 들창코가 피 묻은 얼굴을 등 뒤에 바로 대고 왜? 왜? 거릴 것 같아서 앞만 보고 뛰었다. 앞에 개울 위에 놓인 통나무가 보였다. 저 아래엔 떨어뜨린 내 책이 있을 텐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이번엔 조심하지 않고 통나무를 한 두 군데만 밟고 반대편으로 훌쩍 뛰었다. 단숨에 숲 속 개울과 [우울과 몽상]을 뛰어넘었다. 안전하게 넘은 뒤에도 나는 계속 달렸다. 어디선가 여자 아이의 웃음 소리가 나는 듯 했다. 숲이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이다. 친구로 잠시 착각했던 검은 숲이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빨리 꺼져버려, 라고 하는 것 같았다. 껄렁이들은 이 쪽, 너는 저 쪽으로 일사 분란하게 얼른 내 영역에서 나가라며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뛰었다. 그리고 무사히 검은 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창작 소설] - 숲의 내부 (3)
[숲의 내부] - 3부
스파이.
그렇다. 나는 지금 스파이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오른쪽으로 굽어진 길 앞에 펼쳐질 상황이 어떤 것일지 무서워서 숨은 것은 아니다. 애당초 무서웠으면 눅눅한 숲에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하필 아버지가 실제로 국가 기밀기관에 근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나의 낙천적인 성격 탓이겠다. 좋아. 나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야. 첩보는 나의 소명인 것이야. 잡생각이 많은 것은 아버지 탓이로구나. 무릇 스파이란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는 고뇌의 직업 아니던가. 그래, 좋다. 나는 지금 절대 숨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저에게 힘을 주세요! 기밀기관에서 일하시는 게 사실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음식 집 아들에게 잠깐의 용기를 더해주시길. 나는 굽어진 코너에 몸을 숨기고 앞을 바라본다.
쟤가 누구더라.
그러니까 내가 숨어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인위적 공터에 쭈그리고 앉아 ‘윽아’하고 울고 있는 저 아이 말이다. 어디서 봤는데 누군지 깍듯이 기억이 안 나는 것이었다. 흔하게 생긴 외모여서는 아니다. 주근깨투성이의 피부와 살짝 들린 들창코는 한국인이 아니라고 해도 믿을 만큼 특이한 외모였으니까. 다행히도 그 아이 주변에 있는 두 명의 심술 궂은 얼굴들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 반 껄렁이들이다. 보통 껄렁이들은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서 나름 아웃사이더의 면모를 과시하는데 반해, 저 두 놈은 교실 가운데에 앉아서 반 분위기를 흐리는 고약한 녀석들이다. 즉, 고상함도 없는 하급 껄렁이 녀석들이란 말이다. 무섭지도 않은 것들이다. 무튼 그 놈들 때문에 주근깨 들창코가 우리 반의 어떤 놈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굉장히 조용하고 밥도 혼자 먹는 구석쟁이어서 몰라봤던 것인가. 아니, 그보다는 그의 특이한 외모를 능가하는 특별한 행동을 하고 있어서 몰라본 것임에 틀림없다.
울고 있었다.
주근깨 들창코는 울고 있었다. 조용히 흐느끼는 것이 아니고 ‘윽아’라는 굉음을 내며 크게 울고 있었다. 울면서 큼직하고 뾰족한 돌맹이를 들어 바닥에 놓인 검은 색 고양이를 내리 찍고 있었다. 불쌍한 고양이를 다지는 들창코의 손놀림은 내키지는 않지만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아마도 과거 여러 번 도살을 한 모냥이다. 기계적으로 고양이를 내리치는 손짓은 거침없기는 하지만 여전히 떨리기는 하나보다. 도구를 든 손등의 힘줄이 순간 불끈거리다가 파르르 사라진다. 그 리듬에 맞춰 들창코의 콧구멍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 같았다. 이유도 없이 몸이 다져지는 핏빛 검은 고양이보다도 주근깨 들창코가 더 불쌍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두 껄렁이에게 들창코는 고양이보다 결코 나을 게 없어 보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저 나쁜 놈들, 여태 여러 번이나 들창코에게 이런 살생을 시켰나 보다. 지켜보는 자태가 들창코의 팔놀림 만큼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 참혹한 살생의식에는 들창코와 피해자인 고양이, 그리고 또 다른 가해자들이 모여있다. 들창코의 손놀림이 강해질 때마다 고양이의 살점이며 피가 들창코의 팔뚝과 그 녀석들의 발 끝에 튀어난다. 그에 비례하여 내리찍는 퍽퍽 소리와 그 아이의 ‘윽아’가 반복될 때마다 나의 마음의 놀라움은 걷히고 분노심이 포개져만 간다.
시골은 서울이 아니다.
