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영혼은 하늘나라에 들어갈수 없답니다* 더이상의 위로는 또다른 자살을 부릅니다.

김형오2007.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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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은 타살입니다* 더이상 그들을 위로 할수만은 없습니다.

위로는 가슴속으로 하돼, 따끔한 충고도 잊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많은 아름다운 젊은영혼들에게 삼가 명복을 빌어야 합니까.

막읍시다.

 

 

요즘 우리는 며칠이 멀다하고 연예인들의 자살을 접합니다.

그러나 어찌 그들 뿐이겠습니까?


일반인들의 자살도 너무 흔해졌죠.

자살 싸이트는 이미 오래전부터 더 이상 우리에게 낮설은 단어도 아니잖아요?


몇해 전 부터 공인들의 자살이 급 물살을 탔지요.

 

-검찰의 수사를 받던 은행장의 한강 투신.

-비리 수사를 받던 도지사, 구청장의 한강 투신.

-역시 검찰 수사를 받던 현대아산 회장님, 왕회장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그래서 당신의 마지막 과업이시던 대북 사업을 물려주셨던 아들..

 재벌총수 (故)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님의 현대사옥 투신..

-중소기업 사업가의 한강투신.


다 기억도 못할만큼 수많은 자살이 줄을 이었지요.

그때마다 여론은 지나친 수사당국의 처사 때문 이다며 한마디씩 했었죠.


그리고 외국의 인기 배우들의 자살..

"장국영"씨의 만우절 투신,

"매염방"씨의 자살..

일련의 모든 사건들이 우리에겐 큰 충격 이였지요.


그러더니 급기야는 국내 연예인들의 자살 특급열차가 기나긴 객차를 매달고 출발하더군요.


(故) "이은주"씨의 자살을 시작으로 어제 "정다빈"양의 자살까지..


이름처럼 외모도 예쁘고 청순한 그녀의 자살이 또다시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그리고 며칠전의 인기 연예인의 감춰진 연인의 자살이 화제가 됐고,

그 며칠전에도 자살이 있었고, 또 그 며칠전에도 자살이 있었죠.


그때마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로 애도를 표하시는 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비난이나 악담을 하시는것은 남겨진 이들이 할일이 못되죠.


그러나 우리가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자살이 언제부터인지 뭐랄까요...

마치 "미화" 되다시피 여겨지고 있는것은 아닌지요.


그리고 네티즌들의 아름다운 글들중에 대부분은,

고인이 하늘나라에서.. 또는 하느님 곁으로.. 등등 하늘나라.. 천국에서 편히 안식하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글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100여년 전에 24세를 일기로 세상을 살다간 프랑스의 수호성인 "작은꽃" 소화(小花) 데레사(1873~1897) 수녀님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저는 수만은 성인들(가톨릭에서 성인으로 시성되신분들을 말합니다) 중에서 가족을 사랑하지않는 성인들을 이해할수가 없어요"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수녀님께서는, 주님을 사랑하시며 성령을 받들며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쳐가며, 고난과 학대와 죽음앞에서도 오직 하느님의 진리를 단 한사람의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기 위한 삶을 사시다 생을 마치신 수도자들, 사도, 사제들...  사후에 "그리스도교"  "성인"으로 시성되신 위대한 분들중 어느분들을 일컬어서 말씀하신듯합니다.


이상하죠?

"교회박사"로 시성되시고 "쟌다르크"(요한나)성녀와 함께 프랑스를 수호하는 두분의 성인중 한분이신 소화 데레사 성녀께서 어떻게 자신보다 먼저 살다가신 일부 성인들을 이해할수 없다고 하셨을까요?

답은 명확합니다.

"그리스도교"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성인들중엔 하느님을, 성령을 받들기 위해서 사랑하는 가족과도 단절하거나 가족을 버리거나 방치하거나, 부모와 평생을 대립하거나 형제와 의절하거나 하신 성인들도 많으십니다.


수녀님은 그런 성인들을 두고 말씀 하신것입니다.

그렇게 가족과 등을 돌리면서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 하시지 않고도 어떻게든 가족과 사랑하며 다른 방법을 찾아가면서도 하느님의 일을 하실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족과의 사랑은 결코 무엇과도 바꿀수없다는 것이죠.


여기서 왜 제가 종교적인 이야기까지 들먹이며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할까요?


"자살"을 말하려는 겁니다.

아시겠죠?


내가 스스로 죽고난후.

사랑하는 가족들이...

사랑하는 엄마가, 아버지가, 오빠 언니 동생들...

나를 특별나게 더 잘 따르는 사랑하는...

아직 죽음이 뭔지도 잘 모르는 귀여운 조카의 아름다운 영성에 영원히 큰 쇽크와 상처를 남기고,

온 가족이 평생을 슬퍼하며 괘로워하며 마음속에.. 정신적인 고통에 멍에를 가지고 살아갈것을 깊이 생각한다면 자살은 못하게 됩니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죽기 살기로 살면 못할게 없는데 죽기는 왜 죽어"

 

라고들 말하는데 그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살을 구체적으로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수 있습니다.

