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바울이 누구인가? 바울이 없었다면, 예수교가 이 세상에 존재할까? 바울은 4 번에 걸쳐서 여러 지방으로 전도 여행을 강행한 자이며, 마침내 예수교를 로마제국의 심장부에 그 씨를 뿌린 자이기도 하다.
바울은 신약(新約=바이블)의 거의 절반을 기록하여 남긴 자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신약은 그 배열 순서대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바울의 글(書信)이 먼저 씌어지고, 그 다음에 마가, 마태, 누가, 요한 등의 예수의 일대기가 씌어졌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신약(바이블)은 바울의 종교관이 먼저 태어나고, 그 다음에 여호와의 아들 예수 얘기가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바울은 예수쟁이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잡아죽이기까지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예수를 만나는 체험을 한 후, 예수교 최대의 사도(使徒)가 되어 찬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심지어 바울 없는 예수교는 성립될 수가 없다고까지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바울이 예수를 만나는 체험담을 들어보기로 한다. 바울이 예수를 만난 것은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한 뒤의 일이다.
예수 살아 생전에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 바울이 예수에 대해서 도대체 얼마나 알수 있을까?
의문이 가지 않을수 없다. (바울의 원래 이름 즉 예수를 만나기 전 이름은 사울이었다고 한다.)
다음 이야기는 바울(사울)이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잡아죽이며 살기가 등등하던 때에, 일행들과 함께 다메섹(다마스커스)으로 가던 도중에 예수를 만나는 장면 일부이다.
1) [(바울=사울)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예수) 가라사대, "나는 네(바울)가 핍박하는 예수라. .........." (바울과)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사도행전 9;5~7)
2) [내(바울)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예수)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예수)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사도행전 22;8~9)
** 위의 2 바이블 구절은 바울이 예수를 만났을 때의 장면을 바울이 직접 고백(설명)하는 모습이다. 둘 다 같은 장면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바울(사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1) 번에서는 예수의 말 소리만 듣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그리고, 2) 번에서는 빛은 보면서도 예수의 말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같은 장면 즉, 바울(사울)이 예수를 만나는 장면의 상황이 아주 정반대로 다르다. 어찌된 일일까?
예수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한다. 그래서 자기 체험을 발표(간증)하는 예수쟁이들도 많다. 그러나, 예수교의 왕초인 바울의 체험이 이렇게 엉터리로 되어 있는 현상을 무엇이라 변명하겠는가?
바울 도 사기꾼 ㅡㅡ [퍼옴]
내가 바울에 대해서 성서를 통해 분석해 보니 바울은 인류 최고의 사기꾼이 분명하다.
자 바울이 누구인가?
바울이 없었다면, 예수교가 이 세상에 존재할까?
바울은 4 번에 걸쳐서 여러 지방으로 전도 여행을 강행한 자이며, 마침내 예수교를 로마제국의 심장부에 그 씨를 뿌린 자이기도 하다.
바울은 신약(新約=바이블)의 거의 절반을 기록하여 남긴 자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신약은 그 배열 순서대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바울의 글(書信)이 먼저 씌어지고, 그 다음에 마가, 마태, 누가, 요한 등의 예수의 일대기가 씌어졌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신약(바이블)은 바울의 종교관이 먼저 태어나고, 그 다음에 여호와의 아들 예수 얘기가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바울은 예수쟁이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잡아죽이기까지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예수를 만나는 체험을 한 후, 예수교 최대의 사도(使徒)가 되어 찬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심지어 바울 없는 예수교는 성립될 수가 없다고까지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바울이 예수를 만나는 체험담을 들어보기로 한다.
바울이 예수를 만난 것은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한 뒤의 일이다.
예수 살아 생전에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 바울이 예수에 대해서 도대체 얼마나 알수 있을까?
의문이 가지 않을수 없다.
(바울의 원래 이름 즉 예수를 만나기 전 이름은 사울이었다고 한다.)
다음 이야기는 바울(사울)이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잡아죽이며 살기가 등등하던 때에, 일행들과 함께 다메섹(다마스커스)으로 가던 도중에 예수를 만나는 장면 일부이다.
1) [(바울=사울)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예수) 가라사대, "나는 네(바울)가 핍박하는 예수라.
.........."
(바울과)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사도행전 9;5~7)
2) [내(바울)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예수)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예수)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사도행전 22;8~9)
** 위의 2 바이블 구절은 바울이 예수를 만났을 때의 장면을 바울이 직접 고백(설명)하는 모습이다. 둘 다 같은 장면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바울(사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1) 번에서는 예수의 말 소리만 듣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그리고, 2) 번에서는 빛은 보면서도 예수의 말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같은 장면 즉, 바울(사울)이 예수를 만나는 장면의 상황이 아주 정반대로 다르다. 어찌된 일일까?
예수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한다.
그래서 자기 체험을 발표(간증)하는 예수쟁이들도 많다.
그러나, 예수교의 왕초인 바울의 체험이 이렇게 엉터리로 되어 있는 현상을 무엇이라 변명하겠는가?