삼촌은 말버릇처럼 아버지 따라 서울 가봐야 별 것 없다고 말했다. 서울은 무서운 곳이라고. 눈 뜨면 코 베가는 곳이라나. 눈 뜨면 코 베가는 곳이 무서운 곳인가. 실제로 그렇다면 무섭긴 하겠지만 에이 설마, 하고 마음 속으로 무작정 무시해버렸다. 왠지 마음에 와 닿질 않는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전통적인 ‘서울 가서 김서방 찾기’가 더 무섭다. 그렇게 사람이 바글거리는 곳이라는 상상을 하면 굉장히 무섭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람이 많은 것도 두려운데 그 곳에서 나만 아는 김씨의 유부남을 찾아야 한다니, 참담한 노릇이다. 오싹하다. 한편 눈 뜨면 코 베가는 것과 더불어, 삼촌이 무서운 서울을 말하며 항상 언급하는 것 중 하나는 왕따라는 것이다. 서울에는 왕따가 있단다. 서울에서 최근에 생긴 이 괴상한 행태는 반 친구들이 한 친구를 집단으로 괴롭히는 것이라고 하는데, 매우 무서운 것이어서 너는 가봤자 벌벌 떨기만 할 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건 좀 무서웠다. 나는 붙임성도 없는데다가 싸움도 별로 못한다. 서울에선 제법 당할 법도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쨌든 여기선 아니다. 여기선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있다. 저 두 껄렁이를 포함해 우리 반 누구도 감히 나에게 시비를 거는 녀석은 없다. 이유야 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다. 저 녀석들은 무섭지 않다. 정작 무서운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골이라는 곳이다. 서울에서는 최소한 고양이 찍어 죽이기는 안 시킬 것 아닌가. 삼촌이 말하는 서울 왕따 놀이보다 어쩌면 저 놈들이 더 잔인한 놀음을 즐기는 것 아닐까. 하기사, 모르지. 서울에서는 으리으리한 건물 뒤편에서 도둑 고양이들을 짓이기는 들창코들이 더 많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다면 조금은 무섭겠다.
조금도 무섭지 않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나는 두 껄렁이들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지금 아버지의 기운을 받고 있다. 기밀기관이든 음식점이든 상관없이 아버지는 나에게 용기를 합쳐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도움에 힘입어 순간 나는 다시 봐도 후회 없을 정도의 멋진 포즈로 탐색자세에서 전투자세로 튀어나갔다. 우렁찬 목소리로 ‘야. 니들 모야!’를 외치면서 말이다. 숲과 그 수하인 나무들은 나의 목소리를 두 배로 키워주었고, 그 바람에 껄렁이들과 들창코는 잔혹한 의식을 멈추고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쳐다보는 눈빛은 틀렸다. 주근깨 들창코의 눈빛은 여전히 겁에 질려있었다. 나를 구원자라고 생각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저, ‘너는 어떻게... 그런데 지금 네 눈엔 내가 어떻게 보이니.’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두 껄렁이들의 표정도 제 각각이었다. 편의상 이름 붙인 껄렁이 원은 나를 보며 ‘넌 뭐야. 죽고 싶냐?’의 표정을 짓고 있었고, 껄렁이 투는 ‘젠장, 골치 아프군.’의 표정이었다. 종합해서 결론 지으면 뭐, 셋 다 맘에 안 드는 표정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아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장난을 좋아하는 삼촌이 아닌 과묵한 아버지를 닮아있다. 나는 나름대로 굉장히 용기 있고 진지하다. 정신 없는 저 들창코는 제외하더라도 두 껄렁이 중 한 놈은 압도하는 나의 공기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 모냥이다. 껄렁이 원이 ‘너는 뭐야? 너 우리 반이지? 죽고 싶냐?’를 연발하며 나에게 달려드는 것을 그보다 똑똑하고 기민한 껄렁이 투가 말렸던 것. ‘야, 그냥 가자. 재수 존나 없는 날이다.’라고 하자, 뭣도 모르는 껄렁이 원의 반발이 심하다. 껄렁이 투가 껄렁이 원에게 무언가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한다. 전부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이제는 나의 편인 것이 확실한 숲과 나무 부하들이 소리를 키워준 바람에 조금은 들을 수 있었다. ‘골치 아파……쟤네 삼촌……비밀……기밀기관에서 일하는……건드리면 안 된다니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씩씩거리는 껄렁이 원이 나를 한 동안 꼬나보더니 껄렁이 투와 어깨 동무를 하고 반대편 길로 걷기 시작한다. 그래. 무릇 패잔병이란 그런 모습이어야지. 서로 부축하고 썩 꺼져버려라. 쓸모 없는 동료애나 실컷 느껴보면서 말이다. 나한테 안 보인다고 해서 울거나 그러진 말아라. 숲이 지켜보고 있다. 나는 돌아가는 패잔병들에게 결정적으로 멋지게 한 마디를 더해주었다. ‘니들, 한 번만 더 이러면 죽는다!’숲은 빙그레 웃으며 나의 경고를 웅장하게 포장해서 그 녀석들에게 전달해주었다. 병신들. 고작 내 삼촌이 무서워서 나한테 덤비지도 못하는 비겁한 껄렁이들. 아, 그런 거였구나. 평소 반에서 애들이 나를 건들지 못하는 것은 삼촌 때문이었구나. 그런데 너희들, 잘못 알고 있어. 기밀기관에서 일하는 건 삼촌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라구. 나는 지금 삼촌을 등에 업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용기를 짊어진 거란 말이다. 그래서 무서울 것이 없는 것이란다.
