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만드라고라, 아라우네와 함께 신화속의 꽃이 된'유츠프라 카치아'. 발음이 아프리카 원어민의 그것과 같다고 하여 한때는 아프리카의 음지식물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었던 기이한 운명의 꽃. 유츠프라 카치아는 지금껏 수많은 오해와, 수많은 거짓말, 그리고 수많은 루머를 겪어오며 온갖 말도 안되는 오명을 뒤집어 써 왔다. 그러나 카치아는, 과거에 살아있는 생물로 오인받았던 만드라고라가 그랬듯, 사형수들의 피와 혼으로써 수년에 걸쳐 피어난다는 아라우네가 그랬듯, 평범한 '백합'과 식물에 불과했다. 다음은 1960년대 말, 영국과 프랑스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횡단 정책으로, 영토 분할 전쟁을 벌이던 시기의 이야기 입니다. 당시 두 나라는 더 많은 식민지 개척을 위하여 잦은 충돌을 벌였고, 알제리와 마다카스가르섬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는 식민지에서 나는 자원을 바탕으로 넉넉한 병참을 획득하게 됩니다. 자고로 우수한 장군은 병참으로 싸우는 법이라고 하지요. 게다가 영국은 횡단정책을 계속 펴 나갈 때 지형적으로 지금의 수단이라 알려져 있는 나라인 파쇼다에서 프랑스와 전투를 벌이는 길만이 자국이 승리 할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합니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정황에 놓여있던 영국은, 여기서 한가지 방책을 고안합니다. 바로 프랑스 군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백합'을 당시 프랑스 대통령 이었던 샤를 르 드골에게 보내는 거였습니다. 이 생각을 한 인물은 식민지 종단 정책을 내세우기도 하였던 영국의 정치가 세실 로즈인데, 세실로즈는 샤를 르 드골에게 꽃을 보낼 때,다음과 같은 편지를 심복에게 주며, 단 한송이의 백합만을 드골에게 보내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꽃은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꼭대기에서 1000년(당시 프랑스의 역사가 약 천년정도 되었답니다.)에 한번씩 그것도, 딱 한송이만 꽃을 피운다는 꽃인데, 이름은 '유츠프라 카치아'라고 합니다. 이때 세실로즈가 작명한 '유츠프라 카치아'는 아프리카에서 노예정책 때문에 런던으로 끌려왔다가 구설수에 올라 화형당한 소녀라는 설과, 나무열매에서 나는 천연음료라는 설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 꽃은 1000년에 걸쳐 한송이만 피우는 꽃답게 오만하기 이를데 없고, 결벽증세가 지독한 것은 물론, 꽃잎이 병걸린 자의 얼굴빛과 같아 마치 그처럼 세심히 돌봐주지 않으면, 죽고 마는 가녀린 꽃이랍니다. 공께 이 진귀한 꽃을 경의와 마음을 담아 선물합니다. 이 꽃과 편지를 받은 샤를 르 드골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백합은 1000년전 프랑스에 메로빙거 왕조가 들어서면서부터 프랑스군의 상징처럼 떠받들어졌던, 순결, 충성등을 상징하는 꽃이었기 때문입니다.(상징할 뿐 백합은 프랑스의 국화는 아니랍니다. 프랑스의 국화는 '아이리스'라고 하는 연보빛이 나는 꽃) 그러한 프랑스의 상징을 한낮 식민지에서 사용하는 말로 비하시켰음은 물론, 꽃을 빗대어 프랑스를 오만하며, 결벽증 있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나라라고 말했으니 일국의 수장인 샤를 르 드골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에 크게 분노한 샤를 르 드골은 프랑스 군을 파쇼다까지 전진 시켰고, 병참 보급이 끊어진 틈을 타 세실로즈는 프랑스 군대를 지리멸렬 시키고 맙니다. 이러한 해외 야사가 국내에서는 소설등을 통하여 와전되면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유츠프라 카치아'는 얼토당토 않은 스토리 라인을 가진 꽃이 되어버렸습니다. 때문에 한동안 네트웤 게시판 여기저기에서 이 꽃은 자신 본연의 모습이 아닌 엉터리 사진들로 공개 되었고, 잘못된 지식으로 세간에 알려져 엉뚱한 오명을 뒤집어 써 왔습니다. 역사를 바로 알고, 올곧은 지식을 후배들에게 전해줄 때, 비로소 인터넷이 바른 생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츠프라카치아 의 유래
오늘날 만드라고라, 아라우네와 함께 신화속의 꽃이 된
'유츠프라 카치아'.