자살은 이 거칠고 험한 세상을 힘들게 사는것 보단 훨씬 쉽습니다.


오늘 자살을 생각했다가 "아니야, 이런 독한 마음으로 다시한번 해보는거야" 라고 굳게 다짐하고 아침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어제와 똑같은 세상과 마주칩니다.


세상은 여전히 거칠고, 사납고, 헐뜯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비난하고, 속이고, 속고, 죽이고, 배고프고, 돈이라는게 나를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울리고 어느것 하나 호락호락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고통스런 나날을 매일매일 살아가기 보다는.

지금 당장 사랑하는 가족도, 죽음에 대한 공포도, 그 무엇도 잠시 잠깐만 극복하면 누구라도,  언제든,  어떻게든, 죽는것 따위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는것보다 죽는것이 쉽습니다.


자살할 용기로 살면 못할게 없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살은 결코 미화 될수없습니다.

자살은 무책임하며,  이기적이며,  더 심하게 표현한다면.

더이상 견디기 힘들다..

그러니 남겨진 가족들은 어쩔수없고 나 혼자만이라도 편해지고 싶다는 아주 나쁜 이기적인 발상입니다.

오죽이나 힘들었으면 사랑하는 이 들을 남겨두고도 그런 결심을 했겠느냐는 반론은 남겨진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어떤식으로든 용서할수 없는것입니다.

 

전쟁터에서 개미때처럼 밀려오는 엄청난 적들과 대치한 소수의 병력들중에서 그들 모두는 저 끝도없는 엄청난 적군들에게 결국은 죽게 될것을 모두가 압니다.

그러나 군인이기에, 그리고 소수이지만 어차피 총알받이가 될 거지만, 우리가 이자리를 몇시간만 버텨준다면 후방의 아군이 제정비하여 싸울 시간이 주워집니다.

 

또한 우리가 몇시간만 이자리를 사수 해 준다면 죄없는 민간인들이 노모를 업고, 어린아기를 업고 후방으로 한강 다리를 건너서 피할수있는 시간을 벌수있습니다.

민간인이 다리를 건너면 한강 다리는 폭파될것이며 그렇게 아군의 생명과 민간인의 학살을 막을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두렵습니다.

 

총칼을 들이밀고서 개미때처럼 밀려오는 적군을 보니 오줌이 저리고 정신이 돌아버릴것 같습니다.

소수의 병력으로 매복해있던 동료들중 누군가가 견딜수없는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쏘고 자살해 버렸습니다.

 

총소리에 매복해있던 병력들은 적에게 위치가 노출됐고 적군의 집중 공략으로 순식간에 동료 전우들은 총한번 제대로 못 쏴보고 전멸했으며 후방의 병력을 제정비할 시간을 벌지못한 군부는 더이상의 피해를 막기위해 예정보다 서둘러 한강 다리를 폭파합니다.

 

다리를 건너던 많은 병력과 민간인들이 그대로 수장됐으며 다리를 건너지못한 수많은 병력들이 적군에게 죽거나 포로가 됐습니다.

민간인들도 아수라장이되어 맨몸으로 한강에 뛰어들거나 작는 나룻배에 서로 올라 타려다

뒤집어져서 여자와 아기들을 포함한 많은이 들이 수장됐으며, 살아남은 민간인도 적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수없이 살해당했습니다.

 

공포에 질린 한사람의 행동이 엄청난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한국전쟁 영화의 한 장면이였습니다.  

 

그것과 이것이 어떻게 비유될수 있느냐고요?

 

똑같습니다.

다른건 한사람의 연예인과 영화속의, 나라를 지켜야하는 군이라는 신분의 차이일뿐, 똑같은 부모 형제가 있는, 한사람의 인간이라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그가 공인이든 연예인이든 군인이든 일반인이든 그들에겐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이 이웃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살한 군인도 민간인도, 얼마다 무서웠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등등의 이해심은 켤코 

자살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위로받을수 없습니다.

사랑하는이 들을 배신한 이기주위자라고 해야합니다.

 

그자리에 있던 모든 동료 군인들도 두렵기는 매 일반이였고 옆의 동료도 떨면서 바지에 오줌을 제리고있었으며 총구는 사시나무떨듯 떨고있었습니다.

 

중대장은 자신이 지휘관만 아니라면 지금당장 창피고뭐고 명예고뭐고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총알받이가 될거란거..  개죽을을 당할거라는거, 지원해줄 지원군도 예정 되 있지 않다는거, 죽도록 무섭고 두럽다는거, 방법만 있다면 여기서 도망가고싶다는거..

그자리의 동료 전우들도 모두 같았습니다.