괜찮냐?
두 놈은 이미 숲의 일부가 되어 사라진 지 오래이다. 주근깨 들창코는 그 때까지도 사태 파악을 못 하고 있을 정도로 넋이 나간 상태였다. 나는 그 자리에 그냥 서서 들창코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영웅이 된 자만심으로 너그럽게 얘기하기엔 내가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들창코는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응, 괜찮아.’라고 겨우 조그만 소리로 대답했다. 그 다음으로 들창코가 취한 일련의 행동들은 끔찍했다. 우선 그 아이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손등으로 쓰윽 훔쳤다. 그러자 이번엔 들창코의 얼굴에 눈물 대신 고양이 피가 가로로 그려졌다. 손등에 묻어 있던 고양이 살점이 얼굴로 옮겨졌다. 섬찟했다. 그러더니 쭈그리고 앉은 채로 이번엔 자기가 도륙하던 고양이의 텅 빈 시체를 집어 올려 반으로 접었다. 정리 정돈이 철저한 녀석이었다. 죽은 검은 고양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순간 그걸 보고 있던 내가 움찔하며 반 발짝 뒷걸음을 치자 들창코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때 그 아이의 눈은 정말 잊지 못하겠다. 양쪽의 눈 색깔이 달라 보였다. 무슨 고양이의 눈이 그렇다던데, 저 놈은 자기가 죽인 고양이의 눈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건 내가 겁을 집어먹어서이다. 다시 보니 눈 색깔은 양쪽이 똑같이 정상이다. 숲이 어두워서 착각을 했나 보다. 다만, 들창코의 눈이 고양이를 닮은 것만은 사실이다. 미안해, 밝은 곳에서 다시 보면 귀엽게 느껴질 만도 한 눈이라고 생각해.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지금은 너무도 놀라서 하마터면 네가 그 고양이를 나한테 주는 걸로 착각할 뻔 했어.
숲에 널부러진 고양이 시체들.
하필 그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신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는 저 녀석의 섬찟한 행동 때문에도 오싹했지만 그것을 더욱 배가했던 건, 아까 숲에 들어올 때 했던 쓸데없는 잡생각이었다. 고양이 귀신보다도 더 짜증스러운 고양이 시체들에 대한 상상, 그것이 저 놈의 소행일까 싶은 공상의 발전적 보탬이 어우러져서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겁을 집어 먹었다. 들창코가 그제서야 생각났는지 나에게 ‘미안해.’를 말하며 피 묻은 손을 내밀고 다가오는 순간,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온 길을 되돌아 사정없이 달렸다. 아버지가 보태준 용기는 이미 약효가 다 됐다. 나무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나무 우듬지에 왠지 고양이가 한 마리씩 앉아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등 뒤에서 저 멀리 들창코가 ‘왜?’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왜? 왜냐고? 그게 지금 나한테 할 소린가? 그리고 내가 지금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워 보여? 정말 열심히 뛰었다. 뒤를 돌아보면 들창코가 피 묻은 얼굴을 등 뒤에 바로 대고 왜? 왜? 거릴 것 같아서 앞만 보고 뛰었다. 앞에 개울 위에 놓인 통나무가 보였다. 저 아래엔 떨어뜨린 내 책이 있을 텐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이번엔 조심하지 않고 통나무를 한 두 군데만 밟고 반대편으로 훌쩍 뛰었다. 단숨에 숲 속 개울과 [우울과 몽상]을 뛰어넘었다. 안전하게 넘은 뒤에도 나는 계속 달렸다. 어디선가 여자 아이의 웃음 소리가 나는 듯 했다. 숲이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이다. 친구로 잠시 착각했던 검은 숲이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빨리 꺼져버려, 라고 하는 것 같았다. 껄렁이들은 이 쪽, 너는 저 쪽으로 일사 분란하게 얼른 내 영역에서 나가라며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뛰었다. 그리고 무사히 검은 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