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충 의료법안"에 환자는 없다

이태복2007.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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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충 의료법안’에 환자는 없다



  보건복지부가 5일 의료법 개정안을 발표하자 의사협회의 사실상 파업이 구체화되고 있다. 현 의협 지도부가 독려하고 있는 집단휴진과 반대운동이 일부 의사 등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의약분업 이후 치료비가 폭증한 반면, 의료서비스는 3분 치료가 여전하고 개선된 것이 거의 없는 실정 아닌가. 국민들은 아파도 돈을 걱정하여 병원 발걸음을 줄이고 있는데도 의료비는 매년 18% 이상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을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정부가 공언해온 보건소 등 공공의료기관을 30%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약속도 전혀 지켜지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민간의료기관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병이 나면 어느 병원이 잘 하는지, 그 병원의 어떤 의사가 얼마만큼의 수술경력과 실력이 있는지를 알아볼 방법이 전무한 실정이다, 그래서 돈 없는 시골사람들은 발병하면 119를 불러 서울의 모  국립병원으로 무조건 달려가고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강남의 모 병원으로 무턱대고 밀려드는 것이다.


  IT선진국을 자랑하지만, 의료와 국민들의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현실은 너무나 일방통행식이다. 의료인만 있고 국민과 환자가 없다. 의료법이 그들의 권리와 영업권 보호장치 이상의 구실을 못하고 있는 탓이다.


  이번 보건당국이 발표한 의료법 개정안은 이해관계가 다른 각계의 의견을 약간씩 반영한 절충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의료의 광고와 가격조정, 영리사업을 대폭 허용하면서도 비영리법인의 자격을 보호해 준 한편 간호사계의 요구를 반영한 간호진단과 약사회의 조세권 주장을 적극 수용했고, 긴급현안인 표준진료지침 제정근거와 진료행위 설명의무를 부과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침, 뜸 등 그동안 제도권밖에 놓여있던 전통의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할 근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정부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여당이 분열되고 있는데다 의사협회의 입장을 주로 반영해온 한나라당의 태도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의 노력 끝에 겨우 이런 수준의 의료법 개정안이 나온 것은 지극히 실망스럽다. 국민의 건강과 환자의 고통은 기다려서 될 일이 아니다. 오늘 당장 매 시간이 문제인 긴급한 사안이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집단의 이해상충을 절충하는데 초점을 맞췄을 뿐 국민의 건강과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은 유감이다.


  지금 환자들에게 가장 힘든 문제는 의료비와 의료인에 대한 정보부족이다. 수술할 필요가 없는 환자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경우가 다반사고, 약효가 높은지 알 수 없는 고가약처방이 일상화됐고 곧 돌아가실 노인들에게 산소호흡기를 강요하고 그것도 비싼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환자와 가족들이 치료하는 의사와 병원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아무리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의사들의 치료경력이나 주요논문발표 등 환자와 가족들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정보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의료사고가 나도 그 입증책임은 전적으로 환자의 몫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의료법이 의사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제 의료법을 비롯한 의료관계법률들을 의사, 약사, 한의사 등 각 이해집단에 의거한 개별법으로 규율할 것이 아니라 통합의료법으로 묶어야 한다. 원칙과 기준에 관한 법률적 근거를 통합의료관련법으로 포괄하고 구체적이고 개별적 기준에 대해서는 시장 상황의 변화에 쉽게 반영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이 구체화돼야 한다. 의료단체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영업권 보호장치로 의료관련 법률을 이해하는 잘못된 풍토를 바꾸려면 개별법률을 폐기하고 통합의료법을 제정하여 권리와 의무의 원칙과 기준을 명시하도록 해야 한다.


  아무튼 이번 정부의 개정안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공론화의 시작이다. 국민의 여론을 모아 의료인들과 국민 모두를 위한 법률이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