결국은 전우가 전우를 죽였습니다.

국군이 민간인을 죽인것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크게 비약됐습니다.

 

어떻든 자살은 남겨진 사랑하는이 들 에게는 비수와도 같으며,

속 내장이 새까맣게 썩어 문들어지는 고통이며, 정신을 파괴하는...

말로는 어떻게도 설명할수없는 평생의 고통과  아픔입니다.


자살은 곧 타살입니다.

 

나는 나를 죽였고 동시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죽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살해하는 살인마와도 견줄수있는 그것이 바로 자살입니다.


저는 스스로 목슴을 끈은 가옆은 분들을 메도하거나 욕할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는 죽은이를 두번 죽이는 살인자입니다.


단지 전 자살은 않된다는 말을 하고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말은 아주 종교적인 말이니까 제말에 맞느니 틀리느니 하는 생각은 접어두시고 보시길 바랍니다.


요즘 자살하는 연예인들의 사건에 관하여 네티즌들의 아름다운 글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고인이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의 품으로... 하늘나라 천국에서는 행복하시길..."

등등의 고인을 추모하는, 그리고 고인에대한 최소한의 또는 최대한의 예와 슬픔을 보여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행동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하느님은 자살하는 영혼은 하늘나라에 받아주시지 않으싶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자살한 영혼은 절대로 하늘나라로 들어갈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죄에대한 정화의 시간을 보내며 그나마 하늘나라에 들어갈수도 있는 기회를 가져볼수도 있다는.. 그러나 엄청난 고통의 나날을 수백년일지 수천년일지도 모르는 시간을 정화의 시간으로 보낼수있는 "연옥"이라는 곳에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살한 영혼은 그 즉시 지옥불로 던져진다고 합니다.

그곳은 절대로 구원 받을수 없는 영원한 고통의 지옥입니다.

자살을 절대로 용서받을수 없는 대죄에 해당 한답니다.

너무너무 가슴아픈 일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하늘나라 라는 행복한 곳이 없어도 좋으니, 천국도 연옥도 지옥도 모두다 없었으면 합니다.

이것은 어떤 한 종교적인 이야기니 종교가 다르다고, 무신로자라고, 흥분하시는일 없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고인이 지옥에 갔을거라는 생각은 하기도 싫습니다.

고인이 어디를 가셨든지 부디부디 평안하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저도 죽음에 대한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해전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저와 저희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20대 후반의 젊고 아름다운 사람이였습니다.

제가 직접 상을 치르랴 묘자리를 급하게 구하러 답사를하랴...


어제까지 멀쩡히 한집에서 웃던 가족이 오늘은 병원 영안실에서 싸늘하게 누워있고,

가족들은 모두 울부짖고 통곡하며...

실신하고...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딸은 영문도 모르고...

그 아이를 볼때마다 가족들은 다시 가슴이 썩어 문드러지는 아픔에

통곡이 그치질 못하고...


저는 제 스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그나마 좋은, 양지바른 곧을 찾기 위하여 울면서 장지를 찾았고 그곳이 사랑하는 가족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생각 하기도 싫으나 사랑하는 저의 가족은 요즘 연예인들이 행하는 똑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직 세상을 모르는 갖 말을 늦게 튼 어린 조카는 사건 발견 당시, 급하고 아수라장인 상황에서 가족을 살려보려고 급하게 응급처치도 해보고 방방뛰며 난리가 아닌 상황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바람에 세살 다섯살의 조카 그리고 고인의 딸이 그 아수라장을 그대로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마간 다섯살의 갖 말을튼 귀여운 조카는 "외숭모 주거떠 외숭모 주거떠" 했습니다.


관이 입관하던 순간 또다시 수많은 가족들은 오열과 통곡으로 산을 울렸고 실신하는 가족들도 생겼습니다.

어느덧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당시 아장아장 걷던 딸은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으로 그림을 아주 잘그리며 상도 많이받고, 공부도 상위권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지금까지 엄마라는 단어를 한번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않보이면 단 1분도 못참고 울기 일쑤던 까다롭던 딸은, 가옆게도

엄마 이야기를 하면 않된다는것을 엄마가 세상을 떠나시던 그날부터 알았습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그날부터 이상하리만큼 엄마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날을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저에게는 고인의 생전 동영상이 상당량 있습니다.

갖난 아기를 업구서 놀이동산에 갔던일...

정읍에 다녀오던날 밤 온가족이 탄 승합차가 폭설 속에서 대우가 주져 앉아서 눈길 고속도로에서 대형사고가 날뻔했던 순간...

그 승합차 않에서 몇시간을 온가족이 추위에 떨던 장면...

어찌어찌 논산 까지 견인돼서 여관에서 어린애들 셋과 가족들이 한방에서 잠을 청하던 장면들..

그 외에 수많은 동영상 장면들이 가족들 아무도 모르게 아직도 제게

고스란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