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의 위기와 인공자궁의 시대

이원준2007.02.05
조회51

 

 

 합성생명체의 꿈까지 현실로 다가온 지금 '인공자궁'까지도 이제 곧 현실이 되리라 생각된다. (그림은 영화 매트릭스의 인공자궁) 인공자궁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매트릭스이다. 매트릭스에서 기계는 인간의 생체에너지를 동력으로 삼고, 죽은 인간을 액체화해서 정맥주사로 주입, 다시 살아 있는 인간의 '음식'이 되도록 한다고 했다. ( " liquefy the dead so they could be fed intravenously to the living. " - 모피스가 네오에게 인간과 기계의 싸움과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의 대사 중에. ) 즉 인공자궁 뿐만 아니라 배양기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도 인공자궁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미 양과 같은 동물들은 유리상자 안에서 필요한 양분과 산소를 공급받으며 모체에서 벗어난 성장이 가능해졌다. (아래 그림은 작년에 국내연구진에 의해 개발된 인공자궁)


 

 

 영화 매트릭스의 작가들은 인공자궁이 지니고 있는 인문학적 함의는 제대로 파악했다. 흔히 여자에게는 남자에게 없는 유방과 자궁이 있어서 신성한 모성과 길러내는 능력이 있다는 이야길 한다. 그렇지만 매트릭스에서는 기계가 그 역할을 대체함으로 인해 그러한 도식이 파괴된 것이다. 매트릭스의 인공자궁은 여성을 거세한다.영화 매트릭스에서 모성과 가장 결부시킬 수 있는 사람은 트리니티인데 그녀는 검은 가죽으로 둘러싸인 신체=기계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레지스탕스의 도시 시온에서는 자연출산이 이루어진다. 그 자체가 희망이 되는 이유는 기계가 거세한 인간의 모성을 회복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매트릭스는 생물학적 인간종을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 코드화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탈주는 sex와 자연임신과 출산이 된다. 따라서 이 영화는 결국 자연출산이 가능한 자궁=시온을 지키기 위한 인간과 매트릭스 사이의 싸움이 중심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인공자궁'은 그 대결구조를 형성하는데 있어 필수불가결하지만 결국 영화의 의미구조를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공자궁의 존재가 매트릭스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그걸 증명해보고자 한다.

 1. 매트릭스(가상현실) 속의 등장인물들은 현실의 등장인물과 동일한 생김새를 지닌다.

 2. 따라서 매트릭스 속의 인류도 유전적으로 지금 인류가 지닌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

 3. 현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sex 또는 sex의 결과를 대체할 기제가 필요하다.

 따라서 논리적 귀결로 인해 현실세계와 동일하게 유전적 다양함을 포기하지 않은 매트릭스에서는 sex의 결과를 인공자궁을 이용해 그대로 재현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니오와 트리니티가 매트릭스 속에 그대로 살고 있어서 사랑의 결과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 아이는 니오와 트리니티의 germ line cell들이 합쳐진 결과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인공자궁과는 상호 이율배반을 일으키게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낮은 생산성 : 만일 전기를 목적으로 한다면 매트릭스는 보다 많은 인간들을 필요로 할텐데 지금의 sex는 너무 생산성이 낮다.

 2. 유전적 다양성이 꼭 필요한가? : 만일 모든 인류를 하나의 단일한 유전적 쌍동이들로 만들어버렸다면 굳이 복잡한 매트릭스를 만들지 않아도 모두 단순하고 같은 가상현실을 반복이용해서 살게할 수 있다. 일인칭게임과 유사한 가상현실을 하나만 만들어서 인공지능들로 다른 등장인물들을 대체하면 된다. 매트릭스 수준의 가상현실을 구현하기 위해서 얼마나 에너지를 많이 필요할 것인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3.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각종 사고와 우연적 요소들까지 재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매트릭스 안에서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한 건강했던 사람이 있다면 배양기에서도 제거를 해야만 할 것이다. 이 얼마나 자원의 낭비인가?

 

 따라서 매트릭스는 인공자궁을 통해 기계와 인간의 대립적인 의미구조를 형성하지만 그 내부에 일관된 의미구조를 유지할 수 없을 수준의 위기를 간직하게 된다. 왜 진작에 이런 점들을 지적한 사람이 없었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인공자궁은 10년 정도 지나면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수정된 태아들은 인공 폐와 혈액 순환 펌프·영양분 공급기를 연결한 뒤 양수 성분의 액체로 채워진 인공 자궁으로 옮겨 자랄 것이다. 우선적으로는 자연임신이 불가능한 여성들과 기형으로 인해 외과적 조치가 필요한 태아들에게 적용되겠지만 점차 인공자궁 기술은 애낳기 싫어하는  현대여성들에게는 복음과도 같이 다가올 것이다.

 

 최근 일본의 야나기사와 후생노동상은 연금 및 복지 의료의 전망에 대한 강연에서 저출산 문제를 거론하며 “15세에서 50세의 가임 여성 수는 한정돼 있다. 낳는 기계, 장치의 수가 정해져 있으니 각자 생산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말해서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여성을 애 낳는 기계에 비유했다는 이유에서이다. 출산과 산고는 영어로 노동과 똑같은 labor이다. 공교롭게도 노동하는 자라는 뜻인 로봇의 어원도 labor에서 나왔다. 애를 낳는 '노동'을 하는 로봇이 나올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그 로봇은 여성해방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반대로 여성=기계의 도그마를 없는 자들에게 강요하게 될까?

 

 그리고 더 이상 배아파 자식을 낳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왠지 고통스럽게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와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 시대의 글쓰기가 copy&paste의 은총과 저주를 받고 있듯이 인공자궁 시대의 아이들도 유전적 copy&paste의 은총과 저주를 받게 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