발음이 아프리카 원어민의 그것과 같다고 하여 한때는
아프리카의 음지식물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었던
기이한 운명의 꽃.
유츠프라 카치아는 지금껏 수많은 오해와,
수많은 거짓말,
그리고 수많은 루머를 겪어오며
온갖 말도 안되는 오명을 뒤집어 써 왔다.
그러나 카치아는,
과거에 살아있는 생물로 오인받았던 만드라고라가 그랬듯,
사형수들의 피와 혼으로써 수년에 걸쳐 피어난다는
아라우네가 그랬듯,
평범한 '백합'과 식물에 불과했다.
다음은 1960년대 말,
영국과 프랑스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횡단 정책으로,
영토 분할 전쟁을 벌이던 시기의 이야기 입니다.
당시 두 나라는 더 많은 식민지 개척을 위하여 잦은 충돌을 벌였고,
알제리와 마다카스가르섬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는
식민지에서 나는 자원을 바탕으로 넉넉한 병참을 획득하게 됩니다.
자고로 우수한 장군은 병참으로 싸우는 법이라고 하지요.
게다가 영국은 횡단정책을 계속 펴 나갈 때 지형적으로 지금의
수단이라 알려져 있는 나라인 파쇼다에서
프랑스와 전투를 벌이는 길만이
자국이 승리 할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합니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정황에 놓여있던 영국은,
여기서 한가지 방책을 고안합니다.
바로 프랑스 군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백합'을
당시 프랑스 대통령 이었던 샤를 르 드골에게 보내는 거였습니다.
이 생각을 한 인물은 식민지 종단 정책을 내세우기도 하였던
영국의 정치가 세실 로즈인데,
세실로즈는 샤를 르 드골에게 꽃을 보낼 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심복에게 주며, 단 한송이의 백합만을
드골에게 보내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꽃은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꼭대기에서
1000년(당시 프랑스의 역사가 약 천년정도 되었답니다.)에
한번씩 그것도, 딱 한송이만 꽃을 피운다는 꽃인데,
이름은 '유츠프라 카치아'라고 합니다.
이때 세실로즈가 작명한 '유츠프라 카치아'는
아프리카에서 노예정책 때문에
런던으로 끌려왔다가 구설수에 올라 화형당한 소녀라는 설과,
나무열매에서 나는 천연음료라는 설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 꽃은 1000년에 걸쳐 한송이만 피우는 꽃답게 오만하기 이를데 없고,
결벽증세가 지독한 것은 물론, 꽃잎이 병걸린 자의 얼굴빛과 같아
마치 그처럼 세심히 돌봐주지 않으면, 죽고 마는 가녀린 꽃이랍니다.
공께 이 진귀한 꽃을 경의와 마음을 담아 선물합니다.
이 꽃과 편지를 받은 샤를 르 드골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백합은 1000년전 프랑스에 메로빙거 왕조가 들어서면서부터
프랑스군의 상징처럼 떠받들어졌던, 순결, 충성등을
상징하는 꽃이었기 때문입니다.
(상징할 뿐 백합은 프랑스의 국화는 아니랍니다.
프랑스의 국화는 '아이리스'라고 하는 연보빛이 나는 꽃)
그러한 프랑스의 상징을 한낮 식민지에서 사용하는 말로
비하시켰음은 물론, 꽃을 빗대어 프랑스를 오만하며,
결벽증 있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나라라고
말했으니 일국의 수장인 샤를 르 드골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에 크게 분노한 샤를 르 드골은 프랑스 군을
파쇼다까지 전진 시켰고, 병참 보급이 끊어진 틈을 타
세실로즈는 프랑스 군대를 지리멸렬 시키고 맙니다.
이러한 해외 야사가 국내에서는 소설등을 통하여 와전되면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유츠프라 카치아'는 얼토당토 않은
스토리 라인을 가진 꽃이 되어버렸습니다.
때문에 한동안 네트웤 게시판 여기저기에서 이 꽃은
자신 본연의 모습이 아닌 엉터리 사진들로 공개 되었고,
잘못된 지식으로 세간에 알려져 엉뚱한 오명을 뒤집어 써 왔습니다.
역사를 바로 알고, 올곧은 지식을 후배들에게 전해줄 때,
비로소 인터넷이 바른 생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